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사연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여성분이 소개팅 어플에 자신을 등록했는데, 비키니 입고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본 남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메시지를 보내는 까닭에, 답장을 해주느라 생활에까지 지장이 있다는 게 그 분의 고민이었습니다. 또 그분이 그 어플에서 만난 남자 중 '정상적인 남자'라고 생각했던 남자도, 결국은 비키니 얘기를 꺼내며 사진을 요구하고 이상한 쪽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 역시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여하튼 그래서 전, 그 여성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그냥 평범한 걸로 바꾸거나, 아니면 동물사진 같은 걸 올리면 어떨까요?"
저는 분명 저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여성분은 사진을 바꾸진 않았고, 계속해서 남자들이 귀찮게 한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전 당시
'이건 또 어떤 종류의 정서적 아픔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종종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사연들이, 바로 저런 사연입니다. 누군가의 스토킹 때문에 괴롭다고 말하면서 상대를 차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는 한다거나, 인생에서 구남친을 도려내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다시 '긁어 부스럼'만드는 게 바로 이쪽이라거나 하는 경우 말입니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 M양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1. 차단을 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학습을 했다면,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합니다.
"구남친은 술 먹고 필름이 끊기면, 그때 전화하는 버릇이 있어요.(술 마시고 전화해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굴지만, 술 깨면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가 갑질하고 저주한다는 의미)"
구남친에게 어떤 버릇이 있는지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그를 차단하시길 권합니다. 차단을 해도 그가 이쪽의 번호를 기억해 술 마실 때마다 연락을 한다면, 이쪽의 번호를 바꿔서라도 그를 인생에서 도려내야 합니다. 그게 가장 현명한 답이자 유일한 답입니다.
"정말 복수하고 싶었어요. 복수를 해서라도 통쾌해지고 싶었어요."
길 가다가 똥 밟았는데, 똥에게 복수한다며 거기서 똥과 뒹굴게 되면, 똥 묻을 일 밖에 없는 겁니다. 그가 그렇게 술 마시고 전화한 다음날 M양이 그에게 질문을 하면, 그는 생각이 안 난다고 말하거나 그냥 전화했던 거라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습니까? 그럼 또 M양은 그의 그런 태도가 분해 뭐라고 하고, 그는 그걸 보곤 재미있어 하며 M양을 놀려 댑니다.
이건 현재 M양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상대는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태도로 M양이 무슨 소리를 하든 눈 한번 깜빡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M양은 진심을 내보이며 상대를 상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한님은, 제가 잘 되는 게 가장 좋은 복수라는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그것도 복수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만,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는 상대에게 무관심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M양은 무관심해진 척 하곤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전화를 걸어 올 때마다 온 신경을 거기에 쓰고 있으며 분한 마음 어떻게 하지 못 해 상대에게 막 퍼부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상대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고, 상대 역시 그걸 알기에 M양을 찌르며 노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좀 더 단단한 마음으로 그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상대를 안 하는 게 답입니다. M양이 오늘부터 금강불괴가 되기 위한 수련에 들어간다 해도, 구남친과 만났을 때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는 단순히 M양의 반응이 재미있어 찔러대는 거고, M양은 그런 그에게 '서로의 진심을 조율해보기'를 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직원을 채용할 생각이 전혀 없는 어느 회사 사장이 장난으로 모집공고를 냈는데, 거기 M양이 찾아가 면접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찾아가면 몸과 마음과 영혼만 다치게 될 뿐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차단을 하길 권합니다.
2. 구남친이 진심으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가 하는 말들은 진심이라고 보기 어려운 말들입니다. 백 번 양보해
'그 순간의 진심'
이라고 포장은 할 수 있겠지만, M양도 이미 수차례 그의 '진심의 유효기간'이라는 게 얼마나 짧은지 경험하지 않으셨습니까? 술 깨면 사라지는 진심 같은 건, 그걸 믿거나 거기에 기대를 걸어선 안 되는 겁니다.
"그래도 너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라 인사는 하고 떠날게.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상대의 저 말을, 늘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건 위험합니다.
'정말 연락 안 하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하는 거다. 너와의 시간들이 다 고맙고, 미안하다.'
라는 건, 외롭고 심심하거나 잠시 혼자 감상에 젖었을 때 보내는 구남친들의 대표 멘트입니다. 상대와는 전혀 관계없이 혼자 감정정리 하다가 던지는 멘트란 얘깁니다. M양의 구남친이 보낸 카톡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M양에게 156자를 써서 보냈을 뿐입니다. 또,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그걸 믿고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려 하면 상대는 잠수를 타거나 다시 '갑'의 위치로 돌아가 M양을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더불어 상대의 연락이후 M양이 그와 다시 대화를 했을 때, 결국 그가 마지막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만 하자. 이럴수록 너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만 자꾸 떠오른다. 앞으로 연락 할 일 없을 거야. 진짜 진심으로."
자고 일어나니, 또 그의 '진심'이라는 게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의 대화패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그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 가지고도 M양에게 꼬투리를 잡아 다시 '갑'의 위치를 점령합니다. 그럼 M양은
'이번엔 정말 진심이었는데 내가 너무 모질게 대해서 그의 마음이 돌아선 건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진심이 아닙니다. 그가 M양에게 한 말 중 진심이 1g이라도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는 분노하는 M양의 마음을 잠깐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해 보거나, 최소한 다 들어주기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대로 정말 M양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던 거라면, 술 취해서 연락한 다음 날부터 다시 M양의 연락을 무시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곧바로 돌변해
"넌 잘 사는 것 같으니 이젠 나도 네 눈치 보며 안 살아도 되겠네."
