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애완견, 애프리푸들)가 저희 집에 온 건 2010년 10월입니다. 그로부터 6개월 쯤 뒤, 지인의 지인이 간디를 보며 강아지를 키워하고 싶어 하던 중 까망이(애완견, 블랙푸들)를 입양합니다.
까망이는 2년 뒤 다른 집으로 입양되게 되었는데, 그 전이나 후나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까망인은 첫 주인으로부터 아무 명령어도 못 알아듣는 다는 이유로 구박 받았고, 집을 어지른다고 혼나기도 했으며, 배변판을 사다 주어도 알아서 가리지 못 한다는 이유로 주인의 엄청난 분노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 후 다른 집에 입양되었을 때에는 마당에서 살게 되었는데, 저는 푸들을 미용시키지 않으면 레게파마 한 삽살개처럼 될 수 있다는 걸 거기서 처음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까망이 주인과 직접적인 친분이 없는 까닭에 이야기를 전해듣기만 했는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강아지를 혼내더라도, 충분히 가르쳐 주고 난 뒤 안 따르면 그때 혼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간디의 경우는 제가 '우리는 파트너'라는 생각으로 많은 명령어를 가르쳤습니다. 간디가 똑똑해서 금방 알아들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여러 명령어를 다 따르게 만들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목소리와 손짓, 그리고 제 표정과 눈빛 등을 간디가 알아볼 수 있게 몇 번이나 반복했고, 간디가 하는 행동에 명령어를 붙여 기술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간디는 누군가가 집에 올 경우 반가워하며 도는데, 그럴 때마다 '돌아'라고 외쳐줬더니, 그 후부터는 '돌아'라고만 해도 혼자 돌았습니다.
까망이는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배변활동을 마치고 한참 지난 뒤 주인이 발견하면, 그때 주인이 만들어 내는 공포 분위기에 시달리며 자신이 뭘 잘못한 지도 모른 채 주눅들어 있어야 했습니다. 까망이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주인은 소리부터 질렀기에, 까망이는 주인이 대체 무슨 주문을 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를 잘못했을 때도 주인은 "야!"라고 소리를 질렀고, 까망이가 배변을 집안 아무 곳에나 해둔 걸 발견했을 때도 "야!"라고 소리를 질렀으며, 훈련을 시킨답시고 앉아 몇 번 말을 하다 못 알아 들으면 주인이 "야!"라고 했기에, 그 소리가 나올 때마다 꼬리를 말아 다리 사이에 넣은 채 그냥 슬금슬금 피하기만 했을 뿐입니다.
저런 일은 전부 다, 정말 까망이가 멍청하고 대책 없는 강아지라서 벌어진 일일까요?
1. 제가 눈이 높은가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어요.
그간 잠깐이라도 스쳐갔던 남자들에게, P양은 얼마나 이야기를 했고, 무엇을 가르쳐줬고, 상대의 이야기에 정말 관심을 가진 채 귀를 기울였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 호감이 가는 남자를 만났을 때에도, P양은 상대를 심사하기에 급급했을 뿐 그 관계를 위해 뭔가 한 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소개팅도 많이 해봤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딱 나가는 순간 감이 와요. 오늘 또 애먼 남자한테 신상만 털리다 집에 들어오겠구나, 아까운 시간 버리다 들어오겠구나, 하는 감이요."
P양은 상대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보고도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그래버리면 그런 마음이 결국 P양의 성의 없는 태도로 드러나고, 상대 역시 그런 P양을 보며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얼른 집에나 들어가 버리고 싶어지고 맙니다. 시험을 볼 때 문제를 다 읽지도 않고 답을 써내면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듯, P양과 상대의 관계 역시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호감이 가는 남자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건 괜찮았는데, 진부한 질문만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그런 거요. 저는 딱 하나 정해두고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냥 이 영화는 이 영화대로 재미있고 저 영화는 저 영화대로 재미있어 하는 타입인데, 판에 박힌 듯한 저런 질문만 하는 게 좀 그랬어요."
건물을 지을 때에도, 기초공사는 별로 티도 안 날 뿐더러 아직 지상까지 올라온 것도 아니라 지루하기 마련입니다. 기초공사는 벽에 색을 칠하거나 타일을 붙이는 것보다 분명 훨씬 중요한 일이지만, 곱절의 시간을 들여도 겨우 기반만 완성되는 거라 하찮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단한 기반이 만들어져야 이후 집의 수명이나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판에 박힌 듯 진부한 문답이라고 해도, 그런 것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위의 질문이라고 하면 "당장 생각나는 영화로는 이러이러한 게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고, P양이 제게 이야기 한 것처럼 "딱히 정해놓고 좋아하는 영화는 없지만 대략 이러이러한 장르에 끌리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도 "저도 그래요."라고 공감을 한다거나, 아니면 이번 대화로 알게 된 것을 활용해 다음 영화 선택 때 참고하지 않겠습니까? 영화이야기에서 공감대를 찾은 후 자연히 배우 이야기나 촬영지, 또는 영화의 소재가 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P양은 이런 선택 대신 대충 뭉뚱그려 성의 없이 대답하는 것을 택하고 말았고, 때문에 상대는 주제를 바꿔 질문을 하다 결국 P양과의 대화를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제가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P양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만 할 뿐 상대에게 되묻지 않았다는 겁니다. 본인은 상대에게 이렇다 할 질문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질문이 어떻다고 평가만 하는 건, 오디션 심사를 위해 나온 심사위원과 같은 태도일 뿐입니다. 소개팅에 오디션 지원자 뽑으러 나간 거 아니고 함께 할 파트너 구하러 나간 것이지 않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매뉴얼을 통해 참 오랫동안 이야기 해 온 것 같은데, 남에 대해 평가만 하려 할 뿐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대원들은 여전히 이걸 못 보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얘기해 달라고 하셨기에 솔직히 얘기하자면, P양은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자신이 마음대로 굴어도 다 이해해 줄 사람,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다 할 사람, 내가 예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뛰어 넘어 날 놀라게 해 줄 사람, 그냥 딱 보기만 해도 내 마음에 들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헌신하길 바랄 땐 내게 헌신하고 그렇지 않을 땐 날 들었다 놨다도 할 수 있는 사람, 뭐 그런 사람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전 P양이 계속 이런 태도를 고집할 경우, 이번 생에서 연애를 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 P양의 태도를 보면, P양은 남자를 싫어하고, 때에 따라 잠재적 범죄자 정도로 여기기도 하며, 일단 만나면 단점부터 얼른 찾아내려 노력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마음 한편으로는 그간 기다린 보상을 모두 해줄 왕자님이 나타나길 바라시는 것 같은데, 이래서 참 어렵습니다. P양이 말하는 '눈을 낮추는 것'이 보다 적극적으로 관계에 참여하며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라면, 전 꼭 그러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2. 여행지에서 싸우고 끝나버린 연애, 정말 끝인가요?
