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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확실히 끝난 것 같아요, 하지만 이유라도 알고 싶어요.

by 무한 2015. 10. 5.

안녕 주희씨. 내가 10월 1일에 발행한 매뉴얼에, '아무개'라는 독자 분께서 이런 댓글을 달아 주셨어.

 

"제 학교 여자동창도 박사학위를 따서 연구소에 있는데…, 사람들을 대할 때 마치 교수님이 학생 대하듯이 합니다."

 

저건 그간 여러 사연을 보며 내가 느낀 부분이기도 해. 흔히 말하는 '공부만 한' 사람들의 경우는, 위와 같은 모습들 보이는 경우가 많더라고. 더불어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어. 사람들을 대할 때 마치 자신이 학생이고 다른 사람들이 교수님인 것처럼 대하는 것이랄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여하튼 결론은 보통의 사람들이 친구를 대할 때처럼 대하지 못하다는 거였어.

 

이 부분에 대해선 내가 소설가 이문열의 문장을 가져다 예로 들어 설명한 적도 있잖아.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진 않는데, 화자가 "나는 꼬마들을 모아 골목대장을 하거나, 형들의 졸개 노릇을 하며 어울렸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있거든. '공부만 한' 사람들은 이렇듯 공평한 관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유지해가는 관계, 쩔쩔매거나 오만하게 굴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관계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 온전히 상대에게 기대거나, 아니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거나 하는 둘 중 하나의 모습만을 택하려 하는 거야.

 

 

1. 남친이 주희씨 학생은 아니잖아.

 

난 주희씨가 남친에게 주려고 쓴 편지를 읽고 당황했어.

 

"그러니 내가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게, 한 번 더 기회를 다오."

"우리 꽤 잘해왔잖니. 다시 또 잘 해나가면 된다."

"나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 돌아와 줬으면 좋겠구나."

"나는 두렵구나.(중략)그렇게 하도록 할 테니 나를 떠나지 말아다오."

"만약 네가 돌아온다고 해도 행복한 날들만 있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래보자꾸나."

 

장난으로 역할극 하며 놀려고 쓴 게 아니라, 진심을 털어 놓으며 상대를 잡으려고 쓴 편지라며.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태도 자체가 아랫사람에게 훈시하는 투야. 남친이 한참 어린 것도 아니고 둘은 동갑이며, 주희씨가 남친에게 부탁하는 상황인데도 말이야.

 

주희씨의 이런 태도는 신청서에 적은 주희씨의 문장들에서도 드러나.

 

"그래서 그때 제가 남자친구에게 공부를 시켰어요. 충분히 할 능력이 되어보였거든요."

 

내가 저 부분을 읽으며 좀 혼란스러웠던 건, 주희씨는 남친이 주희씨보다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고 말하거든. 그리고 당시 둘이 처한 상황 역시 주희씨보다는 남친이 나았고 말이야. 그런데도 주희씨는 본인이 남친을 다 돌보고 만들어 낸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 마치 상대의 엄마가 된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야.

 

주희씨의 저런 생각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 특히 주희씨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더 크게 드러나지. 둘에게 갈등이 찾아왔을 때 주희씨가 한 행동을 봐봐. 상대의 사과문자를 받고 대답을 안 해 버리거나, 일부러 상대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그러잖아. 주희씨가 그렇게 벌을 내리겠노라며 상대를 무시해버렸을 때, 상대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 연애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주희씨가 자신을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과외 선생님', 상대를 '과외 받는 학생'정도로 여겼다는 거라고 난 생각해. 이별의 순간에도 주희씨는

 

"좋게 헤어지진 못하더라도 사람 짜증나게는 하지 말았어야지."

 

라고 말해버리거든. 주희씨는 저게 주희씨의 진심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저건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과외 선생님'의 태도가 또 드러난 거야. 뭐, 이건 주희씨가 과외를 하던 때의 버릇이 그대로 나와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 언제가 TV에서 본 장면인데, 교사 부인을 둔 남편이

 

"아내가 저보고 가끔 "야, 너." 막 이러더라고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것처럼. 그리고 대화를 할 때에도 저를 가르치려는 것처럼 얘기할 때가 있어요. 제가 상담 받는 학생인 것처럼."

