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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구남친과 관련된 세 가지 사연모음

by 무한 2015. 12. 29.

구남친과 관련된 '심각한' 사연을 보면, 대개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 구남친과의 연애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인관계가 없음.

- 구남친이 이별 후 모두가 경악할만한 행동을 함.

- 이별 후 '재회'에 대해 생각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게 없음.

 

여기서 말하는 '심각한' 사연이라는 건, 구남친과의 이별 때문에 인생에서 로그아웃 할 생각까지를 한다거나, 사람을 사서라도 구남친을 박살낼 생각을 한다거나, 구남친 또는 구남친과 바람이 난 상대를 사회에서 매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저 상황에 처해있는 대원들은 하나같이 제게

 

"그는 왜 그런 거죠? 그리고 왜 그러는 거죠? 도대체 왜?"

 

라고 물으시는데, 그 상황에선 '왜 그러는가?'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더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 같은 건 궁금해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지금 순간의 마음을 안다고 해도 그 마음에 일관성이 없다면 관계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힐 수 있고, 행동이 그 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건 충동에 불과합니다. 자세히, 그리고 길게 보아야 합니다. 이걸 모른 채 한참을 헤매고 있는 세 여성대원의 사연,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정신적 학대를 하는 구남친, 어쩌죠?

 

만약 구남친이

 

"넌 너희 엄마 욕할 거 없다. 너희 엄마랑 너랑 똑같으니까."

"다른 남자 만나면 그 남자도 널 비웃을 거다. 너 같은 애가…."

"겉으로 치장만 하면 뭐하냐 속은 피해의식이랑 열등감 투성인데."

 

따위의 말을 퍼붓기 시작하면, 그땐 일단 침묵으로 응대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 말에 반박하거나 반격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해도, 일단은 도망가시길 권합니다. 미쳐서 칼 들고 날뛰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일단 몸을 피한 뒤 생각해야 하듯, 몸을 피해야 합니다. 저런 말들은 대화를 목적으로 건네 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이쪽을 도발하려는 것이며, 주의를 끈 뒤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일 뿐입니다.

 

K양이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그 시절의 그 사람은 지금 없습니다. 상대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지금도 증명되는 중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거의 모든 대원들이 '우리가 사귀던 그때'의 모습만을 상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렇게 거품 물어가며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대는 것도 상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없는 제 삶은 아무 의미가 없고…."

 

제 기억이 맞다면 K양은 2년 전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에도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그를 '구구남친'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도 그와 헤어지고 나서 주변에 남은 지인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K양이 연애를 하면 연애에 고립된 채 지내고, 그러다 헤어지면 삶의 이유가 있네 없네 하다 누가 곁을 주면 또 바로 기댄 채 다시 고립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남친의 연락을 제외하면 아무에게도 연락 오는 일이 없는 삶은 정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저까지 K양에게 정신적 학대를 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저녁에 밥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는 '지인'들과의 관계를 가꾸어 나가시길 권하고자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침 연말이고 하니, 새해 인사를 구실로 느슨해진 인연의 끈 다시 당겨보기도 좋습니다. 마음에 '내 집'이 없으면 늘 떠돌이처럼 옮겨 다녀야 합니다. 그러니 그 '내 집'부터 마련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 2년 째 연락하는 구남친. 하지만 다시 만나보면….

 

그가 2년간 네 번, H양에게 재회를 요청할 때 했던 말들을 보겠습니다.

 

-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만나보자.

- 처음 알게 된 사람들처럼 새롭게 다시 연애해 보자.

- 결혼을 전제로, 서로 맞춰가며 다시 만나보자.

- 아무 것도 전제하지 말고, 다시 만나보자.

 

전생에 무슨 리셋버튼이었던 것처럼, 그는 계속 '다시'만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저런 말들로 눈물의 재회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마음은 차갑게 식지 않았습니까? 저 재회 중 한 번은 H양의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 날 바로 그가 결정을 뒤집었고 말입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는 앞으로도 계속 H양에게 '잊을만할 때쯤 하는 연락'을  해올 것입니다. 그의 연애관에 큰 문제가 있는 까닭에, 정말 모든 걸 다 이해하며 맞춰줄 사람과 만난 게 아니라면 그는 반드시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편한 연애'를 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30%의 마음을 연애에 할애하고 있으면, 나머지 70%는 상대가 알아서 채워 놓길 바라는 듯 보입니다. 어느 부분에선 그가 상대에게 '연인'이 아닌 '엄마'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입니다.

 

"그가 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또, 그가 겁이 많은 사람은 맞지만 악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알아요. 그가 제게  '진짜 내가 누군지를 아는 건, 세상에 너밖에 없다'고 말한 적도 있고요."

