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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모태솔로 프로그래머의 소개팅, 답만 구하다 끝. 외 1편

by 무한 2016. 2. 23.

난 종종 호스팅 업체에서 일하는 기술자와 통화를 할 때가 있는데, 그와 통화를 할 때면 '무뚝뚝함과 짜증 섞인 대답'의 결정체를 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와의 대화패턴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전화 응대하는 직원이 기술자에게로 전화를 연결해줌.)

(연결된 것 같은데 말이 없어서 내가 먼저 말함.)

 

무한 - 여보세요?

기술자 - 네.

무한 - 안녕하세요. 좀 전에 웹으로 호스팅 30G 신청했는데요.

무한 - 이걸 60G 상품으로 차액 결재하고 변경할 수 있을까요?

기술자 - 안돼요.

무한 - 좀 전에 전화 받으신 분이, 말씀드려보면 될 거라고 하셨는데….

기술자 - 안돼요.

무한 - ….

무한 - 그럼, 30G 취소를 하고 60G로 다시 신청해야 하는 건 되나요?

기술자 - 네.

무한 - 네, 알겠습니다.

무한 - 아, 그리고 PHP 버전 선택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나요?

기술자 - 아니요.

무한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술자 - (전화 끊음)

 

분명 필요한 정보에 대해선 다 듣게 된 문제없는 대화였긴 하지만, 기계와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때문에 기술자에게 연결하기 전까지 전화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내게 상냥하게 말해주면, 난 그게 참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1. 모태솔로 프로그래머의 소개팅, 답만 구하다 끝.

 

서두에서 이야기 한 대화패턴은, 내게 사연을 보내는 분들의 카톡대화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성과의 교류가 전혀 없던 대원, 연애 경험이 없는 대원, 낯을 가리는 대원, 누가 먼저 다가오거나 누군가와 어쩔 수 없이 같이 모임 내에 있어야 할 때에만 친해지는 대원들의 대화에서, '용건만 간단히'라고 할 수 있는 저 대화패턴이 등장하곤 한다.

 

Y씨의 사연에서도 위와 같은 대화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좀 더 길긴 하지만, 'Yes or No'를 가장 우선시하는 대화법이라는 것에서는 차이가 없다.

 

"전 상대방이 먼저 친하게 굴어야 친해지는 스타일입니다."

"전 여자에게 먼저 막 말을 걸거나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전 특히 여러 부분에서 공평한 것을 좋아합니다."

 

뭐, 본인의 철학과 스타일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유이며 그 책임 역시 본인이 감당할 것이니 나도 뭐라 얘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런 철학과 스타일대로 살 때 계속해서 뭔가가 틀어져 고민이라는 얘기를 한다면, '나는 원래 이렇다'는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그 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소개팅 상대의 연락처를 받은 후, 상대에게 연락해

 

"안녕하세요.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라고 달랑 묻고 마는 건,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좀 당황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일이다. 반대로 상대가 시간 언제 괜찮냐고 물었을 때,

 

"7시 이후요."

 

라고 대답하는 것 역시, 기계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일이고 말이다.

 

이게 사실 너무 기본적인 부분에서 Y씨가 어긋나고 있는 거라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상대의 답장이 늦자 거기에 '공평하게 대해주겠다'는 마음으로 3시간 후에 답장을 보내는 일이라든지, 아니면 지금은 어색하고 할 말도 별로 없지만 사귀면 뭔가 달라질까 싶어 고백을 하는 지점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어 전부 다 말하기가 좀 벅차다.

 

상대와 만나다 고백까지 한 Y씨는, 상대가 빨리 답을 주지 않자 상대에게

 

"고백을 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테니까, 그래서 고백을 한 거예요. 그냥 확실하게 말해주시면 되는데…."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역시나 'Yes or No'의 대답을 요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 Y씨가 상대에게 고백한 타이밍을 보면, Y씨는 상대가 집안 일로 화가 나 있을 때 Y씨가 잠시 만나자고 청해 '막간을 이용한 고백'을 했다. 이렇듯 하나 건너면 또 하나의 문제가 펼쳐지는 사연이라, 매뉴얼의 소제목 하나로는 물론이고 매뉴얼 하나를 통째로 써도 다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Y씨의 이번 소개팅을 가지고 전부 살펴보기 보다는, Y씨가 노멀로그에 있는 선배대원들의 사례들을 먼저 좀 살펴봤으면 한다. Y씨가 한 헛발질들에 대해선 이미 그 선례들이 매뉴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Y씨가 신청서에 적은 질문에 대해선, 전부 다 부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이건 '언제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보는 게 좋은가?', '연락을 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은가?' 를 고민한다고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이전 매뉴얼들을 읽어보시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제 잘못으로 헤어졌는데 저도 힘듭니다.(1/2)

 

아래는 정군이 신청서에 작성한 문장입니다.

 

"물론 저는 여자친구에게 욕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고, 손찌검 한 적도 없습니다."

 

당연한 얘기를 무슨 대단한 호의를 베푼 것처럼 말합니까. 혹시라도 진심으로 여자친구에게 욕 한 적 없고 때린 적 없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정말 심각한 겁니다. 정군의 문제는, 물리적인 폭력과 학대가 아니라, 정서적인 폭력과 학대입니다. 

 

"군대에서 '털어버린다'고 할 정도로 여자친구를 혼냈습니다."

"보통 혼낼 때에는 눈물을 흘릴 때까지 혼냈습니다."

"여자친구가 정말 저랑 싸우기 싫어서 말했고, 저는 용서해 주었습니다."

