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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부모님과의 대화 후 이별통보를 한 남친. 외 2편

by 무한 2016. 3. 21.

사연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밀린 사연을 다섯 편 다루고 난 다음 날은 매뉴얼 발행을 못 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럴 거면 그냥 하루에 두 편씩 꾸준히 쓰는 게 나을 텐데, 괜히 몰아서 썼다가 방전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적당히 타협해 한 편 정도만 더 다루는 방식으로 써볼까 한다. 이러다 월요일 화요일 발행하곤 수요일에 방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여하튼 출발해 보자.

 

 

1. 부모님과의 대화 후 이별통보를 한 남친.

 

연애 전, 남친이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있으면서 K양에게 사귀자고 몇 번이나 이야기 했던 건, 아무래도 평범한 진행이라고 하기 어렵다. 또, K양과 친한 상사가 절대 그와 사귀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그걸 봐도 그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K양도 상대가 좋으니 결국 사귀게 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사귀자는 말이 나왔을 때 그가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한 것도 그렇고, 사귀면서 그가 "왜 전화를 하면 안 끊어?"라며 통화를 귀찮아 한 것도 그렇고, 이별통보를 할 때

 

"주말에 부모님하고 얘기를 좀 했는데, 암튼 결론만 얘기하자면, 우리 헤어지자. 그냥 지금은 아무 것도 신경 안 쓰고 싶네."

 

라고 한 것까지를 보면, 난

 

'이런 남자랑 왜 사귀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제가 잡으면 잡힐까요? 주변에선 저만 힘들 거라며 모두 이 연애를 반대하는데, 저만 객관적이지 못하게 이 관계를 보며 불구덩이로 들어가려 하는 걸까요?"

 

K양의 남친이 자기개발에 열심을 내며 하고자 하는 일이 생기면 주변과의 관계도 끊고 집중한다는 건 잘 알겠다. 알겠는데, 그걸 단순히 '존경스러운 부분'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인 건 아닌지도 살펴봤으면 한다. 열심히 사는 건 결국 자기 좋자고 하는 일이며, 그러는 동안 사람들과의 연 다 끊고 지내다 훗날 자신이 필요할 때만 다시 연을 맺으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가 부모님과 대체 어떤 얘기를 했기에 헤어지자고 말한 건지 궁금해 하기 전에, 예의도 성의도 없이 '결론만 얘기하자면, 우리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것, 그리고 연애를 할 때에도 그는 늘 '그의 일'에 밀려 전화통화 조차 길게 할 수 없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이 좋은 봄날에 같이 봄꽃 구경 한 번 못하는 연애. 그게 상대가 정말 당장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미뤄지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래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연인과의 전화통화 조차 자기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거라 생각하는 남자와는 헤어지길 권하고 싶다. 내가 K양의 오빠였다면, 그에게

 

"네가 지구의 평화와 발전을 다 책임지고 있냐.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하고 있기에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들러리의 입장에서 오로지 너를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또, 연애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너도 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는 다해야지, 평소엔 중요한 일 있다며 여자친구 보고 알아서 살라고 팽개쳐 두곤 그러다 외롭고 심심해지면 그때 만나 즐기는 건 이기적인 것 아니냐. 주말에 부모님하고 얘기를 좀 했다고 월요일에 카톡으로 이별통보를 하는 것 역시, 치졸한 짓 아니냐. 그럴 거면 애초에 사귀자고 조를 때에도 부모님과 상의하고 나와서 조르든가 할 것이지. 모옷난 놈."

 

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K양은 당장 그가 헤어지자고 하니 '많이 힘든 상황이라 그러는 건가?'하는 생각만 하고 있던데,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이별통보 하는 태도에서 보이는 그의 인간성과 K양에 대한 애정의 크기를 보길 바란다. 그가 얼마나 노력하며 살며 어느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든 간에, 그게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한 거면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

 

 

2. 혼전순결 여친과 조르는 부자 남친.

