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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 없다는 여자, 문제는? 외 1편

by 무한 2015. 2. 26.

내겐 친척 여동생이 여러 명 있는데, 그 중 성격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친척 여동생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으니 편의상 A와 B로 호칭하자.

 

A는 언제나 내가 연락할 때 기다리던 사람을 맞이하듯 연락을 받아주며, 종종 내게 '뜬금없는 선물'을 해 그것의 몇 배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여동생이다. 난 언젠가 노멀로그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여동생을 위한 연애매뉴얼]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A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만약 오늘이라도 A가 내게 뭔가 부탁을 해 온다면, 나는 이 글을 쓰던 것도 접어두고 A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반대로 B는, 그냥 좀 답답하고 정이 안 간다. 만약 내가 B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한다면, 아마

 

무한 - 안녕 B! 새해 복 많이 받고 전에 말한 그거 올해엔 꼭 합격해!

B - 네 감사합니다.

 

라는 대화가 될 것이다. 저 정도 상황에서라면 "오빠도요~"라거나 "오빠 잘 지내요?"라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내가 애써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B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난 아래와 같은 대화를 일부러 더 진행한다.

 

무한 - B가 오빠한테 복 많이 받으라는 얘기를 안 해서 오빠는 좀 시무룩해지네?

B - 아, 복 많이 받으세요.

무한 - 오빠 원래 잘 안 우는 사람인데, B가 그렇게 말해주니 눈물이 나오네?

B - 네?

무한 - 너 예쁘다고.

B - 아니에요.

 

물론 B가 부탁을 해와도 난 들어주겠지만, 그건 '봐서, 주말에 시간나면' 들어주는 승낙이 될 것 같다.

 

 

1.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 없다는 여자, 문제는?

 

사연신청서를 적어 내려가며, B양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한 것 같다.

 

"제가 말과 행동이 다른 연애를 했다는 걸, 신청서를 적으며 발견했어요.

좋아한다, 보고 싶다 등의 달고 예쁜 말은 많이 했는데,

행동으론 제 생활이 우선인, 그에게 참 무심한 여자친구였네요."

 

라는 고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B양은

 

"하지만 저는 마음을 열지 않은 게 아니라 느린 거였는데,

그를 제 생활에 들이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것뿐이었는데…."

 

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기에, 내 예민한 '합리화 경보 센서'를 피해갈 순 없었다.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겠지만, 내가 B양과 사귀었어도 헤어졌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겐 B양의 일, 친구 다음의 자리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만날 사람 다 만나고 남는 시간에 날 만나주는 여자친구는 필요 없으며, 그렇게라도 만난 후 집에 돌아가선 다시  연락 한 통 없는 사이가 되는 연애는 필요 없다. 착각하면 안 된다. 이건 느리고 빠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관심의 부재다.

 

B양이 구남친들이 하나같이

 

"연애하는 기분이 안 든다."

"나를 좋아하긴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왜 만나는지 모르겠다."

 

라며 떠나간 건, 바로 B양이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B양이 동성친구에게 쏟는 관심만큼만 구남친에게 쏟았어도, 지금쯤 둘은 벚꽃놀이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B양은 연애에만 유독 엄격하며, 연애를 대인관계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애가 바로 가장 친밀한 형태의 대인관계라는 걸 모른 채 말이다.

 

더불어 예쁜 외모로 인해 인기가 많았던 것이, 오히려 B양에게서 '한 사람에게 집중하며 관심을 가져볼 기회'를 앗아갔다는 생각도 든다.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B양에게 반해 이것저것 가져와 내밀었던 거다. 때문에 그러는 동안 B양은 자신의 텃밭을 가꾸는 법을 배우지 못 했고, 이제 막 처음으로 가꿔보려 하는 와중엔 씨를 뿌리고 흙만 덮어둔 채 물도 주지 않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난 B양에게, 이번 연애가 끝나기 직전의 상황을 되짚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남친의 심드렁하고 무관심한 태도에 B양은 답답하고 화가 났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바로 그런 남자친구의 태도를 B양은 연애 초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남친이 한 건, B양과 똑같이 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한 번 느껴보라며 한 복수다. 물론 그 '3할만 투자해 연애하기'에 B양은 프로였고 남친은 아마추어였던 까닭에 결국 남친이 지쳐 이별통보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B양이 질문한 '구남친과의 재회 가능성'에 대해 대답하자면, 난 그 가능성이 0.03% 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B양과의 관계에서 너무 지친 채로 오랜 시간 버텨왔으며, 그러는 동안 B양에 대한 모든 호감이 사라지고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거지? 이거 연애가 아니라 봉사활동 아닌가?'하는 생각까지를 하게 된 것 같다. 그 생각을 한 이후엔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하며 그냥 관계를 팽개쳐 둔 채로 또 얼마쯤 지냈던 것 같고 말이다. 때문에 난 방치된 채로 폐가가 되어버린 둘의 연애가, 단순히 다시 방문한다고 해서 전처럼 복구되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 

