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양은 내게
질문 1. 상대(남사친)는 나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있는지?
질문 2. 여자가 아닌 친구로만 본다면 연애하기 위해 어떡해야 하는지?
라는 질문을 했는데, 사연과 카톡대화를 다 읽고 난 뒤의 내 솔직한 대답은
대답 1. 98%의 확률로, 이성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음.
대답 2. 그게, 좀 여러 지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어려울 것 같음.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중요한 건 사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볼 게 아니라, ‘연애에 부적합한 Y양의 문제’를 짚어보는 것이기에, 오늘 매뉴얼에선 그 지점들을 함께 살펴봤으면 한다. 출발해 보자.
1. 말 많은, 심심한 여자.
Y양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Y양이 하는 말들을 통해 상대가 갖게 되는 이미지가
-말 많은, 심심한 여자.
라는 것이다. Y양은 교류가 되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중계하거나, 심심함을 토로하며 그걸 다 상대방이 받아주길 바라는 대화를 하고 만다. 특히, Y양은 장난삼아
“놀아줘. 말동무해줘. 중간중간 놀아줘. 심심해. 나 왕딴가 봐. 놀아줘서 감사.”
등의 이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걸 보고 있다 보니 Y양과 일면식도 없는 나마저 Y양을 참 말 많으며 심심해하는 여자로 보게 되었다. 저런 얘기들은 좀 빼고 그냥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해갔으면 나았을 텐데, 무엇이 두려운지 Y양은 자꾸 저렇게 완충재를 깔려 하기에 스스로를 좀 우스워 보일 수 있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만다.
더불어 이건 아무래도 Y양이 솔로라는 걸 상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렇게 ‘솔로의 심심함’이나 ‘솔로의 박탈감’ 같은 걸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어떤 이성이, 자신의 말을 Y양에게 부정 받기 위해
-난 성격이 거지 같아서 연애 못 함. 이미 다 틀려버린 듯.
이라는 이야기를 자꾸 하면, 그가 연애할 대상으로 보이기보다는 염세적이며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자신에게 여러 하자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런 상대와는, 굳이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안 들 것이고 말이다.
‘말이 많은 것’과 관련해선 말하기가 살짝 애매한 게, Y양처럼 시시각각 다양한 주제를 꺼내며 다음 드립이 생각나면 이어서 말해두는 걸 귀여움이나 매력으로 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대와 핑퐁핑퐁 대화가 이어진다면, Y양의 그런 톡톡 튀며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모습은 좋은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카톡에 혼잣말을 너무 해서 ‘나/나/나/나/상대/나/나/나/나/나/상대’의 대화가 되고 마는 것은 나만 즐거운 대화일 수 있으며, 심심한 두 시간 동안 생각나는 걸 가끔 아무렇게나 말해버리고 마는 건 산만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2. 비주류 제안, 그리고 ‘같이할래?’의 문제.
Y양은 이 관계에서의 일 외에도
-친구들에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요새는 혼자 함.
이라고 했는데, 그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일뿐더러, Y양의 제안에는 좀 ‘비주류’라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 경우, 예전에 같이 낚시를 다니던 친구들에게 낚시 제안을 해도 거절을 당할 때가 있으며, 관심사가 일치하는 친구에게 제안을 해도 서로의 스케줄이 어긋나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취향이 바뀌거나, 또는 타이밍이 엇갈려 함께하기 어려운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Y양이 먼저 좀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건 상대들이 Y양이 싫어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그 제안이 귀찮고 피곤하거나 상대 관심사 밖에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특히 그 제안은, 일반적이지 않을 때 거절당하기 쉽다는 것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만약 오늘 내가 지난해 연말에 못 봤던 친구들을 불러 모아 치맥을 하자고 하면 열에 일곱 정도는 나오겠지만, 얼음 깨고 메기 낚시 가자고 하면 한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친구들과 모였을 때 볼링 치자고 하면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사진전 보러 가자고 하면 대부분 거절할 것이고 말이다.
사람들에게 하는 제안에 대해, 난 Y양이
-내가 하는 제안이, 남들도 자주 두루 하는 제안인가?
-상대도 그것에 관심이 있으며 함께 즐길 수 있는가?
-상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적합한 상황에 있는가?