 

착하고 나쁜 건 절대적인 게 아닙니다. 제가 만약 H양의 남친이고 우리가 결혼까지 한 사인데, 신혼 한 달 보내고 난 뒤

 

"너를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네가 뭔가를 잘못한 것도 분명 아닌데, 내 마음 속 뭔가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이런 마음으로 너와 함께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너에게도 죄를 짓는 거고, 나에게도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더 늦기 전에, 너를 정말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주는 게 맞는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나에게 그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다 감내하겠다. 이건 그냥 다 내가 참 모자란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 저는 착한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저건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소중한 걸 지킬 능력이 없으며 누군가와 함께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저런 이야기에 또 모성애를 자극하는 묘한 낭만이 있다는 걸 저도 알긴 합니다만, 이게 지금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고, 말 그대로 '레알'인 삶이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이런 이야기를 2박 3일간 한다 해도, H양은 또 상대가 술 취해 울며 전화하거나 집 앞으로 찾아와 연락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갈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선배대원들이 그랬던 일이니, 혹 그렇게 된다 해도 너무 자책하시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H양의 그 선택은 '순간의 감정'이란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이며, 그것은 그냥 그때그때 되는 대로 사는 삶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꼭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코앞만 보며 징검다리를 건널 게 아니라, 고개를 들어 다리 건너엔 뭐가 있나를 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랑 왜 만나려 하는 것인가', '이 사람과 이 관계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꼭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3. 뒤늦게 구남친이 바람피웠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 이 시점에 구남친에게 '나와 헤어지기 얼마 전부터 바람피웠던 것'을 따져서,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라도 한 장 나오는 거라면 저도 S양과 같이 좀 따지고 싶습니다. 그러면 S양이 7만원 갖고 저 3만원 주고 뭐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한 주에 한두 건씩만 그렇게 같이 따져도 한 달 담뱃값은 나올 테니 저도 좀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쪽과는 아무 상관없이 다른 사람과 연애 중인 상대에게 그런 걸 따져봐야, 이쪽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긴 커녕 스트레스만 더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가 헤어지며 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라는 걸 저는 지금 알게 된 거고, 이걸 그냥 저 혼자만 알고 넘어가긴 너무 분한데요. 욕이라도 퍼붓고 싶어요. 정말 쓰레기라는 걸 지금 알았다고."

 

정 그러시고 싶으시면 그러셔도 됩니다만, 그런 얘기를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S양을 말리고 싶은 건, S양은 아직 상대에게 미련이 남은 까닭에 조목조목 따져 비판할 것인데, 상대는 거기에 코웃음만 치고 말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S양과 거의 흡사한 형태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사연의 주인공은 상대에게 전부 따져가며 장문의 카톡을 보냈고, 돌아온 답변이라고는

 

"봤나보네 ㅋㅋ 행복해라."

 

였습니다.

 

이걸 참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하는 의문이 드는 저런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특히 상대가 오랫동안 속여 왔거나 계획적인 배신을 한 경우, 그걸 두고 따지면

 

"그래? 그래서 뭐?"

 

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어떤 여성대원은 제가 상대의 속마음을 짐작해서 적은 글을 상대에게 보내가면서까지 따졌는데, 그 글을 본 상대가 한 말이라곤 아래의 한 문장이 전부였습니다.

 

"남자라서 남자를 잘 아네. ㅋ"

 

그래서 저는 제 짐작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에 참 뿌듯했다는 건 훼이크고. 여하튼 저라면 이걸 지금 터트리지 않을 겁니다. 현재 상대는 즐겁게 지내고 있는 까닭에, 이쪽에서 뭐라고 하든 개 짖는 소리로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릴 겁니다. 혹 연락이 안 올 수도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한다는 연락 한 통 정도 일단 넣어두고,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지금 당장 "너라는 놈을 믿은 내가 병신이었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이쪽에 대해선 수저만 들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락을 해올 때, "꺼져 병신아ㅋㅋㅋ"라고 적어 살포시 전송버튼을 누를 겁니다.

 

위의 얘기는 이렇게라도 S양 속이 좀 시원해지길 바라며 한 얘기고. 상대가 S양을 유기했지만, 그 후에도 S양은 만약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통화를 해야 한다면,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에게 전화를 걸 정도로 그를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렇게까지 사랑한 사람이 사실은 S양을 철저히 속이고 기만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분하고 억울해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 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게다가 이 사실을 S양 혼자 감당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S양이 이별 이후까지 그를 얼마나 사랑했었고 또 그가 끝까지 연기하며 뒤가 구린 짓을 했다는 걸 아니, 이쯤에서 저와 S양의 공감대로 무게중심을 옮겨오셨으면 합니다. 이럴 때 기대라고 노멀로그가 있는 것이니 잠시 기대시고, 마음이 좀 잔잔해지면 상대에게서 덤덤해진 마음으로 또 걸어가시면 됩니다. 똥 밟은 게 너무 분해 똥과 싸우려 드시면, 똥 묻는 일만 벌어질 수 있습니다. 우선 대충 문지르고 툭툭 턴 뒤 걷다보면 가는 길에 저절로 사라질 테니, 손으로 만지려 들거나 너무 오래 냄새만 맡진 마시길 권합니다.

 

 

써놓고 보니 오늘 매뉴얼이 '기-승-전-똥'의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신 독자 분들은 또 신발에 묻은 그 형태와 냄새 등을 떠올리시기도 할 텐데,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산뜻한 느낌이 드는 마무리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지난 두 번의 매뉴얼처럼 밀린 사연들을 다섯 개 정도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따져보니, 다섯 편의 사연을 매뉴얼로 다루는데 이틀이 걸리고 세 편의 사연을 다루면 하루가 걸립니다. 바로 이전 매뉴얼에서 공대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저는 셈에 약한 문과출신이라…. 문송합니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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