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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구남친과의 이별에서 아직도 못 벗어난 여자들.

by 무한 2016. 1. 5.

2016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2015년, 또는 2014년, 심한 경우 2013년에 살고 있는 대원들이 있다. 헤어진 그 순간 삶의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놓곤 해가 바뀌거나 계절이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살고 있는 대원들인데, 오늘은 새해 첫 매뉴얼을 발행하는 날이니만큼 이런 대원들을 좀 일으켜 세워보자.

 

상대가 연인인 동시에 가장 친밀한 관계였던 친구인 까닭에 그 관계가 깨어진 후 삶의 목적을 잃은 듯 방황하는 대원, 상대가 이별사유로 든 말들에 의해 자존감이 산산조각 난 대원, 상대가 '우리가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되겠지.'라는 말을 한 까닭에 계속 기다리고만 있는 대원의 이야기다. 출발해 보자.

 

 

1. 그와 헤어진 후 모든 것이 의미 없어졌어요.

 

우선, 남친의 잘못이나 남친이 한 말 중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했다는 걸 먼저 밝힌다. 이렇듯 상대가 거의 '종교'가 되어버린 상태에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게 '신성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질 수 있다. 때문에 매뉴얼을 발행한 후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죠? 그는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우리가 함께일 땐 세상 사람이 다 저를 욕해도 그 사람만은 제 편이 되어줄 사람이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을 나쁘게 말하지 마세요."

 

라는 대답이 돌아올 확률은 87.3% 이상이다. 그럼 나는 또 시무룩해져선 '나 안 해.'라는 말만 속으로 삼키고 말아야 하니, 남친에 대한 부분은 생략하도록 하자. 대신, 그에게 K양이 어떤 의미였을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난 K양에게, 상대가 다 알아서 이해하고 배려하고 헌신해 줬던 것들을 '우리가 정말 잘 맞았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길 권해주고 싶다. 그게 정서적인 측면인 까닭에 셈이 잘 안 될 수 있긴 한데, 물질적인 부분으로 비유를 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늘 그가 이해하고, 배려하고, 헌신해야 했던 것들이, 데이트비용을 항상 상대가 다 부담해야 했던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호의를 받는 입장에서는 정말 이만한 사람 또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이 불공정하고 돌아오는 것 없는 관계에 지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난 몇 년 전부터 A라는 친구와의 만남을 피해왔다. A와 만나면 그의 유효기간 짧은 썸이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줘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A와 밥을 먹거나 술을 한 잔 하고 나면 늘 나나 다른 사람들이 계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가 직장을 다신 단기알바를 주로 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안다. 아는데, 만날 때마다 늘 내가 돈을 써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면 나도 버겁다. 그는 내가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호의를 베푼다며 좋은 친구라 말하지만, 나는 사실 그가 돈을 낼 것도 아니면서 술 마신 뒤 2차로 노래방이나 당구장 가자고 할 땐 한 마디 해주고 싶기도 했다. 또 담배를 가지고 따지면 내가 참 속 좁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데, 만날 때마다 A가 친구들이나 내 담배를 얻어 피우는 것도 계속되니 은근히 짜증났다.

 

난 구남친과의 연애할 때 K양의 모습이, 내 A라는 친구의 모습과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질적으로 기댄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기댄 것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구남친 혼자 아빠, 오빠, 친구, 연인의 모습을 전부 감당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만약 A양 남자친구인데 지금 계속 A양에게

 

"노멀로그에 이러이러한 댓글이 달렸어 그래서…."

"저녁 먹을 시간인데 저녁 먹었냐고 안 물어보네…."

"블로그 데이터 받아서 결산해야 하는데 다운로드가 안 돼."

"셋탑박스 설치한 거 USB재생이 안 되네. 고객센터에 전화해야겠지?"

"실비보험 환급신청 해야 하는데 어느어느 병원 가야하는지 기억이 안 나네."

"왠지 모르게 오늘 축축 늘어지네. 따뜻한 데 누워서 그냥 책이나 보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A양도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겠는가.

