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남자의 썸, 시작이 좋아도 끝이 엉망인 이유는?

사연의 주인공인 C군에게는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겠지만, 우선 이건 썸이 아닙니다. 썸이라고 하려면, 뭔가 불붙은 느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저 '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라는 것 말고, 활활 타는 느낌말입니다. 상대가 이쪽에 맞춰 여행일정을 바꿔가며 함께하길 원했다든가, 여행지에서도 관광은 뒷전이고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든가 하는, 뭐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C군의 사연에는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보내준 거랑, 이후 만나서 밥 먹은 건…."

 

C군이 처음 여행을 하는 거라 그걸 크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행지에서 보통 그런 건 그냥 베이스로 깔리는 겁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만 해도 거기서 같이 머문 사람들 단톡방 만들어지고 나중에 서로 여행 사진 주고받을 수 있단 얘깁니다.

 

물론 그걸 계기로 서로 알아가며 새롭게 사랑이 꽃피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단지 그것만 가지고 그린라이트라 여기는 건 김칫국 드링킹에 지나지 않습니다. C군의 생각이 바로 후자와 같지 않았습니까? C군은 신청서에

 

"분명 호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 잘 해보고 싶지만 지금 보면 분위기가 영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도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가능성이 있는지 봐주세요. 그냥 냉정하게 접으라고 말씀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라고 적었습니다. C군의 저 말을 이순재 선생님께서 들으셨다면,

 

"모온 난 노옴"

 

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지,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왜 상대가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스스로를 '소심남'이라고 말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 대원들에게 제가 제일 답답함을 느끼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 대원들이 가진

 

'상대는 지금 외로운 존재이며, 나와의 관계가 현재 가장 가까운 관계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잘 될 관계도 순식간에 엎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상대의 마음이 나와 똑같지 않다고 해서 곧바로 기가 죽어버리거나, 부정적인 상상만을 하거나, 실망감에 연락까지 끊어버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C군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카톡 할 때 계속 어색하고 해서, 마지막 만남 이후로는 연락 안 하는 중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C군이 현재 다니는 회사에 들어갈 때,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인가 아닌가를 보고 들어갔습니까? 입사지원 할 땐 붙든 떨어지든 일단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지원했으면서, 연애에선 미달인지 아닌지를 보고 있으면 곤란한 겁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대는 매력적입니다. 예쁘고 친절합니다. 사진을 찍어 보내며 설명해 줄 줄 아는 센스도 지니고 있습니다. 여행을 좋아합니다.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거나 일부러 피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그녀에게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모임'이 있거나 '지인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녀에게 대시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상한 게 아니고, 그녀가 C군이 아닌 다른 사람과도 연락한다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란 얘깁니다.

 

"그녀는 저보다 그곳에 좀 더 있었는데, 제가 돌아오고 난 후 다른 사람과도 친하게 지냈을 수 있고…."

 

그럼 뭐, 어떻게 해야 만족하시겠습니까? C군이 떠나자 그녀가 식음을 전폐하고 나머지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돌아오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그냥 아주 형식적인 관광만 하며 아무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만족하시겠습니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시작하면, 실망할 일도 많은 법입니다. 선약이 있으니까 이번 주에 못 볼 수도 있는 거고 또 바쁘니까 답장이 늦을 수도 있는 건데, 그런 것 하나하나에 이쪽이 다 시무룩해져 버리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여행 이후 그녀가 C군을 피한 것도 아니고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까지 했는데, 그런 긍정적인 부분은 왜 다 접어두고 '내 기대와 다른 부분'만 보며 혼자 음지로 들어가려 하십니까. 현재 안 되고 있는 거 말고 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길 권합니다.

 

 

2. 대화 할 의지요? 카톡을 그렇게 보내놓고요?

 

C군이랑 저랑 탁구를 치는데 제가 한 번에 공 세 개씩 서브하면, C군은 그거 다 받아칠 수 있으십니까? 상대의 답이 단답이며 대화 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얘기하기 전에, C군이 어떻게 카톡을 보냈나 좀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아래의 카톡은 C군이 한 번에 보낸 걸 내용만 좀 각색한 겁니다.

