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새로 맞췄는데 글자가 잘 보이질 않아 속상하다. 왼쪽은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데, 오른쪽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게 또 가까운 걸 볼 때만 이렇고, 멀리 있는 걸 보면 오른쪽이 선명하게 보이고 왼쪽이 흐릿하게 보인다. 멀리 있는 LED간판을 보면 오른쪽은 선명하게 보이지만 왼쪽은 글자를 위로 늘여 놓은 듯 보인다.
벌써 두 번이나 렌즈를 교체한 거고 사장님은 일단 적응이 될 때까지 써보라고 하는데, 사연을 읽다 스크롤을 내리면 눈이 다음 문장을 찾는데 잠시 버퍼링이 생기는 까닭에 피곤하다. 눈 운동을 하다가 가운데로 몰리게 만들어 보면 눈알이 상당히 뻐근한데, 이렇듯 눈에 온통 신경이 쓰여 기분이 좋다가도 좋지 않다. 여하튼 내 눈이 얼른 적응해 주길 기대하며, 금사모 출발해 보자.
1. 상견례 앞두고 헤어졌는데 누구 잘못인가요?
연애 시작부터, 희연씨 남친의 마음은 아래와 같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얘가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하는 걸 보니, 나에게도 순종적이며 착실히 내조 잘 하겠다. 그렇다면 결혼을 해서도 내 뒷바라지 잘 할 테니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보자.'
그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희연씨 남친은 근자감 강하고, 가부장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해요.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손익을 따지고, 소유욕이 있어서 여친에게 늘 보고를 받으려 하며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길 원하죠.
물론 저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저런 틀 내에서 문제가 없으면, 그는 여친에게 '의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통제 하에서 여친이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노력해요. 더불어 리더 특유의 재치와 유머도 가지고 있는 까닭에 함께 있으면 심심할 일이 없죠.
군대라고 하면 부대장과 당번병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거고, 사회에서라면 사장님과 비서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장님 말 잘 들으면 문제는 없어요. 종종 포상도 받죠. 다만, 사장님께 먼저 뭔가를 요구한다든가 건의하면,
"어디 네가 감히…."
하는 분노를 사게 되는 거예요.
희연씨는 연애 초중반에
'난 이제 나이도 많고 사람 만나기도 어려우니, 다 참고 넘기며 만나보자.'
라며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이 관계는 진작 끝났을 거예요. 실제로 희연씨는 자신이 바라는 거 다 접고 그의 요구대로 따랐잖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희연씨가 바라는 걸 말하더라도 남친의 허락이나 확인이 안 나면 바로 접어야 했잖아요. 희연씨는
"그런 것 다 감수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게 상대의 오만을 더 키우고 말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상대가 희연씨를 그저 그런 존재로만 보게 되니, 나중엔 희연씨 가족까지도 얕잡아 보게 되었잖아요.
'나 VS 너희 집안'
이라고 생각하며 '너희 집안이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 할 정도면 오만함이 자랄 만큼 다 자란 거예요.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살아요. 게다가 그는 희연씨가 여성관련 질환 수술을 받았다고 찝찝하다잖아요. 그걸 이유로 헤어지자는 얘기까지 했고요. 상대가 재벌이라고 해도 이런 사람과는 못 사는 거예요.
대놓고 "네 건강에 문제가 있으니 너희 집안이 나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무슨 미래를 그릴 수 있겠어요. 이게 무슨 연인이고 연애예요? 상대는 돌아볼 가치도 없는 사람이며 앞으로 영영 안 보는 게 희연씨 몸과 마음과 정신의 건강에 좋을 테니, 1초도 더 '혹시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가?'라는 생각 마시고 비워 버리세요.
2. 짧고 강렬했던 한 달 연애, 오답은 뭐였을까요?
안녕 윤희씨. 난 많은 사연을 받다 보니 참 다양한 사람을 접하는데, 그 중
'분명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친한 사이가 되긴 부담스러운 사람.'
이 있어. 대표적인 두 사례가 있는데, 한 분과는 오래 전 인연이 끊겼고, 다른 한 분과는 아직 인연이 이어져 있는 상태야. 편의상 두 분을 각각 A와 B라고 칭할게.