 

구남친이 '넌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했기에 A양은 '내가 요구나 불만을 줄이면 우린 다시 잘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말을 덜 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A양이 자기 몫의 인생에 바짝 달려들어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먼저인데, 안타깝게도 현재 A양은

 

"그가 돌아와 제 옆에 있어준다면, 저는 전과 달리 정말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건 여전히 상대에게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변하지 않으면, 상대와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K양은 '을'의 입장에서 상대의 눈치를 보며 말하고 싶은 것들을 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만 하는 건 이제 그만 두고, K양이 무슨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한 후 그 길을 걸어가길 권한다. 그렇게 걷던 중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걸어가는 것이 바로 '연애'고 '결혼'이니 말이다.

 

 

2. 구남친이 한 말 때문에 누구를 다시 만나기가 무서워요.

 

아이고 S양. 구남친이 그 얘기를 할 때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꼭 생각이 어리숙하다곤 할 수 없겠습니다만, 스물다섯에 낸 결론, 그것도 '사람'에게 내린 결론은 계절 하나만 바뀌어도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건 현재 스물다섯인 S양이, 한두 해만 더 살아봐도 저절로 느끼게 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상대가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좋은 대학을 나왔고, 곧 앞날이 보장되는 탄탄한 전문직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해서 그의 말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아주 보통의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다 유기하면 그건 나쁜 유기고, 고학벌의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 '강아지를 더 키울 수 없는 이유'를 다섯 가지 항목으로 정리한 뒤 유기하면 그건 강아지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현실적인 유기고, 뭐 그런 건 아니잖습니까?

 

전 사실 구남친이 만든 '현실적'이라는 틀에 S양이 갇힌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그의 말은 '현실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솔직함을 가장한 이기적인 선택'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는

 

"나와 우리 집을 생각하면 너와 더 만나다 연애하는 건 둘 더 어려워지는 선택인 것 같다. 우리 집은 이러이러한 상황이고 너희 집도 이러이러한데, 거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다. 넌 이제 졸업하고 취직하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게 될 거고, 거기서 나오는 월급은 이 정도가 될 거다. 그리고 집안형편 상 너도 집에 보태야 하는 돈이 있고, 나 역시 그런 상황이라…(중략).

그리고 선배들이 한 말 중에, 학교다닐 때 하던 연애에 묶여 덜컥 결혼까지 하는 게 제일 바보 같은 선택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건 자기 가치를 부정하고 그저 정에 엮이는 것일 뿐이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거부감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이 맞는 말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날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놈이라고 욕해도 되고, 이기적인 놈이라 욕해도 된다. 하지만 다른 핑계를 대며 헤어지자고 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솔직하게 내 마음을 말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걸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됩니다.

 

"너랑 더 사귀며 결혼까지 하긴 내가 아깝다."

 

게다가 그는 저기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파악한 'S양의 한계'라는 부분을 조목조목 정리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전 그 메일을 보며 혈압이 확 올랐는데, 그건 그가 자신을 '정상'으로 놓은 채 S양이 가진 다른 모습을 모두 '비정상'으로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에도 '성격차이'라는 틀을 씌워놓은 까닭에 S양이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게 된 것 같은데, 그가 얘기하는 걸 자세히 들어보면 오류가 가득합니다. 먼저 연락해서 나오라고 하고, 학교에 있으면 어디서 만나자고 하고, 당장은 가진 게 별로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나중엔 해주겠다고 한 사람이 바로 상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는 '만남이나 연락의 빈도가 꼭 애정의 척도인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같이 있으면 공부가 안 되고 답답하기만 하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며, 꼭 뭔가를 같이 해거나 선물을 줘야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아닌데 S양보고 왜 그런 걸 바라냐고 말합니다.

 

본인이 점점 집중하지 않으며 불성실하게 행동해서 벌어진 일들까지도, 그것에 대한 S양의 태도를 문제 삼아 '극복하기 힘든 성격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S양이 화를 내면, 그는 '무책임'에 대한 부분은 쏙 빼고 S양이 화를 낸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늘 자신이 사과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답답했다고도 말하는데, 정확히 따지자면 그가 사과를 해야 했던 일들의 원인은 그 스스로가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난 너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이렇게 따지면, 그 모든 말들이 나에겐 압박과 상처가 될 뿐이다. 듣고 싶은 말이 뭐냐.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겠다. 사과가 필요한 거면 사과하겠다. 네가 하는 말이 다 맞자고 하자. 그럼 되겠냐."