 

이라는 얘기를 하더라고. 여하튼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난 위와 같은 태도는 분명 꼭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

 

 

2. 소가 아직 안에 있을 때 외양간은 어땠었나?

 

연인이 화풀이의 대상이 되면 안 돼. 설령 상대가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그의 시간과 시도와 노력과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해.

 

그런데 주희씨는 심술이 났을 때, 또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래버렸거든.

 

"놀 거 다 놀고 난 뒤에야 연락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엄청 짜증이 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네 시간 후에야 어디냐고 연락했습니다."

"목소리가 진짜 미안한 목소리가 아니라 한숨 섞인 목소리라서 전 화가 났습니다."

 

이래버리면, 남자 입장에선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 특히 멀리서 집 근처까지 찾아갔는데 네 시간씩이나 연락 안 해줘버리면,

 

'얜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날 존중하긴 하는가? 난 당연히 기다리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말지. 주희씨는 그 시간동안 반성하고 있으라고 일종의 형벌처럼 기다리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입장에선 그 시간 동안 정이고 뭐고 다 떨어져 버려. 헤어지고 나서 주희씨도 상대 집 근처로 가서 기다려 본 적 있으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알거라 생각해.

 

변덕도 마찬가지야.

 

남친 - 지금 도착했어. 오면서 자느라 연락을 못 했네.

주희 - 이제 잘 거야.

남친 - 그래? 알았어. 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연락하자~

 

물론 나는 알지. 나는 그쪽으로 훈련이 되어 있으니까,

 

'난 지금 '이제 잘 거야'라는 카톡을 받았다. 내 말에 호응도 안 해줬고, 이모티콘도 붙어 있지 않다. 저건 위혐경보가 울렸다는 신호다. 지금 난 당장 전화를 걸거나, 무슨 말이라도 더 걸어야 한다. 만약 그러지 않고 잘 자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는 잠을 자기는커녕 무기의 날을 갈기 시작할 것이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고 싶다거나 여기도 별 거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서 그녀를 달래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오늘의 내 운세가 안전하고, 삼 대가 복을 받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바로바로 해내거든. 하지만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저런 생각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대개

 

'잔다고 하길래 잘 자라고 했더니 7분 30초 후 전화를 해서 따지기 시작한다. 이건 왜 때문인가?'

 

하는 고민만을 하게 되거든. 주희씨의 남친도 그 범주에 속해 있었고, 이후 오랜 시간 밖에 서서 주희씨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지. 그렇게 다 듣고 난 뒤에도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가, 오히려 화를 돋워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난제를 받아들어야 했고 말이야.

 

잘 생각해봐. 연애를 하고 있어서 편안한가? 행복한가? 즐거운가? 혼자일 때보다 분명 뭔가 하나라도 좋은 점이 있는가? 아니면, 전부 다 더 나빠졌으며 괴로워지기만 했을 뿐인가? 남친은 저 물음들에 어떤 답을 구하게 되었을까? 저런 순간들에 축척된 피로도로 인해, 남친은 결국 이별을 마음먹은 거라 나는 생각해.

 

 

3. 아니지. 머리로 하는 게 아니지.

 

얼마 전 어느 매장에서 고객과의 마찰이 있었나봐. 그런데 매장 관리자가, CCTV를 돌려서 고객이 나온 영상을 캡쳐하곤, 그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문제가 됐어. 해당 고객에 대한 욕을 잔뜩 적어 놓곤 얼굴을 가리지도 않은 채 사진까지 올렸으니까.

 

그래서 문제가 됐고, 당사자인 고객이 본 건 아니지만 많은 네티즌들이 본사에 연락을 했지. 어느 지점에서 누가 이러이러한 짓을 하고 있다, 그 회사는 고객을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하면서 항의한 거야. 그러자 본사에선 그 매장에 연락을 했고, 매장 대표는 SNS에 사과문을 올렸어.

