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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큰 결정을 혼자만 하는 남친, 제가 너무 프로 걱정러인 걸까요?

by 무한 2020. 1. 24.

J양 자리에 그 어떤 여성대원을 데려다 두든, 그중 99.82%는 J양과 똑같은 걱정을 할 겁니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엔 결혼할 생각을 하며 만나는 중인데, 그 와중에 남친이

 

“월급쟁이로 살순 없어. 사업을 할 거야. 근데 나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아는 형이랑 시작할 거야. 얘기 다 됐고, 믿을만한 형이야.”

 

라는 이야기를 하면 충격과 공포에 빠지는 게 당연합니다. 하던 일을 관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것만으로도 덜컹하는데, 그게 또 동업이고, 거기다 동업자라는 그 형이란 사람은 지금까지 이쪽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라면, 남친이 바라는 그 ‘절대적인 응원과 지지’를 해주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겁니다.

 

“그런 얘기를 다 했어요. 그런데 남친은, 자기가 바란 건 응원인 거지 이런 걱정과 우려가 아니라고 하네요.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는 가슴이 뛰지 않는데, 사업 시작할 걸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면서요. 자기가 하면 잘 할 자신 있다고 하네요.”

 

아는 형이라는 사람이 바람을 불어 넣었고, 남친의 귀는 팔랑거리게 되었으며, 그런 까닭에 이제 J양이 뭐라고 하든 그건 ‘부정 타는 소리’ 정도가 되고 만 것 같습니다. 그는 ‘내 선택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아는 형과 동업하기로 결정하곤 여친에게 통보만 하는 사람이 ‘존중’을 말하는 건 좀 잘못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큰 결정을 혼자만 하는 남친, 제가 너무 프로 걱정러인 걸까요?

 

J양이 제 여동생이었다면 전

 

“우리 어렸을 때 알던 세원이네 아빠가 그러다가 훅 갔잖아. 사람은 참 좋았는데, 사람이 좋다 보니까 동업 어쩌고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 거야. 그 아저씨가 요행을 바라면서 막살던 것도 아니고 정말 부지런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누구랑 동업 시작해서 일은 혼자 다 하고, 온순하고 누구 불편하게 하는 말 안 하다 보니 자기 몫도 못 챙기고 늘 뒤통수만 맞은 거지. 동업하던 사람이 차 바꾸고 집 사는 동안 그 아저씨는 죽어라 일만 했잖아. 나중엔 신용불량자 되고.

네 남자친구도 사람은 참 좋아. 성실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만 믿고, 또 남들도 다 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거든. 또, 그 분야는 사실 포화상태이며 오늘도 어느 곳은 문을 닫을 텐데, 걔는 그렇게 문 닫는 사람들이 ‘성실하지 못해서’ 인 거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하잖아.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이렇다 할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다’라는 좀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어.

이런 와중에 동업의 위험성과 사업적 차별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과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정말 같이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바로 느껴지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해도 그걸 그저 ‘부정타는 소리’ 같은 걸로 여긴다면, 걘 아홉 가지 부분이 괜찮아도 한 가지 부분에서 복구 불가능한 사고를 치는 타입일 수 있거든. 게다가 지급도 뭐 계획적으로 모았던 걸로 뭘 하려는 게 아니라 빚 갚는 와중에 더 빌려서 뭘 하려는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상대의 ‘착한 모습’ 같은 거 하나만 보고 직진하다간 훗날 충돌 직전에 ‘멀쩡해 보이는 차였으며 다 좋았지만, 브레이크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될 수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습니다. 저것 외에도 말리고 싶은 지점들이 두어 가지 더 있는데, 그것까지 얘기하면 상대가 너무 특정되는 데다가 J양이 바란 ‘이 상황에서 그래도 답을 좀 찾을 수 있는 방법’과는 많이 다른 얘기가 될 수 있으니, 여기다가는 ‘J양이 현 상황에서 해볼만한 것 두 가지’만 적어둘까 합니다.

 

먼저,

 

-계획과 차선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기간 정하기.

 

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받는 사연 중에는 J양의 남친과 비슷한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 사람 착하고 성실하며 재주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와 같이 일하면서 거의 착취에 가까운 굴림을 당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동업자가 일을 물어오면 그가 그 일을 하지만 결국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버는 일이 벌어진다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게 분명한데 동업자의 언변이 뛰어나 늘 휘둘리거나 동업자의 궤변에 설득당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게 참 무서울 수 있는 게, 한창 일하며 경력을 쌓아야 할 시기에 저러다 보면, 곧 좋아진다 조만간 대박 터질 거다 그러다가 2~3년 후딱 지나가게 됩니다. 그럼 현실적으로 이직에도 부담을 느낄 수 있으며, 어쨌든 놀고 있는 건 아니니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벌이를 하게 되어도 ‘언젠간 좋아질 거란 희망’ 같은 것만 막연히 부여잡곤 계속 질질 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도록, 하나밖에 못 보고 있는 그에게 차선책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자고 요청하며, 동시에 그 차선책에는 ‘기간’도 꼭 포함시켜 두시길 권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맨날 출근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는 생활이 수년 지속될 수 있으며, 어떨 때 동업자에게 뭘 얘기하고 어느 상황이 그만둬야 할 상황인지를 몰라 늪 같은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둘이 함께 저축하는 통장을 만들고, 뚜렷한 액수의 자금을 매달 모으기.

 

같은 걸 해볼 수 있습니다. J양은 자신이 뚜렷한 경제관을 가지고 있으니 상대 역시 그 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예상과 달리 경제와 관련된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로 별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J양이 결혼에 대해 대략 식 올리는데 얼마, 신혼여행에 얼마, 집 구하는 데 얼마, 가전가구 들이는 데 얼마, 등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대는 ‘나중에 돈 잘 벌게 되면 다 해결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단 얘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뭐 ‘당장은 어려우니, 한 2~3년 잡고 그때 결혼하자’ 하는 얘기를 할 순 있습니다만, 그렇게 다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맡겨두고 있다가 나중에 “사실, 식 올릴 돈도 없어 지금.” 같은 얘기를 듣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혼도 맡겨두고, 사업도 맡겨두고, 돈 모으기도 맡겨둔 채 약속한 기간이 되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마시고, 뚜렷한 액수의 자금을 매달 모은다거나 하는 방법을 사용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런다면 앞서 말한 부분과 관련해서도 상대가 ‘사업의 경제적 불확실성’을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맡겨만 두지 마시고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을 활용하시길 권합니다.

 

 

끝으로 하나 더 J양에게 해주고픈 얘기는, 이런 지점들까지를 경험하며 J양도 남친이라는 사람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모든 게 다 좋고 안정적일 때 해준 애정표현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갈등이 있거나 불안정한 시기에 보이는 상대의 모습에 더 무게를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위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거 다 괜찮은 차라고 해도 ‘브레이크’가 없는 차라면 그건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늘 얘기하는 ‘책임감과 존중’과 관련해서도, 이걸 무슨 ‘데이트 약속시간 잘 지킴’, ‘나 아프다고 할 때 늦었는데도 찾아와서 죽이랑 약 챙겨주고 감’ 같은 걸로만 판단할 게 아닙니다. 그가 뭐 그런 걸 다 잘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것과 별개로 어느 날 상의도 없이 친구 보증 서주고 들어오는 일을 벌인다면, 좋은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뭣이 더 중헌지’를 J양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그가 J양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있긴 한 건지까지를 이번에 차분히 확인하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대화했으며 어떤 결정이 났는지는 저도 궁금하니 후기를 한 번 보내주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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