 

"거기를 못 들르셨다니 안타깝네요."

"거기 뒤쪽으로 가면 와이파이 되는 카페 있어요. 거기 들어가 보세요."

"아마 지금쯤 점심 먹고 있겠네요. ㅎㅎ"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 오늘도 여행 잘 하세요."

 

저런 카톡을 받는 입장에서는,

 

"전 이미 내려와 버려서…. 아무튼 감사해요."

 

라는 대답 말고는 딱히 더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C군은 저걸 두고, 자신은 길게 보냈는데 답이 짧게 왔다고 또 실망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C군의 카톡대화를 보며 더 황당하게 생각했던 건, 리액션이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였다는 겁니다. 상대가 먼저 사진을 보내와도 영혼 없이 대답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뭔가 대답은 더 해야 하니 본인의 상황만 얘기합니다. 역시 상대가 사진을 보낸 이후의 대화를, 좀 각색해서 옮겨보겠습니다.

 

[상대가 사진을 보냄]

"즐거우셨겠네요 ㅎㅎ"

"저는 이제 집에 돌아와서 짐 정리하는 중이에요. 화요일 날 돌아오시니 남은 기간 여행 잘 하시고, 안전하게 집까지 잘 돌아오세요."

 

영혼이, 영혼이 안 보입니다.

 

"즐거우셨겠네요 ㅎㅎ"

 

라니요. 그럼 상대가 오늘 먹은 흑돼지 사진 찍어 보내면 "맛있었겠네요 ㅎㅎ"라고 하고, 올레길 노을 사진 찍어 보내면 "예쁜 풍경 보셨겠네요 ㅎㅎ"하면 되는 겁니까.

 

저도 장남인데다 과묵한 걸 미덕으로 여기는 안동 장(張)씨인 까닭에 리액션이 좋지 않긴 한데, 그래도 최소한 몇 가지는 더 되묻습니다. 거기 춥지 않았냐, 위험하지 않냐, 부근에 뭐가 맛있다던데 그것도 먹었냐 중에서 하나 골라 묻는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C군은 블랙홀처럼, 모든 주제를 다 먹어버리며 자체 종결하는 대화를 하고 맙니다.

 

C군의 저 '블랙홀 대화법'은, 본인이 먼저 말을 건 상황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사진을 보내며]

"이땐 그냥 플래시 터트리지 말고 찍을 걸 그랬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제가 늘 얘기하지 않습니까? 1절만. 2절로 종결하지 말고 1절만. 마무리 인사 안 한다고 전과 생기는 거 아니니까, 그런 건 넣어두고 그냥 일단 하고 싶은 말만. 그렇게 대화해야 합니다. C군이 제주도 다녀왔다고 제게 카톡을 보냈는데, 제가

 

"즐거우셨겠네요. 피곤하실 텐데 푹 쉬세요. 담에 밥 한 번 먹어요."

 

라고 답장하면, C군도 자연히 인사하며 대화를 종결하지 않겠습니까? 이래놓고 '상대에게 대화 할 의지가 안 보인다'고 하시면, 저는 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상대의 응답만 가지고 그게 상대의 마음이라 생각하며 또 실망하지 마시고, 만약 자신이 상대에게 보낸 멘트를 본인이 받았다면 어땠을지도 꼭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3. 그렇게 쉽게 상처 받으면, 곤란합니다.

 

말 안 돌리고 곧바로 얘기하자면, C군은 너무 예민합니다. 그래서 정말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는 상황이 아니면, 금방 불안해지며 이후 벌어질 일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 버리고 맙니다. C군이 상대와 나눴다는 대화를 그대로 가져다 쓸 순 없으니, 비슷한 걸로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C군이 말을 합니다.

 

"저는 회를 못 먹어서, 회식 때 회가 나오면 그냥 같이 나온 반찬만 먹어요."

