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사연을 이틀 내내 붙잡고 세 번이나 고쳐 쓰다가, 포기하니까 편하다. 사연 중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연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당사자와 나만 보는 글이 아니기에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사연들이 있다.
또, 그 문제를 지닌 당사자가 사연을 보냈다면 난 매뉴얼 작성에 큰 부담까진 안 느끼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아무래도 좀 망설여지게 된다. 그래서 세 번이나 고쳐 쓰다 접어두었으니, 파혼과 관련된 사연을 주신 분 중 '가출'이야기가 나오는 사연의 주인공께서는 '상대와 상대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자 그럼, 발행을 기다리고 있던 사연들 만나러 출발해 보자.
1. 첫 연애 마치고 솔로부대 복귀한 S양.
S양의 첫 연애에서는, 등장할 수 있는 헛발질이 거의 다 등장한 것 같다.
- '우리는 안 맞는 것 같다'는 말을 해버리고 마는 것.
- 좋아한다거나 보고 싶다는 표현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
- 싸우다 감정이 격해지면 '헤어지자는 거냐'고 묻는 것.
- 상대도 분명 노력하고 희생했는데 사랑을 더 확인하려 한 것.
- 상대가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에 딱딱하게 군 것.
- 하나 안 하나 지켜보기만 하다가 '너 이럴 줄 알았다' 한 것.
- 장난으로 분위기를 풀려고 해도 다큐로 받아버린 것.
얼핏 다시 훑어보며 정리해도 저 정도가 쏟아져 나오니,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는 건 무리일 것 같다. 그래서 다 접고, S양이 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만 대답을 할까 한다.
Q1. 제가 많은 것을 바라고 어리광 부려서 이렇게 된 건가요?
아니라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대학교만 해도 입학 전과 입학 후의 모습이 다르고, 시험 때와 평상시의 모습이 다르며, 1학년 때와 4학년 때의 모습이 다르잖은가. 연애 역시 썸을 탈 때와 연애 극초반, 그리고 이후의 모습들이 점점 달라지기 마련인데, S양은 '첫 마음, 첫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변하면 불안해하며 계속해서 사랑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려 든 것 같다.
S양도 사연에 적었지만, 연애 중반 상대가 그 먼 거리를 차까지 빌려 달려온 건 분명 상대도 S양을 좋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S양은 그때만 잠깐 안심했을 뿐 이후엔 다시 사랑을 확인하려 들었기에, '언제나 전력투구'를 강요받은 남친이 두 손을 들어버렸다는 생각도 든다.
Q2. 제가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건가요? 남잔 다 이런가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상대를 더 사랑하고 있으며 상대는 그런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자라났기 때문인 것 같다. 두 사람 사는 곳이 달라 시차가 생긴다면 그건 둘 모두에게 핸디캡이 되는 건데, S양은 그것 때문에 자신만 더욱 불만족하는 것이 늘어나며 상대는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 버린다. S양 자신이 아쉬워하고 불만을 가지는 것만큼 상대가 아쉬워하고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또 S양의 불만이 되어버리는 건데, 그런 차이는 상대가 '남자'라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성향 차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또, 같은 여자라고 해도 '안 맞는 시간'에 불만을 갖기 보다는 '맞는 시간'을 활용하기도 하니 성별의 문제로 보긴 어려운 것 같다.
딱 한 부분, S양이 남자를 이해하지 못해서 헛발질을 하고 만 부분은, 상대가 장난을 섞어 갈등을 무마하려 해도 "뭘 잘못했는데?"라며 고문을 시작한 거다. 더불어 S양은 '답정너'로 상대를 궁지로 몰곤 했는데, 그런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잘 받아낼 남자는 많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Q3. 제가 다시 연락하는 게 틀린 생각이라면, 일침 좀 놔주실 수 있나요?
