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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제 공감능력이 문제라 말하는 여친, 헤어지긴 싫은데 힘듭니다.

by 무한 2019. 12. 24.

헤어지든 안 헤어지든, 일단 E씨의 소비습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출을 받아서 메워야 할 정도로 데이트비용을 쓰고 있는 건, 연애 경영의 실패일뿐더러 훗날 돈도 잃고 사랑도 잃고 자신도 잃게 되는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E씨의 성향 및 현재 연애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여친이 바라는 것을 대부분 해주는 것이 나의 노력.

-관계가 삐걱거릴 경우 이벤트나 선물로도 풀어줘야 함.

-상황이 이러저러하다면, 95:5의 지출도 감내해야 함.

 

인 까닭에,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상황이 될 수 있어 하는 얘깁니다. E씨가 경제적인 것으로 돌려 막으려던 부분은 갈수록 상대의 불만족에 부딪혀 커질 수 있고, 과감하게 지르는 것으로 해결하려던 것 역시 갈수록 그 유효기간이 짧아져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선물이나 이벤트를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일단 상대가 다 받긴 하겠지만, 사실 상대가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까닭에 돈은 돈 대로 쓰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말입니다.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은 ‘남의 돈’에 무감각하며, 알아서 먼저 결제하면 ‘그럴 수 있으니 그러는가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느낄 수 있고, 이쪽이 밥까지 굶어가며 호의를 베풀다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 중단하면 원망만 들을 수 있습니다. 믿기 어렵다면 오늘부터라도 누구 만나고 들어갈 때 택시비 하라고 돈을 줘보시기 바랍니다. 서너 번 그러다가 안 그러면, ‘안 그런 것’에 대해 변했다는 얘기만 듣지 그간 많이 위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는 듣기 힘들 테니 말입니다.

 

제 공감능력이 문제라 말하는 여친, 헤어지긴 싫은데 힘듭니다.

 

그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갈등을 피하려 맹목적으로 사과하지 말 것.

-어려운 건 어렵다고,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할 것.

 

이라는 겁니다. 앞서 돈과 관련된 얘기에서 E씨가 ‘대출을 받아서까지 데이트비용을 대는 중’이었던 것처럼, 감정의 영역에서도 E씨는 자꾸 어렵고 억울한 지점만을 골라 찾아갑니다. 다쳐서 걷기 힘든 와중에도 여친이 산책하고 싶어 한다고 산길을 간다든지, 여친이 이것저것 하는 동안 졸졸 따라다니기만 한다든지, 메뉴 선택도 전부 여친에게 맡겼다가 몸도 안 좋은 날 웨이팅에 오들오들 떤다든지 하며 말입니다.

 

‘나’를 돌보는 것은 뒷전으로 한 채 ‘여친’의 기호와 기분만을 생각하는 건 무슨 ‘대단한 희생과 배려’같은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노예생활을 자처하는 것일 뿐이며, ‘공주와 왕자’, 또는 ‘공주와 기사’가 되는 게 아니라 ‘공주 시중들기’를 하는 일일뿐입니다. 뭐 연애의 형태는 다 다를 수 있으니 서로에게 그래 줄 수 있는 연애라면 그것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일방적으로 한쪽만 그래줘야 하는 것이며 상대에게선 그런 걸 전혀 기대할 수 없다면, 그건 그냥 불공평한 갑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E씨의 여친이 진짜 바라는 것 역시,

 

-그렇게 다 해주는 척하다 어느 하나에서 빈정 상하게 터트리지 말고, 그냥 좀 제때 말하고 진짜 속마음을 말할 것.

 

일 가능성이 큽니다. 평소

 

“응 다 좋아, 다 괜찮아. 나야 좋지.”

 

라고 일단 무조건 오케이 해놓고는 정작 그걸 같이 했을 때

 

“재미없다. 싫다. 원래 내 취향 아님.”

 

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말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그것에 대해 여친이 화를 낼 때 역시, 무작정

 

“미안해. 화 풀어. 잘못했어. 안 그럴게.”

 

라고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래 버리면 여친으로서는

 

-지금은 일부러 져주고 있는 것.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름.

-지금도 만족하는 척하지만, 아닐 수 있음.

-지금 사과는 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있거나 이해 못 하고 있을 수 있음.

 

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니, 배려와 친절과 호의는 그것대로 빛을 잃을뿐더러 밥 사주고 뺨 맞는 듯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왜 사귀는가?’를 생각하며 서로를 돕고 분담하는 것에 대해 여친과 이야기를 나누셨으면 합니다. 뭘 고치고 맞추고 어쩌고 하는 건 2차적인 것이고, 1차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도울 수 있어야 연애인 것 아니겠습니까?

