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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같은 조 여자후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조장 오빠 외 1편

by 무한 2016. 5. 23.

서준씨, 자전거를 함께 타기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① 맞바람에서도 평속 30km/h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괴수

② 거의 모든 자전거 고장에 대처할 줄 아는 정비박사.

③ 오르막에서 일어선 채 쉬지 않고 페달링을 하는 괴물.

④ 나보다 좀 잘 타지만 내 페이스에 맞춰서 함께 달려주는 사람.

 

그냥 아는 사이로 지내는 거라면 잘 타거나 정비를 잘 하는 사람이 빛날 수 있겠지만, 함께 타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질 거야. 같이 출발했지만 혼자 저 멀리까지 간 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사람보다, 내 페이스에 맞춰 주는 사람과 함께 타고 싶겠지.

 

“저는 상식이 많은 편이고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 여러 사람들이 제게 많은 것을 물어봅니다. 대체적으로 여러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서준씨가 스스로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내가 부정하거나, 또는 낮게 평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렇게 지내고 있다면 좋은 거겠지. 하지만 ‘지인’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듣는 것과 ‘연인’으로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 좀 다른 문제야.

 

많은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건, 뭐 내 경우라면 지인들 글 쓸 일 있을 때나 사진 찍을 일 있을 때 도와주기만 해도 좋은 평가를 듣겠지. 하지만 내가 그런 호의를 베푼 걸 가지고 공명심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잔소리 따위나 한다면, 그들은 날 불편해하며 멀리하게 되지 않을까?

 

 

1. 같은 조 여자후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조장 선배

 

서준씨가 신청서에 적은 말을 봐봐.

 

“저희 프로젝트의 경우, 토의를 하려면 개인적인 준비와 공부가 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애가 진도를 잘 따라오지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성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는 데 시간 많이 걸리는 것 아니니까 미루지 말고 하라고요.”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부분이 많아서 예로는 저것 하나밖에 들 수 없긴 한데, 여하튼 서준씨는 좀 ‘시어머니’같은 느낌이야. 심지어 저 얘기를 할 때에는 서준씨가 조장도 아니었잖아. 그냥 상대보다 학교 빨리 들어가서 선배라는 것 말고는 뭐가 없었는데, 복학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군대에 있을 때 후임관리 하듯이 상대를 관리하려 들고 말았어.

 

또, 남들로부터 서준씨의 능력을 인정받는 일이 많고 대개 사람들이 묻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상대와 개인적으로 나눴다는 대화를 보면 서준씨는 ‘공감’이란 것 없이 ‘내 생각’만을 쏟아내.

 

서준 – 점심에 냉면 먹었는데 맛이 없더라.

상대 – 냉면은 육수에 얼음이 있어야 맛있는데, 얼음 안 나오잖아요.

서준 – 얼음과 상관없이 학식으로 나오는 건 다 맛없는 것 같다.

상대 – 학교 앞에 어디어디 냉면 맛있어요.

서준 – 거기 안 가봐서 모르겠다. 나중에 가봐야겠다.

 

서준씨가 못할 말을 하거나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야. 그런데 ‘대화’라면, 서준씨의 의견만 열거할 게 아니라 상대에게 한 번쯤 물을 수도 있는 거잖아. 비빔냉면과 물냉면 중 뭘 좋아하냐고 물을 수도 있는 거고, 학교 앞 식당에서 판다는 냉면이 굵은 면인지 가는 면인지를 물을 수도 있는 거잖아.

 

평소 상대를 저렇게 대한다면, ‘사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어필할 수 있는 멘트나 기술’을 백날 찾아봐야 소용없는 거야. 어느 자전거 동호회에, 모임 때마다 회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빠르게 달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고. 그는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것에 신경 쓰는 까닭에 늘 선두를 자처하며 가장 빨리 달려. 한 여성회원이 들어왔는데, 그는 그녀에게

 

“이건 산악용 타이어인데, 로드용으로 바꿔야 더 빨라질 거예요. 그리고 주말만 나오지 말고 수요일 저녁에도 모임 있으니까 나와서 타세요. 몸이 얼른 적응해야 뒤처지지 않죠.”