 

이쯤 되면, 저건 그냥 배 째라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거나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우리'를 '너 VS 나'로 나눠버리는 게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건 아니잖습니까? 나쁘게 말하자면 그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그의 변명에 그저 총 맞은 듯 쓰러져 있진 마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로지 연봉으로 직업의 귀천을 나누고 직업과 조건으로 그 사람의 한계를 결정지을 뿐인, 그의 그 이상한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가 S양을 유기하며 늘어놓은 변명 때문에, S양마저 그게 다 본인 탓이라 생각하며 S양 자신을 아무렇게나 팽개쳐 두시진 말길 권합니다.

 

 

3.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만 살고 있어요.

 

사연의 주인공인 Y양은, 상대가 헤어지며

 

"우리가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지금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나게 되겠지."

 

라고 한 말 때문에 계속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그럴 가능성은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으니 희망을 접길 권한다. 그는 저걸 '인연'이라 말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저건 관계를 그저 '우연'에 맡겨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키거나 조율하려면 지금도 할 수 있는 건데 그는 현재 그럴 생각이 없잖은가. 그가 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 다른 이성들을 좀 더 만나보다가 정말 내겐 너밖에 없는 것 같으면 돌아오겠다는 건데, 이별 직전까지 그가 한 행동들을 보면 그가 돌아온다고 해도 둘은 행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당분간은 연애 할 생각이 없다든지,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게 될 거라든지, 지금은 새로운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든지 하는 말들은 몇 시간만 지나도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저건 '지금 당장의 내 마음이 이렇다'는 의미일 순 있지만, 몇 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은가. 매일 출석체크 하듯 오늘까지 상대의 마음을 확인 받아도 내일 달라질 수 있는 게 사람 마음이니, 저 말 하나에 모든 기대를 걸지 말고 상대의 태도가 증명하고 있는 부분을 보길 권한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이 현재 저렇다고 말할 땐,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답하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대답해주자. 저건 '지금은 아쉽지 않으니 일단 버려두고, 나중에 궁한 상황에 처하거나 하면 그때 찾아오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으니, 몇 달 기다리다 "꼭 돌아와. 난 계속 기다릴 테니까, 마음 바뀌면 꼭 와야 해."라고 말하는 슬픈 일은 그만 두도록 하자. 지금 놓치면 영영 잃을 수 있다는 걸 상대가 느끼게 만들어 줘야지, 언제고 킵해둘 수 있는 사람처럼 굴어선 안 된다. 늘 얘기하듯 '아쉬운 여자'가 '쉬운 여자'가 되고 마는 법이니, 얼른 그곳에서 돌아 나오길 바란다.

 

 

새해도 벌써 5일이나 지나가 버렸다. 사실 난 다른 두 사연을 붙잡고 있었는데, 두 사연 모두 새해 첫 글로 발행하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이라 중간에 저장을 해두었다. 다른 이야기로 새해를 열었으니, 그 두 사연은 조만간 정리해서 발행하도록 하겠다.

 

2015년 노멀로그 결산을 해야 하는데, 블로그 데이터가 온전히 다운로드 되질 않는다. 작년에도 이런 일이 벌어져 고객센터에 문의해 파일을 전달받았는데, 올해도 아마 그 과정을 거친 후에야 결산이 가능할 것 같다. 내겐 늘 이렇게 어딘가 하나를 거쳐야 정상적인 이용이 가능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새로 산 TV엔 리모컨이 잘못 들어가 있어서 설치기사도 "왜 이게 여기 들어가 있지? 다른 기종의 리모컨이 들어있는 건 처음 보네요."라는 이야기를 했고, 인터넷이 안 돼 부른 A/S기사 역시 "선이 꼬여서 접속장애가 일어나는 건 처음 보네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폰도 내 폰에서만 이상한 소음이 들려 교체하고, 프린터도 내 프린터만 난시가 있는 것처럼 출력되어 교체하고, 안경도 내 안경만 안경사가 좌우 렌즈를 반대로 꽂아 다시 맞추고, 카메라 렌즈도 내 렌즈만 AF에 문제가 있어 교체하고, 캐리어 샀을 때에도 내 캐리어만 자물쇠에 문제가 있어 교환 받고, 난 늘 이렇게 시험에 들며 살고 있다. 

 

노멀로그 독자 분들을 대신해 내가 모든 액땜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으니, 다들 아무 일 없이 평탄한 새해 출발을 하시길 바란다. 자 그럼,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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