 

제가 10여 년간 연애사연을 받아오고 있지만, 정군의 나이대(이십대 중반)에서 이렇게까지 권위적으로 구는 사연은 처음 봅니다. 정군은 기본적으로 여자친구를 '군대 후임' 정도로 설정해둔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태도에서도 정군은 거의 '끝판왕' 수준의 모습을 보입니다. 분명 자신이 잘못하거나 실수한 부부에 대해서도, 여자친구가 지적하면

 

"겨우 그것 가지고 지금 이러는 거야?"

"좋게 말할 수도 있는데 넌 왜 그렇게 말해서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들어?"

"야, 야, 네 마음대로 해. 아주 지 맘대로네."

 

라는 반응만을 보일 뿐입니다. 이걸 두고 정군은 '서로의 감정이 격해졌다'고 표현하던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건 정군이 나이 많음과 억지로 여자친구를 짓누른 것일 뿐입니다.

 

또, 욕구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고 정군이 아무리 변명을 해도, 혹시 임신일까 싶어 며칠 전부터 걱정하며 정군에게 상의하던 여자친구에게, '숙박업소로 바로 와. 거기서 만나자'고 말한 건 무조건 정군이 실수한 겁니다. 정군의 그 실수에 여자친구가 화를 내자, 정군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말하냐. 가기 싫으면 좋게 다른 데 가자하면 되는 거지."

 

정군은 여자친구가 실수하면 울 때까지 갈궈놓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참 편하게 '좋게 다른 데 가자하면 되는 거지'라며 여자친구 탓을 합니다.

 

 

3. 제 잘못으로 헤어졌는데 저도 힘듭니다.(2/2)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군은

 

"정말 내가 부모님도 아니고 이런 걸로 왜 혼냈지 하며 반성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전화했습니다. 보고 싶다고."

 

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래놓고 또 만나면 화를 내고 여자친구를 갈굽니다. 반성을 충분히 했고 여자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그 사과가 받아들여 지지 않거나 여자친구가 기분을 풀지 않으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라."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정군의 태도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는 여자친구는

 

"오빠는 끝까지 자기 자존심 세우고 있는데 어떻게 같이 서로 양보하자는 말이 되냐. 그리고 편지 읽어 봤는데, 거기서도 끝까지 오빠는 자존심 세우고 있지 않냐."

 

라고 말했는데, 사실 저건 '자존심'이 아니라 정군의 '권위의식'의 문제입니다. 정군은 여자친구를 그냥 정군이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까지를 정군은 지적하고 받아들일 것을 강요합니다.

 

전에 한 번 소개한 적 있던, '일진의 사과'와 관련된 다큐가 생각납니다. 그 다큐의 주인공인 학창시절 자신이 저질렀던 학교 폭력에 대해,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했습니다. 이젠 정말 반성도 많이 했고, 누군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이 뼈에 사무치게 미안해 피해자를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이제 문신도 지우고, 새 삶을 살기 위해 과거를 청산하고자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그와 만나기를 꺼렸을 뿐만 아니라, 사과도 받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학창시절 피해자들을 때릴 때 찰싹찰싹하는 소리가 나는 게 재미있어서 때렸다는 가해자, 한 시간 가까이 때리다 보니 손발이 아파서 빗자루로 때렸다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만남조차 거절하자, 일진은 취재를 하고 있는 PD에게 말합니다.

 

"그냥 만나서 사과하고 간단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답답해요 좀."

"전 좋은 마음으로 온 건데 저러니까(만남조차 거절하니까) 짜증나요."

 

지금 여자친구에게 사과를 하겠다는 정군의 태도가, 바로 저 일진과 닮아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별 후 정군이 폐인처럼 지냈든, 안 쓰던 일기를 쓰게 되었든, 책을 읽고 반성하며 후회했든, 그건 정군이 그랬다는 거지 여자친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겁니다. 그래놓곤 사과하겠다는데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단호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면 정군도 편할 텐데 단호히 거절하는 것도 아니라 희망고문 당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 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사과를 가장한 또 다른 괴롭힘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와 정 반대의 결론이긴 합니다만, 여자친구에게서 다시 연락이 올 겁니다. 그녀가 보냈다는 마지막 문자를 보면, 집 근처로 찾아온 정군을 돌려보내면서도 정군을 걱정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녀가 생각해보고 답을 준다고 했음에도 며칠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건, 늘 폭발했다가, 사과했다가, 다시 폭발하는 정군과 정말 다시 만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이번 사과도 예전과 같은 '사과모드일 때의 사과'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일 겁니다.

 

지금쯤 두 사람은 다시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다시 만나고 있다면 남친인 정군이 해야 할 일은, 세상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를 존중해야 하는 것임을 꼭 기억하시길 권합니다.

 

 

사연을 받는 계정은 moohan@normalog.com 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메일주소 뒷부분이 네이버가 아니라 노멀로그임을 꼭 확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카카오 계정 역시 그냥 이름으로 검색해서 추가한 뒤 일단 사연부터 털어 놓으시면,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게 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자신이 노멀로그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분이 있다는 소식을 몇 번 들었다. 노멀로그의 무한이 맞냐고 물어보면 "무한입니다."라거나 "노멀로그 보시나요?"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 분 본인이 사용하는 닉이 무한이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저런 애매한 말로 대답을 회피한 뒤 상담을 해준다고 한다. 그 분이 해주는 조언이 아무래도 이상해 맞냐고 재차 물어보면 그제야 아니라고 대답했다던 제보가 몇 번 있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옐로아이디를 하나 신청해 둔 상태다. 개설이 되고 나면 공지와 매뉴얼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겠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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