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초나 썸을 탈 때, 남친이 헌신하고 호의를 베푸는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너에게, 나도 특별하고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불편하거나 불쾌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 맞추려 하며, 이쪽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배려와 헌신, 호의와 인내를 앞세우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쪽도 상대를 특별하게 생각하며, 관계에 집중하고, 마음 써서 둘의 연애를 돌보리란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인기 많으며, 받는 것에 익숙하고, 이성에게 뭔가를 줘본 적 없는 몇 여성대원들은, 그런 상대의 모습이 연애 내내 지속되기를 바라며,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하기 바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사고회로가
난 오늘 초밥이 먹고 싶다. -> 남친에게 말했는데 내일 회사에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야 하니 주말에 먹자고 한다. -> 연애 초 남친은, 내가 뭘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사가지고 달려오는 남자였다. -> 변했다. 화가 난다. 일이 중요하다는 건 아는데, 난 안 중요해?
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거라고 할까요. 물론, 저런 걸로 서운해한다고 무조건 다 이상하다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같이 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하고 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면 좀 섭섭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초밥을 먹을 경우 남친이 내 회사 앞으로 와서 픽업해야 함.
-초밥은 당연히 남친이 사는 것. 나는 커피 정도 사면 됨.
-먹고 마시고 난 후엔, 남친이 날 집까지 데려다줘야 함.
등의 상황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는 관계라면, 서운해하는 게 좀 괴상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오로지 이쪽을 접대하려는 목적만으로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앞서 말했듯 누구나 연애 시작 후엔 연인으로부터의 챙김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데, 저건 일방적이며 불공평한 게 당연한 듯 여겨지는 관계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제가 이기적이었다는 건 인정해요. 제가 받는 게 곧 사랑인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하지만 남친이 헤어지자는 말을 하며 ‘사귀는 동안 난 지켜봤다’고 한 게 기분 나쁘기도 하고, 즐거웠던 추억들을 생각하면 다시 만나고 싶기도 하고, 이러다가 다시 저에게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그러네요.”
이별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됐던 마지막 만남마저도, 이쪽에선
‘헤어지는 게 확정될 수 있는데, 헤어지기로 하고선 상대 성격 상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 좀 그럴 것 같으니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처럼 ‘내가 상처받을까 봐’라는 이유로 한 행동들이, 상대에게는 그냥 다 이기적이며 불공평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여기다 자세히 적을 순 없지만, 이별 직후 오로지 이쪽만의 편의만 생각하며 상대가 어떻게 되든 말든 떠넘겨 버린 것도, 상대에겐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구나’라는 생각으로 각인될 것이고 말입니다.
이렇게만 적어 놓으면, 사연의 주인공이 무척 억울할 것도 제가 모르는 건 아닙니다. 위와 같은 특징을 보이는 여성대원들에겐
-슈퍼 갑이 되지 못하면(또는 이기적인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면), 슈퍼 을이 되는 문제.
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등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중간’이 없이, 상대에게 목줄을 채우려 하거나, 이쪽이 무릎 꿇고 맹목적으로 다 이해하기로 하며 만나는 두 가지 모습 밖에 없는 거라 할까요. 그래서 대개 상대가 이별통보를 할 때까진 ‘슈퍼 갑’의 입장을 고수하다가, 이별 통보를 듣고 나면 ‘슈퍼 을’이 되어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걸 ‘그간 상대에게 받은 것처럼, 나도 이해와 배려와 헌신을 해보는 것’이라 생각하며 말입니다.
그거, 힘들기만 할 뿐 아무 의미 없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10판 같이 게임 해서 10판 상대가 져 줬으니 앞으론 내가 10판 다 져주기로 하는 거, 그게 진심인 게 아니라 상대도 믿지 않을 것이며, 뭘 어떻게 하든 결국 상대가 이기는 쪽으로 맞춰줘 봐야 권태가 찾아올 뿐입니다. 상대는 이쪽의 그런 태도에 대해 ‘얼마간 저러다가 결국 폭발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며, 실제로 그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채 “내가 다 져줘도 이렇게 되는 거면, 나 안 해.”라는 멘트가 얼마 안 가 등장하곤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 만을 주장하는 건 그만두고, 상대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 상대는 이별 통보 후 이쪽이 ‘잘 할 테니 좀 더 만나보자’는 요구에 승낙했고, 그렇게 만나봤지만 안 맞는 것 같다며 재차 이별 통보를 했으며, 거기서 또 이쪽이 잡아봤지만 정중하게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 상황에서도 이쪽은
“너 이렇게 헤어지자고 하는 거, 나한테 엄청난 상처 되는 거 알아?”
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러고 나선 상대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 무책임하게 모임도 그만두었고, 인수인계를 위한 상대의 연락도 무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별도 속상하고 슬픈데 저런 것으로 인해 더 속상하고 슬프기 싫다면서 말입니다.
이처럼 이쪽이
“전 지금도 이 친구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라고 말하는 모습과 현실에서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는 큰 괴리가 있다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이쪽에게 소중한 사람이면, 상대를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연애가 아닌 친구와의 관계라고 했을 때, 친구에게 책임 전가하고, 불평 쏟아 내고, 골탕 먹을 줄 알면서도 읽씹으로 응대하고, 그러고 나선 우정 운운하면 앞뒤가 안 맞는 비상식적인 태도처럼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까지 그런 태도를 보였기에, 상대가 이쪽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돌아와 예전처럼 지내고자 할 확률은 0.003% 미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해야 할 건 재회에 대한 기대 같은 게 아니라, ‘인간적인 실망’을 깊게 느꼈을 상대에게 사과하는 것이니, 미안한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셨으면 합니다. 단, 그게 또 ‘용서를 요구하는 사과’가 되어선 안 되니, 용서를 못 받거나 읽씹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과하셨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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