따위의 말로 책임전가를 하지도 않았을 거고 말입니다. 더는 손대지 마시고 이 관계를 버리시길 권합니다. 이 상태 그대로 손을 떼는 게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3. 웃기지도 않는 얘기들.
아주 조금이라도, 신뢰를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믿는 게 좋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사람이,
"그럼 넌 날 못 믿는다는 거냐. 실망이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그 말에 흔들릴 필요 없습니다. M양의 남친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저런 휘두름인데, 안타깝게도 M양은 저 말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맙니다.
그의 마지막 연락을 함께 살펴봤으면 합니다. 그의 문자는
"나 이제 서울로 떠나. 애들 만나서 작별인사 하는데 네 생각도 나고 해서…. 잘 줄 알면서 전화한 거야. 받으면 안 되니까. ㅎㅎㅎ"
라고 시작하지 않습니까? 다행히 M양은 저런 문자가 처음이 아닌 까닭에, '또 이러는 구나'하며 잘 넘기긴 했습니다. 하지만 '떠난다'는 떡밥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인지, 결국 M양은 묻고 맙니다.
"언제 떠나는데? 가면 안 오는 거야?"
라며 말입니다. 저걸 두고 M양은
"저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척 저렇게만 물어봤어요."
라고 하시던데, 저건 누가 봐도 '아무렇지 않은 척'으로 보이지 않으며, 저 떡밥에 넘어가 대답을 하는 순간 이미 이건 낚인 게 되는 겁니다. M양이 낚여서 대답을 하고 난 후, 상대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답장 없음.'
이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제라도 M양은, 그의 이번 연락 역시 그저 찔러본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상대의 소식을 전해듣게 된 것까지 불을 지펴, 결국 M양은 폭발하고 맙니다.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상대에게 연락한 것입니다.
저는 M양과 구남친의 이야기를 보며 참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던 게, 둘 다
"차라리 답장이 안 오길 바랐습니다."
"안 받길 바라며 전화를 걸었어."
등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게 참 저는, 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발로 물컵을 차면 물컵이 엎질러지는 게 당연한 것이니 않습니까? 그러면 물컵을 안 차는 게 맞는 건데, 둘은 발로 물컵을 차면서 "물이 엎질러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후 '사과'를 요구하는 M양에게 상대가 하는 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도 못 만나겠다. 다 너같을까봐."
"내가 연락 안 했으면 너의 이런 연락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내 잘못인 것 같다."
"앞으로 절대 연락 안 할 거다. 그걸 사과하라면 사과하겠다. 진짜 미안하다."
그는 저렇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후, M양이 틈을 보이자 반격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넌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내가 연락 안 하는 게 나았겠다."
"넌 진짜 무섭다. 스토킹에 협박에…."
"낮에 맨 정신에 연락을 못 한 건 사정이 있어서다. 그건 내 사정이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냥 더는 말을 안 섞는 게 가장 좋습니다. M양이 그의 말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며 배려하면 할수록, 그는 M양을 이상한 여자로 만드니 말입니다.
"진심에 대한 기준자체가 다른 건데, 넌 내 진심을 네 기준으로 파악해 놓곤 진심이 아니라네? 난 진심으로 너한테 연락했던 건데 넌 내가 술 취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네? 넌 왜 네 기준에서 다른 사람을 맞추려고 하는 거지?"
저런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 진심어린 사과도 못 받아주는 이상한 사람인 건가?'하며 혼란스러워 하지 마시고, 그냥 '알았으니까 잘 살고 제발 연락은 하지 말아 달라'고 정리하길 권합니다. 답장도 안 할 정도로 관심 없는 상대를 붙잡고 사과를 하라느니, 진심이 아닌 것 같다느니 하며 말을 해봐야 입만 아픕니다. 그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M양을 바보로 만들 뿐이며, 본인 잘못에 대해 어떤 핑계든 만들어 갖다 붙인 채 L양을 이해심 없는 사람으로 만들 테니 말입니다. 저런 얄팍한 들쑤심에 반응하지 마시고, 털어내시길 권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강한 어조로 얘기하는 건, M양도 이제 나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다시는 연락할 일 없을 거다."라고 말해놓곤 또 잊을만 하면 연락해오는 거, 그거 받아주다 보면 아까운 시간 다 가버리고 맙니다. 또, 상대를 보니 종종 M양의 SNS를 보며 근황을 체크하는 것 같던데, 그럴 경우 M양이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정말 그저 '재미'로, M양이 아직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지 떠보려고 또 연락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한 순간의 감정이나 재미, 또는 질투심이나 근자감으로 그런 일을 벌이는 경우는 제 주위에도 있습니다. 제 지인 중 하나는 연애를 하다 헤어진 후 구여친이 시집을 가 애도 낳았는데, 지인은 지금도
"내가 연락하면 걔는 나 만나러 나올걸? 걔는 나 아니면 안 되는 애라서…."
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매몰차게 거절하시길 권합니다. 상대의 근자감이나 일시적인 감정이, L양의 청춘을, 인생을, 영혼을 좀먹게 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상처라는 상처는 다 준 채 막장까지 경험한 사람이 본인 혼자 속 시원하겠다고 푸는 것도 받아주지 마시고, 평생 잊지 못할 저주까지 했던 사람이 외롭고 심심할 때 해오는 사과도 받아주지 마시길 권합니다. 반응하지 않는 게 가장 철저한 복수이며, M양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거기서 눈을 돌리면 이 넓은 온 세상이 있는데, 왜 궤변남이 던지는 미끼만 바라보고 계십니까. 물리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다시는 그와 한 마디도 섞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미련? 아쉬움? 복수? 제가 늘 얘기하지만 청춘은 이월되지 않습니다. 남은 2015년의 단 하루도 거기에 낭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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