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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결혼 얘기 꺼냈더니, 그럴 상황이 안 된다며 헤어지자는 여친.

by 무한 2016. 2. 18.

대체 왜 그런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헤어지게 된 이런 사연은, '다수의 조언'을 따라 결론을 내는 게 가장 속 편합니다. 주변에서 잘 헤어진 거라고 말하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는 것이, 또 지금 좋아해서 결혼해도 나중에 문제 생겨서 시끄러워질 것 같다고 말하면 역시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는 것이, 저에게도 참 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연을 다루게 될 경우 저는

 

"남자친구니까, 그런 것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이러한 부분까지 고려하며 말할 수 있어야 상대도 확신을 갖게 되는 법입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투다 여자친구가 울며 '내 그런 점들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여자 만나. 안 그런 여자 만나면 되잖아.'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말까지 품은 채 손잡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 말은 진심으로 밀어내려 하는 말이 아니라,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무서운 표정을 해 기댈 곳 없어진 상황에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르는 비명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사연을 주신 분과 저 둘이서만 보는 거라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공개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연의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하면 편파적인 이야기로 비칠 수 있고, 제 말을 '절대적인 기준'을 말한 것으로 오해해 항의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으며, 콜로세움이 벌어지기 쉬운 부분이라 '성대결' 모드의 댓글들로 도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 어렵고 두렵지만, 사연의 주인공인 S씨, 그리고 S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거나 놓이게 될 수 있는 분들을 위해 매뉴얼을 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이 매뉴얼로 인해 논란이 벌어지면, 그 책임은 저 대신 S씨가 다 지는 것으로 해주셨으면 합니다.(응?) 출발하겠습니다.

 

 

1. 아무것도 아닌 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수 있습니다.

 

S씨는, 홀어머니와 함께 반지하 원룸에서 살고 있는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경우 누군가 자신의 상황이 저렇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아, 그렇구나.'하는 생각 외에는 별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S씨가 사연을 적어내려간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S씨도 저처럼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상대가 어디에 살고 있든, 상황이 어떻든, 그게 상대와 S씨의 관계엔 아무 영향도 안 끼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S씨나 제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상대에게는 친한 친구나 연인에게도 털어놓기 힘들며 늘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걸 상대에게 보이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 속에 살고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위와 같은 경우 집까지 절대 데려다주지 못하게 하거나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그저 잠깐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합니다. 제 친구 중 집에 차가 포터밖에 없어서 포터를 끌고 나오는 친구A가 있고, 창업을 목적으로 포터를 구입해 타고 다니는 친구B가 있습니다. 둘 다 차를 쓸 일이 있을 때면 포터를 타고 나오지만, 모임이 있을 때 A가 자신의 차를 일부러 멀리 대는 걸 B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엔 성격의 차이도 물론 작용하겠지만, 전 그게 '경제력의 한계에서 온 상황인가 아닌가'라는 부분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사정이, 나보다 사정이 나은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마음을 잠시 느껴보려면, 단순한 역지사지보다는, 벤츠를 소유하고 있으며 백화점 가듯 홍콩으로 쇼핑을 갈 정도의 재력을 가진 여자친구를 두었다고 상상해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대기업 사장이고, 그녀의 형제자매가 다들 해외에서 석박사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라면, S씨도 그 집안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녀와 결혼을 생각하는 것에 있어 좀 움츠러들지 않으시겠습니까? S씨의 학력이나 경제력, 또는 어학실력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이렇듯 '아무것도 아닌 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이, 상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부분'일 수 있다는 얘기를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2. 사랑하지 않아서냐. 내가 싫어서냐. 왜 그러냐.

 

위에서 이야기 한 부분은, 이성이나 논리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성이나 논리로만 접근해버리면, 앞서 말한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지점'을,

 

-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는 것.

- 자격지심을 느껴서 그러는 것.

-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레 겁먹은 것.

 

정도로만 여기게 됩니다. 그렇게 여길 경우, 상대가 그 이야기를 털어놓기까지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 수 없으며, 저런 일들로 인해 관계의 종말까지를 고민하느라 스스로도 수많은 절망을 거듭했을 것이라는 걸 간과해버릴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S씨가 한 말들을 잠시 보겠습니다.

 

"그러다 속에 있던 말을 꺼내더군요. 자기가 모아 놓은 돈이 없고 빚도 있어서,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여자친구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저에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든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든 했으면 해결책을 알아볼 텐데, 여자친구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제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를 상당히 자존심 상해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여친에게 제가 싫어서 그러는 거냐고 물으니, 또 싫은 건 아니라고 합니다. 여친이 차라리 제가 싫어져서 헤어지자고 하는 거면 제 미련이 덜 할 것 같긴 한데, 하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게 좀 편파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긴 한데, 그 상황에선 상대를 안아주는 게 먼저입니다. 반 년 넘게 그 부분에 대해 혼자 앓기만 했을 상대를, 또 S씨가 결혼 얘기 꺼내자 며칠간 고민하다 겨우 속사정을 털어놓은 상대를, 싫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사정이 안 되어 이별이란 답을 홀로 구했을 상대를, 안아줬어야 합니다.

