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인연을 찾는 대원들은 대개 ‘이 분, 배우신 분’이며, 때문에 아는 거 많고, 사회에서 탄탄히 자리 잡은 사람들 특유의 자신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지적 시점에서 강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개성이 섞인 문제로 쓰인 사연신청서를 읽는 맛이 있으며, 그들은 내가 아직 못 먹어본 것들을 먹으러 다니는 까닭에 난 사연을 읽다가
‘이런 거 파는 곳도 있구나. 나중에 나도 저기 가서 먹어봐야지.’
하며 소심하게 메모를 하기도 한다.
또 난 엄마가 관리비 내고 오라고 고지서 같은 것만 주는데 저 대원들은 엄마가 외제차를 사줬다고 하는 부분을 읽으며 자괴감 들고 괴롭기도 하지만, 뭐 이건 내가 좀 더 우리 어머니께 분발할 것을 요청 드리면 되는 일이니 접어두기로 하자. 여하튼 그건 그렇고, 이런 매력적인 대원들이 연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 오늘 함께 살펴보자.
1.‘하아…, 요것 봐라?’의 문제
많이 배우고, 아는 거 많고, 또 사회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것까진 좋은데, 그래서인지 자신을 항상 중심에 놓고는 전지적 시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사선생님’인 상대를
-치마폭에서 어려움 없이 살다 의사가 된 강남키드
정도로만 보는 거라고 할까.
뭐, 속으로는 한 번 쯤 할 수 있는 생각이며 상대를 얕잡아본다면 그럴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명문 의대를 나와 전문직을 가진 상대가 그렇게 단순하며 애 같을 순 없지 않겠는가. 종종 난 이렇게 상대를
-공부만 하던 사람이니 세상 물정도 잘 모를 것.
-친구들도 가끔 어울려 포커 정도 치며 노는 강남키드들.
-이과출신이라 그런지 일부러 인문학 얘기 더 하고 그러는데, 귀여움.
정도로 얕잡아 보는 대원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아니, 이쪽이 무슨 담임선생님이고 상대가 그 반 학생인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아무튼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품은 채 상대를 대할 경우, 상대 역시 바보가 아닌 까닭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직감하기 마련이다. 또, 겉으로는 미소 지으며 속으로 상대를 내려다보는 마음을 감추고 있을 경우, 이쪽은 ‘그냥 어떤 여자라도 다 그럴 만 한 흔한 리액션’ 같은 것만 반복하게 되는 까닭에 ‘흔한 여자’로 보일 수 있고 말이다.
이게 꼭 상대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사람이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이전의 연애에서도 이쪽은 ‘여주인공’의 자리가 아닌 ‘감독’의 자리에만 앉으려 했기 때문인 경우도 많은데, 이래버리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대신 그만큼 인간적인 친밀함도 만들기 어렵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2.주간 ‘내 소개팅 소식지’ 발행의 문제
그러니까 내게 사연을 보낼 때에도
“편의상 이 남자를 다육이라고 하겠습니다. 건조하게 사는 남자라 제가 친구들한테 말할 때 이 남자를 다육이라고 불러요. 다육식물 ㅋㅋㅋ”
라며 흥에 겨워하는 대원들이 몇몇 있는데, 그렇게 연애를 할 생각보다 자꾸 시트콤 연출할 욕심만 더 부리면 연애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 연앤데 내가 집중은 안 하고 친구들에게
“논현 도착. 지금 다육이 물 마신다 ㅋㅋㅋㅋ”
하고 있으면, 친구들의
“야, 주간 <다육이> 너무 재밌어. 이거 책으로 내 ㅋㅋㅋ”
라는 반응은 얻을 수 있겠지만 다육이는 진짜 그냥 화분에만 남을 수 있다.
깊은 관계는 오로지 동성친구들과만 맺고, 이성과 사무적으로는 잘 지내지만 어쨌든 이방인으로 둘 뿐인 대원들이 주로 저런 일을 벌인다. 동성친구들과만 ‘우리 편’이 된 채, 이방인인 이성에 대한 관찰일지를 써서 친구들과 공유하며 만나보는 거라 할까. 친구들이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주거나 응원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에 힘입어 상대와 잘 해보려하기보다는 이성을 더 세심하게 관찰한 뒤 친구들에게 얘기를 들려줄 것에 열중하는 까닭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난 이런 대원들에게, ‘상대도 우리 편’으로 생각하길 권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친구랑 더 오래 알고 현재 더 친해도,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연인과 또 다른 형태로 더 친해지며 친구에게 못해도 연인에게는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될 경우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기 힘들어지며, 동시에 내 진짜 속 얘기 역시 다른 곳에다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 결혼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그럴 경우 그건 그저 남편을 ‘남의 편’으로만 두고 속앓이를 하는 생활의 연속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자.
