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가 읽었던 사연 중, 좀 충격적인 사연은,
"남친이 간 그 술자리에 다른 여자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열두 시가 넘었을 즈음부터 남친이랑 연락이 안 되었다. 그래서 나도 열받아 밖에 나가 아무 남자나 만났고, 그 남자와 밤을 보냈다. 복수심에서 한 행동인데, 훗날 남친이 내 폰을 보다가 그 기록을 발견하고 따졌다. 난 아무 일 없었던 거라고 말했지만 남친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 이후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라는 내용이 등장하는 사연이었습니다. 그 사연에는, 주인공이 자신이 상처를 받을 경우 어떻게든 그것보다 더 큰 상처를 상대에게 내려 애쓰는 모습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저건 제가 늘 얘기하는 '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에선 지고 마는 것'과 같은데, 여하튼 그 두 사람은 그렇게 목숨 걸고 위험한 전투들을 하다가 둘 다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라면을 끓일 때 서로가 다른 취향을 가진 까닭에 계란을 넣네 마네 하며 싸울 순 있지만, 싸우다 열 받았다고 해서 라면에 침을 뱉어 버리면 그때부턴 돌릴 방법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다룰 첫 사연의 주인공인 순이양이, 현재 위와 같은 기로에서 훗날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선택들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남친과 친구로라도 다시 지내고 싶다는 순이양은 현재 '복수심으로 사귄 새 남친'과 만나는 중인데, 순이양도 이제 차고 차이는 연애를 하는 꼬꼬마의 나이가 아니잖습니까?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선택을 해야 할 시기에 그저 감정적으로, 또 충동적으로 선택을 이어가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아무래도 이건,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 이후 뭘 하든 계속 마음도 안 붙고 그저 '임시'의 느낌으로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걸 오늘에서라도 깔끔히 정리하고 새로 출발하실 수 있도록, 몇 가지를 함께 살펴봤으면 합니다.
1. 문란하던 구남친, 하지만 친구로라도 다시….
제가 요즘 해외여행을 앞두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으니, '과거'와 관련해서는 영어와 연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상대의 과거를 과거로 받아들여도 좋은 건 그게 'did'였을 때까지만 입니다. 상대의 과거가 'have done'이라면, 그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잠깐만. 이거, 영문법을 예로 드니 저도 뭔가 그럴듯한 느낌만 있을 뿐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역시 무리수인 것 같으니 그냥 하던대로 하겠습니다.
상대가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과 사귀어 봤다는 건 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현재도 그걸 자랑스럽게 얘기 하고,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진도도 다 나갔었다'며 우쭐해야 한다면, 전 그게 '과거니까 묻어두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여기까지 써 놓고 한 30분 망설였습니다. 순이양이 특별한 각색요청을 한 것도 아닌데 제가 여기다 상대에 대해 적는 걸 망설이는 이유를, 순이양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순이양이 그에게 당한 것들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못 말했던 건 수위가 높고 누가 들어도 경악할만한 것들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저 역시 그걸 여기다 적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수위가 낮은 걸 고르고 골라 적어도
"우리 사귀지 않고 …(중략)…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정도입니다.
"이런 쓰레기랑 왜 사귀고 사서 고생하냐고 하시겠지만, 그래도 사귈 때는…."
처음부터 상대가 순이양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고 문란하게 산다는 걸 밝혔다면, 순이양도 사귀지 않았겠지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넌 스킨십 할 때 이러이러한 걸 하지 않아 재미없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순이양도 곧바로 헤어졌겠지요. 하지만 처음엔 전혀 그런 사람일 거라 상상도 하지 못 했고, 옆에서 알아가며 보니 그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지요.
이 정도 겪어가며 그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매뉴얼을 통해
"상대가 보이는 순간의 모습을 그의 전부라 생각하지 말고, 또 갈등이 있을 때에는 상대와의 좋았던 기억들도 있었음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당장 극단으로 치닫기보다는, 관계 전체를 돌아보며 생각해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저건 '좋은 기억 8, 나쁜 기억 2' 일 때를 의미하는 겁니다. 많이 양보한다 해도 7:3인 걸 의미하는 거지, 순이양의 경우처럼 '좋은 기억 2, 나쁜 기억 8'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이걸 억지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그래도 연애 초반엔 쟤가 날 위해 헌신한 적도 있으니까.'
'따지고 보면 나도 쟤한테 나쁘게 한 게 있으니까.'
라며 넘어가다 보면 답이 없어집니다. 그가 연애 후반에 순이양에게 했던 말과 행동은 이미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이나 할 말들인데, 그것까지를 혼자 애써 희석하며 매달리면 그냥 우스워질 뿐입니다.
단순화에 대한 양해를 먼저 구하고 이야기 하자면, 순이양에게 구남친은 '망나니지만 스릴있었던 남자'고, 현남친은 '바르지만 재미없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순이양은 구남친에게 보여줄 생각, 또 복수할 생각을 분명 가진 채 이번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건 결국 두 관계를 다 망치는 일이 될 것이며, 훗날 홀로 남겨지는 것은 순이양일 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그때 가서 또
"제가 그때 잠시 미쳐서 소중한 걸 몰랐나 봐요. 지금 생각해 보니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는 저를 위해 정말 많은 걸 해주었어요. 그만큼 바르고 제대로 된 사람은 또 못 만나게 될 것 같고요."
라는 후회를 해봐야, 버스는 이미 지나간 후일 것입니다. 순이양은 현재 위와 같은 복합적인 감정에다
"그 사람, 제가 없이 행복해 보여요. 돌아오지 않겠죠?"
