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길냥이들을 돌보고 있다니, 나도 정기적으로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서너 번 통조림 조공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반갑다. 올해 5월쯤에는 우리 동네에서도 고양이를 예뻐해주던 선남선녀가 한 고양이를 둘이 쓰다듬으며 바짝 붙어 수다를 떨던데, J씨 역시 서로의 신상을 알 정도의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화번호 교환도 안 한 상황이라 J씨는 더 조급해지고 매일 ‘만약 사귀게 되면….’이란 상상만 더해가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이런 J씨를 위해 ‘그녀와 친해지는 방법과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대화 주제, 아이템, 칭찬과 리액션 준비하기.
이성과 친하게 지내본 적이 별로 없는 대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용건만 간단히’의 대화에 익숙하며 탁구의 ‘랠리’를 위한 핑퐁핑퐁식 대화를 잘 못 한다는 점이다. 뭐, 영화 <펄프픽션>에는
“왜 어색하지 않으려면 수다를 떨어야 할까요?”
라는 명대사가 있긴 하지만, 저것도 사실 어느 정도의 ‘이전 수다’나 ‘교감’이 있었으니 칠 수 있는 대사지,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데 저런 대사를 치면 그저 병원에 가야 할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때문에 현 상황에서 J씨는, 그 기본이 되는 ‘수다’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그냥 “안녕하세요/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만 한 후 머뭇머뭇 되는 것에서 나아가, 고양이의 바디랭귀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고양이 마약이라는 아이템도 준비해 보며, 고양이가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사진을 찍어 그녀에게 보여줄 준비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양이가 상대를 보곤 다가와 비비고 꼬리까지 세우는 걸 보며 그저
‘아…. 고양이가 부럽다….’
하고 있었다면, 이젠
“그렇게 비비는 게 반갑다는 표시래요. 꼬리도 바짝 세우면 놀자는 거라고 하던데, 저한테는 한 번도 안 하던 걸 그렇게 하니 배신감이….”
정도의 멘트까지 하는 거다. 더불어 고양이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간식을 준비해 그녀에게도 줘보라고 한다든지, 그녀가 찍은 고양이 사진에 관심을 보이며 칭찬해도 좋다. 또,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정보에 대해서는 그냥 혼자 간직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입 밖으로 꺼내 묻거나 그것과 연관된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렇게 그녀와 한 번 마주할 때마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놓아 가는 게, 지금처럼 ‘혼자 마음을 키워가다가 고백으로 승부 보기’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아쉽게도 지금까진 J씨가 직업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잘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 없고, 그녀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면서 말을 꺼낸 적 없으니, 이쪽이 거침없이 이야기해줄 수 있거나 상대가 어렵지 않게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해 보길 권한다.
2. 번호 묻고, 일상적인 대화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요?
‘번호를 물어봤을 때 그녀가 번호를 알려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번호 교환 후 카톡으로 수다 떠는 사이가 되는 것’을 희망만 하고 있으면 97.82%의 확률로 짝사랑이 될 수 있다. 이쪽이 간절히 바라는 걸 그녀가 허락해 주면 그것을 양분 삼아 다음 기대를 하게 되기 때문인데, 그럴 경우 십중팔구
-‘거절’이 등장할 경우 낙심하며 이상한 패배감에 사로잡힘.
-‘승낙’이 모든 걸 보장해주는 게 아닌데, 전부 기대만 하게 됨.
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더불어 ‘짝사랑 모드’가 되었을 땐 좀 답답하고 찐득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선 J씨와 나의 대화를 하나 만들어 한 번 들여다보자.
J씨 – 무한님 혹시 낚싯대 남는 거 있으세요?
무한 – 네. 루어 낚싯대 몇 개 있어요.
J씨 – 아, 제가 낚시를 갈까 하는데 대를 못 구해서요.
무한 – 빌려드려요?
J씨 – 빌려주시면 감사하죠.
무한 – 빌려드릴게요~
(얼마 후)
J씨 – 무한님?
무한 – 네?
J씨 – 낚싯대 빌려주신다고….
무한 – 네. 필요하실 때 말씀해주세요~
J씨 – 네.
(얼마 후)
J씨 – 똑똑.
무한 – 네.
J씨 – 낚싯대 무한님이 쓰셔야 하는 거면 안 빌려주셔도 돼요.
무한 – 아뇨. 당장 쓸 일이 없어서 빌려드릴 수 있어요~
J씨 – 네. 감사합니다.
(얼마 후)
J씨 – 무한님?
무한 – 네.
J씨 – 낚싯대 좀….
