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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관심을 보이던 남자, 왜 미지근해 졌을까? 외 1편

by 무한 2015. 9. 23.

많은 사람들의 메일을 받다 보니, 이제는 메일 제목이나 메일을 보낸 횟수만 봐도 대략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된다. 일반적인 유형를 제외하고 독특한 유형을 몇 개만 소개하자면,

 

1. 컴맹형.

2. 주의력겹핍형.

3. 이랬다저랬다형.

4. 보안업체형.

5. 다이어리형.

 

정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컴맹형은 컴퓨터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대원들이다. 그래서 메일을 제대로 못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파일을 첨부하지 않고 보내거나 이상한 파일만을 잔뜩 첨부해서 보내곤 한다. 폰으로 메일을 처음 보내는지 자신의 갤러리 사진을 전부 첨부해서 보내거나, 회사에 낼 서류를 자신의 신청서와 혼동해 잘못 보내기도 한다.

 

주의력결핍형은 짧게는 5분, 길게는 며칠 단위로 사연을 계속 고치며 여러 개의 메일을 보내는 대원들이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멘트로는 "아 무한님, 전에 보낸 거 말고 이걸로 봐주세요.", "이전 메일에 빼먹은 게 있어요. 이것까지 같이 봐주세요." 등이 있다.

 

이랬다저랬다형은 사연을 보냈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보냈다가, 또 취소했다가, 짧은 답변만을 달라고 했다가, 이왕 보낸 사연 길게 다 다뤄달라고 했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며 취소했다가, 하는 대원들이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갈팡질팡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수 있지만, 사연을 받는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기가 어려운 유형이다.

 

보안업체형은 본인 사연의 보안에 목숨을 거는 대원들이다. 그들은 사연을 보내기 전부터 "그런데 이거 확실히 비밀보장 되는 거 맞나요? 맞으면 보내려고요."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사연을 보낸 뒤 아무래도 보안이 걱정되는지 자신의 사연과 카톡대화를 전부 삭제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대원은 자신의 사연을 누가 볼까 걱정되는지 파일에 비밀번호를 걸기도 하는데, 그걸 내게 알려주지 않거나 자신도 잊어버려 아무도 읽지 못하는 사연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이어리형은 주기적으로 내게 일기를 써서 보내는 대원들이다. 역시 공통의 멘트로는 "사연이 있어서 메일을 보내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읽어주셨으면 해요."라는 것이 있다. 나도 참 나인 게, 그걸 전부 다 읽은 까닭에 이젠 이름만 봐도 그 분의 집안 사정, 대인관계, 심지어 직장 사람들과 거래처 사람들까지 떠오르곤 한다. 소소한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전부 암울할 경우 나까지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근데 내가 이 얘기를 왜 꺼냈더라?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열심히 분석하다보니 잊어버리고 말았다. 여하튼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관심을 보이던 남자, 왜 미지근해 졌을까?

 

그가 미지근해진 이유는, S양의 어장관리를 눈치 챘기 때문일 가능성이 57.31%다. 콩깍지가 씌여 S양에게 완전히 빠진 남자라면 그곳이 어장이라도 일등참치가 되는 것에 목숨을 걸겠지만, 그저 호감을 느껴 다가갔다가 어장임을 확인한 남자라면 딱 그 정도의 거리를 둔 채 멈추거나 돌아 나오기 마련이다.

 

나머지 42.69%의 가능성은, 알면 알아갈수록 S양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카톡대화를 하는데 계속 자기 자랑을 끼어서 하거나, 극단적인 발언을 하거나, 다른 남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 자연히 환상이 깨질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블링블링한 여자라고 생각해 다가갔는데, 막상 말을 터보니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S양은 말한다.

 

"제가 그의 마음이 미지근해지도록 만들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 대체 왜 이렇게 미지근해진 걸까요? 제 행동 중 제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 그를 멀어지게 만든 걸까요?"

 

S양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4개월 전에 상대가 S양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해서 그게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4개월간 S양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솔직히 전 그를 보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괜찮은 남자들을 좀 보다가, 없으면 그와 잘해보자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나빴죠? 저도 이게 나쁜 행동이라는 걸 알아요. 반성도 하고 있고요."

