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의 카톡대화가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여성대원들 중엔,
“전 만나서는 말 잘하는데, 카톡으로는 진짜 못 하겠어요.”
라고 말하는 대원들도 있다. 난 그들에게
“만나서도 말을 잘하는 건 아닐 텐데요?”
라고 되묻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뼈 때리는 것 같으니까 그런 셈 쳐주고 시작하자.
만나서의 대화가 60점 이상이라면, 카톡 대화는 20점 미만인 여성대원들. 놀랍게도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연애도 쉬지 않고 해왔다는 여성대원들 대다수도 이 부류에 포함되어 있는데, 요거 언제 한 번 얘기해야지 하다가 오늘 얘기하게 되었다. 가끔 연애매뉴얼을 통해 단편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저건 그냥 여자가 마음이 없는 거 아닌가요? 마음 없는 남자 밀어내느라 저런 것 같은데?”
라는 댓글이 달리곤 하는데, 아래에서 이야기 할 사례들은 ‘상대에게 반해 잘 되고 싶으면서도 그러는 경우’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자 그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유형과 해결법 함께 살펴보자.
1. 핵잠수함 타입.
이건 주로
-카톡대화를 ‘메일 주고 받듯’ 하는 대원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어장관리하듯 만났던 대원들
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그냥 ‘물리적으로 대화할 시간이 절대 부족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대원들 중엔
“전 원래 폰 붙잡고 사는 타입이 아닌데요? 다른 거 하고 있을 땐 아예 폰을 안 보고요.”
라며 자신의 성향을 이유로 드는 대원들이 많은데,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 거라면 계속 그래도 된다. 다만, 그럴 경우 ‘금사빠인 남자’나 저런 이쪽의 성향에도 다 맞추며 들이대는 ‘아쉬운 남자’를 제외한 남자들을 만나긴 힘들 수 있는데, 그런 패턴은 바뀌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보통 하루에 한두 번 정도만 대화가 가능할 뿐이며, 그것마저도 막 3시간 5시간 텀을 두고 대답하는 것 정도라면, 일반적인 경우 그 썸은 식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전 1을 없애지 않는데요? 안 읽은 거니까, 바빠서 확인 못 하고 나중에 대답하는 걸로 상대가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읽씹이면 문제겠지만, 전 아예 안 읽는 건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읽씹이든 안 읽씹이든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건 별로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으며, 그 대화는 다른 일들보다 한참 밀린 뒷전의 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뭐 어쩌다 진짜 급한 일이 생겨 그런다거나, 정말 폰을 보기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러는 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겠지만, 매번 저런 식으로 대화에 임할 뿐이라면 그 길고 지루한 기다림에 상대는 일어서서 가 버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자.
2. 블랙홀 타입.
말에 관한 한 ‘자린고비’인 타입이라 할까. 길게 말한다고 돈 더 드는 거 아니며, 상대에게 마음 들켜선 상대가
“여섯 마디를 한 걸 보니 넌 나를 좋아하는 군. 네 마음을 모두 읽어버렸다.”
라며 갑질을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원래 말 잘 안 하는 성향과 함께 ‘상대에게 내 호감을 들킬까봐’라는 이유로 짧게만 대답하는 대원들이 종종 있다.
<사례 1>
남자 – 주말 잘 보냈어요?
여자 – ㅋㅋㅋ 넹
<사례 2>
남자 – 뭐하고 있어요?
여자 – 퇴근준비용 ㅎㅎ
<사례 3>
남자 – 어젠 피곤해서 바로 잠든 거? 갑자기 답이 없어서 ㅎㅎ
여자 – 헤헷
뭐, 목 마르고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건 맞는데, 그렇다 해도 열심히 팠는데 ‘헤헷’ 같은 것만 튀어나오면 상대도 더이상 파기 싫어질 수 있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
여자 – 무한님. 저 어쩌고저쩌고해서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남자는 뭐라뭐라고만 할뿐이네요. 이럴 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어찌어찌 하는 게 맞는 거겠죠?