 

끝으로 B양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 하나만 더 하자. 카톡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다 사라질 땐, 어딜 간다고 밝히거나 최소한 하던 얘기는 전부 마치고 사라지자. B양은

 

"제가 폰을 항상 쥐고 있는 편이 아니라서,

카톡 답장도 늦게 하게 되고 전화도 잘 못 받았는데…."

 

라고 말하는데, 폰을 쥐고 있는 편이든 펴고 있는 편이든(응?) 실시간으로 대화하다 갑자기 잠수를 타는 건 상대로 하여금 대화하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만드는 아주 나쁜 버릇이다. 카톡을 메일 보내듯 사용하는 게 습관이 되어 그런 거라면, 차라리 전화로 대화를 하길 권한다. 대화하다 말없이 사라져서는 한 시간 후

 

"내가 또 말없이 사라져서 걱정했겠구나? ㅋㅋ"

 

라고 말하는 건 전혀 재밌거나 귀엽지 않다. 저런 말을 듣는 상대 입장에선 짜증만 날 뿐이다. 난 B양이 '폰을 쥐고 있는 편이 아니라서'라고 말은 하지만, 직장 상사와 실시간 카톡을 주고받을 땐 절대 저렇게 말없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잖은가? 그런데 왜 유독 남친과 대화할 때만 저렇게 사라지곤 하는지, 그것도 한 번 돌아보길 바란다.

 

 

2. 10년의 연애, 끝.

 

남자의 상황을 집에 비유하자면 원룸인데, 그에게 여자는 퀸 사이즈 침대였지요. 그것도 캐노피까지 있는. 그래서 그걸 들여 놓으면 집이 꽉 차 다른 걸 들여 놓을 수가 없었지요. 그냥 매장에서 그 침대를 봤을 땐 참 예쁘고 아름다워 덜컥 구매예약을 했지만, 돌아와 손바닥만 한 자신의 집을 보니 한숨만 나왔지요. 그 침대는 남자가 서른이 되었을 때 배송되기로 했는데, 날짜가 가까워오자 남자는 예약을 취소해야 하는 건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지요.

 

남자 - 정말 죄송한데, 캐노피라도 떼어주실 순 없는 건가요?

남자 - 캐노피가 없으면 집에 들여는 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자 - 안 됩니다.

 

타협이 불가능했지요. 매장에서 보고 또 거기에 누워봤을 땐 정말 이만큼 좋고 편안하고 아름답고 예쁜 침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들여 놓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요. 침대를 현관문 밖에 놓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기에, 남자는 최대한 침대 놓을 공간을 마련해보려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지요.

 

스물열덟.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시간은 흘러 이제 남자는 독촉을 받게 되었지요. 그가 서른이 될 때 배송받기로 한 침대를 들여 놓고 있지 않으니, 매장에서는

 

"구매취소 한다고 답이라도 줘라. 답이 없으면 취소하는 걸로 알겠다."

"예약해 놓고 찾아가지 않아서 지금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 줄 아느냐?"

"구매사기를 당한 느낌이다. 이럴 거면 대체 왜 예약을 했냐."

 

라는 연락을 해왔지요. 그러는 동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일이 발생했지요. 10평 원룸에서, 8평 원룸으로. 동시에 다른 매장을 방문할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거기서 싱글사이즈 침대도 보았지요. 그걸 보고 돌아와 다시 한 번 매장에 연락해 캐노피라도 제발 떼어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매장에선 안 된다는 답만 반복할 뿐이었지요.

 

사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여러 번 자존심이 상했지요. 매장에서 예약취소 하겠다는 엄포를 놓을 때마다 무너지기도 했고, 또 그냥 그 손바닥만 한 자신의 원룸을 보며 자책하기도 했지요. 남들은 물건이 없어서 못 사는 그 침대를 자신은 서둘러 예약까지 마쳤는데, 정작 둘 곳이 없어 들여 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결국 어느 날 남자는, 매장에서 온 독촉전화에 "취소할지 안 할지 생각해 보겠다."라고 답했지요. 이전까진 계속 유예만을 부탁하거나 캐노피를 떼면 지금이라도 들여 놓겠다고 했을 뿐인데, 태도가 완전히 바뀐 거지요. 남자 스스로는 '이 침대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인생을 다 걸고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라는 생각도 했고, 주변에서 계속 "싱글로 해. 뭐하러 퀸 사이즈를 해? 퀸 사이즈 필요 없어."라는 이야기를 한 까닭에 흔들리기도 했지요. 그래서 남자는 점점

 

"캐노피를 떼어 준다고 해도 이제는 그 침대를 놔야하나 고민이다."

