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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바라는 만큼 사랑해 줄 수 없으니 헤어지자는 남친.

by 무한 2015. 10. 22.

서른 넘어 헤어져도 잘 사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니 제발 '서른'이라는 나이 때문에 패닉에 빠지거나 결혼에 대한 강박 같은 것에 시달리진 마셨으면 합니다. 제게 도착하는 사연 중엔, 어떻게든 이게 마지막 사랑이어야 하며 결혼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차 떼고, 포 떼고, 다 양보해서라도 우린 결혼까지 가는 거다. 면사포 쓸 영광의 그날을 위해!'

 

라는 심정으로 돌격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 대원들은 남친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해서라도 결혼을 쟁취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시험종료 3분이 남은 상황에서 다 못 채운 오회말카드를(응?) 아무렇게나 마구 칠해 넣는 느낌으로 결혼을 하려 듭니다. 당연히 그러면 그럴수록 상대는 거부감만 더 느끼기에 잘 될 리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 부분부터 좀 확실하게 하고나서, 사연을 살펴보든 뒤집어보든 했으면 합니다.

 

'나이도 많은데 지금 헤어지면 끝장이야. 그리고 다시 누굴 만나서 결혼까지 가려면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거잖아. 또,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면, 그게 정말 끝장인 겁니다.

 

"난 너 더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마음도 식은 것 같고, 아무튼 우린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삼보일배를 하며 빌어 봐야, 전방 십자인대만 나가고 만단 얘깁니다. 그러니 당장 뭐 하나 어떻게 하거나 무슨 말을 잘 해 상대를 돌릴 생각을 하기 보단, 대체 이 지옥 같은 상황이 왜 벌어졌나를 함께 살펴봤으면 합니다. 그럼 재회를 하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 다시는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입니다. 출발하겠습니다.

 

 

1. 거칠고 예의 없는 말투의 문제.  

 

어느 커플의 카톡대화를 보는데, 거기

 

"그 나이 쳐먹고."

"아 *발."

"그래 난 닥치고 병신X이나 열심히 할게."

"X나"

"야이 씨."

"기분 X같으니까."

 

등의 대화가 나오면, 그 커플은 반드시 헤어집니다. 어찌어찌 하다 결혼까지 했다 해도, 늘 서로를 저주하며 한 명이 겉돌고 다른 한 명은 짜증을 내는 형태가 되고 맙니다. 98.72%의 확률로 그렇습니다.

 

또, 스킨십에 후진 없는 것처럼, 상대를 막 대하는 것에도 후진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이 싸우다 정말 열 받은 어느 순간에

 

"미친 ㅋㅋㅋ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지*랄 하고 있네. 짜증나게 하지 마라."

 

라는 말을 한 번 뱉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더 높은 수위의 욕이 나오거나 "야, 너, 에휴, 썅, 짜증" 등의 단어가 둘의 관계에서 생활화 되고 맙니다.

 

평소 장난으로 하는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한테 건방떠네 ㅋㅋ"

"미친 ㅋㅋㅋㅋ"

"존X 웃기네."

 

등의 말들로 대화를 하게 되면,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어느 대원은 저걸 두고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보다 끈끈한 유대를 맺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던데, 이렇게 말해서 죄송하지만 그건 그냥 언어학습과 예절이 부족한 대화일 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풀어서 이야기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하고자 하는 말을 하나의 단어나 욕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화가 나도 '짜증나', 슬퍼도 '짜증나', 아쉬워도 '짜증나', 안타까워도 '짜증나', 마음이 아파도 '짜증나',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냥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것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말하면 대화가 가능할 텐데, 그 상황에서도 그냥 "아 씨 짜증나. 기분 X같네."라고 말하는 까닭에 말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정서적 폭력 모드'로 접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사연의 주인공인 H양은 남자친구와의 카톡대화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H양과 남친의 대화는 위에서 말한 부분에 전부 걸리지 않습니까?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이 말하는 태도와 단어선택 등을 좌우하기도 하는 거고, 말하는 태도와 단어선택이 둘의 관계를 좌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H양과 남친의 대화는 최악이지 않았나,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2. 뭐 해? 뭐 해? 뭐 해? 심심함과 외로움의 문제.

 

H양이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H양 - 여기 봐.

H양 - 나를 봐.

H양 - 날 쳐다보라고.

H양 - 야 내 말 안 들려?

H양 - 야

H양 - 이

H양 - 씨

상대 - 왜?

H양 - 얘기 좀 해.

상대 - 무슨 얘기?

H양 - 너 왜 나 안 봤어?

 

잠깐 농담으로 저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 전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H양은 그냥 계속 짜증이 나 있습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사고를 하다가 혼자 분노하는 것입니다.

 

난 심심하다. -> 남친이 있는데도 심심하다.

난 외롭다. -> 남친이 있는데도 외롭다.

난 슬프다. -> 남친이 있는데도 슬프다.

난 투정을 못 부리고 있다. -> 남친이 있는데도 투정을 못 부리고 있다.

난 계속 먼저 연락해야 한다. -> 남친이 있는데도 남친이 연락을 안 한다.

 

저러면 남친은 H양에게 늘 '악의 축'으로 느껴지게 되고,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그게 '좋은 이야기'가 될 확률은 낮아집니다.

 

H양 - 게임 다 했냐

남친 - 아니

H양 - 그래 겜 해라.