등을 꼭 살펴보길 권해주고 싶다. 낚시에 전혀 관심 없는 Y양에게 내가 낚시 박람회 가자고 하면 Y양은 승낙하겠는가? Y양이 알지도 못하는 인디밴드 공연에 내가 같이 가자고 하면 Y양은 흔쾌히 응할 수 있겠는가? 또는, Y양은 출근해야 하는데 내가 새벽까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걸 같이 하자고 하면 Y양은 함께할 수 있겠는가? 여기다 밝혀 적으면 너무 특정되는 까닭에 적을 순 없지만, Y양의 제안들이 남들에게는 저런 느낌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같이 할래?’라고 했다가, 상대가 거절하면 Y양은 또 상처를 받고 마는 것 아닌가. 그러지 말고, 상대도 흔쾌히 응할 수 있는 좀 가벼운 제안을 하고, 나아가 ‘상대가 잘하는 것’이나 ‘상대가 하고 싶은 것’을 주제로 Y양도 함께 움직여 보길 권한다. 단, 그걸 제안하는 타이밍이 ‘상대의 피곤이 축적되었을 때’나 ‘상대가 아플 때’, 또는 ‘상대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곤란하다는 것도 꼭 함께 기억해두자.
3. 상대에게도 묻고, 말할 기회 주기.
Y양과 상대의 카톡대화를 보면,
-Y양의 정보와 스케줄이 90%, 상대의 것은 10%
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대화가
Y양 – 아 오늘 A 해서 B하네.
상대 – A가 왜? ㅎㅎ
Y양 – A가 B하니까 C하지.
Y양 – 이런 날 C하다고 D하면 안 되겠지?
상대 – 해도 되지 뭐 ㅎㅎ
Y양 – 그래볼까나 D하다가 E해야겠다.
Y양 – 너는 뭐해?
상대 – 나는 F하고 있어.
Y양 – F하는 군. 나도 F하다가 G해서 H한 적 있지.
Y양 – H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I와 J도 생각나는군.
Y양 – K해야겠다.
상대 – 그래 잘 해 ㅎㅎ
Y양 – K 다 했다.
라는 패턴으로 이뤄지기 때문인데, 이렇게 혼자 실시간 상황 보고 하며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노래방에서 상대를 앉혀 놓고 나 혼자 마이크를 쥔 채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만 계속 부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Y양은 저걸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난 좀 과하게 들이대기도 함.
이라고 말하던데, 그건 아무래도 ‘들이대는 것’이라기보다는 ‘민폐를 끼치는 것’처럼 보인다. Y양은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하기보단, 그냥 상대가 Y양 얘기를 잘 들어주며 리액션 해주길 바라지 않는가. 초식동물 같은 대원들이 너무 상대에게 인터뷰만 하다가 끝내는 대화를 하는 것과 달리, Y양은
-너에게 말을 건 건, 내가 하고 싶은 아무 말들을 전부 꺼내기 위해서였다.
라는 의미로 상대와의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그런 와중에 ‘상대가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내게 관심 없다는 거고 난 상처를 받게 됨’의 상황이 되는 까닭에 슬퍼할 일들만 준비되어 있을 수 있다. 이건 마치 ‘나 혼자 실컷 술 먹고는 술주정 받아줄 사람 찾기’를 하는 것과 같으니, 그러지 말고 그냥 상대와 함께 술을 마시며 상대 이야기도 들어보길 권한다. 처음부터 같이 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걸, 8할은 나 혼자 다 해놓고 상대에게 ‘받아줄 거냐 말 거냐’ 하진 말자.
지금까지 이야기 한 행동들을 계속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여자로 보이는 방법’ 같은 걸 찾는 건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관계 자체가 점점 더 일방적이며 피곤해지는 것으로 바뀌어 간다면, 그 와중에 이쪽을 어필하려 하는 행동까지가 전부 상대에겐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너무 막 머리 쓰며 상대를 떠보려 하지 말자. 만나서 밥 먹고 영화 보고 볼링치고 술 한잔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면 그 ‘되는 부분’을 활용해야지, 그럴 걸 다 놔두곤 이상한 심부름 같은 걸 시키며 그걸 들어주나 안 들어주나 보려 하거나, 소개팅 시켜준다고 했을 때 응하나 안 응하나 같은 걸로 떠보려 하면 망할 가능성만 커질 수 있다.
특히 내가 돌아다니며 먹고 듣고 보고 하는 걸 상대에게 자랑하는 건, 그걸 들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스팸메시지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거 완전 괜찮아! 나중에 같이 먹자!”여야지, “나 이거 먹었음. 아 취한다 심심해 뭐하냐.”이면 안 된다는 걸 잊지 말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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