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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6)

모태솔로 초식남으로 살아온 30년, 탈출 좀 도와주세요.

by 무한 2019. 9. 18.

‘모태솔로 초식남’에서의 탈출이, P씨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걸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나 역시도 P씨의 사연을 읽고는 막막함부터 느꼈는데, 이건 P씨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깨지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깨우치거나 뉘우쳐야 하는 걸 내가 총대를 메고 괜한 일을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지금까지도 든다.

 

남들에게도 P씨와 같은 모습이 있긴 하지만, 보통 그런 모습들은 10대에 1차로 흑역사 기록하며 대부분 봉인되고, 20대에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다듬어지곤 한다. 그런데 P씨의 경우는 마치 어디 수감되어 있다가 이제야 세상에 처음 나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듯한 모습을 보이기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거 내가 P씨가 밉다거나 싫어서 하는 얘기들이 아니고, 잠 못 잘 정도로 고민하거나 이불 차면서 깨달았어야 하는 것들을 압축해서 하는 얘기들이니, 충격이 좀 있긴 하겠지만 분명 P씨에게 도움이 될 얘기들이라 생각하며 읽어주었으면 한다. 자 그럼 출발해 보자.

 

모태솔로 초식남으로 살아온 30년, 탈출 좀 도와주세요.

 

1. 착각과 오해.

 

이건 내가 P씨의 사연을 읽다가 ‘뭔 소리야? 좀 이상한데? 아니, 많이 이상한데?’라고 가장 먼저 생각한 지점이다. P씨가 한 말을 보자.

 

“카페나 식당 같은 데 혼자 앉아 있으면, (제게) 관심을 표하는 여자들이 늘 한 명씩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길래, 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당연히 저 말의 근거가

 

-먼저 말을 걸어옴.

-연락처를 물어봄.

-그런 계기들로 연락하게 되거나 만난 적 있음.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는데, P씨가 내놓는 근거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럽다.

 

“그렇게 관심을 표하는 여자들이 있으면 제가 말을 걸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합니다. 그런 저를 답답해하다가 지쳐서 신경질 내고 나가는 여자분도 여럿 있었고요.”

 

P씨는 ‘관심을 표하는 여자들’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잖은가? 대화를 나눈 게 아닌데도 상대의 관심을 느끼고 뭐 그랬다는 건 ‘눈 마주침’ 같은 것으로 혼자 소설을 썼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 그 소설이 막 3부까지 이어지며 ‘지쳐서 신경질 내고 나가는 여자분’까지 등장한다면 그건 확실히 문제인 게 맞다.

 

이번 사연에 등장하는 여자분에 대한 P씨의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여자분이 나 혼자 앉아 있는 걸 보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일부러 내 쪽은 쳐다보지 않고, 다른 테이블만 정리한 것 같았다.

-서둘러 돌아가기까지 한 걸 보니, 나를 의식해서 한 행동인 것 같다.

 

착각과 오해는 자유인 데다 돈도 들지 않으니 마음껏 할 수 있긴 하다. 그런 까닭에 좀 착각하고 오해한 걸 두고 뭐라고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후 P씨가 그녀에게 여러 번 말도 걸었는데 돌아오는 건 전부 단답이고 나중엔 표정까지 굳어졌다면, 그게 전부 P씨의 착각과 오해였다는 걸 깨달으며 뒤통수를 긁을 줄 알아야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현실은 ‘그게 절대 아님’이라는 걸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그걸 다 부정하며 편한 대로 계속 오해와 착각을 이어가면 문제나 사고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그곳이 상대가 일하는 현장이거나 이쪽이 업무 관계로 얽혀 있는 사람이라, 상대가 ‘처세’나 ‘서비스’의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욕을 참고 있는 걸 두고도 계속 오해나 착각의 근거로 사용한다면, 그 마지막엔 결국 경찰이 출동하거나 법원에서 뭐가 사실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P씨의 이 ‘오해와 상상의 레벨’은 고교시절 시험기간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다가 눈 마주친 다른 학교 여학생을 보고는 ‘나 좋아해서 저러나? 방금 내 옆을 지나갈 때 빠르게 지나간 건 부끄러워서인가?’ 하는 정도의 레벨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사실 아무 감정도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99%인 거라 생각하며 영점조정을 꼭 다시 했으면 한다. 이걸 두고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왔다’고 말할 정도면, 그건 ‘멜로’가 아니라 ‘호러’가 되는 것이라는 것도 꼭 기억해 두자.