이처럼 자신은 말만 꺼냈는데 나머지를 상대가 다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든지,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곤 자꾸 빙빙 돌리며 늘어진다든지, 상대가 다시 부정해주길 바라며 부정적인 말을 꺼낸다든지 하는 건 관계를 피곤하게만 만들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나도 여린마음동호회 회장이라 위와 같은 대화에서 ‘빌리는 입장’이 되었다면
‘어디로 낚시를 가냐고도 묻지 않고 뭐 잡으러 가냐고도 묻지 않는 걸 보니, 나에게 관심도 없고 사실 빌려줄 마음도 크게 없구나. 나였으면 언제 필요한 거냐고도 물었을 텐데….’
하며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릴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 마음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친절을 상대가 베풀어주길’ 기대만 하다간 매번 노크한 후 돌아서기만 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기 힘들기에 하는 말이다. 자꾸 행간만 읽으려 하거나 숨은 의미 같은 것만 찾으려 하지 말고, 실제로 오가는 대화를 보며 바라는 쪽으로 이끌어가 보도록 하자.
3.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럼 번호는 묻지 말라는 건가요?
딴 얘기 하다가 새서 정작 그 대답을 못 했는데, 물어봐도 된다. 물어봐도 되는데, 나라면 너무 대놓고 용건처럼 번호 묻기보다는 구실을 하나 만들 것 같다. 그건
-인스타에 길냥이 돌봄일기를 쓰는 중인데, 방금 보여준 사진 정말 마음에 들어서 올리고 싶음. 혹시 그 사진 좀 보내줄 수 있는지?
정도면 될 것 같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카톡도 트고 혹 내가 글이나 사진에 재주가 좀 있다면 상대가 돌봄일기 보러 들어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는 고양이 사진 찍어 놓는 게 있어서 그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은 어떻게 써야 하나요?”
J씨의 경우 잘 하는 게 따로 있으니, 굳이 돌봄일기를 안 써도 된다. J씨가 잘 하는 걸 메인으로 잡고 고양이 사진은 서브로 올리도 된다. 딱히 SNS에 거부감이 있는 게 아니라면 ‘J씨 보여주기’를 할 수 있다는 것과 ‘개인적인 기록정리’라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니, 텅텅 비워놓기보다는 차곡차곡 마련해두길 권한다.
‘일상을 나누는 대화도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는,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절친모드’가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상대가 흔쾌히 연락처를 준다면 J씨는 들뜨며 기대하게 될 수 있는데, 그건 관계의 현관문에 이제 막 들어선 것일 뿐이지 거실에 편하게 누워 있어도 된다거나 냉장고를 마음대로 열어도 된다는 건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꽤 많은 대원들이 이 지점에서 ‘이제 됐어! 매일매일 연락하다가 연애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라고 착각하는 까닭에 혼자 섀도복싱만 하다 ‘고백은 해보고 끝내겠다’ 등의 이야기를 하곤 하니, J씨는 그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한다.
탁구장에서 운동하다 친해진 동성 친구와 가까워지는 방법이라 생각하며 다가가면, 자꾸 기대하거나 너무 빨리 앞서나가는 걸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탁구 몇 번 같이 치며 통성명하고 번호교환 했다고 그 날부터 종일 폰 붙잡고 대화하진 않잖은가. 처음엔 같이 탁구장 갈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탁구 정보가 있으면 그걸 공유하며 사용하듯 그렇게 이용해 보자.
더불어 연락처 교환했다고 그냥 저절로 다 친해지는 게 아니라 탁구 끝나고 한 잔 하거나 탁구공 선물을 하는 등의 계기로 더 가까워지곤 하는 거니, 연락에만 너무 목숨 걸게 되는 것에선 꼭 벗어나도록 하자. 그렇게 친해지다 J씨 식당에 불러서 식사대접할 수도 있는 거고, 상대가 몸 담고 있는 곳에서 파는 물건을 구입하거나 그것에 대해 질문하면서도 가까워질 수 있는 거니, 연락 하나에만 모든 기대와 의미를 다 싣고 있진 말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 외에 하나 더 얘기해주고 싶은 건, 상대와 친해지게 될 경우 같이 할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 두자는 거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나 곳도 별로 없고, 해본 것도 거의 없음.
인 상황이라면, 멍석이 깔려도 그냥 멀뚱히 있거나 그냥 저절로 다 되길 기대만 하게 될 수 있으니, ‘연애하게 되면 시작해 보겠다’ 하지 말고 지금부터 미리 경험해 뒀으면 한다. 동네 치킨집 서열정리를 해두거나, 새로 생긴 식당에 가 보거나, 그 동네 오래 살아도 잘 모르는 구석구석을 알아두는 건 훗날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니, 나중을 대비해 준비해 보도록 하자.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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