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왔고, 분위기도 좋았고, 바래다주는 것까지 매끄럽게 마무리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라 관계를 차갑게 식혀버리고 마는 대원들이 있다. 소개팅을 처음 해봤다거나 철벽을 치는 게 습관화 된 대원들이 주로 그러는데, 그걸 바라만 보고 있기 안타까워 오늘은 이렇게 특별 매뉴얼을 준비했다.
그런 대원들은
-왜 상대가 애프터 신청을 안 하는가?
-오늘 상대에게 연락 없는데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게 맞는 건가?
-상대가 이러이러한 것처럼 보이는데 주선자에게 물어봐야 하는가?
하는 고민만 하느라 관계를 방치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요런 물음들에 답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1.소개팅 직후 누가 먼저 연락해야 하나요?
보통 남자가 먼저 연락을 한다. 대체 뭐라고 연락해야 하냐고 묻는 대원들도 종종 있기에 ABCD를 알려주는 기분으로 멘트를 적자면,
“거기서 저희 집까지 딱 30분 걸리네요.”
“잘 들어가셨어요? 전 이제 집에 도착했어요.”
“집에 돌아오니 긴장 풀리네요. 아까 너무 떨었던 것 같아요.”
정도로 말을 하면 된다. 가끔
“집에 잘 들어가셨죠? 전 이제 막 도착했어요. 늦었는데 푹 쉬어요. 굳밤.”
같은 ‘자체종결형 멘트’를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풀어서 말하길 권한다. 소개팅 당일 저녁에 저런 멘트하고, 다음 날 아침에
“좋은 아침이네요. 출근 잘 하셨어요? 오늘 하루도 힘내서 보내봐요! 파이팅!”
라는 멘트하면, 상대는 받아주기가 참 힘들어진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아, 남자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구나’ 하고 오해하는 여성대원들이 있을 수 있는데, 상대가 이쪽을 바래다줬다거나 이쪽보다 상대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것 같을 땐 이쪽이 먼저 귀가 소식을 알리는 게 좋다. 놓치기 싫은 사람을 만났는데 ‘누가 먼저 연락하는가’ 따위로 멍하니 있다가 ‘내겐 손톱만큼도 신경 써주지 않는 여자’로 오해받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쪽이 ‘상대의 연락이 나에 대한 호감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도 이쪽의 연락에 대해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자.
2.다음 날이 되었는데 애프터 신청이 아직 없어요. 뭐죠?
상대가 금사빠가 아닌 이상, 어제 보고 와서 막 바로 내일 또 만나려고 들거나, 대화보다는 약속 잡는 것에 꽂혀서는 언제 시간 되냐고 달려들어 묻진 않을 것이다. 보통 첫 만남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하고, 이후 한 2~3일 정도 대화를 이어가다 자연스레 애프터를 잡게 되니,
‘어제 만났을 때 또 보자는 말 없었는데, 오늘도 없네. 내가 맘에 안 든다는 건가?’
하며 너무 조급증을 드러내거나 패닉에 빠지진 말자.
그리고 이게,
-상대도 이 소개팅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를 때
-이쪽이 대답도 잘 안 하고, 자신에 대한 얘기도 잘 하지 않을 때
에도 애프터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전자의 경우엔 이쪽이 먼저 ‘같이 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해 자연스레 애프터로 이어가도 되니, 정말 간단히 ‘어디에 있는 뭐가 맛있다더라’라든가 ‘이번에 개봉한 영화 재미있다더라’ 정도로만이라도 멍석을 깔아보길 권한다.
후자는 관찰자 시점에서 상대를 구경만 하는 대원들이 주로 벌이는 일인데, 뭐 하는지도 말 안 해주고, 뭐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으며, 뭐 하고 싶은지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상대로서는 또 만나자고 제안할 틈이 없다는 걸 잊지 말자. ‘그냥, 뭐, 다, 아무거나, 비밀’ 같은 단어는 빼고 상대와 대화하자.
3.소개팅 다음 날이 되었는데, 상대에게 연락이 없네요.
어제 소개팅 약속을 잡은 건 상대였다. 소개팅 끝나고 집에 바래다준 것도 상대였다. 바래다주고 집에 들어가 연락을 한 것도 상대였다. 그랬으면 이쪽도 날 바뀌고 한 번쯤 연락을 해야 하는 건데, 대체 무슨 논리인지 자신은 꿈쩍도 안 하면서
“상대에게 연락이 없는 건 관심이 없다는 건가요? 어젯밤 잘 들어갔냐고 연락한 건 그냥 예의상 한 번 연락한 거고, 오늘 연락이 없으니 실제론 관심이 없다는 거겠죠?”
