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차려주고 또 치워주기까지 하는 밥상을 받던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밥을 퍼 담거나 수저를 놓을 줄 모르며 설거지도 남의 일인 양 홀로 태평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과 몇 번 놀러갔다 와 보면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모습’에 다음부터는 부르고 싶지 않아지며, 같이 가더라도 언제 한 번은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 말씀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라는 이야기로 부끄럽게 만들어 주고 싶기도 하다.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이야 뭐, 그것에 소홀할 경우 눈치도 받고 쓴 소리도 들어가며 나아질 수 있다. 그런데 연애에서 늘 ‘받는 연애’, ‘더 큰 호감 가진 연인이 날 접대하는 연애’만을 해왔을 경우 그게 몸에 익어버린 데다, 남이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것만 접해본 까닭에 자신의 호감을 상대에게 표현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계속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예쁘다는 말 많이 들어왔으며, 늘 상대 쪽에서 먼저 대시해 리드하던 연애를 해온 여자들이 그렇다. 그녀들은 상대의 요청에 자신이 ‘승낙’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은 다 했다고 생각하곤 하며, 만날 약속 잡으려고 자신이 먼저 운까지 띄웠는데 상대가 덥석 물어 얼른 리드하지 않을 경우 속으로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인 H양 역시 이런 타입에 속하는 것 같은데, 그녀가 현재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벌이고 있는 일들을 함께 보며 문제를 찾아보자.
1.대화의 주인공은 나야 나?
상대가 이쪽에게 먼저 큰 호감을 가진 채 하는 대화라면, 그냥 이쪽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화는 화기애애하며 이쪽이 상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이어질 순 있다. 뭐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뭐 좋아한다고 답하고,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언제라고 대답해 주더라도 상대의 질문공세는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런데 상대가 그런 팬심 섞인 마음을 안 가지고 있다거나, 연애나 이성에 대한 환상도 꽤 깨진 상태라 그저 동등한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한다면, 핑퐁핑퐁 하듯 서로 주고받는 문답을 해야 하며 받은 만큼 줄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가 이쪽의 생일을 물어봤는데, 그것에 대답만 할 뿐
“오빠 생일은 언제야?”
라고 물을 줄 모르면, 좀 그렇다는 얘기다. 더불어 이쪽은 무슨 고기에 무슨 샐러드 같이 먹었다는 걸 상대에게 자랑하면서, 상대가 바빠서 라면 먹었다는 얘기를 하자 대충 리액션하고 넘어가 버리면 그것 역시 아무래도 좀 그렇다. 그건 이쪽이, 자신의 얘기에 상대가 큰 리액션해주길 바라면서, 반대로 상대에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종종 내게
“제가 이기적이란 말씀이신가요? 전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카톡대화 보시면 제가 상대에게 선톡을 한 적이 더 많다는 걸 아실 텐데….”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도 있는데, 이쪽이 먼저 상대에게 연락을 했더라도 그 연락이 ‘내 얘기’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든가, 상대를 불러 세워선 상대가 내게 더 질문하고 알아서 대화를 이어가길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내가 선톡했다’는 건 별 의미가 없는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2.“보통 남자들은 마음 있으면 ~하잖아요.”의 문제
H양은 만날 약속을 잡고자 자신이 먼저 운 띄웠는데, 상대가 ‘출장’을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대답을 해 빈정이 상한 상태다. 그러면서 내게
“보통, 남자들은 본인이 바쁘거나 일이 있어도 여지를 남기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예쁘고 인기 많은 여자’만큼이나 ‘잘생기고 인기 많은 남자’ 역시 특유의 여유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H양은 ‘이번 주에 바쁘냐’며 운만 띄웠을 뿐인데, 거기에 대고 ‘다음 주 초에 출장이 있어서 바쁘니, 주말에 보자’고 알아서 다 차려 내놓기도 애매한 상황이고 말이다.
또, 보통 ‘상대의 출장’ 이야기가 나왔으면 최소한 어디로 출장 가는지 정도는 물어보기 마련인데, H양은 묻지 않았다. 상대가 출장 준비해야 해서 이번 주에 바쁘다는 얘기를 듣고는, 혹 이번 주에 보게 되는 건가 하는 기대가 무너졌기에 속으로 짜증을 냈을 뿐이다.