"내게 그 침대가 필요한 건지,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독촉전화 받느라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 줄 아나?"

"그건 그냥 조건 되는 사람에게 팔아라. 난 안 사겠다."

"침대를 안 사겠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정말 편하다."

"뭐라고 제안을 하든 난 그 침대를 안 살 거니 더는 연락하지 마라."

 

라는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지요. 이런 상황을 바랐던 게 아닌 매장에서는

 

"지금 이 침대 안 산다고 하면, 정말 그냥 부숴버릴 거다."

 

라는 엄포까지 놓았지만, 남자는

 

"부수든 태우든 버리든 마음대로 해라. 난 상관 않겠다."

"그 침대는 이제 내게 의미가 없다. 내겐 침대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다."

"나도 피해자다. 나도 괴로울 만큼 괴로워 한 사람이다."

 

라는 대답을 할 뿐이었지요. 이 모진 사람.

 

태어나서 열 살 때까지는 뭐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니까, 그걸 제외하고 따지자면 10년은 인생의 절반이지요. 아니, 사실 학창시절에도 모든 선택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런 의미에서 스무 살부터 카운팅을 하면 10년은 인생의 거의 전부지요. 그런 사람이 이제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멀쩡하거나 며칠 힘들다 말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요.

 

그래서 여자는 아직도 울고 있지요. 저 일이 딱 1년 전의 일인데, 여자는 2014년 2월에 자신이 유기된 그 자리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지요. 둘이 함께 사용했지만 이제는 남자가 읽지도 않는 그 어플에,

 

"잘 자.

여기에 쓸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야.

내가 여기에라도 잘 자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이제는 남자가 읽지도 않을, 말을.

 

 

2번 사연을 저기까지 쓰곤 잠시 울다가, 세수 하고 담배 하나 피우고 돌아왔다. 여기다 다 적진 못 했지만 사연을 주신 분은 남자의 카톡 프로필이 바뀔 때마다 그걸 캡쳐해 영정사진 보듯 계속 들여다보고 있고, 초 단위로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또 소망했다 좌절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연을 주신 분은 민선씨인데, 민선씨가 내 여동생이라면 난 재회를 권하진 않을 것이다. 남자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된 그는 그간 '을'로 살아오며 쌓였던 분노를 민선씨에게 다 폭발시켰고, 이별 직전엔 '사람이 저럴 수 있나?'싶을 정도로 민선씨를 일부러 더 괴롭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갑'이었던 민선씨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더욱 더 비참한 기분이 들도록 비교와 평가를 했고 말이다. 뭔가를 버릴 때 그냥 내다 놓는 사람이 있고 어차피 버릴 거니 함부로 깨거나 부숴서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민선씨의 남친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까지는 오버일 수도 있겠지만, 난 헤어지기 전 그가 민선씨에게 보인 태도를 보며 그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만약 내게 아이가 있어 과외를 시켜야 한다면, 난 그가 아무리 이름난 과외선생이라 해도 그에게 내 아이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극을 하겠다는 둥, 충격요법을 사용하겠다는 둥 하며

 

"내가 가르치는 다른 아이는 이번에 전부 1등급 맞았다."

"너 공부 잘 하고 있냐고 너희 부모님께서 물어보실 때마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성적이 안 좋다면 내가 못 가르친 게 아니라, 네가 공부를 안 한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자신이 여자친구를 유기해 놓고, 그것에 대한 변명들을 둘을 다 아는 지인들에게 떠벌이고 다니는 사람은 10년을 만났든 20년을 만났든 내려놓는 게 현명한 거다. 판타 레이. 힘들겠지만,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그러니 숨이 멎은 10년의 연애를 붙잡고 있느라 지금 주어진 이 소중한 10년을 낭비하지 말고, 그가 다른 지인들에게 "나는 정말 행복하다. 잘 지내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듯 민선씨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어서 그 홀로 지키던 빈 집에서 나오길 권한다. 거기서 나오면, 민선씨가 그 집에만 있느라 보지 못 했던, 환상적인 집들이 세상엔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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