 

S양에겐 안타까운 소식일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둔하고 멍청하지는 않다.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만 연락하면 상대도 그걸 알고, 필요할 땐 즉각즉각 실시간 대화를 하면서 그렇지 않을 때에는 대충 몰아서 대답하면 역시 상대도 그걸 안다.

 

카톡대화만 놓고 말하자면, 내가 상대일 경우 S양이 '마음에도 없는 말 걸기'를 통해 떡밥만 던진다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을 것 같다. 대화를 보자.

 

S양 - 뭐 하냐 ㅋㅋ

상대 - 여기 어디어디인데, 놀러 왔어.

상대 - 너는 뭐뭐 한다더니, 했어?

상대 - 그거 했으면 힘들었겠네.

S양 - 아 그래. 잘 놀아~ 난 잘 했어~

상대 - 너도 어쩌고저쩌고 하고, 주말 잘 보내~

(대답 없음)

 

영혼도 없고, 의미도 없다. 대화를 위한 대화이며 그마저도 사실 별 관심이 없이 던진 질문이라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저런 떡밥이라도 받았다고 문워크를 출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라면 속아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제 후배도 제법 많아진 대학생이 저런 떡밥을 주식삼아 헤엄치진 않을 것이다.

 

진실성의 결여가 가장 큰 문제다. S양은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상대가 다시 날 좋아하도록 만들 방법'을 찾고 있는데, 스스로도 '객관적으로 상대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S양에게 충성을 다하길 바라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다. 이제와 S양이 외롭고 심심해지니 대충 말 몇 번 걸어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고 말이다.

 

상대가 좋으면 대화를 하면 된다. 지금처럼 S양에게 소개팅 요청이 들어오고 어느 소개팅에서는 주선자가 애원해 나가긴 했지만 대충 입고 나갔다 휑하니 들어와 버렸다는 얘기 말고, 상대를 단 하나뿐인 친구라 생각하며 진짜 대화를 하길 바란다. 상대 SNS에서 발견한 화제를 가져다 틱 던져 놓고는 상대가 알아서 대화를 이끌어가길 기다리지 말고, S양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길 바란다. 이게 안 되면 방법이 없을 뿐더러 운이 좋아 둘이 사귄다 해도 의미가 없다. 연기는 그만 하고 S양 본인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 대화 가져다 남들에게 보여주며 조언을 받을 생각하며 '적당히'만 하면, 영영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맺기 힘들 거란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한 남자와 100일을 못 넘기는 연애 두 번.

 

N양이 받았다는 심리상담에 대해선, 그냥 '그래서 그랬을 수 있겠구나'하는 정도로만 생각하자. N양을 정서적으로 두드려 패고 유기해 버린 사람에 대해 심리상담 선생님이 뭐라고 분석을 했든, 그걸 가지고

 

'그래, 그 사람의 정서적 돌봄이 부족한 게 그런 행위로 드러난 거야.'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그 부분에 더 민감했던 거야.'

 

등의 생각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만 하는 건 위험하다. 상대에게 카톡을 보내 항의해도

 

"나 원래 치졸한 놈이야. 됐지?"

 

따위의 답변만 돌아오는 상황에서, 저것까지 이해하며 포용하려 하다간 N양의 멘탈이 남아나지 않을 수 있다. 상대는 N양을 성격파탄의 구제불능이라 생각하며 욕이나 해대고 있는 상황에서, N양이 혼자 그를 용서하고 다시 재회요청을 해봐야 그에겐

 

'나 아니면 안 되니까 매달리는 여자.'

 

로만 보일 것이다.