 

라는 이야기만 할 뿐이야. 그녀는 자전거 타는 게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계속 행렬에서 뒤처지지. 맨 뒤에는, 그 행렬의 끝에는 마지막 사람까지 챙기는 ‘경광봉을 든 안전봉사자’가 있어. 그 사람도 남자야. 그래서 그녀는 매번 그 봉사자 바로 앞에서 달려. 봉사자는 그녀의 상태를 계속 체크하고.

 

그녀가 자전거여행을 간다면 누구랑 갈 것 같아? 모임에서 가장 빠른 남자? 아니면 맨 끝에서 늘 같이 달리던 남자? 가끔

 

“둘 중에 더 잘 생긴 남자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난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아무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고 난 적어둘게. 서준씨가 무슨무슨 상을 받고 어느 모임의 대표가 되고 하는 것과는 상관 없이,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란 얘기야. 이게 안 되는 와중에 상대 SNS에 친구 등록해서 ‘좋아요’ 버튼 누르는 것으로 가까워지려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

 

상대에게 필요한 건 ‘사수’가 아니라 ‘동료’일 테니까, 지금처럼 상대를 서준씨 마음대로 낮은 곳에 둔 채 서준씨의 위치까지 끌어올려주겠다는 생각하지 말고, 동등하게 생각하면서 대해봐. 서준씨가 아는 것만 대단한 것이고 상대가 아는 건 별 볼 일 없는 게 아니잖아. 이게 안 되면 운이 좋아 연애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상대를 개조하려 들거나 지적하다가 끝날 수 있으니, 진지하게 꼭 고민해 볼 수 있길 권할게.

 

 

2. 모쏠 남자 대학생, 썸 타는 중입니다. 도와주세요.

 

안녕 정이씨. 정이씨 사연은 내가 5월 11일에 발행한 [여자후배가 연락하고 팔짱도 끼는데, 제게 관심 있는 걸까요?]라는 사연과 거의 같네. 여자 쪽에서 관심을 보이는 부분도 같고, 남자가 헛발질을 반복하는 것도 비슷해. 모쏠 특유의 경직이 보이는 지점도 같고 말이야.

 

“만났을 때, 지금 여자가 제 옆에서 걷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어색했습니다.”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는데, 같이 밥 먹고 나서 정이씨가 계산한 후

 

“다음번엔 네가 밥 사.”

 

라고 말한 건 헛발질이 분명해. 할 말이 별로 없으면 그냥 “응, 나도 덕분에 맛있게 먹었어.”정도로 대답해 주거나 한 번 웃으면 되는 거지, 어색하다고 해서 일부러 먼 사이인 척 할 필요는 없는 거거든.

 

“제가 모쏠이라 아무 것도 모르는데, 스킨십 같은 건 어떻게 하는 거죠?”

 

일단 좀 진정해. 정이씨는 지금 좀 많이 흥분한 상태야. 첫 연애가 막 시작할 것 같아 보이는 그 시점에 들뜨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한데, 빈속에 김칫국부터 들이키면 탈이 날 수가 있어. 이 관계에 들어온 불이 그린라이트인 건 90% 이상으로 확실한 일이니까, 나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와 정이씨가 지향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적도록 할게.

 

우선, 나라면 일단 말을 놓으라고 할 거야. 상대가 보내는 카톡을 보면 4월 중순 이후로 말을 놓으려는 시도가 계속 보이거든, 그런데 정이씨가 놓으라고 하지 않으니까 상대는 ‘선배 오빠’를 대하듯이 존대를 하고 있어. 곧 죽어도 존대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니 놓으라고 할 것 같아. 지금 관계에선 상대 혼자 존대를 하는 까닭에 존재하는 거리감이 있으니까.

