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모 지역에, 시세보다 놀랄 정도로 싸게 집 하나가 급매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집을 가지고 있는 지인 A가 다른 지인들에게 추천했던 매물인데, A는 자신의 집에 놀러 왔을 때 그런 곳에 살고 싶다던 지인들에게 서둘러 구입하길 권했습니다. 하지만 구입하는 사람은 없었고, A는
“그냥 지금 사기만 해도 앉아서 돈 버는 거잖아? 근데 왜 안 사지?”
라며 답답함을 내비췄습니다.
사지 않은 지인들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 놀러 가는 건 좋지만 거기서 살고 싶진 않아서일 수 있고, 그것보다 더 괜찮은 매물이 나올 거란 생각 때문일 수 있으며, 이득은 못 보더라도 그냥 가까운 곳에 적당한 집을 사고 싶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더 단순하게는 아직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라거나, 그 집을 살만한 돈이 당장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저런 ‘집 구입’의 비유를, 저는
“남친의 마음 부족이었을까요, 아니면 상황적 요인일까요? 결혼하자 노래를 부르는 사랑꾼 남자들이 있는 반면, 전혀 반대인 이런 유형의 남자는 따로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후자인 사람들도 그럴 시기나 그럴 상황이면 전자처럼 되는 건가요?”
라는 질문을 하는 Y양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꼭 ‘마음 부족이다’, ‘상황 때문이다’라고 결론 내기 어려우며, ‘그럴 시기나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모두 집 구입에 목숨을 거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Y양의 사연을 두고 말하자면, 상대는 결혼은 둘째치고 연애를 할 생각도 처음엔 별로 없었던 듯 보입니다. Y양은 처음에 썸이라 생각했는데, 상대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한 달 정도 연락도 하지 않아 황당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구의 대시로 사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적혀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략 반년 동안 모호한 관계로 지냈던 것과 상대가 연애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투로 말한 것을 보면, 연애를 시작할 동력이 부족했음에도 재촉과 택일요구에 ‘일단 시작’을 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애를 꽤 오래 이어갈 수 있게 된 건, Y양 역시 까탈스럽게 남친을 대하는 타입이 아니며 대부분을 참거나 이해해주고, 기본적으로 연애나 남친에 대한 기대 역시 크지 않다는 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Y양은,
‘연애에 넌 3할만 할애하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도 막 피곤한 거 싫어하니 비슷하게 맞추면 돼. 복잡할 것 없이 좀 편하게 만나지 뭐. 바쁜 건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고, 오늘만 날도 아닌 건데.’
정도로 생각하는 타입이랄까요.
그게 스스로 조급증에 빠지지 않으려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가져보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면 훌륭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냥 연애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될거될(될 거면 되겠지)’인 까닭에 그런 거라면 문제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냥 풍덩 빠지진 않고 발 하나 정도만, 그리고 상대도 그냥 발 하나 정도만 담그고 있는 연애는 둘 다 크게 관심 두고 돌보는 집과 거리가 멀어서 ‘보금자리’가 되기보다는 ‘임시거처’처럼 느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그런 마인드로 연애를 하는 대원들 중엔
-중요하게 준비할 게 있다면 한 주 동안 연락 안 하기도 함.
-한 달간 못 봐도 사정이 있어서 약속 미룬 거니 이해함.
-매번 ‘피곤하다, 졸리다, 쉬자, 다음에’만 반복해도 다 이해하며 만남.
등의 형태가 되어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대원이 대부분인데, 그럴 경우 ‘적당히’의 마음으로 ‘대충’만나려는 상대와 연애를 해도 무덤덤하게 2년 3년 사귀게 되곤 합니다. 꼭 그렇게 상대 탓인 경우를 제외해도, 이쪽 역시 연애가 재미없고 지루하다며 연애 중 다른 사람과 소개팅까지 하면서 어찌어찌 이어가는 사례도 있고 말입니다. 이처럼 ‘선택과 집중’이 생략된 채 ‘대안이 없어서’라거나 ‘적게 할애해도 유지되니’ 하는 연애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냥 옮겨심은 채로 박혀있게 된 나무에 가깝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며, 적은 힘으로도 뽑으면 그냥 뽑히는 그런 형태로.
그렇게 계속 ‘연애만’ 하는 거라면 뭐, 2년 3년이 아니라 5년 6년도 만날 수는 있습니다. 쉬는 날 만나서 밥 먹거나 놀러 다니는 것만 한다면, 그러면서 터치 안 하고 대부분 다 이해한다면, 딱히 헤어질 이유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서른이란 나이에 가까워지면서부터는, 또는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무 비전 없이 만나는 것 같다는 염려나 결혼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불안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즈음 ‘우리 관계’에 대한 정립을 시도하거나 결혼 얘기를 꺼내는데, 이럴 때 대부분 상대로부터
-결혼은 ‘나중에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것 아니었음?
-지금 확신을 달라고 하는데, 뭘 보고 뭘 어떻게 달라는 것?
-그런 얘기 전혀 안 하고 만나다가, 왜 지금 갑자기 선택하라고 함?
-난 아직 취업도 전인데, 무슨 결혼을 어떻게?
라는 반응을 듣곤 합니다. 나아가 ‘난 원래 결혼 생각 같은 거 없는데? 주변을 봐도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 별로 없음’이란 말을 듣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실 전 이 매뉴얼을 쓰면서 ‘상대가, 자신의 삶을 위한 시험과 연애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다는 것’까지를 이야기하려 했는데, 굳이 그렇게 빙빙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질러가자면, 상대는 그걸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러면서 한 이야기 중 완충재로 넣은 것들을 다 빼면,
-너에 대한 확신이 내겐 없는데, 나에 대한 확신을 너에게 주긴 힘들다.
라는 말만 남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양은 상대가 그러면서 붙인 ‘너 같은 사람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든가 ‘난 다른 사람에게도 확신을 줄 순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들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거기엔 ‘나중에도 꼭 그럴 거라는 건 아니고,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이 생략되어있는 거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Y양이 이미 마음 정리도 하셨다 하고, 거기다 다시 만날 생각도 없으시다고 하니, 여기다간 이렇게 ‘다음에도 이렇게 연애하면, 비슷한 결과만 경험하게 될 수 있는 문제’만을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 연애는, 이번처럼 겨우 다리 하나 말고 되도록 허리까진 빠진 채로 하시길 바라고, 지금 안 되는 걸 다 참고 이해해준다고 결혼 후 모든 게 보장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꼭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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