 

그런데 사과문이 또 문제가 된 거야. 사과문에서 그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으며, 대부분의 내용이 변명이었거든. 왜 "하아, 난 진짜 정말 너무 억울해서 그렇게 했던 건데…, 여하튼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한다."식의 사과 있잖아. 그런 걸 한 거지. 그 사과문을 본 네티즌들은 다시 따지기 시작했는데, 이후의 일은 잘 모르겠어. 내가 평생 구매할 일 없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사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사건이라 난 관심을 끊었거든. 지겹도록 많았잖아. 저런 사건.

 

주희씨가 남친에게 했다는 사과, 그리고 남친에게 주었다는 편지가 저런 느낌이야. 사과의 형태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변명으로 하나하나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기에, 결국 읽어보면 합리화를 마친 판결문 같아. 게다가 합리화도 좀 잘못된 게,

 

"네가 그렇게 내가 A와 만나는 걸 싫어했고 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난 또 널 실망시키고 말았구나. 그래서 난 이제 A와의 관계도 완전히 끊어버렸다. A와는…."

 

라는 식이거든. 주희씨가 무슨 의미로 저런 이야기를 한 건진 알겠는데, 배분이 좀 잘못 되었어. 주희씨가 사과를 해야 하는 부분은 '난 또 널 실망시켰다'는 부분이야. 그렇잖아? 그런데 주희씨는 저걸 한 문장으로 얘기해 놓고는, 나머지 부분은 A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하거든. 때문에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그게 좀…, 그래.

 

더불어 주희씨는, "지금 나에게 대시하는 남자들이 몇 있는데, 네가 잡지 않으면 난 그들에게 흔들릴지도 모른다."라는 내용을 적기도 했거든. 그래서 난 주희씨의 이야기가, 사과를 가장한 위협처럼 들리기도 해. 누군가 주희씨에게 저런 내용의 사과편지, 재회요청 편지를 보냈다면 얄팍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아?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변명으로 가득하며, 어느 부분에선 위협하듯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피곤함만 더 쌓일 것 같지 않아?

 

"원인을 알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뭐 수학이거나 과학이면 그게 되겠지. 그런데 이건 마음에 대한 거잖아. 주희씨는 저 생각을 가진 채 계속해서 상대에게 '진짜 이유가 뭐냐'고 추궁하고 있는데, 그걸 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주희씨가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지금 그렇게 까진 친하게 지내지 않는 이유가 뭐야? 예전만큼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럼 예전처럼 주 5일 동안 매일 만나기로 약속한다면, 둘은 다시 그때의 우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잘 생각해 봐. 이 시점에 원인을 알아내서 해결하려 하는 건, 각주구검일 뿐이야.

 

 

그래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첫 이별에 이 정도로 대처했으면 선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막 친구나 지인 시켜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뻥치기도 하고, 목숨을 담보로 위협하기도 하고, 상대 부모님께 연락해 깽판을 치기도 하고, SNS스토킹을 시작하기도 해. 받은 거 다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그걸 '여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이별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 대한 위자료까지 요구하다가 전부 다 차단당한 사람도 있어.

 

사실 난 이걸 좋은 징조라고 생각해. 처음 주희씨의 사연을 읽으며 난 주희씨가 좀 로봇같다는 생각을 했거든. 그냥 무난한 인간관계를 잘 맺기는 하는데, 진짜로 마음을 주지는 않는 그런 타입 말이야. 연애 중일 때도 주희씨는 어느 면에서 굉장히 차가웠어. 남친에게 관심도 없고, 그냥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 주희씨가 이렇게까지 휘청거렸으니, 난 이걸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앞으로 주희씨가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누군가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위에서 말한 부분만 조심한다면, 주희씨도 연인과 '진짜 친구'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야. 상대가 날 슬프게 한다고 해서 그때만 우는 관계 말고, 상대가 아플 때 주희씨도 울 수 있는 그런 관계 말이야. 누군가와 그런 관계가 된다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구원 받은 느낌일 것 같지 않아? 지금까지 주희씨는 남이 그래주기만을 바랐을 뿐이니까, 오늘부터는 남을 위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해 봐. 그게 안 된다면, 주희씨의 옆자리에 있는 사람은 결국 언젠가 외로워지거나 실망하게 될 수 있으니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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