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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유진씨에게 ‘완벽주의적 연애를 하려 한다’고 한 건 유진씨의 고결하고 높고 완벽한 연애관이 자기 자신과 구남친 둘 다를 지치게 했다는 의미였는데, 그걸 잘못 받아들인 유진씨는 ‘되는 대로 일단 만나보기’를 하는 게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법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전 산길을 가다 노루를 만났다고 무조건 올라오던 길로 줄행랑은 칠 필요 없단 얘기를 한 건데, 그 얘기를 들은 유진씨는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 ‘아, 피할 필요 없다고 했지?’ 하면서 호랑이에게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호랑이는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피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이전까지 유진씨가, 연애 전 남자를 보고 판단하던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건 아무 문제가 없으니, 하시던 대로 하셔도 됩니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잘 선택해 사귀는 것까지 잘해 놓고는, ‘진짜 날 사랑하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으로 상대를 갈궈가는 점이나, 이별할 때 상대가 여전히 그립고 너무 붙잡고 싶은 존재라 말하지만 ‘상대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그 불균형이었습니다. 전 그게 문제라고 했던 건데, 유진씨는

 

“무한님 얘기가 훅 꽂혔어요. 그래서 이번엔 지인이 알려준 앱으로, 남자를 만나보기로 했어요. 이전 같으면 절대 안 그랬겠지만, 연애에 대한 제 완벽주의 같은 것에서 벗어나려고요.”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시니, 저는 피장봉호(避獐逢虎)라는 성어가 떠오릅니다. 노루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 요 정도만 적어도 유진씨의 질문에 답은 될 것 같은데, 유진씨는 ‘상대가 왜 호랑이죠?’라고 너무 순수한 눈빛으로 물어볼 것 같으니, 아래에선 호랑이 얘기도 잠깐 해볼까 합니다.

 

못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어플남, 믿어도 될까요?

 

 

유진씨의 사연 속 호랑이에 대해선, 10여 년 전 연애매뉴얼 시즌1에서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센티멘탈 타이거(응?)’라고 할 수 있는 부류인데, 그들은 주로 독서모임이나 토론모임, 음악이나 영화 모임 등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센티멘탈 타이거를 만난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오글거림과 허세에 거부감을 느껴 도망치곤 합니다. 저도 지금 예시를 작성해보려다가 손이 오그라들어 자판을 치기가 힘든데, 여하튼 금빛 모래를 함께 맨발로 밟으면서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뭐 그런 식의 감수성 터지는 이야기들을 하는 거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센티멘탈 타이거들에겐 주로 스물넷 전후의 꼬꼬마 대원들이 넘어가곤 하는데, 종종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삼십대 전후의 대원들도 넘어가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타이거들이 막

 

“저는 당신에게 진지하니까요.”

 

같은 오글공격을 해도, 일부 대원들은

 

‘아아 좋다. 나랑 마음이 통했어. 이 사람은 내게 지금 진.지.해’

 

정도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입니다. 타이거의

 

“영화 보는 거 좋아하고, 전시회에도 종종 갑니다. 집에선 주로 책을 읽고요. 그렇다고 정적인 건 아니고, 때론 액티비티한 것들까지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제게 상반된 모습들이 있어서, 혹시 부담을 갖진 않으시려나요? 후후.”

 

라는 밑밥에도, 역시 일부 대원들은

 

‘아 너무 좋아. 사귀면 저걸 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내가 이전 연애할 때 일 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남자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집돌이라 동네 데이트만 하는 남자 때문에도 고민했는데….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부터 하고 맙니다. 뭐 아직 같이 한 것도 없는데, 상대의 자기소개만으로 상대에 대한 환상을 품으며, 현실에서는 마주한 적 없는 어떤 특별한 인간형 같다는 착각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훅 빠진 상황이라고 해도 상대에 대해 분명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시점은 찾아옵니다. 밤 10시만 지나면 시작되어 12시가 넘으면 심화 되는, 센티멘털 타이거들의 이상한 모습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멀쩡하며 젠틀하고 반짝반짝해보였던 유진씨의 상대 역시,

 

-손잡고 싶어요.

