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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두 번째 만남 이후 연락두절 된 썸, 문제는?

by 무한 2015. 8. 31.

생각보다 여행준비가 복잡해져서, 오늘 매뉴얼에서는 하나의 사연만 다룰까 한다. 그냥 몸과 돈만 가지고 가는 거라면 편하게 쉬다 올 텐데, 가서 해보고 싶은 게 많아 바리바리 챙기다 보니 할 일도 많아지고, 솔직히 이걸 다 하고 올 수 있을지도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게다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이상하게 집착하는 버릇이 이 시점에서 고개를 들어, 쓸데 없는 짓들을 좀 하고 있다. 이건 저 아래에서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매뉴얼 시작해 보자.

 

아, 오늘 다룰 사연의 주인공은 전에 한 번 소개한 적 있는 '보라씨'다. 상대가 차에 관심이 많은 걸 알고는 모터쇼를 빌미로 만남까지 이어갔던 재치 있는 대원인데, 그녀가 보낸 '이후의 이야기'는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다 된 밥 같았던 썸을 어쩌다 그녀가 엎어버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함께 알아보자.

 

1.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다?

 

사연에는, 직접 만나 얼굴을 보기 전까진 나비 같던 보라씨가, 상대를 만나자 마자 장수말벌로 변신해 아프게 쏘아대는 모습이 가득했다.

 

상대 - 아, 늦어서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아까 깜빡 잠들었다 늦게 준비해서….

보라 - 그럴 거면서 전에 '데리러 갈까?'라고는 왜 물어본 거예요?

 

뭐, 여기까지는 그냥 장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직후에도 보라씨는 아래와 같은 태도로 상대의 말을 받았다.

 

상대 - 암튼, 우리 오랜만에 보네.

보라 - 오빤 맨날 오랜만이란 얘기만 하네요. 자주 보면 될 텐데.

 

백 번 양보해 여기까지도 장난이라고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보라씨가 한 말들을 더 살펴보면, 이건 분명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태도라는 걸 누구든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빤 주변에 관심도 없고, 나한테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오빤 왜 말이 별로 없어요? 문자도 단답이 많고."

"(상대가 학생 같다고 하자) 학생 아니고 백수예요."

 

보라씨의 저 삐딱한 태도는 뭐랄까, 데이트 하러 나오기 직전 집에서 엄마랑 싸우고 나온 사람 같다. 상대는 없는 시간 쪼개 보라씨 보러 나와 밥까지 샀는데, 보라씨가 저런 삐딱한 태도로 틱틱대고 있으면, 자연히

 

'내가 지금 여기서 얘랑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얜 화풀이 하러 나온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건 둘의 단단한 기반이 형성되었을 연애 중반에 해도 정이 떨어질 수 있는 행동들인데, 보라씨는 썸남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저렇게 쏘아대고 말았다. 보라씨에게 철벽녀 기질이 있어서든, 아니면 본심과는 다르게 틱틱대는 버릇이 있어서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래버리면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상대가 보라씨처럼 굴었다고 하면, 보라씨는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집에 가 버리지 않았을지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2. Too much thinking will kill you.

 

요즘 여행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자꾸 영어로 소제목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위의 소제목만 하더라도 love 대신 그냥 think를 쓰면, 뭔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감각적으로 들어 동명사로 좀 바꿔봤는데, 원어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외국어로 문장을 만드는 것도 벅찬데 원어민들 기분까지 신경 쓰려니 좀 힘들긴 하다.(응?) 분위기 전환용 농담은 이쯤하고.

 

보라씨는 생각이 너무 많다. 보라씨 본인이야

 

"너무 좋아하는 티가 날까봐 저도 모르게 괜찮다고 하고, 뭐 그러는 편이에요."

 

라고 하지만, 보라씨가 상대를 대하는 걸 보면 좋아한다는 티는 티대로 다 나고 상대의 기분은 기분대로 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보자. 그 날 만남 끝부분의 상황이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술기운에 제 얼굴도 빨개졌고, 또 화장도 다 지워지고 있는 상황이라 신경 쓰였거든요. 그래서 오빠가 제가 탈 버스 봐준다고 정류장에 서 있는데, 저는 마침 저희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길래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뛰어가서 탔어요. 집에 오는 길에서라도 전화를 했어야 했을까요. 밥 잘 먹었다고 얘기도 못 했는데…. 여하튼 집에 도착했는데 오빠로부터 연락은 없었고, 그 이후로도 제가 이틀간 연락했지만 답장은 없었어요."

 

상대 입장에선, 시비를 걸러 나온 건지 아님 짜증을 내러 나온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틱틱대던 보라씨가, 버스가 오자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뛰어 올라 집에 가 버린 거다. 썸을 탈 때 정류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 중, 이것보다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아마도 그는 집에 가는 내내

 

'만나지 않는 게 분명 더 나았을 것 같다. 앞으로도 만나지 않는 게 낫겠다.'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보라씨는 보라씨 나름의 여러 생각들을 하다가 과부하가 걸려 자리를 뜬 거지만, 역시나 그 이유가 뭐든 그게 상대에겐 결국 예의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만남으로 느껴지고 만 것이다.

 

난 보라씨가, 이걸 전부 '표현에 서툴러서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하진 않았으면 한다. 여기엔 표현의 서투름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존중의 결여도 포함되어 있다. 오로지 보라씨의 입장에서 보라씨의 기분대로만 감정을 표출했던 문제가 분명 포함되어 있으니, 그 부분까지도 꼭 함께 돌아보길 권한다.  

 

 

3. 친구들은 상대의 호감이 크지 않아서라는데요?

