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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사귀며 단 한 번도 다정한 적 없던 여자친구?

by 무한 2015. 11. 5.

먼저, 축하드립니다. 작년에 사연을 보낼 땐 K씨가 고시생이었는데, 올해는 전문직을 가지게 되셨군요. 이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뿌듯합니다. 뭐, 그래봐야 이제 연애하면 자기들끼리 소고기 사먹고 결혼 하고 아이 낳고 카스에 아이 사진 올리고 그러겠지만….(응?) 농담이고. 여하튼 축하드립니다. 훗날 신혼여행 다녀오며 면세담배 한 보루, 뭐 그런 거 안 사가지고 와도 괜찮습니다. 햄볶느라 바쁜데 뭐 제 선물 같은 거 살 시간이나 있겠습니까. 그냥 무소식으로 잘 사시면, 전 그게 희소식인가보다 하고 있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대개 1~2년쯤 무소식으로 계시다가 소식을 전해오시는 분들을 보면

 

50% - '이별이나 이혼의 위기에 놓였다'며 상담요청.

30% - '나는 왜 아직도 솔로인가?'에 대한 상담요청.

15% - '날 아직 기억하나 궁금해서' 보낸 메시지.

5% - 잘못 보냄.

 

이기 때문입니다. K씨의 경우도 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연애 시작 후 이별에 접어들어서야 제게 연락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렇다고 제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라고 있는 게 노멀로그이니, 큰 부담 없이 사연을 주셔도 됩니다. 담뱃값 올라 허리가 휘어도 제 허리가 휘는 거지 K씨 허리가 휘는 건 아니잖습니까. 괜찮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여기까진 제 반가움의 표시였고, 이제 본격적인 매뉴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 두 상담원의 만남 같았던 연애.

 

두 사람이 너무 예쁘게, 부정적인 낌새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절대 아무의 기분도 상하지 않을만한 말들만 골라 서로 주고받듯 대화를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연애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렇게까지 매끄러울 수 없거든요. 고음과 저음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멜로디고 서로 좀 다른 소리를 낼 때가 있어야 그게 화음인 건데, 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솔' 톤으로 갑니다.

 

마치 두 상담원이

 

A - 잘 잤어요? ^^

B - 네 잘 잤었요. A씨도 잘 잤어요? ^^

A - 네 저도 잘 잤어요. 곧 출근하시겠네요? ^^

B - 네 그럴 것 같아요 ^^ 아침은 드셨어요?

A - 네 아침 먹었어요. 아침 드셨어요? 오늘 밖에 좀 추워요 ^^

B - 네 먹었어요. 저 출근준비하고 나가면서 또 연락드릴게요. ^^

A - 네네 ^^

 

라며, 몇 달간 저 느낌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깁니다. 물론 저렇게 대화를 나누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거나 말실수를 할 일 같은 건 생기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몇 년간 대화를 나누어도 절대 가까워질 일 없을 것 같지 않으십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K씨라면 상대에게 제 여러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줬을 것 같습니다. 어느 땐 방심하고 있는 상대를 빵 터지게 만들고, 또 어느 땐 갑자기 진지해지기도 하며, 또 어느 땐 마초적인 박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느 땐 소년처럼 작은 것에도 관심을 쏟는 모습도 보여줬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오해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저런 걸 잘 하고 저런 것에 익숙해서 그러겠다는 게 아닙니다. '시도'를 한다는 얘깁니다. 저 역시 지금도 공쥬님(여자친구)에게 드립을 치다보면 너무 나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또 그 상황 나름대로 우리에게 추억이 되곤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실수하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끼기도 하고, 또 어느 땐 아직 서로의 마음에 아이가 살고 있다는 걸 느끼며 공감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K씨와 상대의 연애는 서로 약간의 실수도 하지 않겠다며 모든 필터링을 해서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피겨 스케이트라고 치면, 넘어지는 게 두려워 아무 기술도 하지 않고 그냥 빙판 위만 빙빙 돌았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래버리면 요즘 말로 '노잼'이 되어버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도 카톡대화에 "ㅋㅋㅋㅋㅋ"가 등장하니 K씨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K씨나 상대나 솔직히 아무 표정 없이 기계처럼 "ㅋㅋㅋㅋㅋ"를 찍어 보냈을 거라는 걸, 우리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다 알지 않습니까? 별로 할 말은 없는데 일단 받아주긴 받아줘야 하니 "ㅋㅋㅋㅋㅋ"를 찍고 보는 거지, 단전에서부터 정말 큰 웃음이 솟아나와 "ㅋㅋㅋㅋㅋ"를 찍는 게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온 몸에 힘을 잔뜩 준 채 머리로 필터링 해가며 만났던 게 이별의 가장 큰 원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둘의 대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헤어지기 바로 직전까지도 둘은 "ㅋㅋㅋㅋㅋ"를 찍어가며 마냥 즐거운 사람들처럼 연기를 했을 뿐입니다. 달리 보면, 그거 참 무서운 겁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때까지도 "ㅋㅋㅋㅋㅋ"라며 웃는 표정만 내보였다는 게 말입니다. 이 부분을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2. 사귀게 된 이후에도 그저 썸의 연장 같았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마다 연애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으며, 방방 뜨며 풍덩 빠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다 거짓은 아니라는 겁니다. 당장 열 몇 명 데리고 등산만 가보더라도, 성큼성큼 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얼마 가지 않아 지쳐 주저앉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또, 길 없는 곳을 공략해가며 오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완만한 경사로 계속 이어진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연애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전력질주 하지 마세요.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 말고, 상대의 속도에 맞춰 걸어보세요."

