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이름이나 나이, 직업을 아는가? 신청서엔 전부 ‘모름’으로 되어 있던데, 그럼 상대와 통성명을 할 생각이나 용기는 있는가?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고, 또 뭔갈 물을 생각이나 용기도 없는 와중에
“상대가 제게 호감이 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상대에게 전혀 마음이 없는 거라면, 시작이나 도전하긴 아무래도 좀 그런데요.”
라는 이야기만 하는 건, 시험 원서 접수하기 전에 ‘응시하면 합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를 묻고만 있는 것과 같다. 합격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으면 접수도 하고 공부도 시작해 볼 거라고 하면서.
사실 이런 사연은 그저 점쳐보고 싶은 마음에 묻는 것과 다를 것 없는 데다 그 내용 역시 뭐가 없는 까닭에 잘 다루지 않는데, 사연을 읽다가 흥미로운 걸 하나 발견했다. 바로 사연의 주인공인 S씨의 태도가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타인과 친해질 때의 태도’와 좀 다르다는 것.
수영장에서 상대가 살짝 다친 것 같았을 때, S씨가 괜찮냐며 물어봤던 것까지는 좋았다. 그걸 계기로 둘은 수영장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긴 했는데, 이후 S씨가 다른 사람 결혼식에 갔다가 상대인 듯한 사람을 스치게 되었고, 그 후 수영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물었던 부분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S씨 – 혹시 주말에 **에 가셨어요?
상대 – 아뇨. (수영장에) 나와서 수영했는데요?
S씨 –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가서 간략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곤 하지만, 다짜고짜 저렇게 말하고는 ‘아닌 것 같은데….’라며 부정해버리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될 수 있는 일이다. 일반적인 경우 그런 상황에서라면
-주말에 **에서 마주친 것 같은데 아닌가?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 인사까지 했는데 그냥 가버리셔서, 만나면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라고 하니, 내가 애먼 사람에게 인사해서 그 사람도 놀랐을 것 같다.
라고 먼저 말하기 마련인데, S씨는 너무 뭐가 없이 그냥 자기가 묻고 싶은 걸 선문답처럼 던지고는 상대의 대답에도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더불어 여전히 내게
-아무리 봐도 그분이었다. 닮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슷했으니까.
-근데 친한 분도 주말에 수영장 왔던 걸로 봐선 거짓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라는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 도플갱어든 뭐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은가. 아직 상대랑 제대로 통성명도 안 했는데 혼자 관찰하며 음모론을 만들거나 상대 알리바이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하면, 코난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 자체가 고난이 될 수 있다.
이게, 어차피 이대로 두면 S씨도 뭐 더 이상 다가가진 않을 거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흐지부지될 수 있는 사연인데도 굳이 다룬 건, 이런 방식으로 이성에게 다가가는 건 괜히 오해만 살 수 있는 일이라는 얘기를 해주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점쳐보기’만 하지 말고 충분히 더 가까워지길 권하기 위해서다.
S씨는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잦다.
-몇 번씩 서로 빤히 쳐다보게 된다.
-착각했다던 닮은 사람과는 1~2분 정도 눈을 쳐다봤다.
라고 했는데, 그건 이쪽이 자꾸 쳐다보니까 상대와 눈이 계속 마주치고 있을 확률이 120%인 거라 할 수 있다. 이것까지를 종합하면 S씨는 상대에게
-수영장에서 계속 쳐다보고, 주말에 ** 갔었냐고 뜬금없이 묻더니 안 갔다고 하자 아닌 것 같다며 의심하던 사람.
으로만 보여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이렇게 뒤에서 혼자 지켜보며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는 수영 경력에 대해 묻거나 수영장에서 누구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좋으니,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발 딛고 다가가길 권한다. 통성명도 하고, 무슨 일 하는지도 서로 공유하고, 더 친해져서 주말에 할 이슈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걸 목표로 삼자.
“상대가 저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데, 괜히 제가 뜬금없이 들이대서 까이면, 제 자존심도 많이 상할 것 같은데요. 같은 반에서 수영을 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 같고요.”
그건 S씨가 다짜고짜 ‘호감 있다. 연락하며 지내도 되겠냐. 전화번호 알려달라’ 라는 식으로 도박을 하려 하니, 혹 잘못되면 잃게 될 것들부터 걱정하게 된 거다. 상대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면서 혼자 관찰만 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고백같은 걸로 연애를 시작하려 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캄캄한 거지, S씨가 같은 반 아저씨 아줌마들과 짧은 대화라도 하며 지내는 것처럼 상대에게도 다가가면, 지금보다는 훨씬 명확하게 많은 것들이 보이며 상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되면 한다’는 마음만 품은 채 쳐다만 보는 것은 이제 그만 하고, 수영 후 떨어진 당 채우러 같이 어울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를 목표로 다가가 보길 권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 "여기 사세요? 몇 호 사세요?"라고 묻는 이웃의 느낌일 수 있습니다.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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