 

저 말에 상대가 대답합니다.

 

"정말요? 저는 회 완전 좋아해요. 하하. 우리 회는 같이 못 먹겠네요."

 

역시나 상처를, 받으셨습니까? 머릿속에서

 

ⓐ 내가 회를 못 먹는다고 하니 우리는 회를 같이 못 먹을 거라 말했다.

ⓑ 그건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거라기보다는 차이점에 대해서만 말하는 거다.

ⓒ 만약 내게 마음이 있었다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 또, 그녀는 내게 왜 회를 못 먹냐고도 되묻지 않았다.

 

라는 결론을 내린 후 시무룩해지면, 우리 작업 못 한다는 얘깁니다.

 

상대가 마더 테레사라 해도,

 

"그러세요? 왜 회를 못 드시는 거예요? 아, 그런 이유 때문에 못 드시는 군요. 저는 회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앞으로 C군과 자주 만나 밥을 먹으려면, 다른 메뉴를 좀 골라봐야겠네요. 회를 안 좋아하셔도 괜찮아요. 우리가 함께 먹을 다른 많은 메뉴들이 있잖아요."

 

라고 까지 완벽한 저자세로 맞춰주진 않는다는 얘깁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대화에 내상을 입어 '그게 내 콤플렉스인데….'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만약 상대가 헬스 같은 건 안 하냐고 물으면, 헬스 대신 책을 읽으며 몸 대신 정신을 키우는 중이라고 답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비슷한 얘기를 상대가 C군에게 했을 때, C군은

 

'아…. 나 몸이 좀 왜소한 것이 콤플렉스인데, 쟤도 그걸 보곤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런 이야기를 꺼냈나보다. 안 그래도 난 이런 내가 싫어 괴로웠는데, 저 말을 들으니 너무 상처가 된다.'

 

라며 우울모드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농담으로 한 말이면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상대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면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주면 됩니다. 또, 상대의 말에 뭔가 자극을 받았다면, 변화를 택해 노력하면 됩니다.

 

상대가 누군가를 괴롭히며 즐거움을 얻는 일종의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C군 만나러 그 먼 곳에서 와서는 밥 같이 먹으며 C군에게 압박면접 하며 괴롭히려 하겠습니까? 현미경으로 '상대가 지금 저 말을 한 의도'같은 것만 파악하려 들지 마시고, C군을 만나러 거기까지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길 권합니다. 걷다가 어쩌면 신발 끈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함몰되어 그 신발 못 신고 계속 고민만 하고 있으면, 아무 데도 못 가는 겁니다. 끈은 걷다가 풀리면 묶으면 되는 것이니, 걱정은 그때 하고 일단 출발하시길 권합니다.

 

 

만나기로 해서 만나긴 했는데, 그 만남을 약속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답이 좀 늦었다고 해서

 

'사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는데 그냥 억지로 만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 표류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만나고 돌아와서도 본인의 의심이 사실이라 여기며, 제게 보내는 신청서에

 

"그녀는 왜 저를 만나러 왔을까요? 어장? 심심해서? 아니면 박애정신 같은 거?"

 

라고 적으면, 저는

 

"우리 조상님들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걱정도 뭐다? 팔자다." 

 

라는 농담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가 계속해서 모든 힌트를 주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지 않으면 금방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되어버리는 모습. 그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C군은 새해가 되면 새해 인사를 빌미로 다시 연락을 해보며 상대의 마음을 확인해보려 하는데,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에 만나시길 권합니다. 상대가 선약 있다는 얘기를 한다고 또 곧바로 침전하지 마시고, 이번 주와 다음 주 중 언제가 괜찮냐고 먼저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밥을 같이 먹으면 먹는 거고, 아니면 아닌 겁니다.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며 무조건 장기전으로만 끌고 갈 생각은 하지 마시길 권합니다. 백화점 세일 광고 문자도 아닌데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연락해서야 되겠습니까. 상설할인매장의 마음으로(응?) 다가가 보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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