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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바쁜 직업의 남친과 헤어졌어요. 끝인가요? 외 1편

by 무한 2015. 8. 17.

대학생 시절, 과에서 주관한 특강을 듣는 도중 어머니께 계속 전화가 온 적 있다. 난 중요한 내용을 듣는 중이라 강의가 끝나고 다시 연락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는 계속해서 전화를 거셨다. 다행히 진동으로 해 둔 까닭에 벨소리가 울리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오는 전화 때문에 강의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도중에 나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안 받으면 나중에 다시 하시거나 기다리시지 왜 계속 전화를 하시냐고 좀 짜증을 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왜 짜증이야? 내가 너 뭐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 나는 나대로 억울한 까닭에 답답함을 좀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반성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어머니와 외할머니께서도 폰을 사용하게 되셨고, 이후 저 때와 똑같은 문제로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갈등을 겪는 걸 목격했다. 어머니께서 누군가를 만나 상담을 받는 중이었는데, 할머니께서 계속해서 전화를 거신 것이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할머니께 전화하며 짜증을 좀 내셨고, 난 그런 어머니께 10년간 품어왔던 한 마디를 던졌다.

 

"엄마, 할머니가 엄마 뭐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아 속 시원해.(응?)

 

이처럼 한 쪽의 입장에서만 보면 답이 잘 안 보이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쉽게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난 어떤 상황해서든 단순히 참고 눈감아주는 게 '이해'가 아니라, 바로 저렇게 반대의 입장을 겪어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이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간 내가 도착한 사연 중 둘을 골라, 반대의 입장에서 살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바쁜 직업의 남친과 헤어졌어요. 끝인가요?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내일 K양은 중요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오늘은 남친과 사귄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K양은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험 끝난 후 만나고 싶지만, 그랬다간 그가 당장 삐치고 말 거라는 걸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서로 선물도 주고받았고, 맛있는 저녁도 먹으며 즐겁게 보냈다. 그러고는 K양이 집에 들어오려 하는데, 남친이 서운해 한다. 100일인데 그냥 저녁만 먹고 헤어지는 게 전부냐는 거다. 자신은 적어도 밤까지 같이 있을 줄 알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특별한 날에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여하튼 K양은 그런 남친을 겨우 달래 놓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를 만나느라 못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세 시간쯤 공부를 해 자정이 되었을 때, 남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너무 섭섭하다. 너를 만나는 동안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만나야 하는 거라면,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가? 이쯤 되면 K양도 지칠 것 같지 않은가? K양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건데, 상대는 서운하다는 얘기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K양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연애를 기대했던 건데, 남친은

 

"내 기대치가 100이라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 50인 것 같다. 그래서 둘 다 힘든 것 같다."

"나는 원래 배려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성격도 아니다."

"나도 뭔가 에너지를 얻어야 배려도 하고 이해도 할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저런 다툼이 네 번 있었으며, 다툴 때마다 남친으로부터

 

"관심이 없는 거면 빨리 정리하자."

"나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너와 난 서로 안 맞는 것 같다."

"노력한다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계속 사귀어 봐야 둘 다 힘들 뿐이다."

 

등의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해보자. 그럼 그 피로도는 고스란히 K양에게 축적되며, 이 연애에 있어 K양이 채무자가 된 느낌만 남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상대가 '앞으로는 너를 이해하고 너에게 부담주지 않는 연애를 하겠다'며 다짐을 해도 그게 본심과 다르게 연기해 보겠다는 것일 뿐, 정말 그럴 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본래의 얘기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고 이 이별의 모든 잘못이 K양에게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남친이 먹고사니즘의 문제로 생업을 연애와 같은 우선순위에 둔 건 이해하지만, 그 외에 자기개발이나 대인관계까지를 연애와 같은 우선순위에 둔 건 나도 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없는 일까지도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었는데, 그런 일까지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연애하겠다는 걸 어떤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난 K양이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가며 그와 대화를 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K양은 이별로 위협하거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꺼내 그를 초조하게 만들려 했을 뿐이다. 다음번에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에는, 이번처럼 연애를 인질로 삼지 말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말하길 권한다.

 

 

2. 썸 맞나요? 두 달 짼데…. 그리고 이 오빠….