 

그건, 친구니까 그런 거다. 나도 내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연애 때문에 죽는 소리를 하면, 그냥 덮어놓고 으쌰으쌰 해주거나 친구보다는 상대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식으로 대충 이야기 해버린다.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하는 소리에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 하는 것도 웃기도, 뾰족한 방법이 없으면 그냥 '통과'하는 게 제일 나을 거란 생각으로 그런 얘기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이 하는 얘기는 자신이 이미 편집을 끝내 결론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보라씨가 하는 얘기를 전해듣기만 하는 친구 역시

 

"그 남자가 호감이 있었으면 늦지 않았겠지. 늦었다는 것부터가 호감이 없다는 증거지."

 

라며 단순히 얘기해 버리는데, 그런 식이라면 보라씨와 갈등을 겪거나 잘 되지 않는 남자에게 모두 '호감이 없어서'라는 혐의를 씌울 수 있을 것이다. 보라씨는 저 말을 듣고는

 

'듣고 보니까 정말 그러네. 맞아. 이게 다 호감이 없어서 벌어진….'

 

이라는 생각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만나서 밥을 먹을 때 그가 보라씨의 취향을 고려해 메뉴를 고르고, 또 자신의 음식을 나눠 주고, 보라씨의 짜증을 온 몸으로 견디면서도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마지막에 정류장에 가선 보라씨가 타야 하는 버스까지 찾아줬던 걸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는 약속을 잡을 때 보라씨를 데리러 오겠다고도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나름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보려 했던 사람을 두고, 결과가 나빠졌다고 해서 '호감이 없어서'라고 쉽게 판정 내리진 않았으면 한다.

 

보라씨는 친구들과 그렇게 상담을 하는 와중에도, '본인은 정확히 알고 있는 그 날의 일'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사연 신청서에는

 

"아무튼 그날의 제 말투, 태도, 행동들이 하나하나 생각나면서 진짜 제 스스로가 싫어집니다."

 

라고 쓰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보라씨는 그에게 사과를 했어야 한다. 친구들에게 상담하며 그저 위로 받거나, 그에게 호감이 없어서 그랬다는 걸로 합리화하기 전에, 엉망으로 굴었던 그날의 일에 대해 사과를 했어야 한다.

 

보라씨가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본인이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는 걸로 어느 정도 된 거라 생각하며 상대에겐 그냥 장난스레 말을 거는 것으로 끝내려고 한다. 그러다 안 되면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고 친구들이 편을 들어 주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려고 한다. 이거 정말 위험하고 나쁜 습관이다. 내 지인 중에는 제대로 된 사과는 한 번도 못하고 계속 저런 식으로 빙빙 돌리다가 파혼하게 된 사례도 있다.

 

그러니 이번이 보라씨 자신을 바꿔가는 첫 발걸음을 내딛는 거라 생각하며,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해 보길 권한다. 그가 사과를 받아주고 다시 좋아질 거라는 기대는 우선 내려놓고, 보라씨가 당했어도 분명 기분 나빴을 그 일들에 대해 미안하다는 얘기를 해보자. 사과에 대한 상대의 대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게 보라씨가 꼭 해야 할 유일하고 중요한 일이니 해보길 바란다.

 

 

이거 다시 여행에 대한 얘기를 쓰려니까, 매뉴얼은 내 여행얘기를 쓰기 위한 디딤돌처럼 사용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여하튼 주말엔 전에 구입했던 캐리어를 바꿔왔다. 전에 구입했던 건 28인치짜리였는데, 지인들이 전부 "이민 가?"라고 물어온 까닭에 작은 걸로 바꿨다. 모양으로만 따지면 이전 캐리어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예쁜데,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4인치 평범한 캐리어를 구입했다.

 

 

 

나름 유명한 회사 제품이라곤 하지만, 그 모양이 투박하고 평범해 애정이 가질 않는다. 여행의 낭만 같은 게 느껴지지 않고, 짐을 쌀 때에도 이삿짐 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모양이 예쁜 하드캐리어로 다시 교환을 할까 하다가, 애정을 갖기 위해 직접 손을 대기로 했다.

 

 

 

필름에 글자 하나하나를 손으로 팠다. 오른손 검지가 아직도 아프다. 예전에 길거리를 지나다 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공방에서 저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던데, 그걸 따라해 봤다. 그림은 무리일 것 같아서 미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명대사를 옮겨 적었다.

 

 

 

처음 해 보는 거라 V 자와 칼 모양에 삐져나온 부분이 보이는데, 어쩔 수 없다. 평평한 곳에 글자를 새기는 거면 저것보다는 잘 됐을 텐데, 천이 계속 울고 필름이 흔들려 손으로 붙잡아가며 겨우 끝냈다. 사진으로 보니 금방 완성한 것 같지만, 글자 칼로 파내는 데 두 시간 쯤 걸린 것 같다. 쓸데없는 것에 대한 집착이 결국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고 만 것이다. 그래도 글자를 새기고 나니 애정이 생겨, 이제 기쁜 마음으로 짐을 쌀 수 있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선 캐리어 내부 천도 다른 색으로 바꾸고 싶은데, 그것까지 손을 대면 너무 대작업이라 나중에 하기로 했다. 저기엔 하늘색 보다 주황색 천으로 된 내부가 어울릴 것 같은데…. 참아야지.

 

이제 두 밤만 더 자면 드디어 여행이 시작된다. 촉박한 시간 때문에 웹으로 구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메모리카드가 없어져 멘붕 중이긴 한데, 내일까지 못 찾으면 그냥 영상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울 생각이다. 역시,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나머지 메모리 카드로 사진은 충분히 찍을 수 있으니, 사진이라도 열심히 찍어와야겠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월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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