A씨는 일방적으로 내게 '글쓴이-독자'관계의 이별을 선포했는데, A씨가 든 이별사유는 '불성실한 대답' 때문이었어. A씨는 내 글을 좋아하고 노멀로그에 자주 들렀다고 해. 그런데 메신저로 사연을 보냈는데, 내가 거기에
"메신저로는 사연을 받지 않고 있어요. 신청서에 작성하신 후 메일로 보내주세요."
라고 대답을 했거든. 나도 참 멋없었던 게, '^^'라는 이모티콘이라도 하나 찍어 보냈으면 오해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땐 어리기도 했고, 또 일 하던 중에 메시지로 A씨가 사연을 적어 보내고 있으니 얼른 대답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렇게 보냈던 건데, A씨는 저기에 엄청난 실망을 했나봐. 본인은 나랑 친하다고 생각하며 애정을 표현하며 사연을 적던 중이었는데, 거기에 성실하지 못한 대답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거야. 그래서 내게
"다시는 노멀로그에 갈 일 없을 거다. 그리고 이건 알아둬라. 독자가 많다고 해서 우쭐해 하지 마라. 누군가가 보내는 메시지를 그렇게 딱 잘라 무시하듯 거절하는 거 아니다. 넌 본성 자체가 그렇게 글러먹었는데 무슨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냐. 네 가식적인 글들에 소름이 돋는다."
라는 메시지를 보냈지. 난 저 메시지를 읽고는 잠시 아군이 쏜 총에 맞은 느낌이 들어 멍하니 있다가, 내가 저렇게 밖에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긴 설명을 적어서 보냈어. 공지에도 표시를 해 둔 부분이고, 또 그렇게 본인의 상황이 급하다며 오는 메시지가 하루 수십 통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적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사이에 이미 A씨는 계정을 없애버렸더라고.
그 다음으로 B씨는, 종종 노멀로그에 댓글을 달고 있어. 꽤 오랜 기간 노멀로그의 글들을 읽어 오신 분인데, 이 분의 경우는 자신의 소신과 내 소신이 다르면 저주에 가까운 댓글을 적어둔다든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대로 내 의도까지를 찾아냈다고 생각하며 그게 사실인 양 댓글을 적어두기도 해. 요즘 글을 보면 이러이러한 것 같은데 잘못된 방향으로 글을 쓰는 것 같다, 공쥬님(여자친구)과 행복해 보여서 부럽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이야기까지 하냐, 공쥬님 얘기가 안 나오던데 혹시 무슨 일이 있어 짜증내듯 글을 쓰는 거냐, 이번 글은 내 입맛에 안 맞아서 별로다, 뭐 이런 식인 거야.
피아식별이 안 되잖아.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가 없어. B씨가 아군임이 틀림없고 다 날 위해서 하는 소리라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B씨의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저주까지를 퍼붓는 건 애정이 아니잖아. B씨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글에선 '무한님'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뭘 안다고 그런 소리 하냐고 말하잖아. B씨가 가지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옷이 내게는 맞질 않아. 그런데 그게 내 옷이라며 자꾸 입어보라고 말하고, 안 입으면 내가 잘못하는 게 되어버리니까 그게 난 버겁고 부담스러운 거야.
얼핏보면 윤희씨의 사연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얘기를 내가 이렇게나 길게 한 건, 이번 연애에서의 윤희씨가 남친을 대한 태도가 바로 A씨나 B씨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기 때문이야. 윤희씨는 이상적인 연애의 모습과 이상적인 남자친구상까지 모두 만들어 가지고 있거든. 그리고 남친에게 계속 그런 연애를 할 것과 그런 남자친구가 될 것을 요구해. 윤희씨가 바라는 대로 남친이 따라주지 않거나 연애가 흘러가지 않으면 헤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고 되묻고 말이야.
남친 집안 어른이 심장마비로 쓰러지셨을 때를 봐봐. 남친에겐 그게 정말 큰일이기에 윤희씨와의 대화 도중 짧게만 설명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잖아. 폰을 챙길 정신도 없이 병원으로 향했다가, 그 날 병원에서 하루를 다 보내야 했던 거고 말이야. 남친이 울다 지친 목소리로 다시 연락했을 때 윤희씨가 한 말은 뭐야.