 

용돈으로 받는 돈이 연 1억이 넘는 사례는 나도 처음 보는 것 같다. 억대 연봉 사연은 종종 접하는데, 억대 용돈 사연은 처음이다. 보통 서른이 넘어서까지 용돈을 그렇게 받으면 인생을 그저 한량처럼 지내기만 할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직업까지 곧 전문직을 갖게 된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S양이

 

"돈 많은 남자 좋아하는 여자들이 속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도 이 편안함에 물들어가는 걸까요. 이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다시는 못 누려볼 식당들, 장소들, 여행 같은 것 때문에 이 사람과 헤어지는 게 두려운 마음도 솔직히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거려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통장 잔고에 공이 몇 개 찍혀 있든 차고에 차가 몇 대든, 이게 유효기간 100일짜리 연애라면, 100일 이후 그의 돈과 S양은 아무 관련도 없는 거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모든 걸 상대에게 맞춰가며 노예에 가깝게 연애를 한다면 반년, 또는 일 년 정도까지 연애가 가능하겠지만, 그것 역시 헤어지고 나면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S양이 자신이 속물처럼 변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솔직한 얘기들까지 내게 털어놓았으니 나도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속물처럼 생각해볼까 한다. 억대 용돈을 받는다는 그가 S양에게 쓰는 돈이 얼마나 되며, '그의 돈' 때문에 S양이 일단 굽히고 들어가며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연을 통해 내가 파악해 본 결과, '비싼 식당에서 밥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S양이 얻은 게 없다. 둘은 어느 날 하루 종일 쇼핑을 하기도 했는데, 그의 옷 사는 걸 보며 돌아다니기만 했을 뿐 그냥 그게 전부 아니었는가.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건 별로 없으면서, '상대에게 돈이 많으니까 나중에 내게 아낌없이 쓰겠지'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여기서 보기엔, S양이 '속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상대와 만난다고 할 만큼의 이득을 보는 게 없다. 오히려 그가 '나는 돈이 많다'는 걸 내세우며 S양을 무장해제 시키려고 하거나, 자신의 원하는 대로 다 하려 들 뿐이다. 그가 이전 여자친구들에 대해 '명품 밝히는 된장녀들이었다'고 말한 부분이나, 바로 직전의 여자친구에 대해 '이기적인 것 같아 헤어졌다'고 말한 부분 역시, '너도 그랬다간 아웃이야'라며 밑밥을 까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가 S양의 부모님께서 외박을 허용하시지 않는 걸 두고

 

"우리 사이엔 미래가 안 보이는 것 같다."

 

라고 말한 부분이나, 스킨십 진도 더 안 나가면 헤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한 부분은,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건 뭐 오목을 두며, "난 굳이 내가 이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만약 내가 진다면 난 오목 그만 두고 집에 갈 거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S양은 그런 남친을 달래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내게 요청했는데, 난 이미 상대가 '외박을 안 하면 우린 헤어지는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가, 다급해진 S양이 외박을 하겠다고 하자 다시 돌변해 얼른 여행계획을 세우는 것에서 그 한계가 보인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에게선 S양과 당장 스킨십 진도를 더 나가고 싶다는 것 외에는 S양에 대한 별다른 애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S양은

 

"남친이 친구와 친구 여자친구에게 저희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친구는 저를 잡으라고 했고 친구 여자친구는 그냥 헤어지라고 했다네요."

 

라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S양 남친이 자주 하는 짓 아닌가. 요구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돈 많은 자신을 놓치게 될 거라 위협하는 액션. 그가 이전 연애에 대해, 자신이 심사위원이 되어 그녀들을 불합격 시킨 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고 유심히 보길 권한다. 난 S양이, 실제로 얻는 것도 없이 거기서 압박면접 보듯 굴욕만 겪다 나오진 말았으면 한다.

 

 

3. 여친이 권태기라며 헤어지자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M군과 상대는 예정된 이별의 수순을 밟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대화를 하나 가져와서 살펴보자.

 

M군 - 자기야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여친 - 예예

M군 - 오늘도 늦게 끝났어요?

여친 - 예예

M군 - 잘 쉬고 있어?

여친 - 응응

M군 - 응응응

(중략)

M군 - 자기 기분 안 좋아? ㅠㅠ

여친 - 아닝~~

M군 - 기분 안 좋아 보여 ㅠㅠ

여친 - 아니야

M군 - 그럼 다행이구.

M군 - (공연사진) 이거 예약했어.

여친 - 그래그래.