여러 일들을 겪으며 상대에겐 S양에 대한 존중이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은 날선 말로 화풀이나 해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아주 기본적인 연인의 의무조차 그에겐 '내가 S양에게 베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또 이별할 때도 '질질 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S양을 피곤한 짐짝 취급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다시 연락하며 재회를 기대하기 보다는, 종합비타민을 하나 골라 열심히 챙겨 먹는 게 몸과 마음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S양은 마지막으로 연락해서 쌓인 말들 다 뱉어내고 싶어내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그랬다간 S양이 뭐라고 하든 눈 한 번 깜빡 안 할 상대에게 역공을 당할 가능성도 높거니와, 그렇게 퍼부은 뒤 상대에게 확인사살 당하면 S양의 내상만 깊어질 수 있다. 그냥 그대로 내려놓길 권한다.
2. 무한님, 2년 만에 출격 준비 완료했습니다.
사연 좋아요. 재밌어요. 훌륭해요. 시나리오 좋으니까, 조금만 손봐서 출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응?) 인터넷 소설의 필수 3요소가 모두 녹아있는 훌륭한 사연이었습니다.
승아씨가 힘든 길 2년 간 돌아 다시 출격준비를 완료했지만, 그 상대가 '커피숍 직원'이라는 걸 보곤, 저는 또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습니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는데 큰일이네요.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간만에 현빈 돋죠?
승아씨와 아는 언니가 합작으로 만들어 낸 시나리오가 좋아서, 제가 더 끼어들 곳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건, 2차 텀블러 계획에서
"새로 들어오면 연락 주세요. 아, 근데 그거 말고 그냥 연락하셔도 돼요."
라는 부분 있지 않습니까? 승아씨는 저 멘트를 날린 후 한껏 미소를 지어주고 퇴장하는 걸로 시나리오를 쓰셨는데, 제 생각에 저 멘트는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한 박자 늦게 부가 멘트를 치는 게 일본 순정만화 스타일이긴 한데, 현실에서는 저게 '주인공-주인공' 관계가 아니라면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이 되고 맙니다. 만약 상대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든가, 아니면 상대가 저 멘트를 듣고 연락을 안 하면 승아씨는 상대를 다시 마주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상대의 '잘생김'을 발견하곤 3일 만에 보내주신 사연이라, 저도 무슨 말을 더 적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노파심에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커피숍 직원들이 승아씨에게 보여주는 친절보다 여섯 배는 더 한 친절을 베푼 경우에도 '직업상의 친절'인 경우가 있었다는 겁니다. 어느 대원은 커피숍 직원과 수다 떨고, 공짜 커피 마시고, 선물까지 받았지만 그게 다 '직업상의 친절'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공짜로 제공받은 물 한 잔 때문에 포스 담당 직원과 커피 담당 직원이 모두 승아씨에게 빠졌다 쉽게 생각하진 마시고, 좀 더 기대를 내려두신 채 다가가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 알고 싶다' 정도의 마음으로 다가가시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전, 이어지는 이야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3. 제가 너무 미적거리다 멀어진 것 같은데요.
음, 그러니까 진용씨가 내게 보내준 카톡대화에는 '서로 호감이 생겼다 싶던 부분'이 없는 거지? 진용씨가 말하는 '서로 호감이 있었던 단계'는 작년 겨울의 일인 거고, 내게 보낸 사연에 첨부한 카톡은 올해 8월부터니까,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지? 아니면 이거 큰일 나는 거야. 내가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봤는데도 카톡대화에서 '호감'이 보이지 않으니까, 큰일 나는 거라고.
어차피 이 사연은 상대의 반응도 미지근하고 사실 더 급한 건 진용씨의 '재미없음'을 어떻게 좀 하는 게 먼저인 것 같은데, 우리 그냥 사연은 접어두고 '재미없음 타파'를 위한 몇 가지를 알아보는 게 어떨까?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난 상대는 예의가 바른 거지 진용씨에게 호감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진용씨는
"하지만 상대와 제가 선후배사이라는 점 때문에, 혹시 제가 부담 주는 건 아닐까 싶어 선뜻 적극적으로 나서질 못하겠습니다."
라고 내게 말했는데, 난 아니라고 봐. 진용씨가 말하는 '선뜻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보다 열렬한 구애인 거지? 뭐 먹으러 가자, 언제 만나자 이런 이야기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꺼내는 거 말이야.
