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읽다가 계속 턱턱 걸려서 내가 이것부터 딱 말해줌. 주형씨, ‘내가’를 높여 쓰려면 ‘제가’라고 쓰는 게 맞아. ‘내’의 높임말을 ‘재’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저’라고 생각해야 해. ‘제가’가 맞는 거야. 꼭 맞는 그 자리라는 말도 ‘재자리’가 아니라 ‘제자리’가 맞아. ‘ㅐ’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어서 자꾸 ‘ㅔ’를 ‘ㅐ’로 쓰는 게 아니라면, ‘ㅔ’를 쓰는 것에 막 자존심이 상하고 너무 싫은 게 아니라면, 이건 고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하튼 그건 그렇고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면, 가장 큰 문제는 주형씨가 ‘금사빠’라는 거야. 주형씨는 이성이 주형씨의 얘기에 웃어주면
‘내 얘기에 웃었어. 나한테 호감이 있다는 건가? 이제 내가 고백해서 사귀기만 하면 되는 거?’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이성이 먼저 주형씨에게 부탁이라도 하면, 주형씨는 그걸
‘나한테 부탁했어! 뭐야 이거 의도가 뭐지? 나에게 마음이 있으며 날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거잖아. 드디어 연애 시작인 건가?’
라며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통의 경우 그런 건 그냥 알고 지내거나, 아니면 같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 말이야. 그래버리면, 머리 자르러 가거나 피부 관리 받으러 갔다가도 사교적인 성향의 헤어디자이너나 피부관리사에게 십중팔구 대시하게 될 거야. 그들은 그냥 직업상의 서비스로 이것저것 묻고 웃어준 건데, 주형씨는 그걸 전부 ‘이성으로서의 관심’으로 받아들일 테니까 말이야.
두 번째 문제는, 그런 ‘착각’을 하는 것만큼이나 ‘기대와 실망’을 하는 것도 빠르다는 거야. 이건 착각을 했다가 실제로는 그게 아님을 발견하게 되는 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번에 호감을 느낀 그녀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도 한 번 봐봐.
“제 책상이 사무실 정문 쪽에 있거든요. 그래서 그녀가 문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제 앞으로 왔다갔다해서 거기에 의미부여를 좀 했었는데….”
문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리로 다녀야하는 거잖아. 안 그러면 어떡해? 일부러 막 주형씨 자리 피해서 사무실 바깥쪽으로 빙 돌아가? 요즘은 주형씨가 좋아한다는 걸 눈치 채서인지 일부러 먼 후문쪽으로 다닌다고? 그건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주형씨가 부담스럽게 눈에서 레이저 쏘며 훑어보니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걸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지 마. 난 주형씨가 여린 마음인 까닭에 그렇게 관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는 거 아는데, 그게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엔 음흉하고 이상해 보일 수 있어. 게다가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 상상연애하고 이것저것 점쳐보는 일이 많아지면, 나중에 상대는 알아듣지도 못할 괴상한 선문답 같은 걸 하며 떠보는 일로 이어질 위험도 있어.
남자 –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나만의 오해였나요.
여자 – 뭐야 이 사람 무서워.
대략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거야. 주형씨가 처음 느낀 상대의 눈빛은 주형씨만의 오해인 게 맞아.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으면 인사부터 하거나, 말을 한 마디 더 해. 단, 대화를 할 경우 막 계획을 짜가며 상대를 어떻게 유도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해. 춥지 않냐, 커피 마시냐, 여행 재미있었냐, 초콜릿 만들기 어렵냐, 뭐 이런 거 물어보라고.
주형씨의 세 번째 문제가 바로 저거거든. 멘트를 혼자 너무 짜. 그렇게 열심히 짜서 괜찮은 멘트가 나오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그게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이야.
“아, 기브앤테이크라고나 할까요?”
저런 거 낮에 읽어보면 막 오글거리고 그러지 않아? 또, 주형씨가 상대 업무를 살짝 도와줬을 때 상대가 예의상 고맙다고 하자, 주형씨는
“고맙다면 나중에 맛난 거라도…. ㅋㅋㅋ”
라고 했잖아. 저런 게 좀 심해. 주형씨가 머리를 굴려가며 짠 멘트라는 게, 음흉하고 능청스러운 오십대 아저씨의 멘트 같잖아. 그러니까 뭘 자꾸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친구랑 대화하듯이 해봐. 이거 영화나 연극 아니고, 소설이나 만화도 아니야. 그냥 최대한 현실적으로, 주형씨가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사용하는 말들로 대화를 해봐.
끝으로 하나 더. 이것도 위에서 한 이야기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상대에게 뭔가를 받아서 보답으로 기프티콘 같은 걸 보낼 거면 그냥 보내고 나서 “이러이러해서 보냅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면 돼. 보통 다들 그렇게 하잖아. 그런데 주형씨는
“기프티콘만 보내고 아무 말도 안 할까 싶습니다. 그러면 뜬금없는 기프티콘 때문에 그녀에겐 궁금증이 유발될 거고, 제게 왜 기프티콘을 보냈냐고 물으면, 그제야 대답해줄까 했습니다.”
라면서 자꾸 또 이상한 계획 같은 걸 짠단 말이야. 이러니까 당연히 상대는 연락을 텄다가도 대화하기 싫어지는 거고, 점점 피하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철벽까지 치게 되는 거야. 이상하고 무서우니까.
정상적으로 다가가도 돼. 그냥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멘트를 하더라도 젠틀한 모습 보여줄 수 있어. 주형씨는 현재 뭐가 되기도 전에 혼자 상대와의 마음 맞춰보려 하고, 상대가 주형씨에게 호감을 느껴서 100% 긍정의 태도와 리액션을 보여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거니까, 뒤에 숨어서 그런 거 맞춰보려 하지 말고 앞에 나서서 친해져. ‘좋은 동료, 말이 통하는 동료’로 시작할 수도 있는 걸, 주형씨는 입은 닫은 채 눈만 굴리며 혼자 속으로 기대하고 실망하다 망치고 말잖아. 눈이 마주쳤는데 상대가 얼른 피했다고 해서
‘뭐지? 기분이 안 좋은가 나 때문에 그런가?’
라며 부정적인 생각의 방으로 들어가지 말고, 그 방을 폐쇄해. 그러고는 밝은 곳에서 상대의 얼굴을 보며 대화해. 고백이 무슨 출산도 아닌데 아홉 달 기다렸다가 고백하겠다 뭐 그런 거 하지 말고, 반갑게 인사부터 해. 잊지 마. 말을 거는 것도 아니면서 쳐다보기만 하고,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되면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무섭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짓은 그만 두고, 날씨 얘기부터 해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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