 

연애에 이렇게까지 무성의하기도 힘들 것 같은데, M군의 여친은 M군의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집어 먹을 뿐이다. M군이 함께 가고 싶은 전시회 정보를 알아내 여친에게 보내면, 여친은 심지어 클릭도 안 해본 채 대충 '가면 가는 거지'라는 반응을 할 정도로 둘의 관계가 기울어져 있었다.

 

난 M군이 상대와 연애를 했다기보다는, 상대를 근 1년 동안 모셔왔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대화의 모든 주제는 '여친의 일상 중 벌어진 일'이며, 보통 여친이 화를 내면 M군이 편들어 주는 것 정도로 진행된다. M군은 줄기차게 상대의 안부와 식사여부를 물어대는데, 여친은 그것에 대한 대답만 할 뿐 M군에 대해 묻지 않는다. 대화가 아니라 인터뷰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니, M군은 상대의 직장 사람, 친구, 지인들의 이름과 근황을 전부 알고 있다. 이게 반대로 상대 역시 M군에 대해 그만큼 알고 있으면 문제될 게 없는 부분이긴 한데,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토대로 추측하자면 그녀는 M군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애정표현을 한 적도 있는데요. 빈도가 점점 줄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애정표현을 해온 편이고, 저에 대한 태도나 연락 역시 꾸준했습니다."

 

그 애정표현이라는 게 정말 M군을 향해 있는 것인지 곰곰이 살펴보길 권한다.

 

"오빠가 나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워. 행복해."

"얼른 주말 돼서 오빠랑 놀았으면 좋겠다."

"(만나고 들어와서) 사랑해♡ 항상 고마워요♡"

 

난 저 말들을, M군을 향한 애정표현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연인이기에 데이트 마치고 들어와 반쯤은 의무적으로 보내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녀가 M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려면 평소의 대화를 보는 게 나은데, 평소 그녀는 웹툰 보는데 M군이 말 걸어 끊긴다며 말 그만 걸라는 이야기를 하고, "몰라. 피곤해."라는 무성의한 대답도 한다.

 

현재 M군은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노력할 테니 한두 달이라도 더 만나보고 결정해 달라고 말했고, 여친은 그렇게 만나봐야 마음이 안 생길 것 같으며 그랬다간 나중에 더 힘들어질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하자고 말했다가, 일단 한두 달 더 만나보기로 한 상황이다. 나 역시 M군 여자친구의 생각과 같다. 지금까지 M군이 상대를 모시듯 헌신했는데, 여기서 한두 달 더 노력해 헌신해봐야 여친은 더욱 지겨워지고 이후 여친 탓만 커질 확률이 높을 것 같다. 더 만나보기로 한 까닭에 희망을 품고 있는 M군에게는 미안하지만, 여친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지 못하는 한 두 사람이 헤어지는 건 시간문제가 될 거라 나는 생각한다.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종종 내게

 

"진짜 제 친구 때문에 답답해서 대신 사연 보내요."

"저희 언니한테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들어요. 한 마디만 해주세요."

"지인이 제게 연애상담을 했는데, 이럴 땐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요?"

 

등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당사자가 노멀로그에 있는 신청서에 사연을 기입한 후 카톡이나 문자, 메일로 대화한 것들을 첨부해서 보내주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타인의 사연을 본인이 신청서에 작성한 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잘 모름.", "~인 것 같음." 등의 대답이 쓰인 신청서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당사자가 직접 신청서를 작성하도록 권하는 것까지만 인도해주시길 바란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속 터질 것 같아서 대신 사연이라도 보내는 거라는 분들에겐, 그게 그 분의 수업이며 자신이 데여 뜨거움을 느끼기 전까진 옆에서 뜯어 말려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신이 나가 있을 땐, 옆에서 아무리

 

"너 걔 다시 만나면, 나도 진짜 너 안 볼 거야."

 

라고 협박을 해봐야, 그것까지도 '절교를 택하고 얻은 사랑' 등으로 해석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옆에서 열정적으로 말리는 게 오히려 꺼져가는 불씨에 부채질을 해 살리는 모양이 될 수 있으니, 반대 의사는 적당히만 표현하고 그 뒤로는 최대한 '무관심'으로 대처하길 권한다. 그런 경우엔 도리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하는 자각을 하게 될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월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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