 

E씨와 여친의 연애를 보면, 저 1차적인 것은 말소된 채 입맛에 맞다 안 맞다 하는 2차적인 이야기들만 수두룩한 것 같습니다. 같이 차 타고 여행을 가서 남친이 운전한다면 여친은 검색을 하며 도울 수 있고, 남친이 예약에 문제가 생겨 누군가와 조율하고 있으면 여친은 자기 소지품을 미리 챙겨두는 등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건데, E씨와 여친은 남친이 운전 잘 못 하면 옆에서 여친이 잔소리하고, 남친이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여친이 ‘제대로 안 하냐’는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좀, 다른 보통의 커플들과 비교했을 때 심각할 정도로 이상합니다. 남에겐 오히려 안 그럴 것 같은 지점들에서 연인임에도 심하게 갈군다거나, 친구에게도 이해를 부탁하지 못할 행동들을 연인에게 해버린다거나, 욱해서 폭언하거나 화나면 정서적이든 물리적이든 폭력적으로 변해버리는 것 말입니다.

 

E씨가 운전 중 끼어든 차 때문에 놀라 ‘아이씨’라고 한 것은 큰 문제라면서, E씨의 여친이 E씨에게 손찌검을 한 것은 대충 넘어가기도 하고, 그 손찌검을 한 것에 대해서도 E씨 여친 자신이 스스로가 그랬다는 것에 놀라고 속상하고 괴롭다면서 E씨를 두고 가버리고 하는 것은, 이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좀 힘든 일입니다. E씨가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E씨 여친이 커피 말고 물 마시라는 말을 할 정도로 통제하면서, 여친이 취해서 자기 맘대로 술 더 먹겠다고 할 경우 E씨가 뭐라고 하든 씨알도 안 먹히는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둘 중 누구 편을 들어주려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게 아니라, 저런 행동들에 대한 피로는 계속해서 축적되며, 호르몬의 도움으로 콩깍지가 씌여 있는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내가 이런 연애를 뭐하러 하고 있지?’하는 생각을 들게 할 것이 분명하기에 하는 얘기라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을의 입장인 사람이 이타적이며 연애 경험이 별로 없어 ‘연애가 원래 이런 건가 보다. 내가 문제인가 보다.’ 할 경우 1년 정도는 만날 수 있겠지만, 열심히 버텨봐야 1년 반을 넘기지 못하곤 불공평하고 의무만 가득하며 즐거움 없이 잔소리만 듣게 되는 관계는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E씨의 여친은 노멀로그 독자이며 이 사연이 매뉴얼로 발행되면 두 사람이 같이 볼 거라고 하셨는데, 제가 커플부대원들에게 질리도록 얘기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대화의 창구는 절대 닫지 말기.

-상대 혼자 두고 가버리거나, 화났다고 전화 끊어버리지 말기.

-하루의 시작과 끝은 되도록 함께하고, 싸웠다고 남보다 못하게 대하지 않기.

 

이지 않습니까? 그 중 대화의 창구를 열어두는 것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데이트 중 상대 혼자 두고 가버리는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것도 못 쫓아오게 막 달려서 도망가거나, 옆의 차가 움직여 위험한 상황인데 분노의 파워워킹을 해버리는 것 같은 건, 상대에게 위기감을 안겨주고 다급하게 만들어 당장의 전투에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늘 얘기하듯 길게는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을 땐 ‘나이 들어서도 우리 이렇게 늘 손 꼭 붙잡고 다니자’ 같은 이야기를 하며 꽁냥꽁냥 하지만, 사소한 것으로라도 기분 상하면 손끝 하나 못 건드리게 하고 일부러 찬바람 불게 행동하거나 투명인간 취급한다면, 그 극단적인 태도가 오히려 믿음을 갖지 못하게 만들며 다정한 표현들 역시 ‘내킬 때만 그러는 역할극’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사랑한다면 이래야 한다, 연인이라면 이래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연애는 이런 것이다, 뭐 이런 이상적이고 막연한 것들을 좀 내려놓고, 만나서 서로 배려해주고 불편한 건 얘기해서 양해를 부탁하고 어찌 되었든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돕고 위해주는 ‘현실적으로 즐겁고 힘이 되는 만남’을 하셨으면 합니다.

 

어느 대원은 ‘누구 남친은 여친 데리러 와서 지하주차장에 1시간 차 대고 기다려도 뭐라고 안 하더라’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그 이야기에선 ‘그 누구 남친은 백수’라는 게 빠져있었습니다. 백수인데 현실도피하려 연애에 빠져있으면, 연애가 계속 접속해 있고 싶은 게임처럼 느껴져서 두 시간, 세 시간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걸 애정의 척도이며 진짜 사랑의 모습이라 여겨 단순비교하지 마시고, 더불어 입장이 바뀌었을 때 ‘나는 남친이 10분만 늦어도 오늘 안 보겠다고 하고 집에 가버림’이면서 상대에게만 어마무시한 걸 바라진 마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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