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양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남친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물론 난 S양이 작성한 사연을 읽은 까닭에 S양 쪽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울기는 하지만, 내가 S양 남친의 입장에 있었다면 무슨 수를 쓰든 ‘S양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분명 답답함을 느끼긴 했을 것 같다.
난 사실 S양이 보낸 사연의 제목만 보곤, 이게 ‘혼전순결’과 관련된 사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열어보니 그런 건 아니었고, 남친을 신뢰하기 어려운 문제와 더불어 그 밖의 몇몇 이유들로 S양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혼자 정해놓은 원칙을 지키다가 벌어진 갈등이었다.
S양은 그와 사귀기 이전 그가 다른 사람과 두 번 연애하는 것을 보았고, 그 중 한 번에 대해서는 그가 짧게 만나본 거라며 ‘연애’로 카운팅 하지 않는 걸 보기도 했다. 게다가 성관계에 대해서는 비밀스럽고 진중하게 생각하는 S양과 달리 그와 그의 친구들은 ‘여친과의 스킨십 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타입이었고, 연애 중 그가 S양을 내버려둔 채 남자 둘 여자 둘이 가는 여행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도 S양은 불쾌하게 생각했다.
남친이 S양에게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도 못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S양도 그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S양은
‘이런 상황에서 하고 싶다는 걸 다 해주면, 결국 상처받는 건 나일 거야.’
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그런 생각은 ‘남친이 관계를 갖길 원할 때 거부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두 사람이 이것에 대해 대화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결론은 S양이
“난 성관계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난 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해서 너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뿐이었다.
S양은 이 문제에 대해 “제가 표현을 잘못한 것인지….”라고 내게 물었는데, 난 표현방식보다는 상대에 대한 낮은 신뢰와 ‘다른 핑계 대기’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S양은 상대가 하자는 걸 다 하고 나면 나중에 헤어졌을 때 상처받는 게 본인일 거라 생각해 피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불신과 의심 때문에 관계를 갖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난 안 해도 되는데, 넌 왜 자꾸 하려고 하냐. 난 안 한다고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만 하니, 상대는 S양과 2년 가까이 만나며 결정적인 순간에 그렇게 맥을 끊고 마는 것에 약이 올랐을 수 있다. 분명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주며 “안 하면 마음이 변하는 거냐.”라는 이야기만 하니 불가능한 타협에 답답함은 축적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성관계와 관련된 다른 부분들에서도 S양은 좀 방어적이며, 대화에 제대로 집중해 답을 구하진 않고 혼자 상대의 반응을 보며 답을 내려버리곤 한다. “알겠어 잘자.”,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알겠어.” 등의 멘트로 맥을 끊기 마련이며, 자신의 진심은 완전히 숨겨둔 채 상대의 마음만을 알아보려고 한다. 다시 성관계와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와 말하자면, S양이 관계를 피하는 것에 대해 남친이 대화를 시도했을 때에도 S양은
“헤어질까? 너 너무 힘드니까? 다른 여자 만나면 이럴 일도 없을 거야.”
라고 말했다. 물론 저게 저 말을 부정해주길 바라며 꺼낸 말이라는 걸 난 알고 있지만, 남친의 입장에서 보자면 2년간 그렇게 맞춰온 대가가 ‘힘들면 헤어지자.’라는 결론이라는 것에 ‘지금 장난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가 진심이냐고 거듭 물었을 때에도 S양은 “응.”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는가. 상대가 재차 ‘헤어지는 게 우리에게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에도, S양은 그게 더 나을 것 같다며 거듭 이별하겠다는 뜻을 확인시켜줬고 말이다.
S양은 혹 자신이 잘못한 거라면 다시 상대에게 연락해 재회를 할 생각이 있다고 했는데, 난 그러길 권하고 싶지 않다. S양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건 맞지만, 상대가 비교와 협박의 방법을 사용해 S양의 태도를 바꾸려고 했다는 지점에서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이제 S양이 재회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네가 하자는 대로 할 테니 다시 만나자’는 카드를 사용하는 건데, 그렇게 해서 이미 깨져버린 마음을 붙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다, 자칫하면 S양이 가장 염려하던 ‘나만 상처 받는 일’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에 그 카드는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중 일이 걱정되는 까닭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제어해야 하는 일이 없는, 그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연애하길 난 권하고 싶다. 더불어 S양은 자꾸만 연애를 계산하려 드는데, 누가 더 내고 덜 내고, 또는 누가 손해고 누가 이익인지를 너무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상대가 밥 사면 S양이 커피라도, 또는 상대가 저번에 샀으면 이번엔 꼭 S양이 사는 걸로, 아니면 S양이 사야 하는 차례인데 상대가 사면 계좌로 돈 입금해주는 걸로 엄격하게 따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렇게 너무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누지 말고, ‘우리’라는 이름 아래 좀 섞이는 느낌으로 만나봤으면 한다. 아무 것도 섞인 게 없는 그런 관계는 겉으로 보긴 깔끔하긴 하겠지만, 지금처럼 말 한 마디로 헤어지고 이후 연락한 통 없을 정도로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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