 

그리고 난 카톡대화에서 전화통화로 조금씩 옮겨갈 거야. 특히 상대가 주말알바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라면, 무조건 전화를 하겠지. 늦은 밤인데다 귀갓길이니 구실도 좋잖아.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죠?”

 

꼭 주제가 있어야만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그냥 “배 안 고파?”라고 물어도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어. 배 안 고프냐고 물어 상대가 저녁 이후에 간식 먹었다고 하면, 무슨 간식 먹었냐고 물어볼 수 있는 거고, 알바 하는 곳에서 간식 자주 주냐고도 또 물을 수 있는 거고, 어떤 간식 나왔을 때 제일 좋냐고 물을 수도 있는 거고, 상대가 “오빠는요?”라고 물으면 이쪽에서 먹은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잖아. 상대가 먹었다는 간식이야기로 넘어가서 “나도 갑자기 그게 먹고 싶네.”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거고, 그 간식을 어디서 파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거고…. 이렇듯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 한 거야.

 

오히려 정이씨가 한 주제에 꽂혀버리면, 상대가 하는 얘기들에 소홀해질 수 있어. 예컨대 정이씨는 영화 보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연락했는데, 상대가 치과에 왔다는 대답을 했다고 해 봐. 그럼 정이씨는 “아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하고 말 수 있거든. 그러면 안 돼. 저런 상황이 되면 영화 얘기는 접어두고, 치과 얘기를 해. 또, 다음번에 만났을 때에도 치아는 괜찮은지를 한 번 물어. 이게 진짜 관심의 표현인 거야. 좋아한다면서 상대 사정으로 ‘내 계획’이 틀어졌다고 대화 뚝 끊고는 나중에 또 “영화 보러 갈래?”라고 묻는 게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말이야.

 

또, 앞서 소개한 매뉴얼에서도 이야기 한 부분인데, 당일에

 

“뭐해? 시간되면 밥 먹자!”

 

라고 말하지 마. 미리 약속을 잡아. 두 사람은 거의 아침저녁으로 매일 연락하니까, 자기 전 대화 나눌 때 약속을 잡으면 될 거야. 매일 같이 점심 먹기로 하곤 ‘다음 날 학생식당 메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해도 재미있을 거고.

 

하나 더. 최근엔 영화들이 시리즈로 나오는 게 많잖아. 그러면 후속편이 개봉하기 전에 일단 시리즈물은 거의 다 봐둬. 주말에 하루 날 잡으면 앞선 시리즈는 거의 다 볼 수 있거든. 상대가 좋아한다는 영화 개봉했는데 정이씨가 앞서 개봉한 것들은 안 봐서 흐지부지 되었잖아. 그럴 땐 “그거 주말에 다 볼 테니까, 3편은 극장에서 같이 보자.”라고 말하면 되는 거야. 1, 2편 보고 나서 그걸 또 구실 삼아 상대에게 연락하며 상기시켜 줘도 되는 거고. 이러면 되는 걸, 참 멋 없게 “아, 나 그거 안 봤어.”라고 말한 뒤 끝내지 마. 알았지?

 

스킨십 걱정은 사귀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는 거니까, 언제 어떻게 진도를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지금부터 너무 고민하지 마. 고백은 내가 매뉴얼에서 말한 대로 ‘30분 이상 통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 때’하면 되는 거니까, 그것도 너무 고민하지 말고. 지금은 상대가 먼저 전화해도 정이씨가 버벅대다가 끊고 마는 상황이니까, 그걸 먼저 극복해 보자고.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카톡으로 연락 매일하고 있는데, 이래도 되나요?”라며 불안해하지 말고, 어설픈 건 어설픈 대로 보여주자고. 그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거니까. 상대가 좋아한다는 장르의 영화가 최근 쏟아지듯 개봉하고 있으니까, 만나서 재미있게 영화 보며 논다는 생각으로 만나 봐.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주말에 마무리했어야 하는 원고를 아직 마치지 못해 오늘 배웅글은 생략하고 여기서 마무리할까 한다. 다들 즐거운 월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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