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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깊이 있는 대화,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외 1편

by 무한 2015. 10. 16.

창민씨, 사연을 보낼 땐 간단한 영어라도 해석을 해서 보내줘야 한다니까? 내 영어 실력은 아래와 같아.

 

What are you doing, Jane?

자네 뭐 하고 있나?

Just got home

저스트는 집을 가지고 있다. 

 

각종 오역이 난무하는 까닭에, 대략이라도 해석해서 보내달라고 했던 거야. 웃자고 한 소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 몇 가지 원칙만 잊지 않으면 되는데, 그건 아래와 같아.

 

A. 되도록이면 상대가 한 이야기에서 이어나간다.

B. 상대의 상황이나 경험을 주제로 한다.

C. 이쪽에서 설명하려 하지 말고, 상대가 먼저 설명하게 한다.

D. 상대가 대답하기 편한 시간에, 추임새를 섞어가며 대화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지? 그러면 아래에선, 창민씨가 상대와 나눈 대화를 하나 가지고 와서 그걸 예로 들어 이야기 해볼게.

 

 

1. 깊이 있는 대화,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창민씨와 상대의 대화를 봐봐.

 

상대 - [사진] OO just gave it to me ^^

창민 - That's so nice. You should put it in milk or yogurt! It taste great.

 

상대가 얘기한 걸 받아서 이야기 한 것 까진 좋아. 그런데 나라면, 일단 상대가 사진을 보낸 건 자신이 그 선물을 받았다는 걸 자랑하려고 보낸 것일 테니까 호응을 해줬을 거야. 좋은 친구를 뒀다든지, 부럽다든지 하는 얘기로 말이야.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먹는 건 줄 알아?"라고 먼저 물어봤겠지. 서두에서 이야기 한 'C' 기억나?

 

C. 이쪽에서 설명하려 하지 말고, 상대가 먼저 설명하게 한다.

 

바로 저 원칙대로 해보는 거야.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보통 여자와의 대화를 어려워하거나 대화가 금방 종결된다고 말하는 사연들을 놓고 보면, 그 대원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 상대의 말을 가로채 열심히 설명을 하곤, 자신이 설명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제.

 

봐봐. 이런 경우도 있어. 어떤 대원은, 상대가 호주에 다녀온 친구가 이러이러한 걸 선물로 줬다고 하니까, 뜬금없이 워홀 다녀온 자기 친구 얘기를 꺼내며 농장 얘기, 꿀 얘기, 유학생 얘기, 뭐 그런 걸 잔뜩 늘어놓았어. 그게 정말 재미있는 사건이었으며 상대 역시 흥미진진하게 듣는다면 괜찮겠지. 그런데 대부분은, 상대로 하여금 마이크 붙들고 혼자 서너 곡씩 불러대는 사람이랑 같이 노래방 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말거든.

 

창민씨에게도 살짝 그런 징조가 보여. 너무 특정되는 까닭에 대화문을 그대로 옮길 순 없고, 분량만 비슷하게 하나 만들어 보자면 아래와 같아.

 

상대 - 난 이제 집에 가려고.

창민 - 오, 그렇구나. 아 그런데 집에 가는 길에 OO치킨집 있나? 요즘 그 치킨집 치킨에서 이물질이 나온 게 이슈더라고. 혹시라도 그거 사먹을 거라면 먹지 말라고 ㅎㅎ

상대 - ㅎㅎ 오케이.

창민 - 이물질이 치킨집 내부에서 들어간 게 아니라, 본사에서 닭을 줄 때 포함된 거라고 하더라고. 모든 닭에 들어갔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꺼림칙하잖아. ㅎㅎ

 

저러지 말고, 뭐 타고 가냐고 물어보면 되는 거야. 걸어가냐, 버스타냐, 지하철타냐, 뭐 그런 걸 물어보면 되잖아. 더불어 매일 이 시간에 가는 거냐고 물어도 되고, 아니면 이 시간까지 일 했으니 피곤하지 않냐, 배고프지 않냐, 뭐 그런 걸 물어도 되는 거야.

 

"무한님이 깊이 있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라고 매뉴얼에 적어두셨기에,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갑자기 인생에 대해서 토론을 해보자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미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 역시 너무 생뚱맞은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 고지식한 태도로 대화를 하려 들거나, 아니면 강박을 가진 채 대화에 임하려 들지 마. 그러지 않아도 돼. 그냥 사소한 이야기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 하면 되는 거야.