3.‘온화한 치료사’가 되려는 문제.
본인은 결혼정보회사 이용할 생각 없었는데 엄마가 막 나서서 등록도 하고 등 떠밀고 해서 나간 사례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는 여성대원들은 그게 합리적일 수 있으며 기회를 그런 형태로도 만들어 볼 수 있단 생각으로 등록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연애학’과 관련해서는 다들 학사 정도는 기본으로 갖춘 레벨이며, 일부 여성대원은 첫 연락 3분 만에 상대와의 백년해로 가능성까지를 미리 다 점쳐보곤 시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능력까지를 갖추기도 했다. 어떻게 갈고 닦았길래 그런 것까지 다 ‘촉’으로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첫 만남에 상대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내게 마음이 있다, 없다까지를 감지하는 촉을 가진 대원도 있고 말이다.
뭐, 무엇이 어찌되었든 그렇더라도 연애하는데 무리가 없으면 문제없는 건데, 안타깝게도 혼자 너무 깊이 들어가 해석하거나 이론에다 현실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사례가 종종 벌어지곤 한다.
내게 마음이 없는 남자 = 회피형 인간이라 마음을 잘 못 여는 것
같은 오진을 내리는 거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저 ‘회피형 인간’이라는 말이 유행인지 상대가 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죄다 저 혐의를 씌우곤 하던데, 대부분의 경우 사연을 보면 그냥 상대의 마음이 식었다든지, 뭔가에 실망해 정이 떨어졌다든지, 아니면 원래 딱 그 정도의 마음만 할애하기로 하고 만났다든지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진을 하고는
‘회피형 남자에게는 묻거나 따지지 말고, 일단 이해하며 다 받아주고 기다리라고 하던데….’
하며 혼자 연애 가장이 되거나 우렁각시를 넘어선 우렁이가 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오빠는 회피형에 가까워. 그러니 이러이러한 부분들을 좀 더 노력해 보자. 나도 그런 오빠를 이해할 수 있게 노력해 볼게.”
하며 이상한 치료사가 되려 노력하는 경우도 있고, 온화한 치료사의 입장에서 일단 상대를 깊이 이해하겠다며 상대 소개팅 하고 온 얘기까지를 다 듣고 있는 경우도 있다.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는 이유가, 오늘날 이 시점에 내 주변에 나만큼 반짝이는 사람도 없고 내 매력을 십분 이해하는 사람도 찾기 힘드니 거길 통해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거지, 리스트에 올라온 사람 수집해 정비하고 치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상대가 누구든 그와의 관계에서 내가 즐겁지도 않고, 내가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런 관계를 이어가는 건 그저 고행일 수 있다.
또, 상대가 뜬금없이 솔직하게 말하겠다며 “난 솔직히 몸매 본다. 그래서 연애하더라도 연인이 긴장의 끈 놓는 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거기다 대고 “그러냐. 난 됨됨이를 본다. 지가 심사위원인 것처럼 평가기준만 읊진 않는지를 본다.”정도의 얘기를 해주는 게 낫다. 근자감으로 똘똘 뭉친 상대의 평가기준을 다 듣고 와선 오늘 저녁부터 밥을 굶을 게 아니라 말이다. 즐거움이란 찾기 힘들며 그저 의무와 규율만 늘어가는, 그런 괴상한 관계는 최대한 지양하길 권한다.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이니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기로 하는 것’이란 의미가 깔려있을 순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단 만나보며 ‘이 사람이 결혼상대로 괜찮은 사람인지?’를 다들 살펴본다는 얘길 해주고 싶다. 아직 서로의 신발사이즈도 모르는 사이인데 상대와 상대 집안의 조건만 보고 얼추 레벨이 맞는다고 그냥 막 날짜 잡히는 게 아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는 거라고 해서, 서로를 알아갈 노력을 안 해도 좋다거나 상대와 조율하는 과정을 생략해도 되는 것 역시 절대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만 글을 써놓으면 또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이상한 남자’들이 더 많은데 왜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거냐고 할 수 있는데, 그건 나중에 또 정리해 유형별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자 그럼 오늘은 <도시어부> 하는 날이라 얼른 본방사수 준비해야 하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우린 내일 다시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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