-옆에 누워있는 것 같아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요.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뭐 못할 말인 건 아니지만, 아직 서로 보기도 전이라거나 겨우 한 번 본 게 전부인 상황일 때 상대가 혼자 달아올라 구애하며, 나아가 저런 말들로 ‘이쪽도 같은 마음인지?’를 떠보려 한다는 건 분명 이상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유진씨는 제게

 

“제가 너무 예민보스라서, 또 이 사람을 채점하고 있는 건가요?”

 

라고 물으셨는데, 연락도 잘 안 되면서 그냥 자기가 그러고 싶을 때만 저러는 사람, 운명이니 영혼이니 하는 사람에게선 얼른 도망가는 게 상책이란 말씀을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

 

 

유진씨가 상대와의 관계를 ‘운명적’인 거라 착각한 건, 상대가 그런 쪽이 자극되도록 연출한 것도 원인이고, 더불어 유진씨가 ‘답정너’를 하는 타입이라 거기에 맞는 대답만 하면 되니 쉬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진씨의 질문들에는 ‘내가 원하는 대답’이 뭘지 뻔히 보이는 특징이 있으며, 유진씨가 하는 대부분의 질문들엔

 

“그럴리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솔직히 저도 똑같은 생각 했어요.”

 

라는 대답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게 가능합니다. 특정될 수 있는 질문들이기에 여기다 밝혀 적진 않겠습니다만, 그렇게 다 티 나는 질문들로 상대의 마음이나 의도를 확인하려 하기보다는 겪어 가며 직접 확인하시길 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놓치는 거 아닌가요? 상대는 지금 이렇게 다가오는데, 제가 천천히 알아가려 하다가 타이밍이 엇갈리면….”

 

이 상황대로라면, 상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상대 흥미 잃을 시점에 유기되는 일로 귀결될 가능성이 99.82% 이상입니다. 상대가 밤에는 술 취한 듯 혼자 막 구애하다가 낮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연락까지 두절 되는 일이 있는 상황. 게다가 아직 상대가 직접 공수표를 발행한 것도 아닌데 유진씨는 상대가 하는 말만 듣고는 환상을 입혀버린 부분이 많으니, 이거 이렇게

 

-다음에 만나면 우리 1일. 사귀는 사이니 이제 연인들이 하는 거 다 하기.

 

라는 상대 템포에만 맞춰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진 마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 남자를 믿고 만나도 되는지를 물었던 건데, 믿지 말라는 말씀이시죠?”

 

믿지 말라는 게 아니라, 호랑이를 봤으면 피해야지 왜 거기서 우물쭈물하고 있냐는 얘기였습니다.

 

“그럼 상대는 왜 그러는 거죠? 이쪽의 호감을 즐기고 농락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센티멘털 호랑이가 사람 무는 것에는 이렇다 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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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ㅍㄹ2019.04.1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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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남 개소리 듣고 있기에는 인생 짧습니다.

금홍2019.04.1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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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에게 진지하니까요.” 에서 웃음 터진ㅋㅋ오늘 글 유쾌한 포인트가 많네요ㅎㅎ

보통 외로울 때
걍 뭐라도 만나 뜯어먹힐 준비를 하죠. 저런 감성에 알레르기가 안 생기는 걸 보면 유진씨도 감성적인 사람일 것 같은데.. 환상을 싹 걷어내고 상대를 한번 보시길 바라요!

장미2019.04.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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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건 뭐다???
뒤도 돌아보지말고 도망!!!

사막에사는선인장2019.04.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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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그냥 막 물어요 도망가세요
무한님 비유 오늘도 멋지십니다

김문도2019.04.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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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큐빅2019.04.1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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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짐승이 사람을 무는데에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본능적으로 물어야겠다 싶으니 무는거지. 거기에 이유를 들기 시작하면, 아시죠? 종족의 우상.

