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낚시는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포천 어딘가에서 하는 송어축제장에 간 것이었는데, 축제장에서 송어를 잡은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채 철수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내 기억 속 송어축제는
송어축제 = 송어 낚으려는 사람들을 낚는 축제
로 각인되어 있다.
당시 축제장에선 송어 미끼로 빙어를 몇 마리 줬는데, 송어가 하도 안 잡히자 친구들이
“빙어 이거, 송어 미끼로 쓸 게 아니라 그냥 우리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내가 대표로 살아있는 빙어를 먹기로 했는데, 한 번 씹어 빙어 부레 터지는 소리가 들리자 친구들이 야유하며 야만인 취급을 하기도 했다. 아니, 먹어 보자며? 난 빈정 상해서 안 먹고 뱉었다.
여하튼 그래서 장난감 같은 견지낚싯대 가지고 고패질이나 하는 송어낚시는 이제 더 이상 안 가려고 했는데, 정식 송어루어대로 송어를 잡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주 직천저수지, 또는 파주 직천낚시터라고도 불리는 곳인데, 거기서 그물을 쳐 일정구간을 막아두곤 송어를 방류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입어료(입장료)는 3만원. 플라이낚시나 루어낚시 가능. 일반적으로 낚시터에서 운영하는 송어낚시는 손맛만 보고 놓아주거나 1인 송어 반출 3마리의 제한을 두기 마련인데, 이곳은 잡은 송어를 전부 가져갈 수 있는 무제한 잡이터였다.
난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물어봤는데, 좀 이상한 점이 하나 있긴 했다. 일반적으로 송어낚시터나 송어축제장에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루 두세 차례 송어를 방류한다. 때문에 흔히 ‘방류빨(방류 직후 송어가 잘 잡히는 것)’을 받기 마련인데, 이곳에 전화를 걸었을 땐
무한 - 사장님, 송어 방류 시간도 좀 알 수 있을까요?
사장님 - 방류 시간이요?
무한 - 네, 송어 방류하시는 시간이요.
사장님 - 밤에 해요.
무한 - 네?
사장님 - 밤에 우리가…, 방류해요.
무한 - 아…, 밤에요….
사장님 - 그 날 사람들이 얼마만큼 잡아갔는지 우리가 아니까, 그만큼 밤에 방류를 해요. 깔린 고기도 있고, 거기다 우리가 사람들이 잡아간 것만큼 채워 넣는 거지.
무한 - 네…, 알겠습니다.
하는 대답을 들었다. 전화만 했을 뿐인데도 뭔가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남자라면 낙장불입. 이미 송어 낚시 전용 낚싯대까지 구입한 뒤였다.
사실 금요일에 가려고 했던 송어낚시였는데, 그 날 파주의 기온이 영하 12.7도까지 떨어졌다. 그런 날 나갔다간 낚싯대 가이드가 전부 얼 수 있으니 패스. 이틀 지나 날이 좀 풀린 일요일, 1인 3만원이니 세 마리만 잡아도 본전은 뽑는 것이란 생각을 장착한 채 직천저수지로 향했다.
직천저수지 도착. 일단 돈을 내고 낚시를 시작해도 괜찮은지를 알아보기 위해 관찰을 시작했다. 저곳에 들어갔어도, 낚싯대를 펴지 않고 둘러보는 건 무료다. 십여 분 지켜봤는데, 잡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십여 분을 더 고민했다. 눈앞에서 꽝치고 있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으면서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꽤 오랜 시간 잡고 계신 듯한 조사님께 여쭤보니,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목격한 ‘사람들이 잡은 송어’는 대략 열 마리. 얼핏 봐도 사람이 스무 명은 넘는데, 잡힌 송어는 열 마리….
하지만 난 방조제에서 사람들이 꽝치고 있을 때 우럭을 건져 올렸던 사람 아닌가! 꾼의 자존심을 발휘해 ‘내가 뭔가를 보여주지’라며 입장권을 끊었다.
원래 꾼은, 남들이 기피하는 곳에서도 기적처럼 고기를 낚아내는 법이다. 그래서 뭔가를 보여주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왔더니 물 위에 얼음이…. 이건 물리적으로 낚시가 불가능한 자리니 패스했다.
