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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못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어플남, 믿어도 될까요?

by 무한 2019. 4. 10.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유진씨에게 ‘완벽주의적 연애를 하려 한다’고 한 건 유진씨의 고결하고 높고 완벽한 연애관이 자기 자신과 구남친 둘 다를 지치게 했다는 의미였는데, 그걸 잘못 받아들인 유진씨는 ‘되는 대로 일단 만나보기’를 하는 게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법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전 산길을 가다 노루를 만났다고 무조건 올라오던 길로 줄행랑은 칠 필요 없단 얘기를 한 건데, 그 얘기를 들은 유진씨는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 ‘아, 피할 필요 없다고 했지?’ 하면서 호랑이에게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호랑이는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피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이전까지 유진씨가, 연애 전 남자를 보고 판단하던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건 아무 문제가 없으니, 하시던 대로 하셔도 됩니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잘 선택해 사귀는 것까지 잘해 놓고는, ‘진짜 날 사랑하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으로 상대를 갈궈가는 점이나, 이별할 때 상대가 여전히 그립고 너무 붙잡고 싶은 존재라 말하지만 ‘상대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그 불균형이었습니다. 전 그게 문제라고 했던 건데, 유진씨는

 

“무한님 얘기가 훅 꽂혔어요. 그래서 이번엔 지인이 알려준 앱으로, 남자를 만나보기로 했어요. 이전 같으면 절대 안 그랬겠지만, 연애에 대한 제 완벽주의 같은 것에서 벗어나려고요.”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시니, 저는 피장봉호(避獐逢虎)라는 성어가 떠오릅니다. 노루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 요 정도만 적어도 유진씨의 질문에 답은 될 것 같은데, 유진씨는 ‘상대가 왜 호랑이죠?’라고 너무 순수한 눈빛으로 물어볼 것 같으니, 아래에선 호랑이 얘기도 잠깐 해볼까 합니다.

 

못생긴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어플남, 믿어도 될까요?

 

 

유진씨의 사연 속 호랑이에 대해선, 10여 년 전 연애매뉴얼 시즌1에서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센티멘탈 타이거(응?)’라고 할 수 있는 부류인데, 그들은 주로 독서모임이나 토론모임, 음악이나 영화 모임 등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센티멘탈 타이거를 만난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오글거림과 허세에 거부감을 느껴 도망치곤 합니다. 저도 지금 예시를 작성해보려다가 손이 오그라들어 자판을 치기가 힘든데, 여하튼 금빛 모래를 함께 맨발로 밟으면서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뭐 그런 식의 감수성 터지는 이야기들을 하는 거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센티멘탈 타이거들에겐 주로 스물넷 전후의 꼬꼬마 대원들이 넘어가곤 하는데, 종종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삼십대 전후의 대원들도 넘어가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타이거들이 막

 

“저는 당신에게 진지하니까요.”

 

같은 오글공격을 해도, 일부 대원들은

 

‘아아 좋다. 나랑 마음이 통했어. 이 사람은 내게 지금 진.지.해’

 

정도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입니다. 타이거의

 

“영화 보는 거 좋아하고, 전시회에도 종종 갑니다. 집에선 주로 책을 읽고요. 그렇다고 정적인 건 아니고, 때론 액티비티한 것들까지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제게 상반된 모습들이 있어서, 혹시 부담을 갖진 않으시려나요? 후후.”

 

라는 밑밥에도, 역시 일부 대원들은

 

‘아 너무 좋아. 사귀면 저걸 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내가 이전 연애할 때 일 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남자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집돌이라 동네 데이트만 하는 남자 때문에도 고민했는데….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부터 하고 맙니다. 뭐 아직 같이 한 것도 없는데, 상대의 자기소개만으로 상대에 대한 환상을 품으며, 현실에서는 마주한 적 없는 어떤 특별한 인간형 같다는 착각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훅 빠진 상황이라고 해도 상대에 대해 분명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시점은 찾아옵니다. 밤 10시만 지나면 시작되어 12시가 넘으면 심화 되는, 센티멘털 타이거들의 이상한 모습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멀쩡하며 젠틀하고 반짝반짝해보였던 유진씨의 상대 역시,

 

-손잡고 싶어요.

-옆에 누워있는 것 같아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요.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뭐 못할 말인 건 아니지만, 아직 서로 보기도 전이라거나 겨우 한 번 본 게 전부인 상황일 때 상대가 혼자 달아올라 구애하며, 나아가 저런 말들로 ‘이쪽도 같은 마음인지?’를 떠보려 한다는 건 분명 이상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유진씨는 제게

 

“제가 너무 예민보스라서, 또 이 사람을 채점하고 있는 건가요?”

 

라고 물으셨는데, 연락도 잘 안 되면서 그냥 자기가 그러고 싶을 때만 저러는 사람, 운명이니 영혼이니 하는 사람에게선 얼른 도망가는 게 상책이란 말씀을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

 

 

유진씨가 상대와의 관계를 ‘운명적’인 거라 착각한 건, 상대가 그런 쪽이 자극되도록 연출한 것도 원인이고, 더불어 유진씨가 ‘답정너’를 하는 타입이라 거기에 맞는 대답만 하면 되니 쉬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진씨의 질문들에는 ‘내가 원하는 대답’이 뭘지 뻔히 보이는 특징이 있으며, 유진씨가 하는 대부분의 질문들엔

 

“그럴리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솔직히 저도 똑같은 생각 했어요.”

 

라는 대답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게 가능합니다. 특정될 수 있는 질문들이기에 여기다 밝혀 적진 않겠습니다만, 그렇게 다 티 나는 질문들로 상대의 마음이나 의도를 확인하려 하기보다는 겪어 가며 직접 확인하시길 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놓치는 거 아닌가요? 상대는 지금 이렇게 다가오는데, 제가 천천히 알아가려 하다가 타이밍이 엇갈리면….”

 

이 상황대로라면, 상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상대 흥미 잃을 시점에 유기되는 일로 귀결될 가능성이 99.82% 이상입니다. 상대가 밤에는 술 취한 듯 혼자 막 구애하다가 낮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연락까지 두절 되는 일이 있는 상황. 게다가 아직 상대가 직접 공수표를 발행한 것도 아닌데 유진씨는 상대가 하는 말만 듣고는 환상을 입혀버린 부분이 많으니, 이거 이렇게

 

-다음에 만나면 우리 1일. 사귀는 사이니 이제 연인들이 하는 거 다 하기.

 

라는 상대 템포에만 맞춰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진 마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 남자를 믿고 만나도 되는지를 물었던 건데, 믿지 말라는 말씀이시죠?”

 

믿지 말라는 게 아니라, 호랑이를 봤으면 피해야지 왜 거기서 우물쭈물하고 있냐는 얘기였습니다.

 

“그럼 상대는 왜 그러는 거죠? 이쪽의 호감을 즐기고 농락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센티멘털 호랑이가 사람 무는 것에는 이렇다 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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