 

하지만 S씨는 위와 같은 말들을 하며,

 

'내가 부담해서 결혼하고 내 벌이로 생활비 하면 된다고까지 말했는데, 왜 그녀는 그래도 저런 이유로 헤어질 생각을 하는 건가. 저런 이유들로 헤어지자고 하는 건, 혹시 내가 싫어졌음을 돌려 말하는 것 아닌가. 주변에서도 결혼은 현실이라고 잘 헤어진 거라고 하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이성과 논리로 접근한 S씨의 방법이 틀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특히 '문제해결'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남자의 입장에선, 그게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접근이기도 합니다. 다만 전, 감성과 공감으로도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상대가 넘어졌을 때, 상대를 바라보며 '더 타는 것에 무리 없냐'를 묻는 게 이성과 논리로 접근하는 거라면, 내 자전거를 세워두고 상대에게 다가가 '다친 곳 없냐'를 묻는 건 감성과 공감으로 접근하는 거라고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3. '다음에 말하기로'가 반복되었던 연애.

 

이 이별에는, 위에서 이야기 한 것들 이외에 S씨와 상대가 연애하며 별로 친해지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누가 리드한다고 할 것 없이 그냥 뭐 하자거나 어디 가자고 하면 가는 거 좋고, 영화 보고 밥 먹고 교외로 드라이브도 가고 하는 거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데이트'가 그저 현재의 감정만을 즐기며 함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마는 것으로 끝나버리면, 수년을 사귀어도 상대가 직장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는지를 모를 수가 있습니다.

 

연인이라면, 그것도 앞으로 반평생을 같이 할 생각까지 하는 사이라면, 상대의 간략한 일대기 정도는 써줄 수 있을 정도로 상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친한 친구들만 알고 있는 부분이 따로 있을 수 있고, 또 부모님만 알고 계실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을 순 있지만, 적어도 과거 연애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삶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 사실 S씨가

 

"둘 다 결혼할 나이인 까닭에 전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났습니다. 그래서 결혼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꺼냈는데, 그때마다 여친은 결혼에 대해 한 발짝 물러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다음에 이야기하자면서…. 전 아직 여친이 제게 확신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자고 한 거지만. 여하튼 그러던 중 제가 결혼은 언제쯤 하고 싶은지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물었는데, 그 질문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네요."

 

라고 말한 부분을 보며, 좀 성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 전에 두 사람의 친구들도 함께 만나보고, 명절이면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라도 먼저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S씨는 '결혼'을 너무 앞세웠던 것 같습니다. S씨가 상대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여자친구가 고심하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꺼내고 난 뒤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 S씨는 제게

 

"어느 정도 빚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빚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간 만나며 봐온 여자친구의 성격대로라면, 사치로 인한 빚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고 말입니다.

 

아니 이게, 두 사람이 남도 아니고 결혼할 생각까지를 하던 연인인데, 왜 말도 안 하고 묻지도 않는지 저는 좀 답답했습니다. 둘은 연애 중에도 계속 그래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S씨가 신청서에 적은 이야기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여친이 먼저 연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무덤덤한 타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섭섭해서 한마디씩 했는데, 그 후엔 그냥 그런 스타일인가보다 하며 별말 하지 않았습니다."

 

내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에 대한 상대의 생각을 듣고, 또 상대의 감정에 대해 묻고, 그것에 대한 내 생각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거고, 이게 바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냥 혼자 짐작한 채 신경 안 쓰기로 하고 넘어가는 건, 이해가 아니라 포기입니다. 

 

훗날 S씨가 누군가와 결혼해 살게 되었을 때, 아내가 집에 돌아온 S씨에게 밥 먹었냐고 묻지도 않고 TV를 본다면, 그땐 나 좀 반가워해주고 밥 먹었냐고도 물어봐 달라고 말해야 합니다. S씨 혼자 '아내도 오늘 일하느라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하며 라면을 끓여 먹고 말면, 그런 행동은 결국 관계의 단절을 불러올 확률이 높습니다. 서로의 벗은 몸을 볼 수 있는 사이라고 해서 부부가 될 준비가 다 된 게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까지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비로소 부부가 될 준비가 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지 몰라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제가 이 매뉴얼을 쓴 이유는 이게 꼭 S씨의 반성과 더불어 상대와의 재회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는 아님을 밝히고 싶습니다. 저는 S씨가 이번 이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다음번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지, S씨가 잘못해서 헤어지게 된 것이니 상대에게 사과하고 붙잡아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S씨의 여자친구가 이 사연을 보냈다면, 저는 그녀의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하는 건데 그녀는 혼자 선택하고, 혼자 마음 정리하고, 그 후 통보를 했을 뿐입니다. 60년을 함께 산 부부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건데, 그녀는 6개월 만난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야, 그때 결혼을 결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S씨는 

 

'그래, 결혼은 현실이고 사랑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니까. 특히 돈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들 말하니까. 결국 돈 문제 때문에 힘들어질 수 있는 이런 관계는, 그냥 그녀의 결정대로 이별이란 답을 따라가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을 하며 '돈 문제'를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것보다, 만약 두 사람이 결혼해서 살게 된다 해도 상대가 또 '이혼'에 대해 혼자 선택하고, 혼자 마음 정리하고, 통보까지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부분이 더 걱정됩니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조언 역시, 사연이 '연애 중'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이별의 순간'에 훨씬 많이 치중되어 있어 답을 드리기 어렵고 말입니다.

 

마침 S씨도 결정에 대한 조언보다는

 

"무한님의 생각도 한번 듣고 싶네요."

 

라며 덤덤하게 제 생각에 대한 질문을 주셨으니, 이 정도로 제 생각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결혼이 분명하다 생각하며 뚜껑을 열었지만 거기 이별이 들어있어 S씨도 지금 마음이 말이 아니실 텐데, 모쪼록 이 매뉴얼을 통해 그간 흐릿하고 불분명했던 것들이 좀 정리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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