 

이 사연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L양이 어떤 남자와 연락도 하고 만나서 밥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L양은 그에게

 

"여기 오니까 전남친 생각나네. 전남친 동생이 이 체인점에서 일했는데."

"그 전에 학교 다닐 땐, 동기 둘이 날 좋아한다고 했다. A랑 사귀었는데, B랑 사귀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전에 사귀었던 남자 어디어디 나와서 뭐가 됐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L양은 그에게 반했겠는가, 아니겠는가?

 

답이 나온 것 같으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는 건 훼이크고, 그냥 그는 자기 잘난 멋에 충실 하는 중인데, L양이 그걸 또 잘 받아주니 호감이 있는 거라 생각해 계속해서 자기PR만 하는 것 같다.

 

백 번 양보해 위의 행동을, 그가 여자를 너무 몰라서, 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막 얘기하다보니 저런 얘기들까지 튀어나오게 된 거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L양과 대화를 하며 "난 연애를 할 때 이러이러한 걸 안 한다, 반대로 이러이러하게 하는 스타일이다."라는 이야기 등을 하는 건, 스타의 입장에서 팬인 L양을 만나 묻지도 않은 인터뷰를 하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L양이 먹고 싶은 것 있다고 얘기했을 때, 그가 자신은 배가 별로 안 고프니 딴 거 먹자고 한 부분도 마냥 좋아보이진 않고 말이다.

 

L양은

 

"무한님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사귀고 나면 제 바람들을 이야기 했을 때 절충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관계인가요? 이대로라면 제가 그 분의 조건들을 다 수용하고 이해해야 할 것 같은데…."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묻고 싶은 것이 바로 그거였다. L양이 지금 다 수용하고 이해하듯 반응하는 것처럼, 사귄 후에도 그럴 수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대개 위와 같은 남자를 만난 여자는 황당해하며 돌아서기 마련인데, L양은 꿋꿋하게 잘 버텼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지 자랑'을 그가 해도 귀 기울여 들었고, 어떤 부분에선 상대에게 "대단한 것 같다."며 띄워주기도 했다. 그래서 난

 

'아, L양은 상대의 저런 태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전부 맞출 자신이 있나 보구나….'

 

했는데, L양은 사귀면 그가 바뀔지를 내게 묻고 있다. 그래서 사실 좀 난감하다.

 

난 L양이 현재 상대와 사귀는 중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의사를 하나 둘 표현해 봤으면 좋겠다. 지금은 상대가 L양의 패션에 대해 지적을 해도 L양은 '아, 그래요? 이상해요?'하며 전부 다 받아들이기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상대는 자신이 뭐라고 얘기를 하면 L양이 전부 다 따르거나 맞춰줄 거라 착각하는 것 같다. 구여친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L양이 경청하니 강사가 된 듯 신이 나서 옛 이야기를 풀어내고, 자기 자랑을 해도 L양이 흥미롭게 들으니 이젠 자신이 친구에게 조언했던 내용들까지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 같다.

 

L양의 그런 모습들을 상대가 좋게 봐 고백한 뒤 사귀었다고 해보자. 그럼 둘은 연인은 될 수 있겠지만, 이후엔 두 사람이 생각하던 연애와 너무 달라 갈등이 계속되지 않을까? L양은 사귀고 나면 그가 변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변하지 않고, 또 그는 L양이 사귀어도 그대로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과 달리 잔소리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좋은 모습'만을 보일 게 아니라, 정말 두 사람이 잘 맞는 구석이 있는지, 조율이 가능한 건지 등을 살펴보길 권한다.

 

 

사연 하나를 잘못 골라 한참 고생하느라 글이 늦었다. 오답노트로 다뤘어야 하는 글인데, 그걸 어떻게든 압축해서 한 꼭지로 다루려다가 시간만 낭비했다. 다른 페이지에 임시저장 해 두었고, 주중에 다시 열어 고쳐 쓰도록 하겠다. 내일 다루면 되지 않냐고 하실 수 있는데, 그 사연 정리해둔 페이지를 그냥 닫아서 다 날아가 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읽고 정리할 생각하니 솔직히 까마득하다.

 

연휴가 끝나서인지 축축 늘어지는 월요일이다. 시간이 늦은 까닭에 이미 잠자리에 드신 독자 분들도 계실 텐데, 내일부터는 다시 힘낼 수 있도록 꿀잠 주무시길 바란다. 그럼 우린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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