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연을 보낸 L양도 지금쯤이면 이미 이 사연을 잊곤 새 썸을 타든 연애를 하든 할 수 있는데, 시간 들여 읽은 게 아깝기도 하고 혹시나 마지막에 L양이 적어둔 것처럼 ‘기다리면, 남친 상황이 바뀌어 제게 돌아올까요?’ 하며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에 매뉴얼을 작성하게 되었다.
L양은 스스로를 ‘사랑꾼 타입’이라고 말했는데, 그건 좀 너무 긍정적이기만 한 평가고, 그것보다는 오히려
-금사빠이며, ‘연애를 하며 난 이런 짓까지 해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타입.
이라고 할 수 있다. L양이 하는 연애에 대해 어머니께서 아시게 되면, 등짝을 맞기 딱 좋은 타입이랄까. L양은 연애를 시작하면 연애 이외의 것들에는 무신경해지며, 얼른 더 막 사랑에 풍덩 빠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가 되고 만다.
연애에 쏟는 추진력과 열정도 엄청나다. 상대를 보기 위해 왕복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선 써본 적 없는 돈을 데이트나 선물을 위해 쓰기도 하며, 안 그래도 되는 일을 굳이 꼭 벌여선 상대를 수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대개 이런 부분들에 대해
“저도 그런 제가 놀라울 정도로, 상대에게 빠졌던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라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또는 상대와의 연애가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나는 연애 중이며 연애에 푹 빠졌다’는 것에 빠진 것.
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원들에게 ‘상대’에 대해 물으면
“~일 거예요. ~일 걸요?, 잘 모르지만 ~일 수도 있어요. 제가 보기엔 ~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마련이며, 머리로는 자신도 이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얗게 불태고 있는 게 좋아서’라거나 ‘내가 지금 슬퍼할 상황이니까 슬퍼서’라는 감성적인 이유들로 혼자 앞으로 엎드렸다 뒤로 누웠다를 반복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열탕과 냉탕 사이를 오가는 듯한 연애가 다이나믹하며 스릴있긴 하다. 둘 다 금사빠의 성향을 지닌 커플의 경우 만난 지 이틀도 안 되어 아예 자기 삶을 통째로 연애에 부어버리려고도 하며, 이 사연의 주인공인 L양 역시 사귄 지 며칠 안 되어 둘이 ‘사귀기만 하면 헤어질 수 있으니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뭐 그러면서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이제 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라는 고백을 주고받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긴 하는데….
그런 관계는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깨고 나면 실제로 존재했던 일이 맞는지 헷갈릴 수 있으며, 강렬하긴 했지만 왜 강렬했던 건지는 훗날 생각해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금방 달아오른 것이 금방 식듯 이런 관계는 100일을 가지 못하며, 심한 경우 만난 지 이틀 만에 결혼 운운했다가도 일주일이 안 되어 헤어지자는 얘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L양에게,
-까닭 없이 절실하기만 한 감정이라면, 행동으로 옮기지 말 것.
-지금 하려는 그게, 지속 가능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
-좋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더 엉망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것.
을 권해주고 싶다. 만약 L양과 새로 만나게 된 남자가 있고 그를 A씨라고 했을 때, A씨가 회사에서 짤릴 각오를 하곤 L양을 만나러 오고, 예고도 없이 수 시간 L양을 기다리며,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해놓고는 그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며 삐치고, 그래선 부르는데도 돌아서는 게 멋있는 줄 알고 돌아서고 한다면, 계속 상황을 악화시키며 더 나쁜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상대가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감정과잉과 오버액션을 좀 재워두자. 상대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왕복 반나절이 걸리는 곳까지 무작정 달려가고, 가서는 상대가 ‘여기까지 온 정성과 마음’도 안 봐주고 냉담하다고 삐쳐서 이쪽은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그것에 삐치면 기분 풀라고 또 울며 사정하고, 그러다가 좋게 마무리 되는 것 같았는데 상대가 안 기다려주고 가겠다고 해서 또 화가 나서 울며 돌아오고…. 이래 버리면 연애도 피곤해지고 인생도 피곤해지고 그냥 여러모로 다 피곤해질 수 있다. 그러니 지금보다는 훨씬 더 심플하고 효율적으로, ‘다음 일’까지 내다보며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속 가능한 연애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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