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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소개팅녀에게 차였어요. 세 시간씩 통화한 적도 있는데요.

by 무한 2018. 1. 4.

일단, 너무 질질 끈 게 문제다. J씨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든, 소개를 받고 나서 한 달 넘게 전화와 카톡으로만 연락하고,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만난 후에도 무슨 애프터를 네 번씩이나 잡았다는 건 아무리 봐도 좀 답답한 부분이다.

 

또, 썸녀가 J씨 생일 챙겨주고 밥까지 사줬는데도, 그걸 그린라이트로 받아들여 가속페달 밟진 못하곤 계속 ‘고백 대기’만 했던 것도 참 안타깝다. 거기까진 분명 상대도 이쪽에게 마음이 있었던 게 확실한데, 그 상황에서도 계속 J씨가 눈치만 보고, 떠보려 하고, 빨리 마음대로 잘 안 되자 서운함과 약간의 복수심으로 ‘진심과는 정반대의 얘기하기’를 해버린 게 패인이라고 난 생각한다.

 

남자끼린 길게 얘기하는 거 아니라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싶은데, 그럼 J씨가 삐치겠지? J씨가 삐치지 않도록 좀 더 길게 살펴보도록 하자.

 

 

1.내 얘기 하느라 바쁘면, 상대는 질리게 된다.

 

노래방 가면 마이크 안 놓는 사람처럼, 대화를 할 때 ‘기-승-전-내 얘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수다쟁이 남자에게 질려 결국 끝난, 어떤 썸남썸녀의 대화를 보자.

 

여자 - 친구랑 뉴욕 갔다 올까 생각 중이야.

남자 - 좋지. 요즘 환율도 많이 내렸잖아. 내 친구도 뉴욕에 있어.

남자 - 근데 내 친구가 뉴욕 음식 확실히 비싸다더라.

남자 - 해먹는 건 싼데, 서빙해주는 음식점은 다 비싸대.

여자 - 응. 물가가 비싸다고 들었어.

남자 - 걔가 거기 간지 한 2년 됐거든?

남자 - 근데 처음 갔을 때 그 뭐지? 무슨 파크 거기서 화장실 못 찾아서 ㅋㅋㅋ

남자 - 거긴 화장실이 별로 없대. 건물 화장실도 잠겨 있고.

여자 - 그래? ㅎㅎ

남자 - 아 근데 쇼핑하긴 좋대.

남자 - 신발도 막 30% 세일에 20%추가 세일

남자 - 거기다 회원가입하면 10% 더 세일 뭐 그런가봐.

남자 - 한국에서 한 벌 살 돈으로 세 벌 샀대.

여자 - 응 ㅎㅎ

남자 - 아 그리고 걔가 거기서 흑인한테

(생략)

 

저런 대화가 혼자 막 신나서 떠드는 사람에겐 즐거울 수 있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점점 고역일 수 있다. 물론 이제 막 알게 된 사이일 땐 어색하게 침묵하고 있거나 단문만 오가는 대화보다 저게 더 화기애애하단 장점이 될 순 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을 연락하고 지내봐도 계속 저렇게 뭐든 ‘내가 아는 얘기’를 갖다 붙이며 대화를 이어가면 필연적으로 지겨워지게 된다.

 

잦은 드립이나 말장난, 유행어만 주워섬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대화법이 처음엔 재미있을 수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러면 그냥 사람이 가벼워 보이게 된다. 특히 ‘뭔가 될 것 같은 썸’을 처음 타보는 남성대원들은 어떻게든 상대를 한 번 더 웃기게 하거나 상대가 말하는 걸 자신도 알 경우 상대 말을 자르고서라도 끼어들려 하는데, 그런 태도는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잊지 말자. 계속 그렇게 내 얘기, 내 드립 하기에 바쁠 경우 상대는 결국 질리게 될 수 있다는 것도.

 

 

2.오늘만 날이라고 생각하는 게, 패망의 지름길이다.

 

상대가 아니라고 하는 것, 그리고 됐다고 하는 것, 또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건 분명한 ‘NO’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몇 번 더 권하거나 상대를 설득해 결국 이쪽의 바람대로 했다 해도, 그건 별 의미 없는 행동이며 상대에게는 불편과 부담으로만 기억될 수 있다.

 

역시나 썸을 타다 망한 한 썸남썸녀의 대화를 보자.

 

[약속을 미루려는 썸녀와의 대화]

여자 - 근데 진짜 오늘 속이 너무 안 좋아. 미안해.

남자 - 그럼 그냥 가서 밥 말고 음료만 마시는 건?

여자 - 그럴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야 ㅠㅠ

남자 - 이따가는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여자 - 진짜 그냥 좀 쉬고 싶어서 그래.

남자 - 그래도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할 텐데….

남자 - 그럼 거긴 가지 말고, 이따 잠깐만이라도 보자.

여자 - 오늘 그냥 나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

남자 - 내가 데려다 줄게. 난 가는 동안만이라도 보려고 하는 거지.

