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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고학벌 고소득 커플, 남친은 화만 내다 잠수이별. 외 1편

by 무한 2016. 5. 12.

S양의 사연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와, 이 사람들은 둘 중 누구도 양보할 생각이 없구나.’

 

라는 거였다. 둘 다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서로 먼저 자신이 사랑 받겠다며 상석에 앉으려 든다거나, 자신에게 헌신하지 않는 상대를 서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자신이 파는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줄 서 있어 기세등등한 판매자와 그간 어디를 가든 VIP고객 대접만 받았던 구매자가 만난 느낌이랄까. 서로

 

“살 거면 나한테 잘 해라.”

“팔 거면 나한테 잘 해라.”

 

라며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끝난 연애라 다행이긴 한데, 그런 식으로 연애를 할 생각이라면 두 사람만으로는 안 되고 사람 써야 한다. 일당이라도 줘가며 다정하게 말할 사람, 상대를 위해 뭔가를 준비할 사람, 보고 싶다며 달려갈 사람, 토닥토닥 해 줄 사람 등을 고용해야 겨우 매끄러워질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엔 저런 게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 연애로 나의 남자 보는 눈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제가 남자를 대하는 태도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반성하고 싶네요.”

 

출발해 보자.

 

 

1. 고학벌 고소득 커플, 남친은 화만 내다 잠수이별.

 

연인과 엘리베이터를 탈 경우, 먼저 탄 사람이 상대가 탈 때까지 ‘열림’버튼을 눌러 주는 건 아주 기본적인 매너다. 연인이 아니라 가족, 친구, 지인 등과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걸 여기다가 적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의 정말 기본적인 일인데, S양은 문 닫히기 직전에 본인이 탔으니 됐다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저는 뒤를 안 보고 있어서 오빠가 부딪혔는지도 몰랐습니다. 문에 부딪힌 오빠가 저보고 이기적이라고 하더군요. 저더러 이기적이라고 하는 말에 놀라고 서운했습니다.”

 

S양이 최대한 자신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지 말고 매뉴얼을 작성해달라고 해서 하나하나 예로 들진 못하겠는데, S양은 좀 이기적인 게 맞다. S양은 이걸 ‘독립적’인 거라고 표현하던데, 서로가 서로의 일을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효율적으로, 또 독립적으로만 알아서 할 것 같으면 함께할 이유가 없다. 내 배 부르다고 상대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에 대해서 신경 끌 거라면, 연락은 뭐하러 하는가. 그래도 연인이니까 애정표현은 하거나 받아야 해서?

 

두 사람이 통화할 때는 어땠는지도 한 번 보자.

 

(점심시간에 S양이 연락해서)

S양 – 오빠 우리 오늘 보는 거야? 내일 봐?

남친 – 점심 먹었어?

S양 – 일 언제 끝날지 몰라서 대답 못 하는 구나?

S양 – 그럼 회사 일 끝나고 오늘 오고 싶으면 오고

S양 – 낼이 편한 거서 같으면 내일 보자.

 

S양은 저 대화에서 남친이 ‘딴 소리’를 했다며 내게 하소연을 하던데, 저건 남친이 일부러 그런 거다. 남친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서 저렇게 말에 뼈를 심어 던지곤 하던데, 저 말의 뜻은

 

“너는 늘 연락하면 네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만다. 이럴 땐 밥 먹었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응 먹었어. 오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데도, 너는 지적 받았다는 것이 짜증나는지 그냥 내 말은 씹어버리고 네 할 말만 한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남친이 아프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남친이 아팠다며 늦게 연락했을 때)

S양 – 무슨 연애가 이리 힘드냐. 연락해도 받질 않냐.

남친 – 사람이 아픈데 걱정부터 하는 게 먼저 아니냐.