 

N양은 요즘 무슨 책을 읽는가? 졸업과 관련해 토익점수가 필요한 것 같던데 작년에 비해 올해는 성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해보고 싶은가? 이번 주말에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친구는 몇 명이나 있는가? 곧 사회에 나가게 될 텐데 N양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근무하고 싶은가? 가족들의 최신 근황은 어떻게 되는가? 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위의 물음들에 거침없이 대답하기 어렵다면, 그건 N양이 삶을 잘못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난 N양에게 대학생활이란 게, 감당하기 어려운 자유로 채워진 독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N양의 연애를 보면 남친은 이기적이든 기회주의적이든 어쨌든 자신의 발자취를 정리해 나가고 훗날 도움이 될 일들을 하느라 바쁜데, N양은 그런 남친을 보며 연애가 뒷전인 것 같다며 서운해 할 뿐이다.

 

더불어 N양은 자신의 주량을 초과해 술을 마신 뒤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기도 하고, 상대에게 의존하며 상대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기도 한다. 상대도 대학생이고 N양도 대학생인데, 둘의 생활을 놓고 보면 상대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쁜 반면 N양은 연애나 대인관계 말고는 별로 마음을 쓰고 있는 게 없어 보인다. 어차피 몇 년 지나면 평생 안 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남친에겐 서운함이나 섭섭함을 표시하느라 바쁘다.

 

N양이 내 여동생이었다면, 난

 

"의남매? 사회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의남매가 밥 먹여주지 않아. 선배, 동기, 후배라는 사람들도 지금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 그 테두리 안에서 모임을 만들고 챙겨주고 하는 거지, 사회에 나갔는데 네가 학점도 좋지 않고 이렇다 할 특기도 없으면 그냥 '예전에 친했던 사람' 될 확률이 높아. 그리고 남자친구가 아껴주길 바라고 좀 더 풍성한 데이트를 하기 바라고 그러는 거, 따지고 보면 용돈 쪼개 쓰는 것일 뿐이잖아. 지금 남친이 널 더 아껴주길 바란다며 그가 교외활동 다 그만두고 둘이 얼굴만 보며 살면, 2년 후 뼛속까지 파고드는 곤란함을 겪을 수 있어.

나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정말 사랑 받고 주기도 하는 연애도 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누군가에게 기대서 마주보는 연애하길 바라며 스스로의 생활도 돌보지 않는다면, 그저 누가 같이 놀아주길 바라는 심심한 아이처럼 느껴지게 될 확률이 높아. 지금, 남친이 과거에 누구랑 사귀었는데 걔랑은 뭘 하고 놀았고 따위의 얘기를 하면서 징징대고 있을 때도 아니고 말이야. 먼저 삶의 중심을 잡아. 그런 후에 누군가와 함께 해도 하는 거지, 그냥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대로 살며 결혼을 언제 할 지 아이는 몇을 낳을지 하는 얘기를 하는 건, 자리 뜨면 사라질 일이 되어버리고 말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다.

 

N양은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해서 계속 "그래도 남친이 제게 잘 해줬던 일들도 많고 노력도 했었는데…."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연락을 해봐야 돌아오는 건 악담이나 욕설이지 않은가. 배 타고 오다가 떨어뜨린 목걸이를 찾겠다며 항구에서 잠수하지 말고, 육지에 내렸으면 또 육지에서의 길을 가보자. 난 N양이, 뒤만 돌아보느라 앞에 펼쳐진 수많은 가능성과 행복의 상자를 못 보진 않았으면 한다.

 

 

한가위 때문에 미리 보내야 할 원고가 쌓이다 보니, 오늘 매뉴얼 발행이 늦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원고를 독촉할 거라면, 업체 측에서 명절에 햄이라도 하나 보내줬으면 어떨까 하는 헛된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저녁이다.(응?) 일 년에 두세 번, 명절과 휴가엔 회사원들이 참 부럽다.

 

좋은 사람과 함께 전어 회나 구이를 먹기 딱 좋은 저녁이다. 나는 '강제 열심 모드'에 돌입하게 된 까닭에 나갈 수 없지만, 독자 분들은 여덟 시 반쯤 남중하는 달 보며 밤을 즐기시길 바란다. 날이 흐려 안 보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 즈음 나도 같은 하늘 볼 수 있게 잠시 올려다보도록 하겠다. 자 그럼, 즐거운 수요일 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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