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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애프터까지 좋았는데, 그녀는 왜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죠?

by 무한 2019. 2. 2.

난 조카가 꼬꼬마일 때 공부를 가르친 적 있어서인지, 조카와 TV를 볼 일이 생기면 자꾸 뭔가를 설명하려 들곤 한다. 사극을 보면서도 복장에 대해 얘기하거나 비슷한 시기 서양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그럴 때마다 조카와는

 

조카 – 삼촌 그건 좀 TMI요.

무한 – 어 미안.

 

이라는 대화를 하게 된다. ‘안물안궁(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인 걸 자꾸 내가 설명충이 되어 말하니 그만하라고 하는 건데, 요 부분이 이렇게 잘 아는 우리끼리는 서로 말해주며 제동을 걸 수 있지만, 그게 아닌 경우라면 상대의 ‘예의상 리액션’이 긍정적인 반응인 줄 알고 계속해서 하게 될 수 있다.

 

 

 

사연의 주인공인 S씨가 이번 소개팅을 망친 가장 큰 이유를, 난 S씨의 ‘TMI(Too Much Information)’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의 경우 둘 다 서른이 넘은 상황에서 상대가 바라는 리액션은

 

“아 맞아요. 정말 그렇죠! 저도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정도일 텐데, S씨는 그걸 2절, 3절까지 하고 만다. 예를 들자면,

 

여자 – 요즘 ** 배우고 있어요. 배워 두면 도움 될 것 같아서요.

S씨 – 맞아요. 그거 배워 두면 쓸모 있죠.

S씨 –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배우시는 중이라니, 존경스럽네요.

여자 – 아녜요 ㅎㅎ 근데 패스할 때가 많다는 게 함정 ㅎㅎ

S씨 – 그래도 시작했다는 게 이미 절반은 한 거죠!

S씨 –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귀찮아서 패스하는 건 누구나 그렇고 ㅎㅎ

S씨 – 저는 그걸 우연히 그냥 습득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도움 될 때가 있어요.

S씨 – 이러이러한 걸 할 때도 이러저러한 도움이 되고요. 또 블라블라.

여자 – 네 ㅎㅎ 저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가 배워야겠네요.

S씨 – 꾸준히 출석하는 게 중요하죠 ㅎ

S씨 – 그래도 일단 가서 들으면 성공한 거니까 ㅎㅎ

S씨 – 혹시 알아요? 그거 배워서 나중에 블라블라.

 

라는 대화를 하고 마는 것이랄까. 저런 대화에 대해 S씨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하는 것.

 

이라고 여기는 것 같던데, 저건 ‘꼬리를 무는 대화’라기보다는 ‘말꼬리 잡아 긴 부연설명 하는 대화’에 더 가깝다.

 

그리고 공감대 형성이라는 것 역시, 그저 “저도요!”를 외치는 게 아닌데, S씨는 이 지점에서 그저 맹목적으로 맞장구만 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진짜 취향이 비슷할 수도 있는 거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저도 딱 그 예능만 봐요!”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상대에게 ‘거짓 공감’이나 ‘억지’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 건 “아 그거 이러이러해서 재미있죠!” 정도로 말해도 충분하다는 걸 기억해두자.

 

더불어 S씨에겐 “~했다만”이라고 말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건 “~했지만”으로 바꿔 말하는 게 맞다는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일부러 상대를 하대해서 말하려고 한 게 아니라 S씨가 몰라서 그러는 거긴 한데, “~했다만”은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투다. 상대와의 카톡대화에서는 물론이고 내게 보내는 신청서에도 “의기소침해하는 타입은 아니다만”이라고 사용하던데, 이거 훗날 여친 아버지께 “거긴 차 타고 가면 금방 가는 거리다만” 정도로 말해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부분이니, 꼭 교정하길 권한다.

 

 

S씨는 내게

 

“취미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 왜 잘 안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라는 뉘앙스로 질문을 했는데, 취미와 취향이 완전히 일치한다 해도 둘의 성격이 다르거나 만남이 편하고 즐겁지 않다면 그 둘의 일치는 의미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내 경우 낚시를 좋아하며 밤새 낚시를 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과 함께 한다고 해도, 그가

 

-낚시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말 시킴.

-옆에서 소란을 피워 고기를 다 쫓음.

-다음 낚시는 어디로 갈 건지 계속 물어봄.

 

등의 행위를 하면 그와 더는 낚시를 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것처럼 ‘취미나 취향이 같음’이라는 게 모든 걸 해결해주며 앞으로 상대와 사귈 일만 남았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니, 그 부분만 공략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으로서의 친밀함을 먼저 쌓아갔으면 한다. 그런 거 없이 맨날 그저 취미 취향 얘기만 하면 스팸처럼 여겨질 수 있다.

 

달변보다 가치 있는 게 경청이라는 걸 잊지 말자. 일부러 말꼬리를 잡아 막 길게 얘기하며, 거기다가 동종업계에 몸 담고 있는 선배로서의 충고 같은 것만 하려다간 상대를 질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자꾸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의 얘기를 더 들어주고, ‘상대 경험 받고 내 경험 더’ 보다는 상대 경험에 대해 궁금한 눈빛으로 리액션을 하자. S씨는 모자라서 문제가 아니라 넘쳐서 문제이니, 2, 3절까지 하던 걸 줄이고 좀 더 듣고 리액션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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