 

집에 버스를 타고 가냐, 나도 학창시절에 버스로 통학을 했다, 너는 학창시절에 어떻게 통학을 했냐, 난 통학을 하다가 버스사고를 당한 적 있다, 너는 어떤 경험이 있냐, 그런 경험을 했다니 정말 놀랐겠다, 그때 같이 통학했다는 친구들하고는 지금도 연락하냐, 그때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다니 놀랍다, 물론 예전만큼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사회에 나온 이후로는 서로 시간 맞추기도 좀 어려운 편이다, 그래도 예전에 친구들과 같이 여행 갔던 기억 떠올리면 흐뭇하다, 너도 친구들과 여행을 간 적 있냐, 어디로 갔냐, 몇 살 때였냐, 나도 거기 안다….

 

저렇게 서로의 인생을 훑어가면 되는 거야. '인생에 대해서 토론해 보자'라며 다짜고자 "넌 삶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묻는 게 아니라, 그간 걸어온 발자국들을 쭉 함께 돌아보는 거라고. 그러다 보면 상대가 어떤 생각으로 무슨 선택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대략 알 수 있게 되거든. 부끄러움을 타서 못 했던 일이나, 용기가 없어서 접어두었던 일, 또는 남과 다르게 주변을 별로 의식 안 하고 시도했던 일,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아 이러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게 된 일 등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잖아.

 

또, 위와 같은 대화를 통해 인생을 훑고 나면, 나중에 상대가 뭔가 다른 얘기를 할 때 계속 링크가 걸려. 상대가 친구를 만난다는 말을 하면, 이쪽에선 "전에 말했던 그 함께 여행 갔던 친구와 만나는 거야?"라고 물을 수도 있게 되는 거지. 그걸 몰랐더라면 "친구? 그래 잘 만나고,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 연락 줘."라며 그냥 마무리 하게 되는 거고 말이야.

 

"어떤 주제를 제시해야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그것 역시 상대의 한 부분인 까닭에, 특정 주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깊이 있는 대화'는 가능해. 그러니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주제를 계속 바꾸지 말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 봐. '방금 밥 먹었어'라는 말 하나로도 얼마든 가능한 일이야. 이걸 내가 하나하나 다 적고 있으면 글이 너무 기니까 여기서 마치도록 할게. 지금까지 내가 한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행운을 빌어.

 

 

2. 여의도에서 날아온 '고 OR 스톱' 사연.

 

여의도에서 오는 사연들은 대부분 다 흥미로워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오는 사연엔 특유의 정장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누욕(맨해튼 발음) 타임스퀘어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뉴욕엔 구글어스로 밖에 가본 적 없지만, 아무튼 그래요.(응?) 뉴욕엔 '빅 애플'이라는 별명이 있으니, 여의도에도 하나 지어줍시다. 한국다운 걸로다가, '큰 단감' 뭐 이런 거 어떤가요. 아침으로 미역국을 먹었더니 상태가 별로 좋지 않네요.

 

여하튼 쫄지 마세요. 상대가 TV에 나오는 여자와 사귄 적 있고 사내 모든 여자들이 흠모하고 있는 대상이라고 해서, 뭘 해보기도 전에 '난 안 될 거야.'라고 마음 접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 상대와 연락하고 있는 거 S양이고, 같이 밥 먹는 거 S양이며, 어디 다녀왔다가 선물이라도 사오게 되면 서로에게 주고 있는 거 두 사람이지 않습니까.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 있고, 또 만나면 즐겁고 재미있어요. 대화도 잘 진행되고요. 그런데 제가 먼저 이렇게 들이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시간을 가지고 좀 기다려봐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됩니다. 이걸 가지고 제 지인(기혼 남성)에게 상의를 했더니, 그 지인은 '상대에게서 너랑 잘 해보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먼저 만나자는 말도 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보고, 정말 상대에게 연락이 없다면 인연이 아닌 거라고 생각하래요."

 

산딸기와 블루베리는 열매를 맺는 시기가 달라요. 산딸기는 올해 심으면 내년에 나지만, 블루베리는 올해 심으면 4년 후에나 열매를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산딸기 경력이 있는 분이 블루베리를 보곤 "열매가 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지금 다 뽑고 다른 걸 심는 게 효율적인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다 뽑아 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지금처럼 S양이 먼저 제안을 해야 하는 거라고 해도, 좀 더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어요. 상대도 돈 남고, 시간 남고, 할 일 없어서, 또는 억지로 S양 만나는 거 아니거든요. S양에게 흥미로운 부분이 있기도 하고, 또 S양과 대화를 나누면 활력이 느껴지니 만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직 같이 호빵 한 번 먹은 적 없고, 팥빙수 역시 한 번 먹은 적 없는 와중에 '연락 끊고 지켜보기'를 하는 건, 인강 보다가 중간에 끊고 그냥 시험보기로 마음먹는 것 같아요.

