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각각의 연애매뉴얼에서 한두 번씩 한 적 있는 이야기들인데, 같은 질문을 계속하는 대원들이 많아 이렇게 묶어서 발행하기로 했다. 카톡대화에 소질이 없는 대원들의 얘기를 하면, 다른 대원들은
“저런 건, 별로 관심 없는 남자에게나 그러는 거 아닌가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는 걸 전혀 모르는 대원들도 있다는 얘기를 먼저 해둬야 할 것 같다. 새로 바뀐 우리 동네 편의점 알바는 내가 물건 사러 들어가면서 인사하고, 나오면서 인사해도
무한 – 수고하세요.
알바 – 네.
하고 말던데, 그렇듯 그냥 정말 뭘 몰라서 ‘난 대답했는데 뭐가 문제지?’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 그런 대원들을 위한 매뉴얼이라 생각해줬으면 한다. 자 그럼, 출발.
1. 대화의 블랙홀.
연애의 시작은 다음 주나 다다음 주로 좀 미뤄두고, 일단 상대에게 관심부터 좀 갖자. 관심을 가져야 할 말도 생기고 물어볼 것도 생기는 법 아니겠는가.
남자 – 전 이제 끝났네요. 여자씨는 뭐 하고 있어요?
여자 – 웹툰 보고 있어요~
남자 – 웹툰이요? ㅎㅎ 전 여름옷이 없어서 쇼핑 중이었어요.
남자 - <사진> 이거 어때요? 평소에 입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여자 – 괜찮은 것 같아요~
남자도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타입이라 그닥 바람직한 예시는 아닌데, 여하튼 저런 상황에선 정말 간단하게 “그거 사려고요?”라거나 “색이 다 **색인데, **색 좋아하시나 봐요 ㅎㅎ” 정도로 받으면 된다.
그러면 상대가 이쪽은 주로 어디서 옷을 사는지를 묻거나,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를 물을 수 있으며, 이쪽이 옷을 잘 고르는 안목이 있다면 다른 것도 추천할 수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언제 처음 스스로 옷을 골라 사 입었는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가 실패한 경험은 없는지, 어느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아울렛 가봤는지 등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사실 나도 남에게 별 관심이 없는 까닭에 지인이 어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그다지 궁금한 게 없었다. 그래서 지인이 수다스러운 타입이 아닐 경우 지인의 6박 7일 여행 얘기도 3분 컷으로 대화를 마치곤 했는데, 반대로 내가 여행을 다녀왔을 때 지인이 ‘어, 그래.’ 정도의 반응만을 보이면 대화에 흥이 나질 않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항공편을 묻거나, 그곳 기후나 음식에 대해 묻거나, 경로에 대해 묻거나,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감흥을 묻거나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3분 컷이었던 대화는 30분이 넘도록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처럼 사실 막 엄청 관심 있고 궁금해서 죽을 것 같은 부분이 아니더라도 물어보고 리액션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럼 놀라울 정도로 대화가 풍성해지며,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나와의 대화가 좋은 느낌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2. 말하면 죽는 병.
위에서 이야기한 것이 ‘리액션 없음’의 문제라면, 여기서 이야기할 것은 ‘피드백 없음’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뭐 이런 것까지 말하나 싶다며 자체검열 후 말을 안 하기로 하거나, 괜히 말을 걸었다가 반응이 시원찮을까 봐 두려워 망설이다 접거나, 원래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그냥 다 생략해 버리고 이심전심만을 바라거나 하며 말을 생략하고 마는 것이다.
상대와 ‘빵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상대가 추천까지 했으며, 이후 그 빵집에 들러 빵을 사 먹었다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당황스럽게도 이 ‘말하면 죽는 병’에 걸린 듯한 대원들은 상대가 다시 그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절대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상대 입장에선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피드백이 전혀 없다고 느끼게 되며, 뭔가를 권하거나 추천해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더는 말을 꺼내지 않게 되곤 한다. 특히 남자의 경우 자신이 소개한 무언가를 여자가 좋아할 경우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은 것 같다는 생각에 호랑이 기운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말하면 죽는 병’에 걸린 대원들은 상대로 하여금 호랑이 기운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상대가 권한 게 별로였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빵집이 더 맛있어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한 건데요.”
그러면 그 얘기를 하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빵집이 더 맛있다는 얘기를 한다고 해서 상대가 이쪽을 차단하는 것도 아닌데, 왜 걱정을 만들어서까지 하느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가. 원래 생각이 많으면 말이 적어지는 법이긴 한데,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랬다가 제가 한 얘기에 상대가 별 반응을 안 보이면, 전 상처 받을 것 같은데요….”
만약 상대가 그런다면 그런 상대는 후딱후딱 정리하는 게 맞다. 상대가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면서 아예 덮어만 둔 채 붙잡고 있으면, 그건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잖은가. 더불어 이쪽의 그런 예감과 달리 현실에선 상대에게 피드백을 했을 때 ‘생각도 못 했던 좋은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돈도 들지 않은 그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봤으면 한다. 흐지부지 연락 끊기곤 막 6개월 뒤에 “예전에 상대가 말했던 거 지금 피드백 해볼까요?” 하지 말고, 아끼다 뭐 되기 전에 활용하자.