 

남친이 몸살에 걸려 앓아 누웠고 아직 밥도 안 먹었다는데, S양은 얼른 챙겨 먹으라는 말만 하고는 ‘밥 먹고 약 먹은 뒤 전화하는지 안 하는지’만 두고 본다. 두 사람이 여행을 갔을 때에도, S양은 기분 상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남친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혼자 알아서 자기 할 일만 하곤 했다. 그런 S양의 태도에 남친도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다가, S양이 얘기 좀 하자고 하니

 

“넌 너 할 거 해. 난 나 할 거 할 테니까.”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여행을 이 따위로 밖에 활용하지 않을 거라면, 예약한 숙소와 경비는 내게 양도하고 두 사람은 그냥 와이파이 잘 터지는 집에서 쉬는 게 낫다. 내가 저 위에서 ‘사람을 써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라면 내가 가장 먼저 줄 설 테니 연락을 주길 바란다. 내 번호는 공일공, 육오사삼….

 

S양의 상대 역시 ‘강적’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남자긴 하다. 내가 근 10년간 여러 사연을 받아왔지만,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계산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자는 처음 본다. 두 사람이 사는 지점 중간에 있는 역엔 뭐 정말 아무 것도 없는데, 그는 오로지

 

‘똑같은 시간을 들여 만날 수 있는, 정확한 중간지점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내가 손해 보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똑같이 네 정거장 걸리는 역’에서 만나길 요구하기도 했다. 전문용어로 ‘밴댕이소갈딱지’라고들 하는 태도다.

 

두 사람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둘의 만남이 ‘재앙’이 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을 수 있다. 아주 보통의 배려나 호의를 베푸는 것에도 인색한 여자와 딱 받은 만큼만 주겠다는 남자의 만남. 그 와중에 둘 모두 자신의 단점은 못 보고 남의 단점에만 서로 손가락질을 하니, 서로를 이상하고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진행이었을 수 있다.

 

아래는 S양이, 연애 중 상대와 화해를 하려 할 때 꺼냈던 얘기다.

 

“오빠가 나의 한 단면만 보고 얘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성급하게 단정 짓고 화냈듯이, 나도 오빠의 한 단면만 보고 오빠를 단정 지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상대에게 함부로 굴어 싸운다든가, 같이 여행 가서도 남남처럼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의도가 전혀 없더라도, 계속 둘 다 ‘나 편한 대로’만 굴었다간 그게 서로의 한계가 됨을 기억하길 권한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정당화 되는 게 아니다. 내 경우,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께 좀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지만, 올해 아직까지 한 번도 외할머니께 따로 전화 드린 적이 없다. ‘마음’이나 ‘의도’만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으니, 다음번 연애부터는 그걸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힘쓰길 권한다.

 

 

2. 저는 해외에 살고, 썸남은 한국에 삽니다.

 

아아. 달달하다.

 

(K양이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의 대화)

상대 – 배 안 고파?

K양 – ㅋㅋ좀 고픔 ㅋㅋ

상대 – 뭐 좀 사다줘?

K양 – 뭐 먹고 싶진 않은데 누굴 보고 싶긴 하네요 ㅋㅋ

상대 – 나올래? ㅎㅎ

K양 – 응 ㅋㅋ

 

외톨이처럼 있다가 누군가의 교신을 받고 연결되었을 때의 느낌이 들어 참 좋다. 전체적인 대화가 따뜻하고 말랑말랑하며, K양이 해외에 있을 땐 둘 사이에 시차가 있어 전보치듯 카톡을 이용하기 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집중해서 마음을 적어 내려가는 듯해 보는 나까지 흐뭇해진다.

 

그래서 나도 둘이 잘 되길 빌어주고 좋은 얘기만 해주고 싶은데, 별 생각 없이 행운만 빌어줬다간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K양이 지금과는 좀 다르게 이 관계를 봐야 할 필요가 있는, 세 가지 지점을 함께 보자.

 

A. 시간이 지나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이 썸이 연애로 발전하고 또 결혼까지 이어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K양은 현재 상대와의 먼 미래까지 고민하며 ‘사귀게 되더라도 난 외국에, 상대는 한국에 있으니 결혼을 어려운 것 아닌가? 둘의 직업을 보면 내가 접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게 맞는데, 상대도 그걸 원할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일단 사귀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으면 한다.