이보다 더 객관적일 수는 없을 정도로, B양이 바라는 아주 객관적인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이건 96 : 4 정도로 B양의 잘못이 큽니다. 잘못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수 있으니, 큼지막한 잘못들 위주로 빠르게 훑어보겠습니다.
우선, B양의 잘못된 연애관이 문제입니다.
"제가 오빠에게 바라는 건 날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마음 하나였는데…."
저게 겉으로 보면 하나인 것 같아도, 정확히 따지면 전부 다입니다. B양의 얘기대로라면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마음'이라는 건, 헌신과 양보, 배려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때문에 저 말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상대 잘못'으로 몰아가는 무적의 무기이자 방패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건, 연애 중 자신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B양의 태도입니다. B양은
"저는 남자지인들이 많아요. 그들이 밥 사준다고 하는 걸 굳이 거절하지도 않고요. 정말 타 이성과의 문제는 없었는데, 남자친구는 저를 의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인기를 누리는 건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B양이 연애 중이라면, 솔로일 때처럼 그걸 다 누리려고 해선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B양의 남자친구가 '아는 누나'가 많은데, 그녀들이 밥을 사준다고 할 때마다 남친이 "공짜로 밥 사준다는데 왜 안 돼?"하며 나간다면, B양도 유쾌하진 않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건 다른 문제와도 맞물리는데, 그건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친과 여행을 갔을 때, B양은 남자친구가 비행기와 렌트카만 예약했을 뿐 동선을 짜지 않고 숙소도 예약을 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B양은 무엇을 했는지요? 제가 B양의 사연을 읽으며 계속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B양은 자신이 상대에게 모셔지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B양에게 남자친구라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인 것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B양이 남자친구에게 한 말도 한 번 보겠습니다.
"수백 번 사과를 받아도, 오빠 내면에서 나보다 오빠 감정이 우선이고, 내가 받은 상처보다 오빠가 받은 상처가 우선이면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대화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입니다. 저 말이 가능해지려면, 상대는 무감정에, 아무 상처도 받지 않는 강철로 된 인간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 B양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기반에는, 남친에 대한 불만족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B양이 제게 한 말을 보겠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남친보다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만큼 유대감이 생기고 마음이 잘 통하는 남자는 힘들 것 같은데…."
저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으니, B양은 남친을 완벽하게 제압 가능하며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 있게 만들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 위에서 말한 '의무'와 맞물리는 문제를 보겠습니다. B양이 남자친구와 다투다가 한 말입니다.
"내가 너보다 돈 많고, 능력 있고, 성격 좋고, 나한테 잘 하는 사람 못 만나서 너 만나는 것 같아?"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이 끝난 겁니다. 저렇게까지 한 사람의 자존심을 밟아놨으면, 이 관계는 두 번 죽었다 깨어나도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B양이 상대로부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이, 눈 감는 그날 까지 잊힐 것 같으십니까? 이래놓고도 "내가 받은 상처보다 오빠가 받은 상처가 우선이면…."이라는 얘기를 하는 건, 정말 해서는 안 될 행동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는,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관계가 화장까지 마친 후 납골당에 모셔진 관계라고 생각하는데, B양은 회복을 기대하고 계신 것 같아 좀 당황스럽습니다. 다음번에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그땐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상대 역시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연애는 두 사람이 좋아서 하는 거지, B양에게만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콩깍지가 씌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상대들을 '을'로 둔 채 불만족 가득한 연애 하지 마시고, B양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상대와 연애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B양 팬클럽 회원 중 한 사람을 골라 고문과 비슷한 연애를 하게 되면, 그건 둘 다에게 악영향을 끼칠 뿐이니 말입니다. 상대의 목을 졸라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 하지 마시고, 먼저 그 말을 상대에게 할 수 있는 B양이 되길, 저는 빌겠습니다.
긴 연휴가 끝난 다음 날이라 그런지, 자꾸 마음이 더 쉬려고 합니다. 저는 연휴 둘째 날 누군가 미군부대에서 가져왔다는 1리터짜리 에너지 음료를 마셨는데,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 새 다 마시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날 대략 30시간 동안 잠이 안 와 죽을 뻔 했습니다. 눈을 새빨갛게 충혈 되고 몸은 제어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는데, 그 와중에도 정신은 계속 멀쩡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조카도 몇 모금 마셨는데, 조카 역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습니다. 해외에선 이 음료 과다 복용하고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건지 알 것 같았습니다. 독자 분들은 무사히 즐겁고 풍요로운 연휴 보내셨으리라 생각하며, 오늘 글은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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