3. 전생에 함흥차사.
이 얘기를 하면 꼭
“제가 폰을 하루종일 쥐고 있는 타입이 아니어서요.”
라며 자기 스타일을 설명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내가 권하는 건 하루종일 폰을 붙들고 있으라는 게 아니라, 하루에 30분이든 1시간이든 실시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업무 때문에 바쁜데 상대에게 톡이 올 경우엔 나중에 확인하든 아니면 짧게 대답하고 다시 일을 하든 해도 된다. 하지만 크게 바쁜 것도 아니고, 그냥 TV 정도를 보는 중에도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건,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무례한 태도로도 보일 수 있다.
실시간 대화를 하다가 말도 없이 샤워를 하러 사라진다거나, 그러고 와서는 짧게 대답하곤 다시 또 대화방을 나가서 한참 후에나 오진 말자는 거다. 전에 말했듯 이러다가 배틀 붙어선 막 서로 하루 뒤에 확인하고, 3일 후에 확인하고, 그러다 흐지부지 되기도 하는데, 제발 그러지 말자. 하루에 30분 만이라도 대화에 집중하며, 뭔가를 해야 해서 대화가 어려우면 그 사정을 이야기하고, 급해서 말 못 하고 나갔다 왔으면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을 상대에게 말해주자. 이건 사실 정말 ‘당연한 것’에 속하는 건데, 놀랍게도 이걸 모르는 대원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아가 상대에게 답이 늦었다고 해서, 아쉬워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늦게 메시지를 확인한다거나 대답을 성의 없이 한다거나 하진 말자. 이 부분에 대해
“제가 그렇게 했는데도 상대가 적극적이면, 그게 좋아한다는 거잖아요. 그 정도 좋아함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고, 어쨌든 전 그렇게 호감을 가지고 달려드는 사람이 좋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도 있었는데, 환갑이 될 때까지 그렇게 상대를 시험에 들게 하고, 연애 시작해서도 연락을 고문도구로 사용하는 것만 반복할 거라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끓기 시작하는 호감에 찬물을 끼얹어 가며 식나 안 식나만 테스트하진 말도록 하자.
연애 사연을 받고 매뉴얼을 발행하며 정말 다양한 형태의 연애와 신박한 기술들을 접하기도 하는데, 이 ‘함흥차사’ 타입의 대원들에겐
-카톡에서 1을 없애지 않고 상대 메시지 확인하기.
라는 스킬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 거 안 하고도 연애 잘 할 게 분명한 사람이 그러고 있어서 난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여하튼 그렇게까지 하면서 굴러온 썸 차버리지 말고 그냥 다가가 봤으면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 외에 ‘두고만 보는 평가사’라는 항목도 사실 소제목으로 잡았는데, 쓰다 보니 앞서 말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인 것 같아 생략하기로 했다.
-상대의 호감이 내가 가진 것보다 작은 것 같아 화가 난 상태.
-상대의 수면시간까지 계산해가며 ‘왜 답장이 늦는가?’하며 연구 중인 상태.
-친구 만난다는 상대 말에 ‘친구 만날 시간은 있고 나 만날 시간은 없냐’ 생각하는 상태.
로 급격하게 빠지는 대원들이 있다면, 그 대원들에겐 아직 뭐 서로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가깝지 않은 상황인데, 그 와중에 ‘나 1순위로 두기’만을 바라진 말자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가 ‘부모님이 오셔서 내일 만나는 게 어렵겠다, 다음 주 평일로 미루어도 될까?’ 하자 실망감과 복수심에 불타 ‘다음 주 평일엔 나도 바쁘다. 근데 부모님이 오시면 못 만나는 거냐’ 고만 반응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속상한 건 이해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작은 여유라도 가져보려 애써봤으면 한다. 우긴다고 되는 게 아니며 무작정 화풀이를 하면 상대도 내상을 입을 수 있으니, 아직 깃털처럼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생각하며 조급함을 내려놔 보자.
기름칠한 것처럼 매끄럽게 대화 못 해도 연애할 수 있고, 사교적이 아니라거나 이성과의 대화가 어려워 좀 버벅대도 연애할 수 있다. 그런 장점들은 상대가 내게 오는 길을 4차선이나 8차선으로 만들어둔 것과 같아 좀 더 수월할 수 있긴 한데, 그렇다고 꼭 도로를 넓히는 일에만 골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만, 위에서 말한 것들은 ‘사륜구동 자동차도 빠지는 길’ 이라거나 ‘중간에 길 끊김’, 또는 ‘경사가 35도를 넘는 비포장 오르막길’과 같으니, 적어도 차 한 대는 사고 없이 올라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생각하며 노력해 봤으면 한다. 길을 내는 과정 중 또 어려움이 생기면 포크레인 몰고 내가 출동할 테니 사연을 보내주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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