 

 

2. 서투른 접근이 부를 수 있는 공포.

 

각색을 요구한 까닭에 이걸 뭐라 말할지 좀 애매하긴 한데, 그러니까 ‘내가 알고 싶은 것’과 ‘상대가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하는 질문엔 좀 더 친해지고 나서 물어야 하는 것이라든지 실례가 되니까 되도록 상대가 꺼내기 전까진 묻지 말아야 하는 것 등이 있다고 적어두어야 할 것 같다.

 

이전에 매뉴얼을 통해 한 번 이야기한 적 있는데, 우리 어머니께선 분리수거장에서 처음 본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게 된 후, 그 아저씨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저씨가

 

“몇 층 가세요? 7층이요? 저도 7층인데, 칠백몇 호에 사세요?”

 

라고 물어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고 하신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께선 “왜요?”라고 물어 그 아저씨에게 ‘아, 이렇게 물어보면 상대가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하셨는데, 아무튼 이처럼 ‘내가 알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상황이나 친분에 맞지 않게 물으면 오해를 부르거나 실례가 될 수 있다.

 

P씨가 상대에게 물었다는 질문들을 보면, 아직 통성명도 안 한 사이인데 물으면 좀 무서울 수 있는 것들이다. P씨야 상대를 계속 관찰하며 상대가 일하는 곳에 손님으로 가니 상대와 친하다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상대 입장에선 P씨가 그냥 ‘수많은 손님 중 하나’이며 좋은 사람인지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이게 남의 이야기라 여기며 생각해 보자. 만약 어떤 남자 A가 자기가 관심 가진 빵집 알바생에게

 

“요즘 이 부근에서 사건 많이 일어나는 거 아시죠?”

“언제쯤 끝나세요? 뭐 타고 가세요? 혼자 가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예요. 그런데 무섭지 않으세요?”

 

라는 이야기를 자꾸 한다면, 그녀는 밤길이 무서운 게 아니라 기분 나쁜 이야기와 이상한 질문들을 자꾸 하는 저 남자 A가 더 무섭지 않을까? 남자 A야 자기가 저렇게 얘기를 해서 ‘내가 신경쓰고 있으며, 원한다면 끝나고 같이 가줄 수도 있다’는 걸 표현한 거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기분 좋지 않은 말과 질문을 하니 무섭고 불쾌할 수 있고 말이다.

 

P씨의 경우 묻는 내용도 이상하고, 묻는 방식도 이상하며, 묻는 목적도 확실하게 밝히는 게 아니기에 문제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쉽게 말해

 

“어? 오늘은 늦게까지 계시네요? 원래 6시쯤 까지만 계시지 않아요?”

“오늘 10시에 끝나시죠? 이따 전철 타러 가실 거고요. 거기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라는 질문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질문을 받는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겁먹지 않게’ 물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서로 잘 모르는 지금 해도 되는 질문’과 ‘친해지고 나서 해야 하는 질문’이 구별된다는 것도.

 

 

3. 연출과 거짓말.

 

P씨가 한 연출과 거짓말들을 그대로 적기엔 무리가 있어 이 부분도 좀 말하기가 어려운데, 그냥 난 아주 간단하게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서, 웬만한 연출과 거짓말은 바로 알아챈다. 그것에 서툰 사람이 하는 것일수록 상대는 더더욱 알아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P씨는 사연 신청서에 친절하게

 

“제가 **했다고 한 건 사실 연출입니다.”

 

라고 적어두었던데, P씨가 말을 안 해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지점을 눈치챌 것이 확실하다. P씨가 한 행동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며, 딱 봐도 그냥 다른 목적이 있는데 괜히 핑계로 꺼낸 이야기라는 게 티가 난다.

