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분류하자면, 집순이인 대원들은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
A.사람들과 어울리면 기 빨리는 느낌이 들며, 집에서 혼자 충전할 시간이 필요함.
B.집에 있어야 마음이 안정됨. 집이 너무 좋고 편안함. 집이 보금자리이자 벙커.
C.나가고는 싶은데, 타지에서 일하는 중이며 주변에 또래도 없음.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상대와 연애하기엔 C->A 타입의 순으로 점점 어려우며, 상대가 A타입인데 잠이 많거나 체력이 약할 경우 극한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A+ 타입이라 할 수 있겠다.
“A+ 타입이 끝인 건가요?”
그렇지 않다. 종종 A+ 타입을 능가하는 A++ 타입의 대원들이 발견되는데, 그 대원들은 폰도 별로 보지 않는 까닭에 연락 자체가 힘들다는 문제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지인들 사이에서도 ‘연락 잘 안 되는 애’로 유명하며, 너무 일찍 자거나 밤낮이 바뀌는 등 일반적인 경우에서 벗어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례가 많다.
다행히 H씨가 보낸 이번 사연 속 상대의 경우, B와 C의 중간지점에 있으며, 평일엔 퇴근 후 거의 요양생활을 하지만 주말엔 그래도 활발하게 시도를 넘나든다는 이점이 있다. 그녀가 집순이가 된 건, 사람이 부담스럽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친한 사람은 다 타지에 있는데다 딱히 어울리고 싶은 사람도 없어 혼자 생활하다 습관화된 거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A++ 타입에게 보인다는 연락 문제가 있잖아요. 답장 오는 텀도 길고, 최근엔 한 번 대답을 안 하기도 했고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여자들은 거의 폰을 손에서 안 놓는다고 하던데, 텀이 이렇게 긴 건 부정적인 거 아닌가요?”
기분 상하게 할 목적이 아니라 잘 해결해 보자는 의미로 하는 얘기라는 걸 이해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말하자면, 그건 H씨가 안부인사만 열심히 하며 가끔 말도 좀 못 하기 때문일 수 있다. 더 짧게 말하자면 요즘말로 ‘노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하튼 난 H씨에게
-묻는 말에는 물음표를 붙여서 말하기.
-‘합니다’와 ‘할 겁니다’ 같은 시제에 신경 쓰기.
라는 두 가지를 권하고 싶다. 둘의 카톡 대화를 보면, 묻는 말인데 물음표를 생략해 상대가 ‘질문인지? 아니면 그렇다는 건지?’라는 걸 되묻는 부분도 있고, ‘할 겁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걸 ‘합니다’라고 말해서 오해가 생긴 적도 있다. 나도 사연을 받다 보면 막
“본인이 안 되겠다고 말함. 남친은 실망해서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 함. 본인이 먼저 일어서 나가 버렸음. 그 날 저녁까지 연락 안 함.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음. 다음 날 본인이 미안하다며 전화함. 받지 않음. 그다음 날까지 본인에게서도 전화 없었음.”
이라고 적어 놓은 사연들이 있어 독해능력을 풀가동해도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H씨도 요런 지점들에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화 역시
상대 – 오빠는 저녁 드셨어요?
H씨 – 네 ** 먹었어요.
상대 – **요? 한식도 좋아하세요?
H씨 – 네 ㅎㅎ 오늘 친구랑 저녁 드신다고 했죠?
상대 – 네 ** 먹으러 왔어요. 친구가 ** 완전 좋아해서요 ㅎㅎ
H씨 - ** 맛있죠 ㅎㅎ
라는 형태가 반복될 때가 많은데, 그렇게 너무 힘준 채 예의를 갖춰 말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좀 더 힘 빼고 진짜 관심을 보이며 한 발짝 더 들어갔으면 한다. 중식 얘기가 나왔으면, 기름에 절거나 턱 아플 정도로 딱딱한 탕수육 말고 겉은 바삭하며 속은 촉촉한, 거기다 튀김옷이 하얗기까지 한 인생 찹쌀 탕수육을 발견했다는 얘기로 이어가 같이 먹어 볼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상대가 부먹과 찍먹 중 뭘 선호하는지, 단무지에 식초 뿌리는지 안 뿌리는지 등을 물어보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얘기해도 되는 기회를 그냥 웃으면서 짧게, 거기다 누굴 갖다놔도 할 수 있을 리액션 정도만 하며 흘려보내지 말고, 지금 바짝 다가서선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이런 대화는 다음 만남이 있기 전까지 최대한 젠틀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디딤돌일 뿐, 진짜 목적은 이렇게 대해주다가 다음 약속을 잡는 거닷!’
