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원규씨. 금사빠들 중 가장 위험한 부류가, 상상력이 풍부하며 때에 따라 과감한 오지랖퍼들이야. 이런 솔로부대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있거든. 아침에 출근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같은 동 또래의 여자. 그녀와 같은 버스라도 타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 보려 해.
그러고는 직장에 도착하면, 직장 내에는 또 마음에 두고 있는 다른 여자가 있어.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가면 거기 여자 알바생을, 퇴근하면서는 같은 줄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를, 동네에 도착해 어떤 여자가 홀로 벤치에 앉아 있으면 또 그 여자를, 단지 내 편의점에 들르게 되면 역시 그곳 여자 알바생을, 뭐 이런 식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야. 그래서 몸은 모태솔로지만, 마음은 이미 바람둥이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게다가 이들은 성별이 다르기만 하면 다 연애 상대로 보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호감을 갖는 범위가 넓기도 하고, 나아가 평소엔 숫기가 없지만 금사빠 프로세서가 발동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사냥꾼 기질을 발휘하기도 해. 원규씨가 신청서에 적은
"사실 매우 소심하나…(중략)…번호 따는 걸 좋아하고, 대시의 스릴을 즐김."
이라는 문장과 꼭 같은 거지. 이런 대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태도의 문제와 해결책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고.
1. 친해질수록 여자들이 밀어낸다는 남자.
원규씨만 해도 벌써 '세 다리'를 걸치고 있잖아. A양, B양, C양. 원규씨가 A양에게 한 행동은 누가 봐도 관심이 있어서 한 행동이야. 그런데 원규씨는 본인 행동에 대해
"단순 호기심이었음. 경험 삼아 한 일."
이라고 변명하네? 뭐, 이건 백 번 양보해 그렇다 쳐. B에는 원규씨가 확실히 돌직구를 던졌지. 관심이 있다는 걸 표현했고, 거절을 당했잖아. 그런데 이런. B와 A가 아는 사이야. 사실 이것만 해도 원규씨는 여자 네트워크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거든. 그런데 그 다음은 원규씨가 무슨 짓을 저질렀어? C에게 들이댔지.
C는 처음엔 원규씨가 어떤 남자인지 몰랐지만, A와 친해지며 원규씨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 미안하지만, 여자들이 보기에 원규씨는 그냥 '여자가 보이면 다 찔러대는 찝쩍이'잖아. 처음엔 C도 원규씨의 농담과 수다에 분명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여. 원규씨의 호의와 친절에 고마워하기도 했고, 원규씨가 '사위' 드립을 쳐도 웃으며 받아줬지. 하지만 원규씨가 A와 B에게도 찝쩍댔었다는 걸 알고 난 뒤엔, 원규씨가 하는 모든 말에 소름이 끼쳤을 거야. 자신이 원규씨에겐 '꿩 대신 두 번째 닭'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거고 말이야.
사실, 원규씨는 C를 좋아하는 것도 아냐. 원규씨 스스로도
"C가 제 카톡에 호응 잘 해주고, 저한테 호감을 보이고, 연애의 가능성이 커 보이니까 좋아하는 건지…. 제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제가 착각하고 있는 건지…."
라는 이야기를 하잖아. 게다가 원규씨는
"A, B, C 말고도 친구로 연락하고 지내는 이성이 세 명, 저한테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이성이 한 명…. 친구로 지내고는 있지만 그녀들과 연애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데…."
라는 말도 하고 있어. D, E, F, G가 이미 준비 되어 있는 거야. 이거, '주변의 아는 여자를 멸종시키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잖아. 이렇게 이십대를 보내며 주변의 아는 여자를 다 멸종시키고 나선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라는 노래를 부르게 되는 거거든.
지금 원규씨가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내가 처음 어항을 샀을 때 저지른 일들과 비슷해. 그땐 뭐든 다 키워보고 싶으니까, 어항에 산소만 공급하면서 보이는 대로 물고기를 집어넣었거든. 그래서 과밀로 죽기도 하고, A라는 물고기에 끌려 어항에 넣었다가, B라는 물고기로 마음이 바뀌면 A는 방생하고 B를 들였지. 이후 C, D, E, F…, 마음이 끌릴 때마다 이전 물고기는 처리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고 말이야. 한 어종이 제대로 살 수 있을 환경도 조성하지 않은 채, '다음 물고기'를 얼른 내 어항에 넣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어. 내 어항에선 절대 살 수 없는 대형어까지 막 집어넣고 그랬지. 다 자라면 1m 가까이 되는 녀석을, 45cm 어항에 넣었던 거야.