 

'공부는 열심히 해도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는다.'

 

뭐 저런 심정으로 말이에요.

 

제가 S양의 사연을 읽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건, 전교에서 1등인 학생이 전국 등수 떨어진 걸 두고 완전히 낙심하다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은 부분이었어요. S양은 자신에 대해 너무 냉정하고 필요 이상으로 객관적인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S양은 그게 안 돼요.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평가해요. 그리고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갖추지 못한 부분에만 유난히 민감하기도 하고요.

 

S양은 너무 일찍부터 어른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너무 일찍부터 어른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거든요. 마음껏 즐기거나 펴보지 못한 채 책임져야 할 것들을 먼저 생각하고, 누가 봐도 분명 좋은 상황에서 잘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걱정할 게 너무 많아요. 누가 어디 가서 실컷 놀다 오라고 비행기 표까지 선물해도, 너무 일찍부터 어른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정말 마음 편하게 나가서 즐기지 못하거든요. 오히려 아직 철이 안 든 사람들은, 누가 비행기 표 좀 안 주냐고 떼쓰는데 말이에요.

 

지금 S양의 마음이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으며, 혼자 그 마음의 방 안에서 누워 뒹굴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걸 먼저 자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S양이 가진 매력은 다 어느 구석에 집어 넣어두고, 연애나 결혼에 구걸하는 태도로 임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러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곤 자신과 그 상황이 다 미워지며 자존심까지 상하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고요.

 

제 지인 중 한 분이 여의도에 계시다가 퇴직하셨어요. 그 분은 교통문제로 인해 일찍 가느라 해 뜨기 전에 출근하고, 늘 별 보며 퇴근하셨대요. 많지 않은 나이에 퇴직하셨는데, 물론 그 분은 나오셨으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거겠지만, 너무 아둥바둥 매달리고 애를 쓴 것, 평판에 신경 쓰고 눈치 본 것, 회사가 전부인 줄 알고 회사를 위해 살았던 것 등이 후회된다고 해요. 그냥 생활의 일부일 뿐인데, 다른 생활들을 너무 돌보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이에요. 또, 어쨌든 본인 인생은 본인 책임인데 늘 코앞만 보며 살다가 나오니 '나는 누구였나?'하는 생각도 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느 영화에선가, 공포를 느끼는 건 상상력 때문이라는 대사가 나오잖아요. 마찬가지로 생각이 너무 많으면 쉽게 불안해질 수 있어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상대와 날 비교하고, 또 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나아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상대가 실망하게 될 수 있는 부분들까지 혼자 정리해서 위축되면, 방법이 없어요. S양이 좋아하는 노래가,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으며 앨범판매량도 제일 많고 또 모든 사람들이 첫째로 꼽는 노래인 거 아니잖아요.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스스로를 마음 속 오디션장에 올려 둔 채 처참한 점수를 주지 마시고, S양은 S양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그냥 간단하고 명확하게 생각하셨으면 해요. 그럼 그때부턴 주인공다운 생기가 돌고, 남들도 그 빛을 알아보게 될 테니까요. 어려우면 언제든 또 사연을 보내요. 노멀로그는 그냥 변방의 어느 블로그일 뿐이지만, 여긴 좋은 사람들도 이렇게나 많고, 같이 으쌰으쌰 하며 힘낼 수 있으니까요. 함께 도우며 만들어가 보자구요.

 

 

어제 매뉴얼에서 학생들이 가방에 인형을 매달고 다니는 얘기를 하다 '간다라'이야기를 했더니, 왜 그 얘기를 한 거냐고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이건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 확실하진 않은데, 간다라 미술의 발생 원인이 알렉산더가 몰고 갔던 병력 때문에 생긴 것으로 난 알고 있다.

 

당시 인도 쪽에 있던 부족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크게 그려 놓거나, 아니면 신을 경배하는 의미가 담긴 탑 등을 세워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쳐들어온 알렉산더 군대를 보니, 걔들은 신을 작게 조각하거나 새겨 넣어 허리춤에 달고 있거나 장신구로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쟤들은 신을 저렇게 달고 다니니, 계속 전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지….'

 

하며 컬쳐쇼크를 받은 사람들이, 불상을 비롯해 여러 신들을 여기저기 새겨 넣거나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하튼 그래서, 가방에 인형을 달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간다라 미술이 떠올라 했던 얘기였다.

 

자, 불금이다. 다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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