무한 – ㅎㅎㅎ 넹
이라는 답을 들을 뿐이라면, 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이 들며,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또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러워지는 것 아니겠는가. 대화의 의지가 없어 보여 더는 말하고 싶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쪽은 되묻는 것에도 인색한 자린고비면서, 상대가 인터뷰하듯 물어가며 대화를 리드하길 바라고만 있진 말았으면 한다. 가는 말이 없으면, 오는 말도 점점 줄어들 뿐이니.
3. 불도저 타입.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이, 뭐 그렇게 상대가 뭐라고 하든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타입의 대원들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남자 – 어제 잘 다녀온 거야?
여자 – 넹 ㅎㅎ 저녁 먹었어요?
남자 – 응 좀 전에 먹었는데
남자 – 너무 많이 먹었나
여자 – 전 피자가 급 땡기네용 ㅎ
남자 – 졸음이 밀려오는 중
남자 – 피자? 피자 좋지 ㅎㅎ
여자 - ***피자가 먹고 싶네용 ㅎ
남자 – 그럼 저녁으로 피자 먹는 거야?
여자 - ***피자는 ***에 있는데 넘 멀어용
남자 – ㅋㅋ 그럼 가까운 곳에서 시켜 먹어~
위의 대화를 나눈 이후, 여성대원은 내게
“제가 몇 번이나 힌트를 줬는데도 모르더라고요. 같이 가서 먹고 싶다는 뜻이었는데, 저 정도로 말했으면 나중에 같이 가자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가까운데서 시켜먹으라니…, 눈치가 없는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에휴….”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냥 툭 까놓고 얘기를 했으면 약속을 잡을 수도 있었던 거고, 또 그게 엎드려 절받는 느낌인 거면 ‘땡기네용 싶네용’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하는 건데, 그건 다 생략하고 빙빙 돌려 말하다가 본전도 못 찾고 만 것이다.
게다가 대화의 창구가 저렇게 열려 있으면 그 창구를 통해 상대와 대화를 해야 하는 건데, 아쉽게도 저렇듯 자기가 의도한 주제로만 밀고 가는 까닭에 많은 ‘대화의 기회’가 초토화 되고 만다. 이건 사실 불도저 같은 일부 남성대원들이 상대의 말에는 전혀 귀 안 기울인 채 ‘언제 시간 돼?’만 묻다가 상대를 질리게 하는 사례가 대표적인데, 그래놓고는 자신의 기대대로 상황이 안 흘러가면 서운해하거나 섭섭한 마음으로 실망하고 마는 것까지가 닮은, 여성대원 버전의 사례라 할 수 있겠다.
4. 리액션만 전문가 타입.
이 부분은 같은 유형이라도 그 이유가 다르곤 한데, 그건
-실제로는 별 관심 없이, 사무적인 리액션을 한 거라서.
-진심으로 리액션 했지만, 다시 말 꺼내면 호감을 눈치챌까봐.
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유형에 속하는 대원들은
“오오! 추천 고마워요! 꼭 찾아볼게요 ㅎㅎ”
“거기로 가야겠네요 ㅎㅎ 가보고 후기 알려드릴게요!”
“부러워요! 사진 많이 찍어와서 보여주세요 ㅎㅎ”
등의 말들로 리액션을 하지만, 이후엔 그런 말을 한 적 없는 사람처럼 다시 말을 꺼내지 않거나, 말만 요란했을 뿐 작은 관심도 없었던 사람처럼 넘어가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때문에 그걸 알 리 없는 상대는 리액션이 진심인 줄 알고 한두 번 정도 열심히 설명하거나 챙겨주곤 하는데, 이후 저 리액션이 그냥 립서비스라는 걸 알고는 웃고 마는 것으로 넘기게 된다.
대화를 화기애애하고 밝게 잘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여행 가는 게 부럽다고 일부러 좀 오버하며 말하고 궁금하니 여행지 사진도 꼭 보여달라고 했던 사람이, 이후 여행에 대한 얘기는 전혀 꺼내지도 않는다면 진심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냥 ‘말을 걸기 위한 목적’으로 뭘 추천해 달라고 했다가 추천 받은 후엔 일언반구 안 하는 사례도 있는데, 그러지 말고 진짜 궁금한 걸 묻고 진짜 해보고 싶은 걸 추천 부탁했으면 한다.
