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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남친의 이별통보, 어떡해?

by 무한 2015. 8. 11.

어제 난 유학중인 친구 A와 통화를 했다. 그는 그곳의 살인적인 물가에 대한 하소연을 하며, 방세와 학업에 들어가는 돈, 그리고 생활비를 합쳐 한 달에 500만원이 넘기에 숨을 못 쉬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구랑 밥 한 번 먹으면 팁까지 합쳐 육만원이 후딱 나가고, 한국 음식이 그리워 순두부찌개나 냉면을 먹으면 그게 역시 팁까지 합쳐 만사천원쯤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돈에 쪼들리니, 속해 있는 모임에서 다 같이 놀러가기로 한 것에서도 그는 빠졌다고 한다. 회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20만원 정도인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걸 쓰고 나면 정말 마트에서 라면만 사다 먹어야 할 수 있기에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내가 그에게

 

"이만원 들고 백화점 간 기분이겠네."

 

라고 하자, 그는

 

"진짜 그래. 여긴 돈 있으면 정말 살긴 좋아.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 백화점 같은 느낌이야. 그런데 돈 있으면 층마다 구경다니고 하겠지만, 돈이 없으면 겨우 푸드코트 이용하잖아. 대형 백화점에 와서 푸드코트에만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실제로 요즘 푸트코트에서 밥 먹을 때도 많고."

 

라는 대답을 했다.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이긴 하지만, 그런 곳일지라도 돈이 없으니 그냥 도시가 흉물스럽게 보이고, 유학을 포기할 때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그곳에서 4년 공부할 돈으로, 4년간 세계여행을 다니며 돈을 써도 남아 돌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1. 정말 경제적인 문제 때문일까요?

 

S양 남친이, 위에서 말한 내 친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게 된 거라 보면 될 것 같다. 내 친구야 못 견딜 것 같으면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큰 걱정 없이 삶을 유지해갈 수 있지만, S양 남친은 더 물러설 곳이 없다.

 

나도 이런 씁쓸한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S양이 아직 학생인 입장에서만 이 관계를 보고 있기에 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남친의 상황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순 없으니, 남친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B씨를 예로 들어보자.

 

B씨는 월 200만원을 받는다. 그는 그 돈으로 본인 소유의 차를 굴리고, 데이트비용을 지불한다. 그래서 남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그가 라면만 먹어가며 월 100만원을 모은다 하더라도, 5년 모아야 6,000만원이다. 그가 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 스물일곱부터 일을 했다고 치면, 서른둘이 되어야 6,000만원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도 정말 숫자로만 계산해 겨우 구한 답일 뿐이지, 실제로 살다보면 돈 들어가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에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B씨는 스물일곱에 취직해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으다가, 서른쯤 되었을 때 모은 돈으로 쇼핑몰을 시작했다. 쇼핑몰로 성공했다는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준비해가며 오픈했지만, 자신이 디자인 쪽에는 감각이 별로 없다는 것과 아무리 정성들여 준비해도 사는 사람이 없으면 끝장이라는 걸 배우며 문을 닫았다. 쇼핑몰 문을 닫고 나니 남은 건 서른이란 나이와 800만원이었다.

 

저런 상황에 있는 B군의 마음을, 졸업 기념으로 다음 달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대학생이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혹 그 대학생이

 

"저도 돈 많아서 가는 거 아니거든요? 인턴과 알바 해가며 번 돈으로 가는 거예요."

 

라는 얘기를 한다 해도, 여행을 다녀와 잔고가 제로가 되어도 부모님이 채워주시는 상황과 자신이 다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모아둔 돈으로 여행을 다녀올 경우 부모님으로부터 6개월간 용돈을 못 받게 된다면, 그 대학생도 결국 여행계획을 접지 않을까? 여행보다 급한 게 먹고 사는 것이니 말이다. 그 대학생은 6개월만으로도 큰 상심을 하는데, B군은 평생이다.