더불어 그 전 주에는 H양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H양이 좋아하는 그 ‘보통, 남자들은….’을 빌려 말하자면, 보통 여자들은 여행가서도 상대와 꾸준히 연락하고 상대가 이쪽이 보내는 여행지에 대한 리액션도 잘 해주며 무사 귀국까지를 빌어줄 경우 자그마한 기념품이라도 하나 사다 건네기 마련이다. H양 역시 이번에 여행을 다녀오며 그냥 만 원 짜리 그 나라 과자라도 하나 사왔다면 그걸 핑계 삼아 만날 약속을 잡기 수월했을 텐데, 그런 것 전혀 없이 H양이 여행 마치고 돌아오면 상대가 구애하길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 같아 좀 아쉽다.
마음은 이쯤이면 충분하며, 더 클 필요 없다. 몇몇 여성대원들은 자신이 가진 상대와 연락하고 싶어 하는 마음, 상대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등을 강조하며 그 정도로 큰마음과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른 잘 되지 않는다며 짜증내곤 하는데, 그렇게 강조하는 ‘마음’에 비해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건 그저 ‘웅’, ‘헤헤’, ‘그랬엉’같은 카톡 대화일 뿐이며,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라고는 뭐 이렇다 할 게 없진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제야 밥 먹으러 가게 되었다는 상대에게 왜 이제 먹는지, 또는 혼자 먹으러 가는 건지 누구랑 같이 가는 건지도 묻지 않으면서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이 크다’고만 말하는 건, 진짜 상대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찍어 놓고는 얼른 연애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기만 해서 찾아오는 조급증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3.‘그냥 남자’들을 대할 때처럼 대하는 게 답이다.
예쁘고 인기 많은 여자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으니, 그건
-마음에 드는 상대 앞에서 낯을 가리거나 필요 이상으로 긴장함.
이라는 거다. 때문에 ‘그냥 남자’인 이성들과 지낼 때에는 여유롭고 반짝반짝 하던 그녀들은, 자신이 먼저 호감을 갖게 된 남자 앞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뭔 소린지 모를 말들을 하곤 한다.
이건 H양도 마찬가지라서, 현재 상대와 연락이 안 되는 것도 아니며 상대는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장’ 얘기 하나에 전의를 상실한 채 실망해선 일부러 연락도 안 하는 헛발질을 하고 있다. 반대로 H양이 여행갔을 땐 상대가 연락도 잘 해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며, H양이 자기 여행 얘기 풀어놔도 리액션을 잘 해줬는데 말이다. 그저 내게 ‘보통, 남자들은….’하는 얘기를 하며
“한 번 더 운을 띄워 볼 예정인데,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지 말고, H양이 ‘그냥 남자’인 이성들을 대할 때처럼 상대를 대하며 일단 좀 친해지는 걸 목표로 하자. H양이 토라지기 이전처럼 자주 연락하며, 서로에게 이슈가 생겼을 때 그걸 공유하는 사이가 되면 된다. 자꾸 모든 걸 ‘내게 큰 관심이 없어서’, ‘나랑 만날 생각이 없어서’로 연결만 짓지 말고, 친한 남자사람과 수다 떨 때처럼 그냥 대화를 이어가 보자.
또, 서로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일주일 나눴으면 대략 사무실 구조가 어떻게 되며 친한 사람은 어디쯤 앉아 있는지에 대한 이미지 정도는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의 깊이로도 못 들어간 채 ‘일 많다’, ‘바쁘다’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건 얕은 대화의 반복일 뿐이다. 그러니 요 며칠 매일 대화를 나눴으니 할 만큼 한 거라 여기며 이제 몇 번 더 만나다 사귀자는 얘기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만 하지 말고, 상대에 대한 추천서를 써줄 수 있을 정도로 알아가는 걸 목표로 했으면 한다.
이렇게 기반을 다지는 건 그저 상대와 사귀기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유지 가능한 연애를 하려면 꼭 필요한 부분이니, 연습하는 셈 치고 하나 둘 기반을 쌓아가 보길 권한다.
상대가 날 좋아한다는 것만을 기반에 둔 연애는, 상대가 날 싫어하게 될 경우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무너질 수 있다. 또 내게 열렬히 구애하며 알아서 다 해주는 남자와만 만날 경우, 연인 역할극만 해 본 까닭에 ‘받는 연애는 많이 해봤지만, 서로 주고받는 연애는 못 해본 사람’이 될 수 있으며, 훗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겨우 할 줄 아는 게 선톡이나 운 띄우기 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자, 그럼 난 또 주말 낚시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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