 

물론 좀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건 할 수 있다. 공짜로 뭘 얻었다며 상대에게 나눠준다든지, 일부러 소지품을 놓고 나와 말을 틀 구실을 만든다든지 하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P씨가 계획하고 있는 연출은, 하아 이거 뭐 그냥 누가 봐도 혼자 시나리오 쓰면서 억지로 이어가려는 연출이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안 하는 게 맞는 거다. P씨 자신이 다시 봐도 말이 안 되는지

 

“너무 저만 (연출의) 진도를 안드로메다 너머까지 뺀 것 같네요.”

 

라고 하지 않았는가.

 

더불어 그 연출의 과정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고, 상대는 그게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 주는 건데 P씨는 그게 통한 줄 알고 다음 거짓말로 시나리오를 이어가려 하고 있으니,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정상적이고 평범한 질문을 하고 인사 잘 하며 그러다 사적인 이야기를 점점 나누게 될 수 있는 정도로 친해지는 방법을 사용했으면 한다.

 

“그걸 모르겠는데요. 연출해서 계기를 안 만든다면, 어떻게 무슨 말을 해서 친해지죠?”

 

매번 고르던 것에서 벗어나 상대에게 좀 골라달라고 부탁을 해도 되고, 그런 뒤 상대가 골라준 게 마음에 든다며 고맙다고 말해도 되고, 다음에도 그걸 또 고르며 상대에게 ‘덕분에 선호하는 게 바뀌었다’고 해도 되며, 상대에게 ‘그런데 매일 이렇게 접하시면 좀 질리나요? 아니면 괜찮아요?’ 등의 이야기로 질문을 해도 된다. 그러면서 분위기 봐가며 오래 하셨냐, 출퇴근은 괜찮으시냐, 난 집에서 여기가 제일 가깝기도 하고 매일 지나친다, 난 이러이러한 걸 하고 있는데 이러이러한 것에도 관심이 있다, 그쪽은 무엇에 관심이 있냐 등의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러다 대화 중 나왔던 소재 하나로 ‘나도 그거 좋아하는데 나중에 새 소식 나오면 알려드리겠다’ 정도로 연락처 교환하거나, 아니면 그냥 대놓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하면서 번호를 물어도 되고 말이다. 이런 과정 없이 P씨는 다짜고짜 ‘내가 집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승낙받는 방법’ 같은 걸 찾고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거라 할 수 있겠다.

 

이건 내가 글 몇 줄로 다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직접 P씨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익혀야 하는 부분이다. 평소 친구나 지인들과 명절 잘 보내라고, 또는 명절 잘 보냈냐고 물어보며 대화의 물꼬를 터 가 봐야 낯선 사람과도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 거지, 그런 걸 거의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과도 그냥 할 말이 없어 멀뚱멀뚱 데면데면 있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머리 잘 어울린다, 옷 예쁘다, 신발 잘 산 것 같다 등의 칭찬을 하거나 잘 다녀왔냐, 축하한다, 거긴 어땠냐 등의 질문을 한 적이 없다면 ‘대화의 기술’을 그냥 창고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과 같으니, 지금이라도 의식적으로 먼저 안부인사 건네보고 칭찬과 질문과 리액션을 활용해 대화를 이어가 봤으면 한다.

 

 

이 시간 이후로, 난 P씨가 혼자 만들어낸 음모론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 썸타기를 그만했으면 한다. 혼자 막

 

-아까 내 쪽으로 지나갔는데 또 지나가네? 왜지? 시그널인가?

-지금 나랑 눈 두 번 넘게 마주친 거 보면, 나한테 관심이 20%는 있는 거야.

-저 여자가 나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난 그냥 딴 짓 해야지. 그냥 가네? 삐쳤나?

 

등의 상상만을 하다가 지쳐버린다거나, 그 음모론을 굳게 믿은 채 거기서부터 시작하려 하면 전부 다 어려워질 수 있다. 혼자 열 걸음 이상 앞서나간 곳에서 시작하려 하지 말고 상대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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