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경부터 연달아 자신의 썸과 연애를 중계하고 있는 남성대원이 셋 있다. 이들의 사연은 모두 연애매뉴얼을 통해 발행된 적 있는데, 그 이후로 계속 후기나 단편적인 소식을 내게 전하는 중이다. 일부분만 적힌 이야기들이기에 매뉴얼로 발행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두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조각들을 모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썸도 짝사랑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그들의 문제, 함께 살펴보자.
1.‘좋은 오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
‘좋은 오빠’, 또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그대를 밋밋하게 만들 수 있다. 뭐 하고 싶냐고 물어 해달라는 거 다 해주려는 태도는 그대를 ‘자원봉사자’처럼 보이게 할 수 있으며, 맹목적으로 동의해주고 공감해주는 태도는 그대를 ‘맞장구 로봇’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겠지?’하는 생각으로 무조건 베풀려고만 하는 건, 그것으로 인해 상대도 호감을 품게 될 거란 이쪽의 기대와 달리, 상황을 이상하게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하자. 상대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해서 그 즉시 기사역할을 도맡으려 하며, 선물 사서 건네고, 상대가 바랄만한 것들을 모두 다 해주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래버리면 상대에게 호의와 배려에 대한 면역이 생겨 나중엔 어디로 데리러 와라, 대신 뭘 좀 해줘라 하는 이야기만 할 수 있으며, 못된 상대를 만날 경우 상대는 부탁과 요구만 늘어놓으며 그대를 이용하려 들 수 있다.
상대가 아주 보통의, 사양지심을 아는 사람이라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그대가 ‘하나의 사람’임을 보여주기보단 ‘다 해주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한 나머지, 상대에겐 그 자체가 그냥 부담스럽거나 ‘양보 경쟁’, ‘배려 품앗이’를 해야 하는 사이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그대는 사귀게 될 경우 어쩌면 길게는 평생을, 짧다고 해도 몇 달은 봐야 하는 책과 같은데, 책 내용은 별로 없고 그냥 사은품만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 수 있겠다.
관계를 만드는 ‘바람직하며 지속 가능한 방법’은, ‘상대만’ 즐겁게 하려 할 게 아니라 ‘나도 함께’ 즐거운 일들을 같이 하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오로지 상대의 즐거움만을 위할 경우 그대는 ‘잘 베푸는 남자’란 의미를 넘어서지 못할 수 있으며, 운이 좋아 사귀게 되더라도 상대는 ‘이제 연인이 되었으니 내게 더 큰 호의와 배려를 베풀겠지?’하는 생각만 할 수 있다. 이쪽이 바라는 건 그렇게 구애해 연애를 시작하면 서로를 아끼며 위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었는데, 상대는 전혀 다른 의미로의 연애를 생각할 수 있단 얘기다. 그러니 지금처럼 사은품만 앞세워 열심히 들이대며, 그걸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이라 생각하진 말자.
2.메뉴판 주곤, 주문 받으려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
매일, 하루 두세 번씩 연락해도 된다. 난 가끔 상대와 썸 타는 중에 있으면서도 막 3일에 겨우 한 번 연락한다는 대원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썸 타면서
‘무소식이 희소식, 달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
하고 있으면 끝장이다. 직거래 장터에서 물건 하나 사려 할 때에도 경쟁자가 있으면 품절될 수 있으니 판매자에게 급히 연락해 얼른 구입의사를 밝히는 법인데, 인연이 닿은 상대를 그렇게 가만 내버려두고 있어선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저 위에서 이야기 한 것과 이어서 말하자면,
“부담 갖지 마시고, 제가 태워다 드릴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한 후, ‘메뉴판 주고 손님이 주문하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보통 젠틀하긴 하지만 이성과 ‘사무적인 관계’이상의 관계를 만들어 보지 못한 대원들이 주로 이런 일을 벌이곤 하는데, 이렇듯 먼저 다가갈 생각을 하기 보단 상대에게 언제든 날 찾아오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기억해두자.
더불어 중요한 건, ‘상대와 만날 약속’을 잡는 것보다 ‘만나서 할 이야기들 중 1절을 평소에 풀어 놓고, 만나서는 2절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것도 기억해뒀으면 한다. 그게 안 될 경우 아무리 열심히 약속을 잡아 만나봐야 매번 처음 만나는 듯한 낯섦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안부인사로 시작해 겉만 핥는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네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느 정도까지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건지도 솔직히 모르겠고,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묻기도 힘드네요.”
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대원들이 있는데, 대략 ‘상대의 굵직한 일과와 앞에 놓인 이벤트 등을 알 정도’가 되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다만, 다짜고짜 묻거나 오로지 상대에 대해서만 물으면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니, 자신의 이야기도 살짝살짝 흘려가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끌길 권한다.
3.잘 되는데도, 뒤를 좇으며 계속 묻거나 확인하려는 태도
인연이 닿고 둘의 관계가 썸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해서, 얼른 풍덩 빠져 그 관계에 올인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 기대를 하는 건 마치 어제 묘목을 심어 놓고는 오늘 거기 기대거나 열매를 맺었나 보려는 태도와 같기에, 큰 기대는 큰 실망으로 치환되기 마련이며 상대에겐 그게 집착이나 과한 요구로 느껴질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 시작하며, 상대도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만 갖자. 그러면서 가까워지면 되는 건데, 안타깝게도 몇몇 남성대원들의 경우 ‘사랑’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건 달리 보면 첫 술에 배불렀으면 하는 욕심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신이 만든 이미지에 열심히 구애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얼른 상대가 날 ‘사랑’해주길 바라며 나와의 관계를 가장 특별하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자꾸 확인하려 드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남성대원의 경우, 지난 저녁 만남에서 상대와 손을 잡고는 다음 날 상대에게
“어제 나와 손을 잡은 건 무슨 의미였는지?”
하며 묻기도 했는데, 그 질문에 상대가 긍정의 대답을 한다고 해서 앞으로 사랑이 약속되고 보장되는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상대가 발을 잡았다면 물어볼만 하지만(응?), 손잡은 건 그냥 손잡은 걸로 치는 게 좋다.
당장은 좀 모자란 듯해도 천천히 채워 가면 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의미가 되는 거고 거듭된 확인으로 확신을 갖게 되는 거지, 이 순간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완벽하게 일치하며 아무 것도 돌아보지 않고 서로만을 마주보길 원하는 건 그냥 연애나 사랑에 대한 판타지일 뿐임을 기억하자.
지금까지 이야기한 유형의 남자들은, 주변의 이성들로부터
“오빠 같은 사람이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하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성들도 막상 대시를 하면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느니, 아는 오빠로서는 좋지만 남자친구로서는 잘 모르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하며, 그녀들은 이쪽이 썸을 타며 하는 위와 같은 헛발질들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까닭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시간 이후로는, 상대를 멀리 둔 채 지내다 어떠한 계기가 생겨 일순간 가까워지길 희망하지만 말고, 하루에 1cm씩 친해져 점점 더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으로 다가가 보자. 맹목적으로 좋은 말만 해주려 하거나 꼭 뭔가를 베풀며 다가가지 않더라도, 그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상대와의 대화나 만남을 즐겁게 여기다 보면, 어느 순간 이쪽은 상대에게 ‘대체 불가능한 한 사람’이 될 것이며 둘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상대의 뒤에서 상대를 바라보며 어쩌다 불러 돌아보게 하려들지 말고, 옆으로 다가서서 함께 걸어보자.
▼이 사람들 진짜 착하고 순수하고 괜찮은 사람들인데, 집이 아니라 대지인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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