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간 받은 만 편 이상의 연애사연 중, 지금 언뜻 기억나는 사내연애 사연만 해도
-커피 만드는 취미에 맛 보여달란 얘기로 시작된 사례
-빵 덕후인 게 공통점이라 빵집 배틀 하다 시작된 사례
-같이 외근 나갔다 오며 남는 시간 커피 한 잔 하자고 해 시작된 사례
-회식 끝나고 같이 가다 둘이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시작된 사례
-상대 몫의 간식 챙겨준 걸 계기로 시작된 사례
-여행 다녀온 후 선물 돌리다 대화하게 되어 시작된 사례
-출근시간 배틀, 놀지 말고 일하라고 서로 놀리다 시작된 사례
-물품 찾아달라 부탁하고 부탁 들어주어 고맙다고 말하다 시작된 사례
-예전에 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단둘이 엘베 탔을 때 말해 시작된 사례
등이 있습니다. 저 사례들엔 ‘아무 일도 없었던 이전’과 달리 말을 걸거나 행동을 해서 시작되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제가 저런 사례들을 말해도
“아 근데 저런 건 좀 그래요. 관심 있다는 티도 나고, 저랬다가 거절당하면 어떡하죠? 그리고 회사 사람들의 보는 눈도 있고, 단 둘이 뭘 하게 되어 말 걸 괜찮은 기회도 없어요.”
라는 이야기만 하는 대원들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낚싯대 A/S를 보내려다 긴 물건은 안 받아주는 택배사가 많다고 해서 못 보내고 있는 것과 비슷한 건데, 가서 직접 확인하진 않고 ‘안 받아주면 어쩌지, 헛걸음인데? 다른 사람은 편의점 택배로도 보냈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는 왠지 안 받아줄 것 같아. 전화해서 물어보면 직원도 잘 모를 것 같고….’하는 생각만 하다 보니 전 벌써 반년째 부러진 낚싯대를 가지고만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당연한 겁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주변에서
“그거 그렇게 너무 어렵고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일단 그냥 뭐라도 물어봐.”
정도의 이야기는 해주곤 하기에 열 번 중 두세 번 정도는 진짜 뭐라도 해보기 마련인데, K양의 경우처럼 주변에
“남자는 외모부터 본다. 자기 스타일이 아니면 다가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리고 남자는 자기 맘에 들면 네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말 건다. 그게 아닌 거면 아닌 거니, 애쓰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라는 이야기를 하는 조언자가 있다면, 그 말에 더 겁을 먹곤 내려던 용기도 다시 구겨 넣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안 그래도 남들보다 조심스러워하며 자신의 호감마저 그것이 올바른 건지를 판단하려 하는 K양에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조언을 하는 지인이 더해진 상황이 전 좀 안타깝습니다. 제가 K양의 지인이었다면
-K양이 생각했던 말 걸기, 전부 다 해도 되는 겁니다.
-다짜고짜 ‘식사요청’ 보다는 ‘업무질문’ 정도의 구실을 만드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잘 모르겠는데요, 싫은데요, 아뇨.’라고 할 것 같다는 상상은 하지 맙시다.
-카톡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겁니다. 사적인 카톡부터 틉시다.
-혼자 다 하는 게 아니고 나머지 반은 상대 몫이니, 부담은 덜어두고 시작합시다.
라는 조언을 해줄 것이며, 사연 속 상대가 K양에게 말한 적 있는 것들(특정되는 까닭에 밝힐 순 없지만 상대와의 대화주제가 된 적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좀 더 보이거나 되묻는 걸 계기로 삼아보란 얘기를 해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제가 저 위에서 ‘자신의 호감마저 그것이 올바른 건지를 판단하려 하는 K양’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혼자 다 하는 게 아니고 나머지 반은 상대 몫이니, 부담은 덜어두고 시작합시다.’라고 제안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만약 이 관계가 ‘친구사이’인 거라 가정하면, K양이
-친구에게 내가 전화거는 건 외롭고 심심해서 그러는 이기적인 게 아닐까?
-전화를 걸었는데 오늘 만나서 밥 먹자는 제안에 거절하면 어쩌지?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자고 하는 건 너무 나만 생각하는 거 아닐까?
등의 걱정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번 너무 깊게,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면 친구에게 연락하거나 밥 한 끼 먹는 것도 벅찬 것 아니겠습니까? 또, 매번 저런 생각만 하다 그냥 마음을 접고 만다면, 습관 된 그 체념이 ‘다음번’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고 말입니다.
“아, 그리고 저 회사에서 저에게 다가오는 듯한 다른 남자분도 있는데, 그분에게는 제가 거절의 뉘앙스로…. 근데 또 그분과 사연 속 이분은 친분이 있는데다, 제가 거절하고 이분에게 다가가면….”
그렇게 남의 호감과 사정까지를 다 고려해 배려해주다간, K양이 계속 모태솔로일 수 있습니다. 러브콜을 거절한 게 미안해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러브콜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K양이 바라만 봤던 그 사람도 다른 사람과 연애하면, 결국 K양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붕 쳐다보는 것밖에 안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K양도 아직 한 번 연애에 진입한 적 없는데 남이 옆에서 깜빡이 켰다고 멈춰 서서 다 보내주려 하지 마시고, 얼른 K양도 진입하셨으면 합니다. 그걸 ‘이기적이며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여기며 가만히 있으면, 해 질 때까지 옆 차선에서 깜빡이 켜는 차들에게 다 양보해 주고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어서 출발하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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