5. 면벽수행자 타입.
‘먼저 말을 걸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대원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런 대원들은 소개팅을 나갔다 들어와서도
“어제 연락 없던데요? 그래서 저도 연락 안 했어요. 보통 남자들은 소개팅한 사람이 마음에 들면 연락하지 않나요? 연락도 없는데 제가 오늘 먼저 연락하면 아쉬운 것처럼 보일까 봐, 오늘도 연락 안 할 생각이에요. 며칠 기다려 봤다가, 그래도 연락 없으면 제가 할 생각인데, 언제쯤 연락해보는 게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내게 하곤 하는데, 그렇게 ‘어떻게 하나 보겠어’ 라며 지켜만 보고 있는 것보다는 짧은 인사라도 하나 하는 게 100배 낫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소개팅 시 상대가 집 근처까지 바래다 줬으면, 잘 들어왔다거나 조심히 가라는 메시지 하나는 이쪽이 남겨주는 게 맞는 거고 말이다.
“전 지금까지 소개팅 당일 밤에 먼저 연락한 적 없는데요? 그래도 남자들은 관심 있으면 먼저 연락하던데…. 괜히 연락해서 이쪽의 가치만 낮추는 거 아닌가요? 먼저 연락 안 했다고 상대도 연락 안 할 정도면, 호감이 없는 거니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게 나은 거고요.”
먼저 연락하는 게 자신의 가치를 낮추며 자존심을 깎는 일이라 생각해 벽 보고 앉아 수행하듯 ‘먼저 연락올 때까지 절대 먼저 연락 안 하는 면벽수행’을 할 거라면, 굳이 애써가며 말리진 않겠다. 다만, 혹 그렇게 해서 만난 남자들이, 저 위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금사빠나 연애가 고픈 ‘아쉬운 남자’들이진 않았는가? 종종 저렇게 상대가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꼼짝도 안 하는 걸 ‘밀당’이라고 생각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건 사실 정 없음이나 예의 없음에 더 가까운 거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괜찮은 남자들은 그걸 확인한 채 한두 번 만에 걸음을 돌리게 되고, 그 예선에선 금사빠나 ‘아쉬운 남자’들이 살아남게 된다.
드물게
여자 – 소개팅 이후 연락이 없어서, 저도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무한 – 소개팅을 언제 하신 거죠?
여자 – 3주 전에요.
무한 – 응?
라는 대화를 나누게 될 정도로 면벽수행의 끝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는데, 제발 좀 그러지 말고 상대에게 힌트를 주며 멍석도 깔아줬으면 한다.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선톡 하나 보내서 ‘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걸, 왜 굳이 힘든 ‘참는 노력’ 같은 걸 해서 어렵고 힘들게 가려 하는가. 우위를 점하는 것보다 친밀함을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니, ‘먼저 연락’이라는 전투에서 이겼지만 ‘관계형성’이라는 전쟁에서는 지고 마는 우를 범하진 말았으면 한다.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이 매뉴얼은 사실 어느 대원의 사연을 다루려고 시작했다가, 사연자의 ‘상대에게 말 안 하는 병’이 신청서를 작성할 때에도 발병해, 5분이면 다 쓰고 전송까지 할 수 있을 공백 투성이의 사연이었던 까닭에 ‘유형 소개’로 종합해 적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사연자는
“이젠 저도 무뚝뚝해지는 곰 같은 모습 말고, 여우 같이 남자를 흔들고 싶어요.”
라고 내게 말했는데, 사연 속 모습은 ‘곰’이 아니라 ‘돌’에 가까웠다. ‘밀당을 잘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못 하는 것에 가까웠고 말이다. 후다닥 요약해서 적은 열 줄짜리 사연엔 아무리 노력해도 ‘놀라운 해결책’ 같은 걸 내드릴 수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드리며, 연애를 할 때나 사연을 적을 때나 최소한 온 힘의 7할 정도는 발휘하시길 권하고 싶다. 그냥 1, 2할 정도로 말만 꺼냈는데 나머진 상대가 알아서 다 해주는 그런 건 세상에 없으니 말이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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