 

상대가 저런 기분일 수 있다는 걸, 난 S양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얼마 안 되는 실업급여에도 희망을 걸고, 거리를 걷다 가게에 걸린 아르바이트 구한다는 문구에 더 눈이 가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위축될 수 있고 가장 부담이 되는 것부터 포기할 수 있다. 내일 실업급여 때문에 면담가야 하는 상황에서 오늘 밤 아무렇지 않게 칵테일 바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믿는 구석이 있든가 아무 생각이 없든가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선 자신이 마시고 있는 칵테일이 무슨 맛인지도 모를 수 있다.

 

 

2. 그럼 그렇다는 걸 제게 말하면 되는 거였잖아요?

 

그가 그런 얘기를 털어 놓지 못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첫째, 그는 S양이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수 있다. S양은 자신을

 

"굉장히 감정적이고, 제 감정에 매우 솔직한 사람."

 

이라고 표현했는데, 남친은 그런 S양의 모습들을 보며 겁을 먹거나 속으로 혼자 하나 둘 포기하고 있었을 수 있다. S양은 잘 토라지고, 갈등이 생기면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데이트 중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하지 않아 버린다든가, 남친을 두고 집에 가 버린다.

 

"그럼 내일은, 우리 그냥 각자 보낼까?"

 

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후, 남친이 "그럴까?"하는 대답을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에 가 버리는 것이다.

 

S양에겐 그게 '화나서 한 행동'이겠지만, 그걸 경험하는 상대 입장에선 그 순간순간이 모두 이별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쟤가 날 어떻게 생각하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나도 생각해 보게 되고, 저렇게 간 후 연락도 되지 않으면 그건 헤어져도 상관없다는 의미라고 여길 수 있다.

 

"잡지도 않고 따라 나오지도 않길래, 그 길로 그냥 집에 돌아왔습니다."

 

S양의 남친은 그간 매번 자신이 참으며 S양을 잡거나 따라 나왔고, 단 한 번도 S양을 두고 그렇게 가버린 적 없다. 그 마음을 S양이 좀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대로 당시 그는 장래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데이트를 하러 나왔다 여자친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리는 걸 보며 그냥 다 싫어졌을 수도 있다.

 

이건, S양이 친구와 해운대에 갔는데, 돌아올 차비만 겨우 남은 상황에서 친구가 회 먹고 싶은데 S양이 회 먹는 것에 소극적이라고 그냥 올라가버린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럼 S양도 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친구와의 관계를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둘째,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그에게 자격지심이 들었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땐, 누가 어디 놀러 다녀오자고 하는 게 마냥 즐겁지 않다. 이쪽은 당장 알바라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런 와중에 여자친구가 스위스를 다녀오자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여자친구가 형편이 비슷한 친구들과는 스테이크 먹는데 이쪽과는 돼지갈비만 먹어야 하고, 여자친구는 콘서트를 보러 가고 싶어 하는데 이쪽에선 돈이 없어 그나마 만만한 영화 정도만 고집해야 한다면 데이트 자체가 그리 즐겁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다.

 

돈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다면, 요즘 같은 휴가철에 어느 계곡 옆 펜션이라도 잡아 놓고 며칠 쉬다오고 싶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돈에 쪼들리는 상황에선, 숙박비와 식비만 생각해도 앞이 캄캄해지고 만다. 2박 3일 여정으로 가서 펜션 방바닥만 긁다 와도 최소 30만원은 드는데, 그것만 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쪼들리는 상황에선 그게 생활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금액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그럼 이번 여름엔 아무 것도 하지 말자고? 내 친구 누구는 어디 다녀왔고, 또 내 친구 누구는 어디어디 갈 예정이야. 나만 아무데도 안 가. 그럼 오빠랑은 가기 어려우니까, 내 친구가 가자는 여행 같이 다녀와도 돼? 여자들끼리만 가는 거야. 전에 본 희영이랑 미지."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역시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상대가 가지는 서운함에 두 손을 들게 될 수 있고, 이렇게 만나며 이쪽에선 못 해줘서 힘들고, 저쪽은 못 해서 힘든 거라면, 차라리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S양의 남친이 이별 후

 

"좋은 사람 많아.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사람. 다른 사람 만나봐."