 

라고 지겹도록 얘기하는 것도, 바로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상대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상대가 연애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결국 실망하거나 집착하는 사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100일 내에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고 신용불량자 되는 거 아니고, 반 년 만났는데 상대가 날 위해 목숨까지 바칠 정도가 아니라고 해서 체포되는 거 아니잖습니까? 그럼 좀 천천히 만나가며 기반을 단단히 만들어도 되는 건데, 실망할 거리만 찾아가며 자신이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가 분명 K씨의 여자친구였으며, 그녀가 아무 마음도 없으면서 K씨를 만난 건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의심을 다 내려두고, 카톡대화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오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잘 거야 ㅋㅋㅋ"

"그쪽으로 갈래? 나도 들은 건데, 거기 분위기 괜찮은 곳 있대 ㅋㅋㅋ"

"오빠 밤새면 나도 밤 샐래 ㅎㅎㅎ 밤새면 오빠 배 안 고프겠어?"

 

마음이, 예쁘지 않습니까? 그녀가 막 방방 뜨며 끊임없이 연락하고 하트 날려가며 애정표현을 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그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씨는

 

"제가 만나자고 하니까 만나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귄 뒤에도 썸이랑 별 차이가 없었어요. 안부를 묻는 것 빼고는 애정표현도 없고…."

"사귀어 달라니 사귀어는 주고, 밥을 먹자니 먹어는 주는데, 다른 건 바라지 말라는 느낌이랄까요."

 

라는 의심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대체 왜 저를 만나는 건지 묻고 싶지만, 물으면 관계만 악화 될 것 같아 묻진 못했습니다."

 

라며 그녀를 악당으로 설정해 두었고 말입니다. 이렇듯 상대를 '내 여자'가 아닌 '용의자'로 보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집니다. 상대는 10번 연락할 수 있는 걸 왜 8번 밖에 연락하지 않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상대가 내게 물은 것보다 묻지 않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며, 상대가 두 번 제안하고 내가 세 번 제안하면 나만 제안하다는 착각까지를 하게 됩니다. '상대는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색안경을 쓴 채 바라보는 까닭에, 모든 걸 다 그렇게만 해석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카톡대화를 보니 어떠십니까? 그 안에는 분명 K씨와 사귀고 있던 K씨의 여자친구가 들어있지 않습니까?

 

 

3. 뽀뽀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의 박력은, 꼭 필요합니다.

 

물어는 봤습니까? 아니면 직접 들었습니까? 물은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지 않습니까? 전부 다 K씨의 예상과 짐작일 뿐입니다.

 

"만나서 손잡는 정도의 스킨십 말고는 하질 못합니다.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대화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제가 대화를 잘 하는 편도 아니고…."

 

저건 '해답이 다 공개되면 그때 그걸 보고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 여자친구가 K씨를 만나는 것에 설레며 나왔고, 옆에 있고, 손도 잡고, 같이 거리를 걷고,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K씨에게

 

'나 스킨십 좋아해요. 손만 잡지 말고 진도를 좀 더 나가주세요.'