하는 대원들이 가끔 등장한다.
마음에 든 상대와의 소개팅 다음 날부터는, 연애를 시작했을 때의 호감과 관심이 100이라면 최소 70 정도로는 상대와 가깝게 좋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70 미만이라고 해도 이쪽에 대한 상대의 호감과 관심이 더 크다면 어찌어찌 연애로 이어질 수 있긴 하겠지만, 대개 소개팅 이후 서로에게 빠져드는 커플을 보면 소개팅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일상을 공유하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제가 먼저 연락하면 마음 있다는 게 너무 티나지 않을까요? 마음 있다는 걸 들켜서 상대가 쉽게 보거나 하지 않을까요?”
라고 묻는 대원들도 종종 있는데, ‘선 연락’은 내 마음의 대문 중 한쪽 문을 열었다는 것 정도의 의미다. 또, 이쪽이 매시간 카톡을 울려댈 정도로 상대와 대화 못 해 안달이 난 것처럼 선 연락을 하는 게 아니라면 절대 쉽게 볼 일은 없으니, 걱정 말고 2~3일 정도는 선 연락해도 괜찮다 생각하며 대화를 해보자. 단, 2~3일 먼저 선 연락을 했는데 상대는 전혀 먼저 말 걸지 않는다면, 그땐 선 연락하는 걸 멈추길 권한다.
4.상대가 이러이러한 것 같던데 뭐죠? 주선자에게 물어볼까요?
상대와 첫 만남을 가진 이후라면, 그때부터는 최대한 주선자를 멀리하는 게 좋다. 우리 주변엔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에, 이쪽이 한 얘기는 흘러 흘러 상대 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자존심 세우려 일부러 좀 센 척하며 말했던 게 상대에겐 의기소침해지게 만드는 말로 전해질 수 있고, 그저 긍정적인 평가를 좀 한 것뿐인데 그게 상대에게는 이쪽이 완전히 반해있는 상태인 걸로 전해질 수도 있다.
또, 상대가 이쪽과의 만남이나 대화에서 한 얘기들이 주선자에게 흘러 들어간 것에 대해 훗날 상대가 실망할 수 있고, 백퍼센트 이쪽 편인 것처럼 굴던 주선자가 알고 보니 백이십퍼센트 상대 편이었을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주선자가 상대와 썸 타려다 실패하니 상대를 떠보려는 목적으로 주선했다가, 잘 되는 것 같자 엎어버리려 시도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니 주선자에겐 최대한 말을 아끼길 권한다.
상대에 대해 궁금한 건 주선자에게 말고, 또 내게도 말고, 그냥 상대 본인에게 묻는 게 가장 좋다. 너무 속물적이라거나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 묻기 좀 그런 사적인 질문이 아니라면, 상대에게 묻자. 그냥 확 묻는 게 너무 다짜고짜인 느낌이라면, 내 얘기를 먼저 꺼낸 후 자연스레 이어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연애라는 게, 시작부터 상대에 대해 다 알고 모두 들은 뒤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사귀며 알아가는 부분이 훨씬 많은 것이니, 너무 막 다 캐내고 수소문해서 상대에 대해 알려고 들진 말자. 주선자를 비롯한 99명이 ‘상대는 정말 진국인 사람’이라고 보증을 한다 해도, 그가 이쪽에게 아무렇게나 군다면 그는 나쁜 사람인 것 아닌가. 그건 절대적인 부분이 아니라 상대적인 부분이니, 절대평가 하려 너무 자료 모으기에 치중하지 말고, 열려 있는 상대와의 창구를 활용해 대화하고 만나며 겪어본 뒤 판단하자.
끝으로 하나 더. ‘소개팅 직후, 스킨십 진도는 어떻게 나가는지?’를 묻는 대원들도 가끔 있는데, 케바케긴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 살짝 잡았다 놓는 정도로 시도하고(응?), 세 번째 만남에서 본격적으로 손을 잡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첫 만남에서 기분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다며 팔짱을 끼거나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가는 사례도 있긴 한데, 그런 대원들은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너무 분하고, 자존심 상해요.”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사연을 보내왔다. 전부 다 살펴본 내 입장에선 ‘늦어서 문제가 된 사례는 없지만, 빨라서 문제가 된 사례는 많더라’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이외에 더 알고 싶은 부분이나 궁금한 것이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로 질문을 주시길 바란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공감과 좋아요, 댓글은 다음 매뉴얼을 부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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