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양은 예쁘고 인기 많은 여자일지 모르지만, 본인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렇게나 괜찮은 여자'는 아닙니다. 제가 시작부터 이렇게 몸 쪽 꽉 찬 돌직구를 던지는 이유는, 그 포지션에서 뒤로 좀 물러나지 않으면 앞으로 방망이를 어떻게 잡든 공은 하나도 못 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그 여자가 나은 점이 뭐냐고 남친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S양은, 남친이 바람을 피운 상대가 S양보다 예쁘지도 않고, 심지어 화류계에서 일을 하는 여자인 것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S양이 더 나은데, 어떻게 그런 여자와 바람을 피울 수 있느냐면서 말입니다.
저는 S양이 했다는 저 질문이, 당연히 상대의 배신에 대해 화를 내다가, 분한 마음을 조목조목 다 표현할 길이 없어 투박한 형태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전달한 것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연을 읽다 보니 S양은 저걸 정말 진지하게 묻고 계신 것 같아 좀 놀랐습니다. 그럼, 만약 남친이 모든 면에서 S양보다 뛰어난 사람과 바람을 피웠을 땐 곧바로 수긍하게 되는 건지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연애에 임하는 S양의 태도가 보통의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잘못 끼워진 첫 단추
제가 S의 남친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7월 1일부터 사귄 사이입니다. 그런데 제가 7월 말쯤, 친구인 A양을 만나러 나갔다 오겠고 했습니다. S양은 제게 왜 여자인 친구랑 단둘이 만나냐고 따졌는데, 저는
"그럼 너도 남자인 친구 만나라. 그냥 친구라서 만나는 건데 왜 그러냐."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제게는 S양과의 연애도 즐겁지만 친구인 다른 이성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우니, '내가 하는 걸 너도 해라. 그럼 되는 거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저는 당연히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걸 강조하며 S양을 설득시켰고,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다른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딴지도 걸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이후엔 서로 알아서 이성친구든 동성친구든 잘 만나러 다녔고 말입니다.
저게 연애 초기엔 서로 잘 협의해 결론을 이끌어 낸 것으로 생각될 수 있겠습니다만, 훗날 불러올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생각하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만, 저는 이성친구를 불과 인화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유소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무조건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 때보다는 분명 사고가 날 확률이 높으며,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끼리니까 좀 솔직히 얘기하자면, 전 S양이 남친을 설득해가며 이성친구를 만난 것이, '우정' 보다는 '인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S양 스스로도 '많은 남자들이 날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고 하신 부분도 그렇고, 또 남친을 설득하면서까지 굳이 이성친구와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30% 정도만 연애에 할애하기로 하면 70%를 할애하는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겠지만, 그러는 동안 둘의 단단한 기반은 만들어지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어느 교수가 출석만으로도 A학점을 주기로 약속한 경우, 그 수업에서 만점을 받을 순 있겠지만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아무 것도 없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S양이 예쁘고 인기 많은 건 S양이 받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양의 친구들이
"난 너처럼 예쁘고 인기 많은 친구를 두었으니, 네게 충성하며 네 의견에 모두 따르겠다."
라는 이야기를 하진 않잖습니까?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그는 S양의 친구들과는 달리 당장 S양의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이별할 수 있기에 울며 겨자도 먹겠지만, 영원히 그렇게 울며 겨자만 먹고 있진 않을 것입니다.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실 땐, 상대의 호의와 친절 그리고 헌신을, '내가 예쁘고 인기 많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당연히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또, 연애 중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인기도 누리기 위해 연애에 일부만 할애하려는 태도도 수정하셨으면 합니다.
2. 이것을 만들지 못해서….
이런 비유를 해도 괜찮다면, 전 S양을 '연애 금수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 지인 중엔 그의 오만함 때문에 친구들과 멀어지는 금수저 지인이 있는데, 그는 그럴 때마다 술을 사거나 선물을 줘가며 관계를 회복하려 합니다. 그게 그에겐 가장 편하며 익숙한 방법이니 그렇게 퉁치는 건데, 그렇게 화해를 한 지인이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같은 동호회 활동을 하긴 하지만, 단 한 사람도 그를 '나와 정말 잘 맞는 친구'라고는 여기진 않습니다. 그와 알고 지내면 얻는 게 있고 손해 볼 일은 없으니 친구라는 간판만 걸어두는 거지, 진심으로 마음 써가며 그를 염려하거나 생각해 줄 사람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S양이 사연에 적은 말을 잠시 보겠습니다.