 

아직 서로의 발가락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못 본 상태에서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건 너무 이르다. 지금의 상황만 두고 머리로 계산하자면 K양의 예상이 맞을 수 있지만, 사람이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K양이 내게 십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면 난 안 빌려주겠지만, 우리가 밥 한 번 먹고 술도 한 번 같이 마신 뒤라면 흔쾌히 빌려줄 수도 있다. 이래서 내가 독자와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건 훼이크고. 더 가까워져 서로를 ‘놓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의 마음가짐은 또 달라질 수 있으니, 지금의 기준만을 가지고 미래를 그려보진 말길 바란다.

 

연애를 하다 보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에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간 사례도 있고, 초반엔 서울에서 살지 부산에서 살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세종시에 살게 된 사례도 있다. 이렇듯 사귀다 보면 두 사람이 전혀 예상 못한 지점으로 삶이 흘러가게 될 수도 있으니, 지금 주어진 것만 가지고 경우의 수를 구한 뒤 그게 둘의 한계라고 생각하진 말자.

 

B. 둘은 아직 서로를 모른다. 화내거나 짜증내는 모습도 못 봤다.

 

K양은 똑 부러지긴 하지만, 상대의 모습 중 일부분만 보고는 여러 모습들까지 추측해버리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의 좋은 모습만 보고는 ‘저 사람은 대략 이런 사람일 듯’이라고 생각했다가, 그에 못 미치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 급격히 실망하기도 한다. K양은 자신이 한국에 왔다가 돌아갈 때 상대가 포옹이나 악수 같은 걸 하려고 들지 않아 살짝 실망한 것 같은데, 그게 상대로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 그랬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리고 만약 상대가 몰라서 그런 것이라 해도, 그걸 두고 K양이 실망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상황에서 K양이 먼저 손 내밀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의 동네에서 그가 리드하는 모습만 떠올리며 ‘다른 부분들에서도 이 정도로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하는 생각만 하지 말고, K양도 그 관계에 적극적으로 다가앉길 바란다. 그게 안 된다면, K양은 현실에 있는 상대가 아닌 ‘내가 만든 그의 이미지’와 만난 게 되니 말이다.

 

더불어 두 사람은 아직 서로가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모습도 본 적 없다는 걸 기억하자.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상대가 보인 호의’만 가지고 예측을 했다간, 훗날 십중팔구 ‘이런 사람인지는 정말 몰랐네’하는 실망과 허탈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연애는 머리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니, 분석과 예측만 하진 말았으면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노력할 수 있으면 충분한 조건을 갖춘 거다.

 

C. 상대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다.

 

위의 이야기와 좀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 앞으로 상대와 사귀게 되면 K양은 그의 머뭇거림에 실망하게 될 수 있다. 상대가 K양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어쨌든 아직 30대 초반이고, 또 전문직이긴 하지만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까닭에 경제력이 허약해 뭔가를 제시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K양은 어른이라고 생각한 그가 애들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실망할 수 있는데, 그 역시 K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에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길 권한다.

 

하나 더. ‘해외’라는 특수성 때문에 K양이 염려하는 것처럼, 상대 역시 그 부분을 염려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이건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둘 중 하나가 결정해 리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그가 뭐라고 말하는가’만 관찰하지 말고 K양 역시 능동적으로 대화에 임하길 권한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여성대원들은 “한국으로 들어와. 내가 먹여 살릴게.”하는 박력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인기 있는 과가 아니면 의사도 대출 받기 힘들고 변호사도 문 닫는 요즘 시대엔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늘 얘기하듯 ‘되는 방향’으로 둘이 계획을 세운다 생각하며 임하길 바란다. 행운을 빈다.

 

 

오늘도 또 배웅글 공포증이 도졌는지, 무슨 얘기로 글을 마무리 지을까 고민 중이다. 재밌거나, 감동적이거나, 아니면 도움이라도 될 만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으니 요즘 읽고 있는 책을 한 권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그간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누구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꽤나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때, 난 흥미를 느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사피엔스>가 내게 그런 책이었다. 짬 내서 읽기보다는 각 잡고 앉아서 읽어야 할 책 같아 아직 진도는 반도 못 나갔는데,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등의 문장들이 인상 깊었다. 뒤로 가면 인공지능 얘기도 나온다던데, 무슨 얘기가 나올지 기대하며 읽는 중이다. 끌리는 분들은 한 번 읽어 보시고, 불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으니 다들 불금맞을 준비 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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