 

라는 신호를 보내겠습니까. 이 정도 힌트가 나왔는데도 문제를 안 풀고 있으면, 그건 K씨가 잘못한 겁니다. 왜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속으로 걱정과 예상만 하면서 실망을 합니까.

 

더 황당한 건, K씨가 계속해서 저런 '혼자 하는 실망'을 거듭하다, 상대에게 이별통보와 같은 말까지 해버렸다는 겁니다.

 

"너의 이상형과 라이프스타일이 어떤 건지는 잘 알겠다. 그런데 난 사실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난 우리가 사귀는 게 맞는 건지 사실 고민도 많이 되고, 잘 사귀고 있는 건지 긴가민가한 부분도 많다."

 

신기한 게 뭔지 아십니까? 여친은 내게 마음이 없다, 여친은 억지로 사귀는 것 같다, 여친은 날 다정하게 대하고 싶어 보이지 않는다, 여친에겐 나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던 K씨가, 실제로는 이 연애에서 가장 냉혹하고 잔인하게 굴었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여친은 잘못한 게 없고 나름 최선을 다한 건데, K씨는 자신의 기대치에 여친이 미치지 못하자 그녀를 이별 가능성을 많이 품고 있는 용의자로만 여긴 겁니다. K씨가 한 말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여자친구랑 같이 여행을 가기로 정한 적도 있긴 해요. 근데 그것도 사실, 여친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만 했을 가능성이 커요."

 

여친이 팔 걷고 나서서 방방 뜨며 계획을 짜고 얼른 함께 가자며 잡아 끌지 않으면, 그건 무조건 '지나가는 말로 한 애기'라거나 '마음에도 없으면서 일단 한 승낙'으로 봐야 하는 걸까요? 이 외에도 K씨가 혼자 다 생각하고 판단한 뒤 여친에게 혐의를 씌우는 부분은 더 있습니다만,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으니 굳이 더 들추진 않겠습니다.

 

K씨가 느끼는 저런 모든 감정들이, 정말 여친의 '마음 없음' 때문에 온 것인지, 아니면 K씨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둘 중 하나에 제가 뭔가를 거는 게 K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저는 후자에 올인하도록 하겠습니다. K씨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증거는, K씨가

 

"재미없고 외모도 별로인 저를 만나면서 여친이 큰 애정을 느낄 리가 없으니…."

 

라고 말한 부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저런 의심을 품은 채 계속해서 부정적인 결과만 점치고 있으면, 그 연애가 결국 어떻게 될지 역시나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K씨는, 이번 여자친구를 사귀기 바로 직전에 사귀었던 여친과 왜 헤어지셨습니까? K씨가 바라는 연애로 흘러가긴 했지만, 상대에 대한 마음이 더 커지지 않아 K씨가 이별을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게 문제인 겁니다. K씨는 연애 시작 전부터 이미 상대에 점수를 부여해 버립니다. K씨가 80점이라면, 이번 여자친구는 92점, 이전 여자친구는 69점 정도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92점인 이번 여자친구는 내게 과분해. 날 좋아하지 않는데 만나는 걸 거야.'

'69점인 이전 여자친구에겐 내가 과분하지. 만나 봐도 더 마음이 커지진 않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니,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늘 연애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불어 완벽하게 동점인 상대를 만났다 해도, 앞서 이야기 한 대로 해답지가 공개되면 그때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라든지, 필터링을 다 끝낸 '가장 무난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태도 등이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연애 완벽주의'를 좀 내려놓으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상대에 대해 판단을 다 마친 후 안전하다 생각되면 그때 목숨을 걸려고 하지 마시고, 말 그대로 '그냥 좀'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당장 상대의 어떤 모습을 하나 목격했다고 해서 그게 평생 갈 거라 생각하며 다른 부분에서까지 겁을 먹어 버리는 건, 수능 성적표를 받곤 기대보다 낮은 점수에 남은 인생 전부를 비관하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좋은 날 상대와 만나 같이 닭갈비만 먹어도 배부르고 기분 좋은데 왜 '먼저 만나자는 말 하나, 안 하나'만 체크하며 상대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하십니까. 연애는 둘이 하는 것이니, 혼자 궁리하지 말고 만나서 배라도 채우며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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