"연락이 없어서 하루 종일 걱정했다. 왜 연락 한 통 안 해준 거냐."
저것만 가지고 계속 몰아붙이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지가 않아. 연락이 안 되는 동안 벌 받는 느낌이었다, 연락 한 통만 해줬어도 난 안 그랬을 거다, 네가 날 힘들게 한다, 뭐 이런 얘기를 해버리면, 상대는 그냥 좀 버겁고 부담스러울 거야. 만약 윤희씨 집안에 일이 생겨서 다급한데, 그때 어느 친구가 연락해서 그런 일이 있다니 유감이다 그런데 전에 빌려주기로 한 카메라 좀 빌려줄 수 있냐, 병원에서 잠시 집으로 와 카메라만 내게 주고 가면 안 되냐, 라고 물으면 어떤 기분이 들겠어? 이런 와중에도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꺼낼 정도면 정말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겠어, 아니면 그 친구와의 우정에 대한 회의가 들겠어?
더불어 하나 더 얘기해 주고 싶은 건, 윤희씨가 뭘 하든 '되는 방향'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윤희씨 남친인데 지방에 살아. 그래서 윤희씨를 보러 말도 없이 서울로 올라갔어. 그런데 윤희씨가 친척집에 가 있는 까닭에 만날 수 없게 되었지. 윤희씨는 내게 말이라도 하고 올라오지 그랬냐고 말을 해. 나는 그 말에 서운해져서는 기분이 상하지. 지금 좀 나올 수 있냐고 물으니까 윤희씨가 지금은 곤란하대. 그러면서 언제 내려갈 거냐고 물어. 난 '나라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 얼른 만나러 달려갈 텐데' 하는 생각에 완전히 실망해선, 대답도 안 하고 그냥 다시 지방으로 가는 차를 타버려.
그러니까 내 말은, 저렇게 상황을 자꾸 안 좋게만 끌고 갈 필요가 없다는 거야. 특히 윤희씨는 '여자의 촉'이라거나 '그런 느낌'이라는 말로 상대의 마음이나 의도까지를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거든. 그래버리면 상대는 계속 미안하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거고, 윤희씨는 윤희씨 대로 "너랑 사귀는데 행복하지 않다."라는 이야기만 하게 되는 거야. 그러다가 기분이 더 안 좋아져 "나랑 헤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솔직히 말해줬으면 한다."라고 얘기까지 꺼내면 설상가상이 되어버리는 거지.
헤어진 지금 윤희씨는 '다른 여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거라고 결론을 내려 하는데, 지금이라도 혼자 상상하고 혼자 판단하는 건 그만두자고. 앞으로는 상대의 속마음을 듣고 싶으면 상대에게 직접 묻는 거야. 물론 윤희씨가 다 결론 지어 놓고는 만나서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맞냐."라고만 묻는 거 말고, 대화를 하는 거라고. 그게 '진짜 현실에 있는 상대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이니까. 알았지?
어제는 구름사진을 찍으러 나가려다가, 노멀로그 애독자 한 분께서 청계천 등불축제를 알려주셔서 북북서로 진로를 변경해 청계천엘 다녀왔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까닭에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위에서 보는 게 반영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까닭에 더 예뻤다고 적어두고 싶다. 아래에선 셀카봉 장착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걸어 다니기가 힘들었다.
하나 더 놀란 건, 그렇게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연애를 시작한 듯 보이는 커플들의 애정행각이 뜨거웠다는 점이다. 사실 난 등불보다 그게 더 신기했다. 보통 둘이 붙어 않아 머리를 기대거나 어깨동무 정도를 하기 마련인데, 어제 본 커플들은 죄다 입술을 막…. 그리고 아저씨 아주머니 중에는 그냥 지나가며 아무렇지 않게 방귀를 부왁- 하면서 거침없이 끼는 분들도 있던데, 내가 꽤 오랜 기간 서울에 나가지 않은 동안 그런 변화가 있었을 거라곤 미처 상상을 못 했다. 그 정도로 힘주어 끼면 분명 뭔가가 나올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모르겠다.
여하튼 금요일이다. 13일의 물금. 비가 와서 물금이 되어버렸지만, 다들 금요일 잘 보내시고 우리는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자.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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