장담하는데, 그걸로 절대 안돼. 진용씨가 신청서에 적은 글과 카톡대화에서 하는 말들을 봐도 진용씨는 교과서적인 사람이거든. 음, 교회오빠는 교회오빠인데 정말 교리에 충실하며 충만한 믿음으로 섬기는 중인 교회오빠라고 할까. 예배 끝나고 다 같이 노래방 가는 건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뭐 그런 느낌 있잖아. 아침마다 성경구절 보내주며 '아멘'으로 마무리 하는 듯한 뭐 그런 느낌. 이런 얘기가 길어지면 중요한 얘기를 못하니까 여기서 각설하고, 아래에서 딱 말해줄게.
잘 봐봐. 여기저기 구실이 널려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줍지 못한 채 새로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상대가 진용씨에게 돈 줄 거 있었지? 그래서 그거 준다며 진용씨 계좌 알려달라고 그랬지? 또, 진용씨는 상대에게 밥 한 끼 사며 같이 식사 할 거지? 그럼 이걸 잇는 거야. 돈은 돈대로 다 받고 나서 나중에 시간 있냐고 묻지 말고, 자연스럽게 잇는 거라고. 공짜 돈 생겼으니까 오겹살 먹으러 가자고 그래. 멸치젓 찍어 먹는 오겹살 먹어봤냐고 물은 뒤에 약속 잡으면 되는 거야. 그런데 진용씨는 이걸 다 전부 따로 하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썰어.
"뭐 할래? 곤란하면 나중에 하고."
"이거 먹을래? 먹었어? 그럼 다른 사람 주지 뭐."
100%의 긍정이 아닌 상황이라고 해서 쫄거나 우물쭈물하지 마. 콜라 주려고 샀는데 상대가 탄산음료 안 먹는다고 해. 그럼 진용씨는 "아, 그럼 그냥 내가 마셔야겠다." 뭐 이런 식으로 얼른 접어버리잖아. 나라면 저기서 주제가 '탄산음료'로 넘어갔으니까, "정말? 탄산음료를 왜 안 마셔?"라고 운을 띄울 거야. 그 다음으로는 탄산음료가 꼭 필요한 시점, 예컨대 피자를 먹을 때에도 탄산음료를 안 마시는지를 묻겠지. 그러다 탄산수도 안 마시는지도 물을 수도 있고, 아니면 탄산음료 대신 마시는 걸 뭘 즐기냐는 이야기로 넘어갈 수도 있지. 봐봐. 두 마디로 끝날 대화가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지? 그러면서 상대의 기호도 알게 되잖아. 기대한 답이 아니라고 해서 순식간에 대화 종결한 채 등 돌리지 말고, 이야기를 하라고.
끝으로 이건 내가 늘 얘기하는 건데, 쫓아가지 말고 앞서 가. 괜찮아. 진용씨의 선택을 상대가 '쏘쏘' 정도로 생각해도 괜찮으니까, 지금처럼 상대가 좋아할만한 거 해주려고 하거나 상대에게 놀아달라는 걸 부탁하듯 말하지 마. 나도 내가 식당을 고르다가 정말 드럽게 맛이 없는 집을 고를 때가 있거든. 그러면 난 그 음식을 먹으면서도 공쥬님(여자친구)에게 그냥
"그래도 이거 한 입은 꼭 먹어봐야 해. 우리가 이번 생에서 이걸 먹는 건 마지막이 될 거니까."
라고 말하며 또 같이 웃어. 딱 한 가지 선택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게 아니란 얘기야.
'내 선택으로 인해 망치고 말았다'는 생각을 하느라 풀죽어 있을 필요가 없어. 둘 다 서로의 귀중한 시간과 돈을 써가며 나와서 만나는 거잖아. 그러니 사건이나 사물에 기대를 걸지 말고 사람에 집중해. 그러면 뜨끈한 캔커피 두 개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알았지?
불금이다. 이번 주에는 매뉴얼 발행이 부진했던 관계로, 주말에도 매뉴얼을 발행하게 될 것 같다. 불금이지만 사연을 읽으러 가야 하니 배웅글은 생략하기로 하자. 다들 불금 보내시고,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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