라는 감정까지 겹쳐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으니, 순이양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상대에게 혼자 복수한답시고 '사진 봐라. 나 잘 지낸다 이 자식아!'하며 현재의 소중한 시간들까지 낭비하진 마시길 권합니다. 버릴 거 버리고 수납할 거 잘 수납하며 정리하면 집이 되지만,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쌓아두면 창고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선 뭘 하든 계속 쌓기만 하는 일이 될 테니, 이쯤에서 마음 굳게 먹고 용기 내 청소하시길 바랍니다.
2. 전 정말 좋은데 그는 오빠동생으로….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쉽게 행복해 집니다. 상대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는 겨우 그것 하나만으로도 진심으로 기뻐하며 모든 게 다 해결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회색빛이었던 삶이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듯 느껴지고, 만나기로 한 그 날이 본인에겐 크리스마스라도 되는 듯 설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금방 붕 뜰 수 있는 것과 비례해, 끝도 알 수 없는 듯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도 쉽게 느끼게 됩니다. 특히 기대한 것과 상대의 행동이 다를 때 그 객관적인 사실과는 상관없이 급속도로 무너집니다. 예컨대 상대에게 긴 장문의 아침인사가 올 거라 기대했는데, 그것과 달리
"잘 잤어?"
라는 카톡 하나만 틱 와 있으며, 더불어 이후 대답을 해도 30분이나 지나 대답이 오게 되면, 금사빠의 입장에선 이 관계 전체의 가능성이 불확실해진 것인 양 불안해하고, 상대가 내게 큰 관심을 가진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침전하게 됩니다.
이렇듯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건 일반적인 경우에도 일어나는 일이긴 합니다만, 금사빠 대원들의 경우는 그 기쁨과 슬픔의 폭이 보통의 경우보다 크며, 금방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S양도 상대와 대화를 하다가 혼자 급격히 심각해지기도 하고, 또 관계를 정리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S양이 계속 그러니 상대는
"너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왜 그래?"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처음부터 이래버리면, 상대가 보기엔 아무래도 S양이 이상해 보이며, 다짜고짜 S양이 혼자 기대하고 또 혼자 실망하는 게 전부 부담으로 느껴지고 맙니다. S양이 상대에게 했던 행동을, 어떤 남자가 S양에게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볼까? 아직 스케쥴 모른다고? 그래. 넌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호감을 가지고 너와 가까워지려 했던 내가 잘못한 것 같네. 미안하다. 앞으로 시간 있냐고 묻거나 하지 않을게. 아무튼 고마워. 잘 지내."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무래도 거부감부터 들지 않겠습니까?
S양과 상대는 아직 서로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S양은 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그걸 상대에게 드러냈다가 기대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실망까지를 또 드러내게 됩니다. 다들 저마다의 삶이 있고, 할 일이 있고, 약속이 있고, 친구가 있는 건데,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에서 그에게 '내가 지금 그러는 것처럼 상대도 나에게만 집중하며 호감 갖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않겠습니까?
바로 저 마음 때문에, 그냥 두면 잘 될 일도 엎질러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S양과 상대의 관계 역시, S양이 "띠로리~" 하는 배경음과 함께 급격히 실망하며
"그래요…. 그런 거겠죠…. 알겠어요…. 고마웠어요…."
하지만 않았어도 둘은 지난 주말 소고기를 먹었을 겁니다. S양이 띠로리 하던 날, 상대가 S양과 만날 약속을 잡고, 시간을 들여 S양과 만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S양은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습니까?
부분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잘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또 만나면 되는 겁니다. 만나서 밥 먹고 얘기 나누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실망한 S양은 연락두절을 선택했고, 그래놓곤
"열흘이 지나도록 선톡이 오지 않더군요…."
할 뿐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일단 S양의 생일이 언제인지부터 상대에게 알려주시고,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냈나도 알려주시고, 또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알려주시고,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려주시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상대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들으시고 말입니다. 그런 걸 다 했는데도 시간이 남고 정 할 일이 없으면 그때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할지 말지를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서로의 생일도 모르는 상황에서 애정도부터 알아보겠다며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해선 안 됩니다. 이제 좀 감이 오지 않으십니까? 시작부터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시고, 일단 알아가시길 권합니다.
사연이 너무 많이 밀린 까닭에, 사연 모집은 잠시 닫아 두었다가 10월경에 다시 열까 합니다. 부지런히 쓰면 아마 그때까진 다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을 드려야 하는 카톡도 현재 310개가 밀려 있는데, 답을 다 드리기 벅차서 계속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블로그에서 카톡 아이디를 내리고 나서는 많이 나아진 것이긴 한데, 한 분에겐 2~3분이면 될 대화일지 모르지만, 그게 하루에 100개씩 오면 저는 반나절을 지키고 앉아 대화를 해도 계속 카톡이 밀려버립니다.
며칠 전 댓글에서, 카톡으로 제게 말을 거시곤 업무 중이라 바로 답을 할 수 없어 1~4분 정도 텀을 두고 대답을 하셨는데, 거기에 제가 사연으로 보내달라는 등의 차가운 대답만 해 서운하셨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저도 한 분과 느긋하게 대화를 하는 거라면 몇 분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만, 몰아서 답을 드리던 중 실시간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하실 말씀을 메일로 적어서 보내주세요."라든가, "카톡으로 상담은 하고 있지 않으니 신청서에 적어 보내주세요."라는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밥은 굶지 않도록, 조금만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불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불금맞을 정비 미리 하시어, 이번 주 불금을 역대급 불금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우린 내일 다시 뵙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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