호객행위에만 열 올리지 말고, 원규씨의 가게를 먼저 제대로 가꿔봐. 지금은 이렇다 할 메뉴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을 끌어 들이려 나가서 뻐꾸기만 날리는 모습이거든. 원규씨는 상대가 누군지를 알고 싶은 마음 보다 빨리 승낙을 받으려는 마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이러면 사귄 지 하루, 이틀 만에 헤어지는 것도 이상할 게 없는 거야. 영혼 없이 그냥 만나서 밥 먹고 집에 데려다 주는 것 정도 하곤, 본능대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으니 스킨십 진도를 나가야지'하는 생각만 하게 될 수 있거든. 이것도 '운이 좋아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지, 실제로는 '아는 여자'를 고백의 도구로 쓰다가 수틀리면 고백의 대상으로 바꿔 '꿩 대신 닭'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진심이 늘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그 태도를 오늘 부로 정리했으면 좋겠어.
2. 앤드류와 연인 말고 친구로 시작하고 싶어요.
뭐지 이 사연은? 이거, 자랑하려고 보낸 것 같은데? 앤드류가 아리씨한테 아래와 같은 이야기 했다는 거 자랑하려고 보낸 거 아니야?
"Come on, you are pretty."
해석 - 이거 왜 이래? 넌 예쁜데?
"Because you were pretty, I thought you were one of pretty bitches and didn’t want to talk to anybody."
해석 - 너는 예뻤기 때문에, 나는 너를 생각했다 예쁜 개…? 응? 누구와도 말을 원하지 않는?
"You have nice thighs."
해석 - 너는 가졌다 좋은 넓적다리?
앤드류가 아리씨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고, 아리씨는
"앤드류의 금발은 햇빛에 더 아름답게 빛났고, 눈은 더 없이 파랗게 보이며…. 저도 본능적으로는 앤드류를 막 만지고 싶고 안고 싶은, 그런 상황입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사랑 보다는 친구로 시작하고 싶어요. "
라는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잖아. 이제 한 학기를 같이 다녔을 뿐이지만 앤드류와 앤드류 친구들이 아리씨에게 잘 대해주고 있기도 하고, 이건 뭐 막는다고 막아질 게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서양인들이 훅훅 들어오긴 해. 사람이 붐벼 아리씨가 혼란스러워 하자, 손을 살짝 잡아 끌며
"Should I carry you like a baby?"
라는 이야기도 할 줄 알잖아. 앤드류가 아니라 내 친구 덕규였으면,
"아 쫌!"
하면서 빨리 옆으로 붙으라 그랬겠지. 덕규는 상남자니까.
아무래도 이 사연은 크게 고민할 건 아닌 것 같고, 아리씨가 일단 친구로 지내고 싶다면 그의 말을 여유롭게 받으면 될 것 같아. 지금은 아리씨가
앤드류 - I thought you were cold because you are pretty.
아리 - Am I pretty?
라며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Winter is coming."
정도로 받아줘. 넓적다리가 예쁘다는 칭찬을 하면, 아리씨 가자미근은 더 예쁘다는 말 정도로 받아주고. 그리고 칭찬을 받았으면, 그만큼 돌려주면 돼. 앤드류는 눈이 파란색이니까 "네 눈은 메시에 57번 고리성운이랑 비슷하다." 정도로 칭찬해 주면 되잖아. "고리성운이 뭔데?"라고 물어오면, "내가 널 위해 구글해주마."라고 대답하면 되는 거고.
또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 이게 그린라이트가 확실하다 해도 상대에 대해 물어. 그가 한국이나 아리씨에 대해 물으면, 아리씨도 앤드류와 그의 나라에 대해 물어. 그렇게 핑퐁핑퐁 해야 하는 거지, 지금처럼
'어머? 난 친구로 시작해서 천천히 가까워질 건데 얘는 막 들이대려고 하네? 릴렉스 좀 하지.'
하고 있다간 나중에 지붕만 쳐다보게 될 수 있어. 어찌 보면 상대는 '프렌드 존'에 있는 모든 이성에게 그런 친절과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사귀는 속도만 늦춘다고 생각하지 말고 '친구 끼리 나눌 수 있는 대화'들도 많이 나눠봐. 이후의 얘기는 나도 궁금하니까 후기도 꼭 보내주고!
오늘 우체국에 들러야 할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났다. 동네에 아직 우체국이 없는 까닭에 차타고 나가야 하는데, 얼른 나가야 하니 배웅글은 생략하도록 하자. 내일 다시 뵙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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