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매 순간순간이 H씨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자.
“알겠어요. 그런데 그럼 주말에 보자고 했다가 두 번이나 거절당한 건 뭘까요? 그리고 지난주 거절했던 건, 보니까 일찍 갈 필요가 없는 거라 저랑 만나려면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요.”
거절은, 상대가 그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는가. 그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선약’이며, 집순이인 대원들의 특성 상 하루에 두 번이나 약속을 잡는 건 벅찬 일일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동성인 친구야 그냥 편하게 만날 수 있지만 H씨까지 만나려면 옷부터 화장까지 신경 써야 하며, 성격상 1시간 남짓 보고 다른 약속 가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 그랬을 수 있고 말이다.
‘다음 약속 잡기’ 역시, 난 스케줄이 상대보다 복잡한 H씨의 사정을 고려해 상대가 ‘스케줄 표 나오면 그거 보고 잡기로’ 배려 한 거라 생각하는데, H씨는 이걸 두고도
-주말에 안 되는 거면 평일에 어떤지 반문이라도 해주지.
-아무리 바빠도 호감이 있으면 잠깐 보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고만 생각하는 중이다. 이거, 혼자 삐쳐서 이러지 말고, 그냥 H씨가 물을 때 평일엔 어떤지도 같이 묻길 권한다. 그리고 상대가 성수기엔 새벽까지도 야근하는 거 H씨도 알고 있으면서, ‘아무리 바빠도 호감이 있으면….’이라며 서운해하는 건 너무 작은 마음으로 관계에 임하는 거라 할 수 있겠다. 또, H씨의 카톡대화를 보면 오히려 H씨가 평일에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공부도 하는 것처럼 보인던데, 그렇게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게 상대에게는 ‘평소엔 자기계발하느라 시간 없는 남자’의 이미지가 된 건 아닌지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H씨와 달리, 난 집순이인 상대가 이렇게까지 잘 받아주고 있는 건 분명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둘의 카톡대화엔 앞으로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까지 다 나와 있는데, 그걸 H씨가 못 보고 있는 게 안타깝다.
H씨는
-커피는 못 마시니 차 마시자고 하기. 스테이크 먹으러 가기.
등 자신이 생각하는 ‘연애 전 썸 탈 때의 데이트 모습’을 실현하려 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상대가 얘기했던 것을 참고해
-새로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기. 미세먼지 없는 날 산책하기.
같은 걸 해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내 템포와 내 연애상에 상대가 맞춰주길 기대하기’ 보다는, ‘상대의 템포와 상대의 연애상에 맞춰보기’를 목표로 하자.
“그럼 무한님은, 제가 좀 더 전진해봐도 되는 거라 얘기하시는 거죠?”
둘이 몇 번 만났으며 전화통화는 몇 번 했는가? 뭔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 H씨는 아직 뭐 한 게 없다. 이게 만약 도서관에서 호감 가는 상대를 발견한 후 먼저 말을 걸어 인사를 튼 상황이라면, 그냥 계속
“안녕하세요. / 식사하셨어요? / 오늘은 공부 잘 돼요? / 수고하셨어요. / 커피 한 잔 드세요. / 오늘은 날씨 좋네요 /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 일찍 가시게요? / 주말 잘 보내세요. / 전 오늘 먼저 들어가 볼게요. / 저도 자극 받아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 네 들어가세요.”
라는 말들을 멘트은행(응?)에서 돌려가며 뽑아 내미는 것일 뿐이다. 같이 영화 보는 계기를 좀 만들라며 그 많은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는데, 왜 영화 한 편 같이 보자는 말을 못 꺼내는가. 뭐가 무서워서. 영화 보고 나서 아이스크림 먹은 후 살짝 같이 걸어주면 더 친해질 수 있을 테니, 실망하거나 삐치는 건 그만하고 좀 더 리드해보자. 하다가 잘 안 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사연을 보내길 바라며,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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