(이후 여자가 계속 거절하자, 남자는 이걸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만 해석함)

남자 - 알았어. 들어가서 쉬어.

남자 - 난 예약해 놓은 게 아까우니 친구나 불러서 가야겠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객관적으로 보면 저 남자가 이상한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게 쉽게 보이는데, 저 상황에 처해

 

-아침까지 괜찮았던 우리 관계가 틀어지려 한다.

-난 얼굴이라도 보려고 한 건데 쟤는 내가 안 보고 싶나?

-뭔가 좀만 더 설득하며 태워다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들에 홀리기 시작하면,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도 저렇게 계속 자충수를 둘 수 있다.

 

J씨 역시 상대와 만나며 상대가 싫다는데도 계속 우긴 적 있고, 일찍 들여보내기 싫어서 그런 거라곤 하지만 특별한 계획이나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커피숍 전전하며 지루한 시간을 이어간 적도 있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상대를 보며 ‘뭔가에 실망했나? 만약 그런 거라면, 어떻게든 기분 풀게 한 후에 들여보내야 해.’라는 생각으로 붙잡아만 두면, 상대는 그 시간을 전부 고문당하는 느낌으로 보내게 될 수 있다.

 

그러다 상대가 결국 화가 나 뒤도 안 돌아보며 가버리고, 그 후엔 이쪽이 장문의 카톡으로 ‘나도 오늘 좀 그랬다’는 이야기만을 할 뿐이라면, 상대에겐 이런 관계를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 아닐까? 그렇게 오늘만 날인 것처럼 집요하게 우기는 태도를 보이면, 십중팔구 관계는 틀어지고 만다는 걸 기억해 뒀으면 한다.

 

 

3.까여도 내가 까인다는 생각으로, 고백을 하자.

 

이쪽에 대한 썸녀의 기대와 판타지를 가장 쉽게 깨버리는 방법은,

 

-상대의 눈치를 보고, 또 상대가 부정해주기 바라는 말들만 던지는 것.

 

이다. 못 믿겠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썸녀에게

 

“난 이런 거라 생각했는데 넌 아닌가 보네. 암튼 잘 지내.”

“그럼 나도 그냥 이성친구들 만나서 놀아야겠다. 굳밤.”

“네 남친 될 사람은 좋겠네. 동창이라는 애랑 친해 보이던데 걔 만나 봐.”

 

라는 이야기를 해보길 바란다. 그녀가 짜게 식으며 점점 이쪽을 피하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빙빙 돌려 말하거나 마음과는 정반대의 얘기만 꺼내 상대가 부정해주길 바라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어떻다는 걸 솔직하게 말하자. 특히 여자들의 경우 “어, 나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다 집에 있어. 시간 완전 남아돌아.” 라는 이야기를 하기 싫어 스케줄이 있는 척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거기에 대고 박력 있게 시간 좀 내달라고 말하진 못하고

 

“바쁜가 보네. 그래 잼나게 보내.”

 

하고 연락두절을 택해버리는 건 최악의 선택이다.

 

앞서 말한 ‘상대가 명확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을 때’는 어떻게든 우겨서 붙잡아두려 하면서, 왜 또 이럴 땐 금방 서운함을 집어 들곤 쉽게 포기하는가. 까여도 내가 까이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말은 좀 꺼내보고 시무룩해져야지, 대충 눈치만으로 짐작한 채 상대에게 서운함만 던진 채 등 돌리고 있진 말자. 자꾸 이러니까 상대가 참다 못 해

 

“오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걸, 말하지 않고 혼자 오해하고 착각하잖아. 말을 해야 같이 맞추든 말든 하는 건데, 그러질 않잖아.”

 

라며 일갈을 날린 거다. 그녀가 바랐던 건 앞에서 리드하며 자신을 홀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J씨는 그녀의 뒤를 졸졸 쫓으며 뭔가에 하나 서운해지면 저 멀리 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에 가까웠다 할 수 있겠다.

 

 

끝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건, 관계가 틀어지고 난 뒤에도 계속

 

-난 재회를 목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서 연락하는 것.

-너는 이러이러한 걸 하는 게 좋으며, 미래는 이렇게 설계하는 게 좋을 것.

-내가 너를 만나서 서운했던 것과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이러이러한 것.

 

등에 대해 상대에게 말하는 건, 그저 비겁하며 찌질한 짓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이 있으면 그걸 돌리지 말고 그대로 전하는 게 좋으며, 다른 구실을 찾아 틈새를 노려보려는 것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낫다. 상대가 애도 아닌데 무슨 진로지도나 생활지도를 하려고 할 필요는 없으며, 상대는 이쪽이 싫다는데 무슨 ‘사귀진 않더라도 좋은 오빠동생으로’라도 지내자며 계속 들이대진 않는 게 좋고 말이다.

 

자 그럼, 이 매뉴얼로 J씨가 ‘뭐가 문제였는지,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눈치 챘길 바라며, 난 오늘 도미노 피자 1+1 이벤트 하는 날이니, 그거 시켜놓고 <도시어부>보러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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