(한참 후)

H양 - 아직도 겜하냐

남친 - ㅇㅇ 왜

(이후 잠깐의 대화 뒤 남친 또 잠수)

H양 - 겜 한다고 연락도 안 하고.

남친 - ㅋㅋㅋㅋㅋ

남친 - 일단 쉬어라 나 한 판 하는 중.

 

H양의 남친이 '고혈압 유발자'라는 것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H양 역시, 남친이 없으면 30분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지금 자냐 - ㅇㅇ - 그래 자라.

게임 하냐 - ㅇㅇ - 그래 게임 해라.

지금 바쁘냐 - ㅇㅇ - 그래 일 해라.

 

라는 식의 연락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H양의 사연을 읽으면서, H양에게서 저녁 10시 부터 다음 날 8시까지 폰을 빼앗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갈등이 바로 그 시간에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불만족으로 인한 갈등은 연락을 못 하게 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감수성이 예민해지기 시작하는 저녁 8시 이후로 분노만을 증폭시키다 결국 폭발해 버리는 건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가 떠 있을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해도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는데, 해가 진 이후는 더 사소한 일로도 난장판을 만들어가며 싸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H양. 연애 말고도 할 게 있어야 합니다. 아기 새가 어미 새 기다리면 목만 빼놓고 있듯, H양에게 찾아오는 모든 감정을 남친이 해결해 주길 바라서는 안 됩니다. H양은 상대와 데이트를 잘 하고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오면 갑자기 불안해하며 집에 가려는 상대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서운해 하는데, 계속 그러면 그냥 짐짝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H양이 뭔가를 하고 있는데 강아지가 계속 와서 놀아 달라고 하면, 귀여운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과 비슷한 심정이, H양의 남친에게도 들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3. 복수와 이별통보의 문제.

 

H양이 연애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좀 이상합니다. H양이 한 말을 잠시 보겠습니다.

 

"저땐 남친 콧대가 높아진 것 같아서 겁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제가 겁먹게 되었네요."

 

연인사이에 있어야할 어떤 끈끈한 유대감 없이, 가면을 쓰고 하는 두뇌게임을 하는 느낌입니다. H양의 저런 생각은, H양이 남친과 싸울 때 하는 말들에서도 드러납니다.

 

"이럴 거면 그냥 나이트에서 그런 여자 만나지 왜 날 만나냐."

"나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 내가 그 정도 감수하고 만나야 하는 건데 주제넘었네."

"내가 주제도 모르고 나서서 미안하네."

"지금 내가 왜 화를 내는지 네가 모르는 게 내가 화를 내는 이유다."

"내 기분 지금 X같으니까 좀 풀어봐라."

"앞으로 또 이런 일 없을 거라 약속은 못 하겠다. 난 그럴 때마다 너한테 말 할 거다."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 이 정도도 못 하면 난 네 여자친구 못 한다."

 

저 말을 들은 남자가 가장 먼저 떠올릴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미안함? 죄책감? 뭐,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공포'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앞으로 또 이런 일 없을 거라 약속은 못 하겠다. 난 그럴 때마다 너한테 말 할 거다."

 

라는 부분은, 꼬꼬마 시절 엄마가

 

"너 집에 가서 보자."

 

라고 이야기 할 때의 기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H양은 저런 '전면전'을 시행한 후 남친을 미안하게 만들어 칼자루를 쥐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연애 중 한 쪽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밀고 들어올 땐, 항복한 후 순순히 포박당해 끌려 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다 포기하고 도망가게 됩니다.

 

제가 매뉴얼을 통해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왔던 건, 바로 저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너는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네. 욕 밖에 안 나온다."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던 무언가엔 금이 가게 됩니다. 저렇게 엎지르고 난 뒤

 

"또 나 혼자 화내고 나 혼자 풀었네. 내 자신이 한심하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H양은 분노가 극에 달해 이별통보를 한 적도 몇 번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헤어지고 몇 주 후에 다시 관성에 의해 재회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게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조각조각 나버린 연결고리의 아주 가는 부분으로만 겨우 지탱하고 있을 뿐이란 얘깁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H양과 남친의 재회를 반대합니다. 사실 둘은 이렇게 싸우고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나는 걸 몇 번 반복한 까닭에 지금도 만나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애정이나 존중, 책임감이나 행복 등을 둘의 관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관계를 결혼으로 잇는다고 해서 그 결혼이 과연 행복할지도 솔직히 의문입니다. H양은

 

"남친과 연애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행복하기도 했어요."

 

라고 이야기 하시는데,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행복'이라는 게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려워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상대가 지금

 

"아 그냥 너랑 통화하기도 싫다."

"더 이상 네가 좋지 않다고."

 

라는 이야기까지 몇 번이나 한 상황에서 '재회'만을 생각하진 마시길 권합니다. 헤어지고 나면 꼭 그가 다시 H양에게 연락하며

 

"우리가 사귀는 건 아니라하더라도 너랑 연락은 못 끊겠다."

 

따위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그런 말을 '인연'과 연관지어 생각하거나 특별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며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와 새로 시작할 생각이라 해도 지금처럼 '말 한마디면 연인으로서의 책임이나 의무 없이 연을 잇고 있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해선 안 되는 것이니, 그가 실제로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하지 않으면 H양의 마음을 가질 수 없게 하시길 권합니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걸 돈 주고 살 사람은 없는 것처럼, 지금 H양의 호의와 애정이 공짜로 베풀어지면 끔찍한 시간들만 계속 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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