"저는 남친이 혼자 여행 다니는 것도 허락했고, 술 마시거나 친구 만나는 것도 다 이해했습니다. 마지막엔 바람피운 것도 화내지 않았는데, 제가 이렇게까지 해줬음에도 왜 저랑 헤어진 걸까요?"
우리가 서로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는 관심입니다. 1박에 기십만 원 하는 리조트 예약도 물론 기쁘겠습니다만, 지금의 마음을 가만히 살펴주는 건 기쁨을 넘어 감동으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린 대화는 곧잘 했는데, 남친은 제게 속마음을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인간적인 관심이 없는 사이라 해도 당장 해외여행 등의 공동의 목적이 있으면 함께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수십 번의 여행을 다닌다고 해도 마음으로 가까워지긴 어려울 것입니다. 기내식 뭐 먹을래, 어디 갈까, 바다도 보고 올까, 망고주스 마실래, 등의 대화는 가능하지만, S양이 원하는 그 '속마음'이 담긴 대화까진 어렵다는 얘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S양이 경비를 더 많이 부담하고, 상대 혼자 자유여행 할 수 있게 뭐든 맹목적으로 다 허락해 봐야, 그게 둘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종종 매뉴얼을 통해
"오래 사귀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친한 친구 이름 세 개를 못 대는 경우도 있고, 연인의 신발 사이즈나 옷 사이즈를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연인의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아냐고, 혹은 이름이 무슨 뜻인지를 아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건 문자 그대로 한문이름을 물어보라는 게 아니라, 둘이 서로에 대해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려 노력했는지를 돌아보자는 얘기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저 이야기를, S양이 남자친구에게 한 말과 비교해보며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우리 이제 진짜 특별한 일 없으면 연락도 안 되고 소식도 듣지 못 하겠네. 우리 처음부터 공통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도 없었고, 서로의 친구들 소개시킨 적도 없고, 독립적으로 살아온 것 같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우리끼리만도 잘 먹고 잘 놀았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외부나 내부로 걸린 둘의 링크가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6개월 1년 사귄 거라면 짧은 기간에 둘이 불타오르느라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둘은 3년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이 정도로 링크된 것이 적다면, 그건 고립된 연애나 피상적인 연애를 해왔다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제게 도착하는 사연이나 현실에서 3년 정도 만나던 커플을 보면,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모든 것이 얽혀 있거나 공통의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별을 떠올리기만 해도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덜컥 겁부터 먹는 경우가 있고, 둘이 헤어진다는 게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S양의 연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냥 너무 깔끔하게 갈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전화번호 말고는 두 사람이 딱히 연결된 게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다음 번 연애를 하실 때에는, 둘의 스토리가 담긴 물건이나, 인연이나, 장소 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셨으면 합니다.
3. 이별할 용기도, 분명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의 달콤했던 약속들이 그저 공수표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약속을 어기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거나, 연애 보다는 다른 일에 더 집중하는 경우, 진지하게 둘의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만났고 결혼까지 하게 될 사이라고 암묵적으로 정해진 듯해도, 이미 한 쪽을 그저 정물이나 배경처럼 생각하게 된다면 버티기 어려울 테니 말입니다.
만약 위의 경우를 넘어 존중이 사라지고 타협이 불가능해지며, 나아가 상대가 일방적으로 지적을 하거나 강요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땐 이별까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와 원나잇은 없었다는데요."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상대의 정당화에 끌려 따라가기만 하다 보면, 어느 새 낭떠러지까지 걸어왔다는 걸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미안하단 소리 말고 해명을 좀 해달라고 남친에게 말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들을 수 있는 최선의 해명은
"몸으로는 그녀를 만났지만 마음으로는 그녀를 만난 게 아니니 이건 바람이 아니다."