 

라고 이야기 한 것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반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한 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양도가 불가능한 외국 특급 호텔 2박 3일 숙박권이 생겼는데, 거기까지 다녀오는 비행기 값만 200만원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그래. 내가 거기 2박 3일 묵어서 뭐 하냐. 거기 안 가도 다 잘 사는데. 그 돈 들여서 다녀오느니 그냥 저축이나 해야겠다.'

 

하는 합리화를 하게 되고, 결국 "고맙지만…, 사양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다.

 

 

글쎄 난, S양에게 더는 아무 것도 권하지 않고, 그냥 상황이 이렇다는 것만 적어두고 싶다. S양이 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며 매뉴얼을 마칠까 한다.

 

"그가 그렇게 다정하게 헤어짐을 말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헤어지자는 얘기를 할 정도면 오래 전부터 이별을 준비했다는 건데, 그러기엔 그 직전까지도 정말 분위기 좋았거든요. 제가 화를 좀 내다 그가 풀어주는 와중에 아주 덤덤하게 얘기했는데, 홧김에 한 말 같지가 않았어요.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S양이 화를 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둘은 어디 들어가 시원하게 쉬지도 못 하고 계속 거리를 걸었던 건데, 그렇게 공원을 배회하는 데이트에 질려 S양이 어디라도 들어가자고 했을 때 그는 망설였다. 그러자 S양은 그의 태도에 화가 나 계속 짜증을 냈고, 그러다 그냥 각자 집에나 들어가자는 식의 말을 했다.

 

난 그가 거기서 무너진 거라 생각한다. 전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위축되었던 것에 대한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르기도 했고, 나아가 갈등이 생기면 집에 가 버리려는 S양의 태도에도 더는 버티기 힘들었던 거다. 그러다 이 연애를 내려놓는 게 서로에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까지를 확실히 굳히게 된 것 같다.

 

"이별 후 제가 잡아도 안 잡혀요. 분명 저를 놓치는 게 아쉬울 거고, 또 저 아니면 만나는 사람 없다는 거 저도 아는데, 왜 이렇게 단호하게 재회를 거절하는지 모르겠어요."

 

S양이 유럽여행 무료 항공권을 경품으로 받게 되었다. 그런데 출발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S양 부모님께서 크게 싸우시다 이혼 바로 직전까지 가게 되셨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S양도 온전히 유럽여행을 준비할 수 없고, 나아가 당장 급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 여행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분명 여행의 기회를 놓치는 게 아쉽고 또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지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 할 뿐더러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질 수 있다. 현재 S양의 남친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기에, 그런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거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S양이 더욱 혼란스러울 것 같아, 짤막하게나마 결론을 적어둘까 한다. S양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이 이별을 받아들이길 권할 것이다. 너무 길어서 여기다 다 적을 수 없는 서른한 가지 -약간은 속물적이기도 한- 이유들을 대며, 안 그래도 힘든 연애를 상대에게 자신감까지 불어 넣어가며 하는 건 너무 가혹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할 것이다. S양은

 

"솔직히 그를 잊을 자신도 없고, 그냥 한번만 더 사귀어보다가 서로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어 헤어짐마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는데…."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내 여동생이 같은 말을 했다면 난

 

"그러면 네 마음은 편하겠지만, 그에겐 그게 두 번 희망을 주었다가 뺏는 일이 될 수도 있잖아. 또 자연스럽게 포기된다는 게 말은 쉽지만, 그건 그렇게 실망하게 되기까지 서로의 영혼이 더 많이 부서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말이야."

 

라는 대답을 해줬을 것 같다. 이렇게만 적어두고 S양의 판단에 맡길까 한다. S양이 남친이 좀 더 박력을 발휘했으면 어땠을지, S양이 좀 더 일찍 사회를 경험했으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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