부교 좌측으로 이동. 이곳 역시 사람들이 없다. 물속에 수초가 많이 보이긴 하지만, 원래 물고기란 수초 부근에서 노니는 것 아닌가. 이런 곳에 웜을 던져 넣으면, 수초 사이에서 놀던 고기들이 날벌레가 수면에 떨어진 줄 알고 덥석 물기 마련이다.
힘차게 캐스팅.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남들이 기피하던 이곳에서 내가 고기를 잡으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곳으로 몰려들겠지. 발판 편한 곳만 찾던 자신들과 달리, 이런 험난한 상황에서도 송어를 낚아 올리는 걸 보며 내 액션에 주목하겠지. 그럼 난 꽝만 치던 사람들과 달리 오자마자 송어를 잡아내니 어깨에 힘 빡 들어가고, 이런 일은 늘 있어왔다는 듯 태연하게 송어 입에서 바늘이나 빼주면 되겠지. 좋았어!’
응, 아니야. 던지는 족족 수초에 걸려 릴 한 번 제대로 감아보지도 못하고 포기.
역시 사람은 대세를 따라야 한다. 낚시터에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부교로 옮겨, 겸손한 자세로 던지고, 감고, 던지고, 감고를 반복했다.
부교로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 있던 조사님이 낚아낸 송어. 낚시터 사장님이 오후 2시부터 송어 입질이 좋아질 거라고 했는데, 진짜 오후 2시부터 여기저기서 송어를 낚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사장님이랑 송어들, 따로 하는 단톡방 같은 게 있나?
사람들이 꾸준히 송어를 낚아내는 부교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난 남들이 잡는 포인트로 슬금슬금 옮기기 보다는 꽝치더라도 내가 선정한 포인트를 지키는 타입인데, 오늘 이러다 진짜 돈 내고 들어온 유료터에서 꽝 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와 신속하게 자리를 옮겼다.
우측에 있던 다른 조사님도 송어를 낚아낸다. 나만 빼고 양 옆의 조사님들이 송어를 낚아내고 있는 상황. 왜? 뭔데? 왜 내 것만 안 물어? 뭐가 문제인 거야?
고기가 안 잡히면 늘 그렇듯,
‘루어 색깔이 송어에게 어필을 못 하나? 지그헤드가 너무 가벼운가? 라인이 너무 두꺼운가? 러버지그를 썼어야 하나? 릴링이 너무 빠르거나 느린가? 내 액션이 틀렸나? 지금이라도 근처 낚시가게 검색해서 스푼을 사올까? 옆 사람처럼 마커채비를 했어야 하나? 조지아를 마시면 낚시를 조진다는 속설이 있던데 그래서 그런가? 스타벅스 더블샷을 마셨어야 두 마리 낚는 거였나….’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는 와중에 좌측 조사님이 또 한 마리 낚아 올린다. 거 송어형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그 분 바늘이랑 내 바늘이랑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그것만 무는 건 좀 너무 한 거 아니요.
다른 낚시터에서는 송어를 그렇게 잘 유혹했다면서 왜 여기선 힘을 못 쓰니…. 좀 더 살아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란 말이야. 발연기를 하는 웜들에게 새로 주문을 하며 다시 투입해 본다.
송어 겟!
“오오, 무한님 잡으셨나요?”
나 말고, 옆 사람. 송어가 날 쳐다보며
“아, 옆 바늘이 그쪽 것이었습니까? 핑크색 웜 가짜인 거 다 티 나더군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송어낚시 왔다가 송어 사진 한 장 제대로 건지고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옆 조사님께 부탁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 내 자존심….
다시 뒤로 돌아 던져본다. 제발 진짜 한 마리만이라도….
역시나 뒤로 돈다고 해서 고기가 잡히는 건 아니었다. 해가 산에 가려 그늘이 지자 으슬으슬 떨려왔고, 몇몇 사람들은 차에서 통을 챙겨와 고기를 담으며 철수 준비를 했다. 유료터에 와서 꽝 치고 가야한다는 게 실화인 것일까. 여기 오기 전까지 일본 송어낚시 명인 동영상보며 수백 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데….
