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연애하다 이제 결혼까지를 구체화하게 될 때쯤
-난 원래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상대가 좋아서 마음을 바꿨고….
-지금 계획을 다 짜놔야 결혼해서도 그 계획에 맞춰서….
-결혼 전에 확실히 약속해야 결혼해서도 어기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며….
등의 이야기를 하는 여성대원들이 꽤 많은데, 난 그것과 동시에
-결혼은 상대가 졸라서 하는 것인가? 나에게만 큰일이고 상대에겐 아닌가?
-내 인생은 계획대로 어김없이 흘러왔는가? 계획에 상대의 의사도 포함되었는가?
-약속이라는 게 너무 촘촘하지 않은가, 그 약속 안에서 수감생활 해야 할 느낌은 아닌가?
라는 것들을 생각해 보길 권해주고 싶다. 계획적이며 안정적인 것에 대해 나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관계 전체에 오로지 ‘노오오오력’할 것만 강조된다면 연애의 달달함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고, 나와 다른 상대의 취향에 대해서는 ‘고쳐야 할 것’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오로지 둘의 관계에만 함몰된 채 나머지 것들엔 무신경하라는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J양의 사연을 읽으며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상대가 정말 잘하고 있는데도, J양이 자신의 의심과 우려를 극복하지 못한 것.
이었다. 상대와 J양은 서로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기로 약속한 까닭에, 상대는 술 담배도 하지 않았으며, 10시 통금시간을 지켰고, 게임을 끊었으며, 웹툰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J양에게 보고를 하고 볼 정도이지 않았는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저런 걸 제할 경우 거의 팔 다리 묶여서 감금당한 느낌을 받을 게 분명하다. 옳고, 바르고, 생산적이고, 계획적이고 뭐 그런 거 다 좋은데, 저건 저것대로 여친이 싫어하니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애정표현과 스킨십과 리액션에는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엄벌에 처해지게 된다면, 그건 그냥 헤어지지 않기 위해 견뎌야 할 노예생활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여친이 자신의 꿈자리가 안 좋았다는 것만으로도 날카롭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장문의 카톡을 보내놓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곤 소감을 적어 보내라고 하며, 난 말로 다 풀어야 한다며 생각을 자세하게 말해보라고 하는 건, 상대에겐 ‘수감생활 + 고문’으로 느껴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건 이쪽이 바라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며, 둘이 했다는 협의 같은 것에 상대의 의사는 별로 반영되지 않고, 나아가 ‘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안 하면 우린 이별’이라는 협박을 당하는 것과 같기도 하다.
J양은 내게
“남친이 왜 지치고 힘들었다고 했는지, 그리고 왜 헤어짐이 우리를 위한 거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라고 했는데, 남친 입장에서는 그동안 열심히 맞춘다고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갈등이 생기면 J양이 이별의 제스쳐를 취하니 힘들었던 거다. 이번 갈등의 원인이 된 ‘통금시간’만 하더라도, 남친이 회식 때문에 딱 하루만 2시간을 늘려 12시까지 해달라고 했는데도 J양은 ‘어기면 헤어지겠다’고 했을 뿐이잖은가.
그간 많은 제약들을 열심히 지킨 남친이
“뭐든, 결국 못 지키면 헤어짐일 텐데, 조금씩 그런 부분이 쌓이고 지치게 된 것 같다.”
라고 한 말을, 유심히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아홉 번 잘해도 그 아홉 번 잘한 것에 대한 보상 같은 건 없고 그저 한 번 잘못한 부분(그것도 실제로 잘못하진 않았으며, 한 번만 제약을 풀어 달라고 말했다가 이별위협을 받은 부분)에 대해 모든 것을 엎어버릴 것 같은 상황만 벌어지니, 그에게는 J양과의 현재 연애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고, 결혼생활에 대한 예상은 이제 ‘이혼위협’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한 헤어짐’이라고 말한 부분은, 자신은 한다고 하는데도 늘 잘못만 하는 사람인 것 같고, 더불어 자신이 아닌 더 잘 맞춰줄 수 있는 남자와 J양이 만난다면 싸울 일이 없을 수 있으니, 늘 이렇게 개조당해야 하며 노오오력을 해야 하는 것 대신 그냥 서로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라 할 수 있겠다.
난 J양이, 상대라는 사람이 J양 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감사한 마음을 품었으면 한다. 처음엔 J양도 분명 그런 마음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것에 무감각해진 까닭에, 요구하고 지적하는 일들만 가득하게 된 것 같다. 더불어 J양은 상대에게 온전한 확신을 갖고 싶다는 뉘앙스로 내게 말을 했는데, 상대에게 확신을 갖는 것은 상대에 대한 J양의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거다. 애초에 믿음이 없으면 그가 101가지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도 102번째에는 잘못하지 않을까 하며 계속 의심을 하게 될 수 있다.
서두에서도 잠깐 말했는데, 지금까지 J양의 인생은 전부 J양이 계획한 대로 흘러왔는가? 대부분의 계획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을 수 있으며, 어느 것은 실천하지 못했고, 또 어느 것은 상상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삶 자체가 원래 그러할 진데, 연애에서만은 계획하고 약속했던 것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전부 실현되며 아무 실수나 시행착오 없이 흘러갈 수 있는 건 아니잖겠는가.
그러니 지금 J양의 연애에서 벌어진 일들은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진 거라 생각하고, 노력은 상대만 할 게 아니라 J양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와중에도 ‘상대가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라면 난 기다릴 것’이라는 말만 하지 말고 그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애정을 잔뜩 표현하며 만나봤으면 한다. 자 그럼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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