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연애와 관련된 얘기가 아니라 대인관계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사연의 주인공인 S양이 ‘남자와 거의 접점이 없는 상태’로 살아온 까닭에
-남자들은 원래 이런가? 아니면 이 남자만 이상한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게 있나? 남자가 이럴 때에는 어떻게 대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며 보내온 사연이다.
우선 이건, 지극히 정상인 상황이니 별로 걱정 안 해도 좋다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여성들과만 관계를 맺고 살아온 S양 입장에선 남자 사장님의 대답이 너무 짧으며 무성의해 보일 수 있는데, 그건 사실 남자들이 S양이 주제로 삼는 것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며, 특히 모태솔로인 남자 사장님의 경우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법. 용건만 간단히’를 코어로 하는 대화에만 익숙한 까닭에 더 그 성향이 심할 수 있다.
이성과의 접점이 거의 없이 살아온 남성들의 경우, 대부분의 질문을
-응/ 아니.
로 받곤 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공대 오빠에게 “오빠 밥 먹었어요?”라고 물으면, “어.”라는 대답만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S양 직장의 남자 사장님 역시, S양이
“여름에 폭염이라 많이 힘드셨죠? 이번 여름 진짜 더웠잖아요.”
라고 한 말에,
“에어컨 켜고 있어서….”
라는 ‘진짜 대답’ 밖에 할 줄 모르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이런 평면적인 대화에 익숙한 사장님과는 정반대로, 남자와의 접점이 없었던 S양은 여성 특유의 입체적인 대화를 하려 하니, 둘의 대화는 더욱 겉돌게 될 수 있다. S양은 사장님에게
“A과일 들어간 샌드위치랑 B과일 들어간 샌드위치 중에 뭐가 좋으세요?”
라는 식의 질문을 한 적도 있는데, 그건 마치 S양에게
“AMD랑 인텔 중에 어느 CPU를 더 선호하세요?”
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S양은 저 질문에 대해 ‘아니 컴퓨터가 그냥 컴퓨터지 AMD랑 인텔은 또 뭐….’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사장님 역시 ‘아니 샌드위치는 그냥 빵인 거지 뭐 과일을 또 따지고….’ 할 수 있다.
사장님이 자학적이거나 부정적인 멘트를 자꾸 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래 사람 성향이 좀 그러니 굳이 그걸 S양이 바꾸려 시도하진 말길 권하고 싶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지켜보는 게 낫지, 괜히 이쪽에서 부정해주며 대화를 이어가려 하면, 상대는 자신의 부정적인 말에 부정을 받아 안심하려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S양의 친구 중
“아 근데 소개팅남 별로면 어쩌지? 만났을 때 별로일 것 같아.”
“일기예보에는 비 안 온다고 하는데 오면 어쩌지?”
“어차피 나 시험 봐도 떨어질 거야. 공부도 많이 안 했으니까.”
라는 이야기들을 달고 사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염려와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제일이지 않겠는가. 그걸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부정해가며 사람을 바꾸기란 산을 옮기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니, 습관적인 그런 염려와 부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상대의 ‘버릇’이라 생각하며 대충 받아넘기길 권한다.
또,
-사장님이, 밥 빨리 먹고 혼자 일어나 버리는 것
에 대해서도, 역시 그게 눈치 주거나 S양과 밥 같이 먹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성격이 그렇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자.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게 자기 배부르면 누가 더 먹든 말든 자리를 털고 일어나곤 한다. 회식 가서도 고기 구운 거 혼자 허겁지겁 다 먹고 자긴 배부르다며 젓가락 놓는 사장도 있고 하니, ‘혹시 뭔가 숨은 의도가 있는 행동인가?’하는 고민 같은 거 하지 말고 이쪽의 템포 대로 하길 권한다.
S양은 둘이 일하는 공간에서의 침묵이 불편하겠지만 상대에겐 오히려 그게 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어떻게든 자꾸 더 말을 걸고 상대와의 대화를 이끌어내려 노력하진 않아도 좋은데, 꼭 그러고 싶다면
-질문은, 상대가 잘 아는 것을 위주로 하기.
-돌려 말하지 말고, 직접 말하기.
-왜요? 진짜요? 그래서요? 등으로 추임새 넣기.
-이쪽이 하고 싶은 거면, 자꾸 해서 익숙하게 만들기.
정도를 염두에 둔 채 시도해 보길 권한다. 원래 S양의 사장님과 같은 남자에겐 넉살 좋고 놀릴 줄도 아는 사람이 잘 맞긴 하는데, 굳이 사장님과의 대화를 위해 S양이 자신의 성격까지 개조할 건 없고, 너무 다 진지하게 다큐로 받아가며 사장님을 갱생시키려 하지 말고 대해보길 바란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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