따위의 궤변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론 S양이, 연애 초기 상대와 헤어질 마음을 두 번 먹었을 때 헤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인간적인 매력이나 큰 애정을 느껴 시작한 연애가 아니었기에 S양은 이별을 결심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상대가 회유하면 다시 마음을 돌려 '연인 역할극'을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여행이나 영화, 술 마시기나 스킨십 등의 어떤 이벤트를 제외한 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았던 건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있는 모든 커플들에겐 이런 기반이 있습니다. 이런 기반 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는 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기에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기반이 부실한 연애의 가장 흔한 레퍼토리는, 한 6개월 쯤 호르몬의 도움을 받아 마냥 즐겁게 지내다, 이후 한 쪽은 만남 자체를 의무로 여기게 되고, 다른 한 쪽은 왜 예전처럼 새로운 이벤트들이 없냐며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곤해진 쪽은 나중에 뭐 하자는 공약들로 일단 급한 불을 끄게 되고, 기대하고 있는 쪽은 그 약속이 지켜진다고 해도 금방 다시 마음이 허전해지니 또 다른 것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피곤한 쪽에서 넌 너무 바라는 게 많다, 넌 생각이 너무 어리다, 넌 나를 너무 압박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쪽에선 또 그것에 맞춰 조율을 해주는 게 연애라 생각하며 양보하게 되는데, 그 모양이 결국 이쪽은 놀이기구 앞에서 기다리고, 놀이기구를 작동시키는 상대는 '자유'나 '휴식'을 외치고 있는 모양이 되고 맙니다. 그 순간에도 두 사람 연애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 건데, 놀이기구가 작동해야만 그게 연애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나 따로, 너 따로 알아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겁니다.
돌직구를 하나 더 던지겠습니다. S양은
"아마 지금도 남친은 나랑 대화하는 게 제일 즐거웠고 나만큼 편히 이야기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것임. 헤어진 후에 연락이 닿았을 때, 남친도 그렇게 말했었음."
라고 하셨는데, 제가 봐도 S양은 귀엽고 애교 많고 발랄하고 좋은 리액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 외에 진중하거나 현명하거나 존경스럽거나 한 모습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돌직구를 던지는 이유는, S양도 이제 곧 이십 대 후반으로 접어드는데, 앞으로는 후자를 더 중요시 하는 이성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자가 같이 놀러 가기 좋은 사람이라면, 후자는 함께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 부분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하나 더. S양은
"벌써 6명 중 3명이나 바람을 피워 이별하게 되니, 이제 누구 만나기가 무섭습니다. 저는 정말 착하고 준비된 여자친구인데, 왜 많은 남자들이 저랑 헤어질까요? 왜 바람을 피울까요? 사람들이 저를 평가하기를, 정말 괜찮은, 연인 상대로 최고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저와 헤어지는 건지…."
라고 하셨는데,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기에 그게 이별사유가 되는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S양 본인에 대해 '최고의 연인 상대'라고 평가하실 거면, 상대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셔야 합니다. '최고의 연인 상대'인 남자와 말입니다.
그게 안 될 경우엔 자연히 S양 마음속에는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될 수 있고, 상대에 대해 존중하기보단 '이런 내가 너랑 사귀어주는 거니 나한테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다 다 적었다간 논란이 될 수 있어 옮겨 적진 않겠지만, 매뉴얼 시작부터 S양은 본인이 예쁘다는 것을 계속 강조합니다. 전 S양에게, S양이 양귀비 뒷다리처럼 예쁘다고 해도 그건 그냥 예쁜 거지 그것으로 인해 더 많은 혜택과 더 많은 헌신과 더 많은 사랑을 기대하거나 요구해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S양의 남친이 의사인데,
"난 지금도 선 자리 계속 들어온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 해라."
"난 전문의다. 전문의까지 딴 사람이니 넌 훨씬 더 잘해야 한다."
"난 연봉도 이만큼인 최고의 신랑감이니, 넌 나와 헤어질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진 채 S양을 대한다면, S양도 자존심 상하고 애정이 식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다음 번 연애에선, S양이 소중하고 귀한 만큼 상대도 소중하고 귀하다고 생각하며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S양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가 바람을 피운 거라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서 몇 자 덧붙입니다. 어떤 남자든 바람을 피울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건, 주인이 자리를 비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누구든 그 선을 넘을 수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안 넘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애초에 물건을 훔친다는 걸 상상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또 주인이 있어도 상습적으로 훔치는 사람도 있고 말입니다.
그 선을 넘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니, S양의 잘못이 상대를 도둑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만 다음 번 연애에서는, 시작부터 S양이 놀러 나가고자 무인으로 연애를 운영하는 시간을 늘리지 마시고, 자리를 지키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적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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