룰루2019.04.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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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님은 정말 전문 상담가이신듯.. 하긴 연애사연상담 10년이상이면 맞겠네요..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ㅇㅇㅇ2019.04.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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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항 시행착오의 일부이기를

찐 고구마랑 삶은 달걀2019.04.1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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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ex 만나는 곳)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플보다는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확률이 높잖아요.

그리고 진부한 얘기지만,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 보이고
좋은 사람이 나타난답니다.

그러지 않는 게 최상이지만
한두 번의 좋지 못한 사람을 겪는 것도
좋은 사람이 되는 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간장공장공장장2019.04.1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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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아무리 흔들어도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중심이 세워져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열심히 흔들려봐야 아, 내가 이 정도 흔들림에선 버틸 수 있겠구나 하며 중심도 잡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아직 중심잡는 중..! ㅎㅎ

dd2019.04.12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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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니 ㅋㅋㅋ
저런 소릴 듣고 왜만나는지

미냥2019.04.1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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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글 대박공감!
특히 24살 전에 저런 남자들한테 잘넘어간다는것도ㅜㅜ
저도 24살까지 딱 좋아한건아닌데 저런사람들한테 끌려다녔었죠ㅜㅜ
제 남친이 되는건데 당연히 지켜보고 괜찮은 사람인지 봐야하는건데 그런 기간을 가질려하면
나쁜년 취급하니 그때는 어려서 모르고 끌려다녔죠
저도 나름 똑부러진다는 소리 많이 듣는데도ㅠㅠ
그래서 어린여자애들한테 맨날 저런거 주의하라는 소리만 하고살아여 ㅋㅋㅋㅋ
지금은 다행히 저딴짓안하는 좋은 남친만나서 재밌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당ㅋㅋ

ㅇㅇ2019.04.1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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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오면 안전하지 않은 콘텐츠가 차단됨 이라고 뜨고 '이 페이지가 인증되지 않은 소스에서 스크립트를 로드하려 한다'고 뜨는데 저만 그런가요? 사이트 보안에 문제가 있는건가요?

레티2019.04.1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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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몇년전에 즐겨찾기 등록해놓고, 정말 자주 왔었던 눈팅족인데... 우연히 daum 메인타고 들어왔어요, 저는 그새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답니다. 사연보낸적도, 댓글단적도 없지만, 꼬꼬마시절 도움 많이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Ace2019.04.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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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센티멘탈 호랑이라니 재밌는 표현이에요. 저도 예전에 한 번 물렸던 듯?!

사람이 자기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호랑이가 와도 안 물려 가고, 진상이 와도 호구 짓 안 하고-

저는 질질 끌려 다닐 것처럼 보이는 스타일이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자꾸 저를 지 멋대로 휘두르고 싶어하는 놈들만 꼬이네요.. ㅠㅠ 아닌데.. 사실 알고 보면 나도 성깔 있는데.. 동성들은 금방 알아 보는데 이성들은 왜 전혀 아닌 걸까요 ㅠ

유진씨는 빨리 도망쳐서 좋은 분이랑 이 봄날 보내시길!

2019.04.1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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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Tone and Manner2019.04.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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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해 ㅋㅋㅋㅋㅋ

빨주노초파남보라2019.04.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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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웃음이 많이 나는 내용이네요 ㅋ
무한님 한번 뵙고싶어지는 분.

noname_K2019.04.1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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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로 좋은 만남을 이루는 커플도 있겠지요. 그러나 세상에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된다고 해서 그게 당신도 로또 당첨된다는 뜻은 아니듯, 유진님이 만나는 사람도 절대로 좋은 사람일 리는 없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만남어플 소개팅어플 쓰는 사람 몇 있었습니다. 갖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그들중 단 한명도 '잘 하면 만나서 성관계 한 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기대감 없이 어플까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리고 하는 말이 '어차피 여자들도 다 알면서 어플 까는걸텐데 뭘' 이라고 합리화를 하더군요. 그냥 나이트나 클럽가서 원나잇하는것과 똑같이 생각하더라구요.

앱 같은걸로 만난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감도 품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이먹은 새끼호랑이2019.04.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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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어야할 것 같은데 여기 마늘밭에서 마늘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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