사무실로 가선, 송어를 잡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쓰는 채비를 몇 가지 구입하기로 했다. 사실 이건 흔하게 일어나는 일로, 집에서 열심히 준비해 간 채비가 현지와 맞지 않는 경우가 꽤 많다. 난 이번에 웜만을 고집했는데, 현장에서 송어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 파워베이트 도우(떡밥형 인조미끼)를 쓰고 있기에 그걸 바늘에 좀 바르기로 했다.
채비 사서 나오는데 그 와중에 송어 낚아 들고 가시는 분.
파워베이트. 만 원 주고 구입했다.
“저 뒤에 뭐가 또 많은데, 그건 뭔가요?”
송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던 결과물이다. 저렇게 철저히 준비했는데 입질 한 번 안 주는 너란 송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물면, 진짜 그건 좀 너무한 거다. 그런데 안 물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왜지? 아니야, 내 채비에 자신을 가져야지. 내가 내 채비를 믿을 때 비로소 웜과 나는 하나. 혼이 실린 액션이 나온다. 입맛을 돋우는 액션을 해야 한다. 난 지금 웜이다. 난 헤엄치고 있다. 저 뒤에 송어가 날 보고 있을 거다. 좀 더 경쾌하게 움직이며 중간중간 점프도 해야 한다. 와라, 와라….
그라취! 드디어 내 인생 첫 송어! 막 꾹꾹 물속으로 박히는 입질에 감성돔인 줄. 아, 나 아직 감성돔 잡아본 적 없지….
생각보다 약하게 느껴지는 녀석의 힘에 잠시 ‘혹시, 송어가 아니라 다른 고기인가?’하는 생각도 했지만, 수면으로 드러난 녀석의 모습은 분명 무지개 송어였다.
힘찬 몸부림. 바늘에서 빠질까봐 조마조마했다는 건 비밀이고, 대략 3분 17초 정도의 힘겨루기 끝에 녀석을 건져 올렸다.
“송어 건져 올리는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나요? 그냥 릴 감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세 시간 꽝치며 추위에 떤 걸 생각해서 한 3분쯤 힘겨루기를 했다.
송어용 실리콘 뜰채를 사놨는데, 바보 같이 그걸 집에 두고 와서 그냥 줄잡고 강제로 끌어냈다. 그 하얀 실리콘 망에 송어가 담겨 있는 사진 찍으려 했는데…. 뜰채 판매처에 배송 꼭 좀 빨리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받아놓고는, 정작 낚시 가는 날 집에 놔두고 간 바보.
인생 첫 송어에겐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몇 시간 후, 녀석은 내게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다시 봐도 사랑스러운 슈베르트의 모습. 녀석을 낚은 직후
‘이제 송어 잡는 건 시간문제다. 해답을 찾았다.’
라고 생각했지만, 거짓말처럼 이후엔 단 한 번이 입질도 없었다. 난 왜 낚시 오면 맨날 딱 한 마리만 잡는 거지? 남들 다 못 잡을 때도 한 마리는 꼭 잡고, 남들이 어업 수준으로 잡아낼 때에도 난 딱 한 마리….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옆 조사님의 살림망. 새벽부터 와서 해 질 때까지 잡으셨다고 한다. 이 고마우신 분께서 “송어 좀 드릴까요?” 하시길래, 반사적으로 “정말요? 그럼 감사하죠.”하며 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낚시 중 캐스팅 미스로 낚싯대 절반을 물에 던져 빠뜨리기도 했는데, 그때 옆 조사님이 ‘풉-’하면서 웃었던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내가 불쌍해보였나?
여하튼 난 송어들을 전부 아이스박스에 담아, 기포기까지 연결한 채 집으로 향했다. 내가 잡은 송어 한 마리에 얻은 송어 다섯 마리, 총 여섯 마리의 송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었다. 난 그 순간만을 기대하며 열심히 갈아놓은 칼을 꺼내들고는 드디어 손질을 시작하는데….
송어 잡아먹은(응?)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풀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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